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구원의 화살
열왕기하 13:10-19
우리나라가 양궁을 세계에서 제일 잘하자나요. 금메달이 한 개 이상씩은 꼭 땄고, 올해는 5개나 땄다고 해요. 그럼 우리가 이렇게 양궁을 잘하는 비결이 뭐겠어요. 늘 이렇게 실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똑같이 만들어 놓고, 바람과 날씨, 태풍, 찌는 듯한 더위, 추위,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 놓고 훈련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실전에서도 상대방도 이길 수 있다고 그래요. 양궁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일이 다 그래요. 훈련이 제일 중요한데, 큐티도 그래요. 평소 들어둔 말씀, 적용한 말씀이 있어야 진짜 사건이 왔을 때 말씀으로 이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여전한 방식은 최강의 훈련이더라고요. 오늘 죽음을 앞둔 엘리사가 엘리사에게 '구원의 화살을 쏘라!'고 명령하는데요. 우리 인생 과녁은 구원의 화살로 쏴야 구원을 받는 줄 믿습니다. 오늘 추석을 맞아서 쏘아야 하는 구원의 화살에 대해서 THINK를 좀 해보겠습니다.
1.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에 대해 쏘아야 합니다.
10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1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12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
-> 남쪽에도, 북쪽에도 요아스왕이 있네요. 헷갈리지 마시기 바래요. 37년에 이스라엘 왕이됐으니까 한 3년 정도는 남북에 요아스라는 이름이 동시에 있었네요. 북쪽의 요아스 또한 아버지 여호아하스처럼 한 일이라고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또 나옵니다. 이제 한 가지 아마샤와 싸운 일은 다음에 다시 언급하겠어요. 왕들마다 이렇게 따랐다 하면 여로보암이고, 떠나지 아니했다 하면 금송아지인데 정말 듣기도 징그럽지 않아요?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시죠. 그러시는 게 아니예요, 지금 열왕기상부터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데. 하나님도 이거를 알면서 줄창 반복을 하시는 거예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그런데 지난 주일에도 나왔는데 또 나왔자나요, 그렇죠? 그러니 오늘 또 생각해봐야 돼요, THINK를 해봐야 돼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게 뭔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영적인 것이고, 사람 보기에 악한 거는 도덕적인 것이에요. 즉 끊임 없는 옳고 그름인 것입니다. 어제 큐티 예레미야 6장 1절, 2절에 보면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 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하세요. 이게 뭘까요? 어제 설교하신 우리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3선 국회의원에, 또 유명한 장로님, 권사님 가정에서 선민 의식으로 대대로 우월의식 가운데 사셨다고 합니다. 이 분이 또 교수님이자나요, 그렇죠? 저절로 목적지향적인 삶과 가족 우상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이지만 아직도 인정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그런데 그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도망가라고 하신다고 적용을 하셨지만, 모두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은 별 인생이 없다고 나눠주셨어요. 그럼에도 그 선민 의식이 너무 강해서 아직도 '별 인생이 있다.'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직, 사실 남한테 다들 얘기하지 않겠죠. 다 자녀들의 문제가 많았어도 큰 자녀는 미국 유명 대학 교수지, 아들은 헌법재판소의 연구 위원이죠. 최고의 대학을 또 나왔죠. 이러니까 별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얘기를 안 할 건데 우리들교회 와서 자녀들 얘기를 다 한 거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럼에도 너무나 대단해보이니까 구속사가 권사님은 잘 깨달아지는데 장로님은 덜 깨달아져요. 이것이 문제예요. 그래도 저한테 이런 얘기를 듣고 가니까 얼마나 은혜예요, 그렇죠?
