20240929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하 13:19-25
여러분에게는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언제나 내 편이 되 줄 사람, 내가 부르면 달려올 사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 이런 사람이 있으세요?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그런 사람입니까? 좋겠네요. 요즘 참 정치뉴스만 봐도 내 사람 찾을 게 못 되더라고요. 믿는 도끼는 발등 찍으라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사람 찾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기억해야겠는데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와요. 신명기 33장 1절에 처음으로 표현된 사람이 모세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표현된 사람이 디모데후서 3장에 예수 믿는 모든 성도에 대해 쓰였어요. 그러니까 성경의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부터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 모두 전부까지 다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가장 특별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호칭이 하나님의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가장 많이 불린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바로 엘리사예요. 엘리야 선지자 7번 쓰였는데, 엘리사 선지자 29번. 거의 30번에 가까이 쓰였는데 갑절이 넘는 영감 맞죠?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의 마지막 사역을 살펴보면서 오늘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마지막까지 거룩한 분노로 양육합니다.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 지난주 엘리사가 14절에 죽을 병이 들어서 찾아온 요아스 왕에게 처방을 했지만 끝까지 순종하지 않고 세 번만에 그친 그를 보며 마지막까지 이렇게 사명 감당하다가 분노하며 갈 수도 있다는 거를 알았어요. 자기 생각으로 가득한 요아스를 보면서 애통하다 못해 화가 나는 거예요. 화살로 땅을 치라고 했으면 그냥 치면 되는데 왜 3번만 치고 마음대로 그치느냐는 말이에요. 이건 가족의 운명,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이에요. 정말 요아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데 아합 집에 이어 예후의 집을 사로잡고 있는 강하고 질긴 죄에 대한 분노입니다. 죄를 향한 거룩한 분노예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악을 향해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언가 하면 거의 합격이 없자나요. 그러니 '3번만 참으면 되냐, 대 여섯번 참아야지, 끝까지 참아야 되는 거지. 참았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텐데 왜 그랬어.' 이 얘기인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예수 믿어야 해. 왜 아직도 안 믿는 거야. 니가 진작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을텐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믿어야 돼. 너 이혼하면 안돼, 사표 내면 안돼. 주식은 끊어.' 화를 내며 소리를 치며 믿으라고 하며 마지막 사역하며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나는 죽을 병에 걸렸어. 그런데 내 소원은 너희들이 예수 믿는 거야. 알았니?' 이 소리지르며 유언하고 죽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면 결국 구원때문에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가게 되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쉬운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지난번 우리 초원님 어머니도, 그분이 똑똑하신 분인데 마지막에 자녀들 보고 유언하라고 하니까 절대로 못하시더라고요. 내가 이번에 하동균 집사님 거기 잠깐 갔는데요. 그 하동균 집사님은 간암이고 김경옥 집사는 췌장암인데 이게 딱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모든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임종예배를 드렸는데 완전히 그냥, 돌아가시기 지금 며칠 전인 거자나요. 그런데 그걸 영상으로 글쎄 찍어놨어요. 그렇게 고통 가운데, 그런데 엄마 아버지가 그렇게 싸우시다가 마지막 임종예배 이걸로 다 제압이 되가지고 이 아들이 앞으로 너무 잘 붙어간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거를 1분만 좀 보여드릴게요. 임종예배. 이걸 구원을 위하여서 이걸 이렇게 남기고 싶었어요. 그동안 다 싸운 거 괜찮아, 마지막에 이렇게 가시니까. 마지막이 중요해. 자, 시작. 너무 저렇게 한복 입고, 이거 남기고 싶다고. 저러고 돌아가신 거예요. 이렇게 가셔야 되지 않을까요? 