자, 청년부에서 남자와 여자면 믿음만 있으면 결혼해라. 그래서 결혼하면 그 믿음으로 다 잘 살면 좋겠는데 참으로 많이들 삐그덕 거립니다. 게다가 믿음보다 외모, 또 스펙, 돈, 결혼하면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이때는 부모들이 중심을 딱 잡아줘야 하는데 부모들도 흔들리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이번주도 얼마나 무섭게 싸우는지. 이번에 전부 청년부 출신 부부들의 나눔을, 이 자매가 '모두 남편 얘기들만 하시는 게 너무 진저리 날 정도로 듣기가 싫고, 우리가 왜 남편 때문에 이렇게 모여서 이래야 하는지 이 자리 지키는 게 힘들고, 생각만해도 구역질이 나고 실제로 집에서 구역질을 했습니다. 여자목장도 부부목장도 늘 쓴 소리 듣는 건 저뿐이고 남편한테 처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수요 예배도 그래서 가기 싫어요. 무슨 여자들 교화소도 아니고 우리들교회 떠나고 싶네요.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그래도 이걸 목장에 가서 다 얘기했다는 게 어디예요. 아유,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목장만 나와서, 담임 목사 얘기를 별 얘기를 해도 괜찮으니까 나와서, 나오기만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제 목자님이 지난주에 '그래도 오늘 주일 말씀 듣고 절대로 이혼하지 말라. 정말 티끌같이 된다.' 이러고 했는데 '그래도 오늘 주일 말씀 듣고 정신 차렸지요?' 물어보니까 '전혀요, 가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아유, 우리 집사님 믿음의 어머니를생각하시고 집사님도 믿음의 어머니로 이어지도록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제가 힘들어도 제가 죽고 싶은 건 아니고요. 그냥 죽여버리고 싶기만 하네요.' 좋아요, 좋아요. 이런 얘기해도 목장에만 나와요. 또 다른 부부는 둘 다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있는데, 신랑이 THINK 양육도 시작을 했는데 이 집도 싸움이 일어난 거예요. 부부목장 목자가 시아버지 목자님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 시아버지 목자님은 그동안 달래주다가 '이제 지들 인생이라.'고 '모르겠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우리 시아버지 목자님 그러는 게 아니예요. 여기도 얼마나 싸우는 걸 우리가 말렸는지 모르는데 그 은공을 잊고 아들을 안 살리면 되겠어요? 주여. 다들 참지 않고 상처를 주니까. 또 한 부부는 아내가 유리컵을 던지니까 그걸 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딨어요. 그걸 보고 되던져가지고 피가 나니까 경찰에 신고해서 조사 받으러 가고. 자, 이런 충동적인 상태를 들으면 정말 이혼하는 것이 맞아 보여요. '내가 이러고 뭐 하려고 평생 사나.' 이런 마음이 왜 안 들겠어요. 실제 그리도 말렸는데 이혼 서류를 접수한 부부가 있어요. 전부 다 007 작전을 짜서 법원 앞에서 다 기다려서 그날 말렸는데 그 다음날 접수시켰다고 그래요. 여러분, 사람이 보기에 악해도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택자라 돌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자나요. 그러면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옳은 것이 가장 큰 죄인 거예요. 구속사가 해석이 안 되면 '당신이 옳다.'가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날마다 그 인간, 그 인간 하면서 그냥 지겹게 상대방의 악만 나열을 하는 거예요. 구속사가 깨달아진 사람은 금세 다른 사람의 악을 나의 악으로 바꿔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언어가 고난 가운데 부드러운 언어가 나오게 되는데 이 쉬운 것이 안되어 가지고 이혼 타령, 자살 타령을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구원이라는 건 하나님의 영역이라서, 그러니까 오늘 구원의 화살을 쏴야 하는데 죄인인 인생의 만남은 결국 행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막 집어 던지고 이래서 이혼을 한다면 이혼 하고 나서 이혼의 굴레가 하나 더 씌워져서 더 힘들어요. 해석이 안 도딘 채로 이혼하면 안돼요. 그래서 이걸 모두 달려들어서 막아야 해요. 어린 아이들이자나요, 그렇죠? 지금 철이 없어서 그래요. 이걸 안 막으시면 교회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거예요. 안 막는 여러분들은 다 사형감이에요. 교회가 회개를 해야 되는 거예요. 결혼의 목적을 거룩에 두어야 행복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행복에 두니까 맨날 '니가 틀렸다.' 불행한 거예요. 그러니까 목장이 무시가 되면 결혼 생활이 어려워요. 목장과 가정은 똑같기 때문이에요. 이상한 사람 많이 있어요, 목장에. 그거를 다 품고 가는 것이 목장, 가정 똑같은 거죠. 남아공의 그 유명한 대통령이고, 노벨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는 그 기가 막힌 27년의 감옥 생활을 견디고도 석방 후에 이혼을 했네요. 이 분이 세 번 결혼을 했는데 첫번째 결혼은 굉장히 가정적인 부인이 정치를 말렸어요. 그래서 이혼을 했어요. 두번째 부인은 그의 정치적 동지로 같이 수감이 되었고 그 두번째 부인은 27년간이나 옥바라지를 하고 38년 살았는데 석방되고 나니까 옥에 있을 때 부인이 외도를 한 번 했다는 거예요.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혼을 했어요. 말이 돼요? 세번째는 그러고도 조금 이따가 80살에 모잠비크 대통령 미망인과 세번째 결혼을 했어요. 세상 사람은 물론 다 이유가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것이 옳고 그름이에요. 그런데 민주투사들은 아프리카는 지키는데 가정은 지키를 못하네요. 정치는 적어도 추앙하는 동지들이 때문에 내가 옳은 거예요. 그런데 결혼은 말도 안 되는 배우자를 옳다고 그래야 되니까 다른데서는 나를 이렇게 올려주는데 이 배우지도 못하고 이런 사람이 나한테 컵을 집어 던지는데 이거 살겠어요? 여기에서는 영웅인데. 그러니까 감옥생활보다 더 힘든 것이 결혼생활을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만델라도 이혼을 했으니까 우리같은 사람 이혼은 당연한 것이다.'의 모델이 된다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거예요. 저는 만델라는 조강지처를 설득하면서 기다렸어야 돼요. 그 정치가 하나님 뜻이라면 반드시 하게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거, 급한 거 이 순서를 모르는 거예요. 겨혼은 아프리카 감옥보다 어렵고, 재혼은 아프리카 선교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들교회가 이 어려운 결혼을 잘 지켜내니까 지금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선교사가 되어서 우리 선교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지금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걸 보셨죠? 언약의 최고봉은 결혼이에요. 이 언약은 지켜야 되는 거예요. 이 언약을 깨고, 약속을 깨고 어디 가서 복을 받으려고 그러십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도 이혼을 하고 나서 그 책을 썼다고 그래요. 결혼을 지킨다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것은 '나를 닮아라.' 그랬자나요. 뭐예요, 그건? 내가 형편 없죠. 그 형편 없음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 주셨기 때문에 주님의 택자라면 '무조건 나를 닮아라.'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지난주 한 초원의 나눔을 보니까 '나를 얼마나 닮기를 원하냐?' 질문을 던졌더니 전부 49%, 80%, 60%, 99%, 79%, 50%, 10%, 51%, 60%, 30%. 100%는 두 분 밖에 없더라고요. 이것이 그냥 세속사로, 행위로, 아주 전자동으로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는 나눔이에요.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 그런데 이게 목자들의 나눔이라고요. 왠지 나는 나를 닮아라 하기가 미안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행위로 자꾸 생각해서 그래. 겉으로 드러나는 악이 없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속은 예외 없이 아담과 하와의 후예이자나요. 겉이 멀쩡하면 더 화려한 금송아지를 섬기고, 아름답고 우아한 묘한 시온의 딸처럼 살 가능성이 오히려 많아요. 악은 자기 자신이 금송아지가 되는 것이에요. 자기가 우상인 것이죠. 사탄처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겉으로 멀쩡하든 엉망이든 별 인생이 없는 거예요. 누구든 금송아지 한 마리 이상씩 다 짊어지고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난 절대로 아빠처럼,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다 그러지만 어느 순간 극렇게 아빠, 엄마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깜짝 놀라지만 다 늦었어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다 쓰고 살아요. 이렇게 북이스라엘의 대가 이어져도, 세대가 변천해도, 심지어는 왕조가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여로보암의 죄악을 근절하지 못했어요. 이 죄악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이 죄악을 그럼 북이스라엘에 처음 유입시킨 여로보암 왕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열왕기서라고 했자나요. 열왕기상 14장 9절, 10절 쭉 보면 10 ....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했어요. 여로보암 가문만이아니라 그 위에 바사의 집, 오므리의 집, 예후의 집에도 똑같이 임한 거예요. 궁극적으로 북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소멸될 것임을 미리 얘기해주셨어요. 그런데 겉으로 보는 그 금송아지는 너무 좋아보이는 이게 무거운 짐이에요, 고달픈 수고예요. 그런데 우리가 다 똑같이 여호아하스고 요아스예요. 똑같아, 우리 슬픈 인생이에요. 이렇게 우리 날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 따랐다, 따랐다 반복 반복하시는 것은 그만큼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애통한 사인인 거예요. 왜 같은 말을 성경에 매 주일을 하겠어요. '너희는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길을 가면 망한다.' 그래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여전히따라가고 떠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창자가 끊어지는 거예요. 그냥 오늘 큐티 예레미야 말씀처럼 우리는 남과 북 전부 말씀을 안 들어.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는데 남유다도 또 안 들어. 여러분, 북이스라엘에 교회가 없었겠어요? 전부 금송아지 찬양하는 교회만 있는 거자나요, 북이스라엘에.