너무 중요한 오늘 찍어놓은 영상이 있어 제가 눈물을 막 흘렸습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이에요. 이름이 너무 좋아가지고 남북에서 모두 요아스라는 왕의 이름을 썼자나요. 하나님이 다 주셨으면 뭐 해요. '하나님이 구원.'이시라는 뜻의 엘리사가 마지막까지 양육을 해도 확신이 없고 열정이 없어서 3번만 치고 그쳤어요. 우리는 참 많은 일로 화를 냅니다. 배고파서 화가 나고, 욕 먹어서 화가 나고, 기대와 예상대로 안 되어서 화가 나고, 잃어서 화가 나고, 빼앗겨서 화가 나고, 원하는 거 못 얻어서 화가 나고. 그런데 그 본질은 다 내 피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에게 피해와 손해가 생기는데 대한 본능적인 감정의 반응이 분노예요.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분노는 거룩한 분노가 아니예요.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감정폭발이 아니예요. 거룩한 분노는 언제나 그 대상이 죄악이에요. 내 손해가 아니예요. 죄에 대해 슬퍼하고, 죄에 대해 두려워하고, 죄를 미워하고, 죄 떄문에 좌절하고, 죄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죄에 대한 분노는 바꾸어 말하면 구원을 위한 애통함이에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는 건 본능적인 분노죠. 하나님은 예레미야 보고, 남유다 백성들 보고 기도하지 말라고 해요. 하나님도 지금 분노하셨어요. 역설이죠. 성경적 가치관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내가 분노해야 될 대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죄라는 것을 그렇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일 뿐임이깨달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영혼에 대해서 애통함이 생기는 거죠.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양육이에요. 요새 양육이 한창이자나요. 양육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런 거룩한 분노와 애통함으로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마구 화를 내라는 건 아니예요. 눈높이를 잘 맞춰서 지혜롭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르면 좀 물어보세요. 목자님, 마을님, 초원님께 물어보세요. 우리가 누구를 양육시키자나요. 그러면 사실 제일 양육이 되는 사람이 바로 양육자예요. 양육을 위한 수고가 결국 다 내 자신에게 돌아오죠. 양육은 주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자나요. 그래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그 만큼 나도 자라니까 주님이 메세지도 키워 가시고 나도 키워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오늘 엘리사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양육에 힘씁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요아스가 다들 3번 친 것만 해도 어디인데 왜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시는지 이상하시다고 그러는 사람들이 또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쉬운 예를 좀 한 번 들어보겠어요. 예전에 수요 큐티 모임하면서 교회 시작했을 때인데, 제 책을 보고 은혜를 받으셨다고 그러면서 '1년 밖에 기한이 없는데 그동안에 아들이 예수 만났으면 좋겠고 신학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아들이 와서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니까 이분은 '자기는 학력도 좋은데 왜 큐티가 안되냐?'고 그러는 거예요. 본인은 아무것도 안 깨달아지는데 그 모임은 다들 잘 깨달아지는 표정들을 짓고 있대요. 다들 뭔가 쓰는데 자신은 쓸 게 하나도 없고 그러니 지루하고 이제 재밌지도 않고 화가 난 모양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큐티는 얼마나 하셨나요?' 그랬더니 '딱 3번 했다.'고 하더라고요. 요아스처럼 3번만 치고 그치니까, 그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해야 되자나요. 저는 이제 개척 초기라 무서워서 노하지 못하고. 은혜받았다고 하니까 아들이 와서 큐티 훈련을 받아보시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이 분은 뭐라고 그러냐 하면 '우리 아들은 교회 잘 나가고 있고 충분히 은혜 받고 있어요.'이러시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은혜 계속 받으시라.'고. 일단 저를 이렇게 아래로 놓고 보시는데 이런 분에게 통하지 않는데 만일 1년 동안 와서 성경 읽고 은혜 받고 가시라고 하면 이게 자칫 일파만파가 될 수 있는 거죠. '왜 지 모임만 오라고 해' 저는 이제 지난 날을 생각해보면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처음부터 목회를 위해서 큐티 모임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고 얘기를 하면 이상한 얘기를 하니까 날마다 말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성경을 내 이야기로 듣는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은 '성경이 성경이지 왜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는가?'