[적용] 닮기 싫었지만 닮아있는 부모의 모습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애통이 체휼이 얼마나 되십니까? 부부간에 혹은 목장에서 '나는 옳고 당신이 틀렸다.'를 누가 가장 많이 합니까?
2.그래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오늘 요아스도 특별한 게 없어요.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중 하나일 뿐이에요. 다른 왕들과 똑같은 공식에 따라서 무덤에 묻힙니다. 그런데 그를 특별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어요.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 14절입니다.
남을 평생 도와주라고 살려준 엘리사도 죽을 병이 들 수 있어요. 제가 날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서 '주님, 저 언제 데려가시나요?'라는 생각이 늘 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어요. 엘리사가 마지막 등장했었을 때가 9장 1절이었는데요. 제자를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했죠. 그때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나가고 지금 80이 넘었어요. 40년 동안 선지자의 사명을 전심으로 감당했을 것인데 하나님은 그 일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셨어요.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닉고, 잊으셨기 때문도 아니죠. 엘리사가 여전한 방식으로 변함 없이, 그래서 오히려 이미 기록한 것 이상 더 기록할 필요가 없이 잘 살았기 때문이에요. 드러나지 않는 무대 뒤에서 묵묵히 사명을 수행했어요. 이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제 엘리사의 사명도 끝날 때가 되었어요. 그래서 다시 등장을 하는데 어떻게 죽는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으신 거예요. 엘리사가 노환으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요아스가 엘리사에게로 내려옵니다. 내려왔다는 거는 거기가 저지대인 것도 있지만 영적으로는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왔다 이런 뜻이 있죠. 요아스는 엘리사가 베푸는 구원의 덕을 톡톡히 지금 보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 말씀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죄 가운데 행하면서. 죄에서 돌이켜 떠나는 것은 단지 죄를 그치는 게 아니예요. 우리가 어떻게 죄를 그칠 수 있겠어요. 죄를 그치는 거 말고 말씀의 구조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데요. 죄와 중독보다 말씀과 공동체가 더 좋아져야 죄와 중독이 끊어지는 것이죠. 요아스나 여호아하스나 전부 말씀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죄 가운데 전자동으로 행하는 거예요. 바로 이게 높은 자리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자리예요.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건 죄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상관 없이 우리 원대로 하는 것은 죄 뿐이에요. 내가 하나님 되는 자리죠. 높은 자리, 교만의 자리예요. 예후의 손자 요아스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이 자리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요아스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 자리로 내려옵니다. 그 자리는 드러나지 않는 자리고, 잊혀진 듯한 자리고,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고 섬기는 자리고, 칭찬과 부러움 보다는 비난과 무시를 받는 자리로 이제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무시를 안 받아본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가 없어요. 행복의 자리가 아닌 거룩의 자리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립니다. 아주 기름과 향품으로 덮혀 있던 그 얼굴에 지금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리고는 엘리사를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이거 누가 한 말이죠? 엘리야가 갈 때 엘리사가 한 말이에요. 그러니까 요아스가 눈물을 흘리며 엘리사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것은 주인공들이 왕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였다는 걸 보이는 거예요. 이 이스라엘을 구해줄 것은 엘리사라고 고백을 한 것이죠. 그런데 물론, 속은 달라요. 엘리사는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 엘리야를 불렀어요. 요아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어요. 지금 왜 부르겠어요. 지금 그렇게 높은 데 있다가 지금 이스라엘 상태는 아람에 의해서 멸절되어가지고 마병 50명, 병거 10대, 보병 만 명밖에 없는 아주 초라한 이 상황이었자나요. 자기 상황을 보니까 눈물 밖에 날 것이 없고, 요아스는 엘리사를 그냥 말 그대로 그냥 병거와 마병, 그러니까 최장의 쯤으로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무기가 없어지게 되었으니까 그 안타까움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엘리사가 있는 자리에 잠시 내려왔고 잠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똑같은 말이지만 엘리사와 요아스에게는 아주 다르게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요아스는 지금 이제 1절, 2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있다고 그랬자나요. 그러면서도 여호와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과 같죠.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죽게 생겨서 가서 눈물을 흘리는데 속마음은 '아버지, 왜 나 돈 안 주고 죽어. 여기다 사인 좀 하고 돌아가셔.' 이게 요아스의 눈물이에요. 남편이 죽어서 슬픈 것도 '이제 내가 어떻게 먹고 살라고 죽어요.' 이겁니다. 구원 받아서 기쁜 것이 뭔지 몰라요. 예수도 없고, 믿음도 없는 사람들은 우는 이유를 몰라요. 믿음 없는 사람들은 해석을 못하기 때문에 다 자기 슬픔 때문에 울어요. 왜냐, 인간은 100%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죄인은 자기 밖에 몰라요. 인간에 대해서 너무 알아서 인간미가 없어지려고 합니까? 그러나 이 인간론을 알고 사건이 오면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자나요.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라도 요아스가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자리로 내려오니까 구원의 화살을 쏠 수 있게 되었자나요. 그럼 우리는 속으로는 하나도 안 그런데 겉으로만 내려오는 척하고 눈물 흘리는 척하니까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 선한 게 어디 있어요. 우리가 100% 죄인이고 죄의 공장인데 말이에요. 우리가 위선 아닌 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저 사람의 위선을 난 안 믿어.' 하는 이게 사람이 보기에 악한 거예요. 그러나 두려움과 걱정, 슬픔과 놀람이 생기는 사건이 올 때 거기에 반응해서 낮아진다면 소망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라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가능성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에는 이런 왕도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황공하실 지경이에요. 누가 회개한다는데 '저 사람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안 믿어.'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한 왕도 예외 없이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애통절통 하시는 거예요. 그럼으로 속는다 해도 믿어야 할 때가 있어요. 물론 늘 분별해야 하지만요. 그럼으로 중요한 것은 두렵과 걱정스럽고 슬프고 놀란다고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의 자리로 내려가면 안된다는 거예요. 우울의 자리, 죽음의 자리로 마냥 내려가면 안되는 거예요. 그냥 남편이 한 번 욕 했다고, 한 번 때렸다고, 부인이 한 번 욕을 했다고 그렇게 우울의, 절망의 자리로 내려가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요아스가 엘리사에게로 내려간 것처럼 말씀으로 인도해 줄 엘리사같은 믿음의 지체가 필수고, 그래서 거기 내려가도록 고난이라는 사건도 그래서 필요하고, 지금 두렵고 걱정스럽고 슬프고 놀랄 일이 생겼다면 말씀의 자리로 내려갈 기회인 줄 믿습니다. 지금 옆에서 이리로 내려오라고 외치고 설득하는 가족이나 지체가 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에요. 이 힘든 고난 가운데서 방황하지 마시고 말씀의 자리로 내려와 마음껏 눈물을 흘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구원의 화살을 쏘게 될 줄 믿습니다. 추석에, 명절에 찾아가서 말이 안되면 그냥 울고 와요. 그 눈물은 힘이 있어요. 악어의 눈물도 힘이 있어요. 자, 그러니까 이런 분들을 위해서 우리들교회 목자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대구의 한 목자님의 나눔인데 이 분은 아내는 갑상선암 지금 수술을 했대요. 그리고 이제 목자님은 난청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서 육적 회복을 위한 기도가 절실한데 그 목장 식구의 나눔을 쭉 했어요. 그 초파일에 차가 굴러 떨어져서 3-4명을 치었자나요. 그런데 그게 신문에 났는데 시동을 이분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걸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브레이크가 안 잡힌다는 거예요. 이 분은 급발진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니까 너무 일이 커졌어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교회 오셨자나요. 