하면서 그 다음 주일에 다른데 갔는데 거기도 굉장히 은혜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러면 은햬 받는데 가서 잘 하시라.'고 했더니 '근데 은혜는 받았지만 그 한, 두 번 가 본 쿼 모임이 성경을 많이 읽긴 읽대요.' 이렇게 또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대체 이게 뭐예요. 이분이 지금 굉장히 노할 얘기를 많이 했자나요. 목장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드러내야 되는데 그때 제가 노하지를 못하니까 좋은 선지자가 아닌 거죠. 그러니까 이제 우리 교인들이 이진호 집사부터 다 3번 치고 그치는 분이 많았던 것은 저의 탓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야단을 못 쳐가지고. '아유, 목사님은 얼마나 야단 쳤는데 저런 얘기를 하시나.' 굉장히 분해할 것 같아요. 지금은 열매가 있고 우리들교회가 있기 때문에 저도 제 편이 있어서 예전보다는 많이 노합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땅에 화를 치다 가시기 바랍니다. 묵상을 많이 하면 지혜롭게 사람을 좀 대하는 것이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대 여섯번 치는 게 뭔가 하면 부족한 것이 많아요. 오직 물귀신처럼 '큐티 해야 한다.' 그냥 '이 큐티 해야 가정이 살아요.' 그냥 외치고 청하고 또 청하는 거 잘해요. 여기까지 왔어요. 참 고양이 없어 보입니다. 추석 때 몽골인들을 위한 수련회를 했는데요. 3백명 가량 참석하셨어요. 그들이 솔직한 것 아주 좋아한다고 하고 통역으로 했는데도 몽골인들이 몽골어도 아닌데 한글 큐티인을 그렇게 많이 사더라고요. 너무 놀랐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가 있었듯이 우리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큐티인이 이 몽골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님의 촛볼이 인구절벽인 한국에서 몽골같은 곳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날 했어요. 모습도 한국인이고 아이도 많이 낳는대요. 아유, 한국의 교회보다 아주 나을 지경입니다. 항상 심각하기에 그들이 지금 직업도 택배도 막 이런 거 하는데 너무 옛날에 우리 초대교회 한국인 사람들처럼 열심히 듣는 거예요. 지난주는 또 군 선교사 수련회를 미니 목세로 광림수도원에서 한 180분 정도가 참여했는데 여기도 큐티인을 해야된다고 부르짖고 부르짖었는데 제 이거보다는 목장 탐방에서 무장해제가 되셨어요.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해요. 그러니까 이런 걸 하기 위해서 그냥 쉽게 되는 게 아니예요. 군 선교사 수련회에 여자 강사가 간 게 청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사단의 방해가 또 많겠어요. 시간 1시간만 더 달라고 제가 빌고 계속, 그러니까 우리 부목사님들이 '체통을 좀 지키시라.'고 지금. 내가 어디가서, 저는 이렇게 전할 시간 이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저한테 시간 달라.'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사명 감당하다가 가기를 기도합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요즘 무슨 일로, 누구에 대해 화를 냅니까? 죄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입니까? 내 손해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입니까?어떤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그만두려 하지는 않습니까? 거룩한 분노로 끝까지 마치겠습니까?
2.죽어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0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 자,엘리사가 14절에 죽을 병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요아스에게 분노하고 양육하다가 그냥 요아스가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드디어 죽었어요. 엘리사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참 대조적이에요. 엘리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등장해서 세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까마귀 공계를 받다가 아합에 맞서 약 20년 동안 불꽃처럼 사역을 했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불에 태워 죽였자나요. 죽을 때는 또 어땠어요. 불수레와 불말과 함께 스펙타클하게 하늘로 승천을 했어요. 그런데 엘리사는 어떻습니까? 부유한 농장 주인이었고 일하던 중에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어요. 출발이 땅이에요. 그리고 요람왕부터 요아스왕까지 50여년 넘게 사역을 했는데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녔어요. 왕 뿐만 아니라 수넴 여인, 이방 장수, 선지자의 제자, 여러 사람에게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엘리사는 결론이 죽을 병에 걸렸네요. 이 죽을 병이라는 말은 살지 못할 병이자나요. 당연히 투병도 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엘리사가 '내가 일은 더 많이 했는데, 기적도 더 행했는데 왜 나는 엘리야 스승님 같이 병거 타고 하늘에 못 가나.'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그랬으니까 죽음을 보지 않고, 병거도 금병거 타고 승천해야 되는데, 병거는 안 타도 죽을 병은 안 걸려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상으로 승천을 주시지 않고 죽을 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는 엘리사라는 불세출의 제자가 있었는데 엘리사는 야망의 제자 게하시만 있고 요아스를 분노하면서 양육할 제자도 특별히 없네요. 그리고 그냥 죽어버렸어요. 이게 뭡니까, 짠 해야 되는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 같고, 엘리사는 땅의 사람 같아요. 엘리야는 범접할 수 없이 고귀한 것 같고, 엘리사는 좀 낮고 가깝게 느껴져요. 실제로 엘리사는 아이들에게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놀림받았어요.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야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선지자가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누가 좋고 나쁘고, 높고 낮은 게 없어요.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하나님의 사람이고 싶으세요. 우리는 생각 자체가 기복적이라 엘리야와 엘리사를 비교하면서 엘리야를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 쉬워요. 그렇죠, 우리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러분들 찬송하자나요. '엘리야의 하나님'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엘리야처럼 죽고 싶으세요, 엘리사처럼 죽고 싶으세요? 다 죽을병 걸리기는 싫죠, 살아서 그대로 승천하고 싶죠? 누구나 하늘이 되고 싶지 땅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1등만 좋아하지, 2등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말이죠, 엘리야보다 엘리사가 갑절보다 더 많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자나요. 여긴 7번이고 여긴 29번. 이건 정말 구속사적인 메세지예요. 그러기에 이 두 선지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주신다는 것 자체가 구속사입니다. 그러니 엘리사는 인기 관리 같은 거 안 해요. 인생 마지막인데 왕이 찾아왔으면 조금 좋은 말 해주지 그래야 장례식도 좀 잘 치러줄 거 아니예요. 엘리사는 그냥 그런 게 관심이 없어요, 마지막 양육을 화를 화를 내면서. 엘리사는 너무 한결 같이 이상해요. 물이 없다는 데 웅덩이를 파라고 하지를 않나, 기름 한그릇 남았는데 그릇을 많이 빌려오라고 하지를 않나, 국에 독이 있다는데 가루를 가져오라고 하지를 않나. 계속 이상했는데 마지막까지 이상한 거예요. 이 말을 누가 듣겠어요. 정말 비상식적인 얘기만 해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엘리사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양육하고 살리는데 모아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죽을 병 가운데서도 투혼을 발휘해서 요아스를 양육해서 이스라엘을 살리고자 하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엘리사의 슬픔으로 보이겠어요. 여러분 죽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우리는 엘리야를 너무 좋아하지만 예수님의 예표는 엘리야보다는 엘리사라고 하는 거예요. 이 죽는 모습을 예수님도 더 비참하게 보여주셨자나요, 그렇죠? 그래서 20절에 엘리사가 죽었어요.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 엘리사가 죽은 건 이스라엘의 불행이에요. 3장에서 엘리사 때문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했는데 엘리사가 죽자마자 도적 떼로 다시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큽니다. 맨날 잔소리하고 화내고 이상한 일만 시키고, 그런 엘리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이스라엘 왕들이. 그러니까 말을 안 듣자나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를 지켜주던 구원자였네요, 그렇죠. 그때 마침 상을 장사할러 가던 사람이 그 도적 떼와 만납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가던 길에 한 묘실에 시체를 들이던졌는데 그 묘실이 엘리사의 묘실이었는데요. 그런 계획이나 의도가 전혀 없이 그 시체가 엘리사의 유골에 닿자마자 시체가 회생하여 일어섰어요. 엘리사는 생전 많은 엄청난 기적을 행했어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사렸자나요. 그런데 죽을 병이 들어도 사명 감당하다 가니까 엘리사는 죽은 뒤 유골이 되어서도 죽은 사람을 회생시켰어요. 췌장암으로 그 고통 중에서 저렇게 한복을 입고, 이거 있자나요. 그거 쉬운 거 아니예요. 제가 그랬자나요. 그 초원님 어머니한테 '예수 믿어라. 이 얘기 한 마디 해라.' 절대로 안 하시는 거예요, 교회 다니시는데. 그래서 정말 우리는 그 고통 가운데 계속 찬양하고 갔자나요. 이것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각인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에요. 회생한 사람, 부활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생명이 환경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무덤 속 마른 뼈처럼 되어도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냅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생명을 끊임없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은 뒤라도 사람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 그런데 뭘 생각했냐면 '아, 책이 남으니까.' 이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죽어도 제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진짜 책이라면 2천 년도 갈 거예요. 그 책이 여러분들의 손에 딱 닿으면 여러분들을 구원시킬 줄 믿습니다. 책으로 은혜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자나요. '내가 그 책 때문에 이혼 안 했다. 죽지 않았다. 주식을 끊었다. 주식을 끊었다. 주식을 끊었다.' 이렇게 내가 순종을 해야 되겠다 하면 이게 사람 살려내는 거 아닙니까? 이 설교와 책이 남아 있으니까 읽고 들으면 살아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활자화 되면 무서운 거예요. 책에 합당한 인생을 제가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이제 이 설교 듣고 닿으니까 보세요. 연휴를 앞두고 설교 리플에 이런 리플이 올라왔더라고요. '난 직장 일에 아이 케어에 정신 없이 바쁜데 명퇴한 남편이 초등학교 6학년아이가 있는데도 집에서 주식하며 감정 기복에 따라 가족을 언어폭력하며, 도리어 본인이 14년 동안 참았다고 더 참을 수 없다며 이혼하자며 계속 혈기를 부려서 가정 법원까지 가서 서류 제출까지 했는데 그러다 목사님 설교를 접했네요.' 우리 교인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이 설교가 저의 발목을 잡으시네요. 그래서 또 잘못했다 했죠.' 이렇게 제 설교가 닿았어요. 저는 이 마음을 알아요, 방귀 뀐 늘 놈이 성을 내기 때문에. 그렇게 글쎄 우리 남편을 절 사랑하는데 그렇게 이혼하자고 그래요, 저한테. 다 자신이 없어서 이혼을 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나는 이혼하자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이혼하자 소리 제가 해야 되자나요. 매 맞은 제가 해야 되자나요. 왜 때리는 사람이 이혼하자고 그래요. 이 말이 오늘 닿기를 바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는 나보다 옳도다' 구입했나요? '붙회떨감' 구입했나요? 적용질문이요.
[적용] 엘리야처럼 카리스마가 있고 싶으세요? 엘리사처럼 편한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죽을병에 걸렸다면 낫는 것이 소원이겠습니까? 가족이 예수 믿는 것이 소원이겠습니까?
3.언약 때문에 영원한 회복을 누립니다.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 다시 여호아하스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여호아하스나 요아스나 전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언제 학대를 당하고 언제 멸절되고 진멸되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아람왕 하사엘과 벤하닷이 대를 이어 학대하는 심판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13장 초반에 읽었자나요. 이것이 이제 요아스가 양육을 했는데 그게 어떤 결과로 일어나는지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어떤 학대를 받아도 억울할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이어지게 하시는 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언약이라는 거자나요. 하나님은 언약 때문에 우리에게 오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거예요. 다시 다 살아나는 거예요.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사의 뼈에 닿기만 하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생명이 이렇게 귀한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절대 지켜야 되는 거예요.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낳아야 하는 거예요. 결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예요. 피투성이가 되어도, 뼈처럼 말라 비틀어지는 상황이 되어도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상황이 인생의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24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 자, 24절, 25절이에요.
이제 아람왕은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지금 학대했자나요. 땅도 많이 잃었어요. 그런데 요아스가 성읍을 다시 빼앗았어요. 어떻게요?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준 구원의 화살의 예언처럼 그대로 벤하닷을 3번 쳐서 무찔렀어요. 잃어버린 성읍을 회복했어요. 엘리사를 통해 주신 약속을 이뤄주신 거예요. 요아스나 백성이나 여전히 금송아지 섬기는 죄악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언약 때문에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성읍을 회복시켜 주시는 거예요. 죽기 전에 분노하며 양육했던 요아스도 죽을 것 같은 상황, 시체처럼 된 고난에서도 지금 3번, 3번은 회생을 해요. 우리는 회복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좋아요. 특히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것은 막 너무 좋아하죠. 그런데 이 땅에서 회복한 건 반드시 또 이 땅에서 잃어버리기 마련이자나요. 요아스가 되찾은 성읍은 그때부터 100년도 못 가서 전부 앗수르에게 빼앗겨 버리죠. 나라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 이 땅에서의 회복이 목적이면 인생이 참 허무한 거예요. 여러분 이거 알아야 돼요. 그런데 '회복하다'는 히브리 단어가 '슈브'인데요. 이 단어는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도로왔다고 할 때 설명을 드렸죠?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의미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회복이나 회개나 돌아오는 게 기본적으로 다 같은 동사인데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잃어버린 이 성읍을 회복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그 성읍을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것이자나요. 그게 회복인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회복은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은 왜 잃어버린 성읍을 우리에게 돌려주세요? 왜 약속을 지키시고 언약을 지키세요? 우리를 돌이키기 위함이죠. 이 돌이키는 것이 회개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회복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인 거예요. 그게 곧 회생, 곧 부활로 이어지는 회복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나요. 누가복음 15장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주님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 회개에 있어요. 우리가 예물 드리고 빈돗수 많게 예배 온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회개를 가장 기뻐하셔요. 아무리 좋은 것 잃었다가 회복해도 우린 또 잃어버리자나요. 영원한 건 이 땅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 영혼의 회개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영원히 간직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기쁨인데 그걸 어떻게 잃어버리겠어요. 그런데 요아스는 3번 만큼만 회복했자나요. 이런 일시적인 회복 말고 영원한 회복을 해야 하나님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영원한 회복이 뭔가. 그 회개가 날마다 돼야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거창한 순종이 아니고 화살을 5번, 6번 치는 게 뭔가. 주님을 만났으면 그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매뉴얼이 있을 거자나요. 그러니까 이게 오늘 하루부터 천국 가는 그날까지 말씀보는 순종으로 회개를 시작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이제 이혼하지 말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들으면, 이거 또 이혼 한 사람이 기분 나쁠 거 아니예요. 또, 내가 '술주정뱅이도 제일 좋은 남편이다.' 이 말을 하면 또 그 부인이 '왜 내 편을 안 들고 남편 편을 들어. 목사님은 그런 술주정뱅이하고 살아봤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살아봤어요. 구속사적 언어예요. 그러니까 성경의 언약이고 내 죄를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회개를 위해서, 영원한 회복을 위해서 큐티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또 '큐티가 안 되는 걸 어떻게 하우?' 이러자나요. 그래서 이제 큐티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어요. 큐티를 할 적에 성경책을 딱 갖다 놓고 안수를 그냥 딱 하고 그리고는 그냥 하나님 앞에 담판을 벌이고 '아무것도 모르겠사오니 가르쳐주시옵소서.'하고 눈을 딱 떴는데 뜨는 순간에 애 결혼 문제가 딱 생각이 나는 거예요. 첫날을 봐도 돈이고, 둘째날을 봐도 돈이고, 또 이제 그 다음에는 결혼을 어떻게 하나, 셋째날은 가스불에 전기불에, 넷째날은 시어머니를 묵상하고 다섯째날은 시누를 묵상하고, 1년 동안 같은 걸 묵상하더라도 여러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기도하세요. '하나님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줄 하나님이 아닌 걸 알기에 오늘 내 비록 돈을 묵상했지만 불쌍히 여겨 주시고 내일은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나서는 그냥 밖에 나가서 '나 큐티했다.'고 외치고 다니라는 거예요. 시작하면서는 아무것도 안 깨달아져도 끝나고는 나 큐티했어 이것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거예요. 나는 큐티가 너무 안되는 여러분의 위치에서 너무 생각하다가 이렇게 결 걸 다 생각해냈어요, 나의 이 고난을. 그리고 이제 큐티 노트에는 뭐를 쓰냐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첫날은 돈, 두번째날은 결혼 큼지막하게 쓰세요. 아, 그럼 내가 또 들으면 '이 날은 돈을 묵상했구나. 이 날은 시어머니를 묵상했구나. 시누를 묵상했구나.' 그날그날 써 놓으세요. 하나도 생각나고 깨달아지는 게 없으면 그렇게 쓰라는 거예요. 그래도 그날 돈을 묵상했다는 게 어디예요. 안 하는 거 보다 천 번 나아요. 그래도 양심상, 양심상 본문은 한 번 읽으시고.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려도 계속 큐티를 안 하신다면 일시적으로 여러분에게 복을 주셔서 3번은 은혜 받아도 그 다음에는 더 큰 세력에 의해서 완전히 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기복이 깔려있어가지고 이런 게 안 들려요. 그러니까 택한 사람들은 이단에 가 있을 수가 없어요. 거기는 십자가와 자기 부인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기복이 좋아서 거기 있는 거예요. 욕심이 많아서 다 이단에 가는 거예요. 성경은 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글인데, 그게 다 자기 십자가 지는 건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힘든 결혼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그만큼 여러분들의 재료가 극상품인 거예요. 수준이 높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당할만한 형벌을 주시는 거예요. 제가, 아니 이 모든 걸 갖추고 매맞고 왜 살아요. 제가 매 맞았다는 거 때문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뭐 잘난 게 뭐가 있어요. 다 죽으면 썪어질 놈의 몸뚱이고 악하고 음란한 건 똑같은 거죠. 저보고 '그런데 목사님은 어쩜 그렇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큐티가 잘 되냐?'고 '그래서 안 되는 사람을 심정을 너무 모른다.' 여러분,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어서 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환난이 없으면 사실 안 봐져요. 그런데다 성경을 모르면 해석이 안 되고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또 적용이 안 돼, 안 깨달아져. 그러니까 큐티를 하면서 항상 그 깨달은 적용 '아, 이게 우상이구나.' 그런데 이 우상을 또 할려면 실천 적용을 해야 되자나요. 그러니까 내가 오늘 쇼핑을 끊어야 되고, 그 가게를 가지 말아야 되고 이런 걸 좀 써보시라고. 우리들교회에서 다 해주시지만 그래도 큐티 안 하는 사람들은 맨날 어렵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쉽게 해줘도 안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택한 사람은 그래도 이 말을 다 알아 들어요. 적어도 지금 이 말 듣고 신경질은 안 내요. 이렇게 하다보면 갑자기 어느 날 이만한 게 하나 들어오기 시작하고 한 구절만 묵상해도 '야, 내가 그렇게 해야 되겠다. 여로보암의 길이 나왔는데 내가 당근에를 좀 안 가야 되겠네.' 뭐 이런 걸 적용하는 거예요. '내가 안목의 정욕이 있지.' 그럼 구체적인 적용은, 당근이 싼 게 비지떡이 아니고요. 그게 여러 개 사면 훨씬 비싼 거예요. 그거 다 중독이에요. 당근 중독이 굉장히 심한 병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뭐 하나 적용하면 기뻐서 그 다음날 것이 또 봐지는 거예요. 그렇게 안수하고 보면 주님은 덜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는 분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내가 '하나님 오늘 돈 묵상했어요. 하나님 오늘 건강 묵상했어요.' 그렇게 쓰는데 이뻐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는 그 성도를 이뻐하지 않겠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 해보라고요. 거기다가 그냥 1년 365일 돈 써놔도 이뻐해요. '나 이거 밖에 안 돼요.' 이게 회개의 구체적인 훈련인 거예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나는 일시적 회복을 바랍니까? 영원한 회복을 바랍니까? 영원한 회복은 회개고 회개의 실체는 날마다 큐티라는 것이란 것이 인정되세요?
기도제목
희연
1.하나님의 사람으로 은혜 받아 이번 이식신장 수치 잘 나와서 유지 잘되고 자가면역질환이 양성이었는데 음성으로 나와 아무 문제 없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컨디션 조절이나 몸 회복 잘 하여 이식신장뿐 아니라 건강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2.현장예배 드릴 수 있고 목장에도 나갈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3.엄마의 구원과 지치지 않고 건강 지킬수 있도록
4.언니와 형부의 비행하는데 동행하여 어려움이 없게 해 주소서
5.언니 가정에 평안과 은총과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6.저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뇌사자분 주님 곁에서 아프지 않고 평안하게 해주시고 남은 뇌사자 가족분들에게도 은혜와 은총 내려주시옵소서
7.목장식구들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 안에서 늘 승리하며 원하는 기도들이 응답 받고 모두들 건강 지켜주시는 은혜를 주옵소서
8.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말씀으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며 은혜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선
1.날마다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매일 회복될 수 있기를
2.영원한 회복을 누리게 해주심에 감사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3.양교청강 참석하여 은혜 누리기를
은우
1.거룩한 분노의 결과가 현재인 것을 알고 영원한 회복 위해 나 먼저 회개하여 변화되어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