거기서 다 합의해 줄 의사가 없다고 이러니까 지금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목장에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래요. 또 한 식구는 치매를 앓고 있는 그 할아버지 성도님께서 분별하지 못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데도 신천지 구역장 여성분에게 휩쓸려서 교회와 목장에도 빠진 사실이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기도와 손발이 가야하는 적용이 우선이 되고 있습니다. 좀 이렇게 사랑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한 집사님의 마음의 병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약 처방도 거부하며 적용이 잘 안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양육 교사를 통해서 영육간에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어요. 그 중에 반가운 일은 부목자님과 알코올 중독으로 늘 병원 생활만 하고 있던 집사님이 퇴원해서 지난주에는 예배를 참석했는데 세차장에서 광택 기술을 배우며 일하고 있는 이 두 분에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찾고 소망하던 퇴원과 일을 하게 된 은혜에 감사하다고 목장 기도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나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 본인도 많은 투자와 보증과 명의 대여로 소 잃고 멸절 당한 뒤에야 지금 외양간을 고쳐가는 중이지만 지금은 금송아지도 아니고 순금송아지를 떼로 준다고 해도 싫어요. 절대로 금송아지 찾으러 다니지 않겠습니다. 문자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분은 처음이에요. 왜냐하면 목장 공동체를 섬겨야 하는 사명이 남겨져 저를 인도해 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고는 이제 또 힘겹게 일자리를 찾게 된 우리 부목자님, 또 김집사님에게 성령의 각오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나눔이 목장 식구들 나눔이에요. 그리고 기도 제목은 목장에서 늘 눈물 없이 나눔을 하지 못하시는 그 초파일 성도님의 사건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또 이 치매를 앓고 계신 성도님께서 치매 가운데 지난 죄를 자복하게 하시고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주시도록. 또 세번째는 기초양육자, 내가 이름을 좀 불러야 되겠어요. 기초양육자 박종영, 이금희, 손대영 성도님과 양육교사 문광토, 최은광 집사님, 그리고 예목 I을 받고 있는 이지훈 집사님에게 성령의 제자 양육으로 인도해주시도록. 할렐루야. 여러분 이런 목자님이 되시기를 바래요. 순금송아지 떼로 줘도 싫다자나요. 그리고 지금 일자리를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더 이상은 금송아지 찾으러 다니지 않겠다. 이런 분에게는 또 금송아지가 나타날 수도 있어요. 적용질문입니다.
[적용]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까? 구원 때문입니까? 불안, 두려움, 가난 때문입니까? 즉, 하나님 때문입니까, 나 때문입니까?말씀의 자리에 내려와 있나요, 말씀보다 중요한 게 있는 높은 자리에 있나요?
3. 온전히 순종해야 온전히 승리합니다.
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 15절부터 읽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기복적인 걱정으로 엘리사에게 내려와 눈물을 흘린 요아스지만 엘리사는 그에게도 말씀을 전해줍니다. 내 형제가 아람처럼 안 믿고 교만하고 나를 늘 쳐도 나는 끝까지 당해야 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해요. 아람이 먼저 쳐들어 왔기 때문에 활과 화살들을 가져 오라고, 잡으라고 방법을 지금 가르쳐줬어요. 영문 모를 일이었지만 내가 해야 될 전쟁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가르쳐주십니다. 여기서 엘리사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최소한의 요아스의 순종이 없이 물리칠 수 없기 때문에 아람과의 전쟁에 무기를 갖추라는 이야기예요. 요아스는 이때는 시키는대로 가져오는 거예요. 엘리사는 이어서 손으로 활을 잡으라고 해요. 잡습니다. 또 왕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어요. 한글 성경은 이걸 '안찰'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안수하고, 안찰하고. 동쪽 창을 열라고 해요. 동쪽 창은 왜 그래요? 이스라엘에서 보면 아람은 동쪽에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두려워 하는 원수 대적을 향하여 창을 열라는 거예요.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영적 나병을 위해 그래도 눈물을 흘리는 요아스를 돕고자 하는 거예요. 이 마음이 이해되십니까? 교회 오신 것만도 너무 감사한 성도들이 많아야 해요. 그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이상하다고 그러시면 안 돼요. 한 영혼으로 보셔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요아스는 그대로 동쪽 창을 또 열었어요. 활을 쏘라고 해요. 그대로 쏩니다. 활과 화살을 가져와서 활을 쏘는 일을 만일 의도를 가지고 한다면 10초도 안 걸릴 일이자나요. 그런데 이 단순한 일을 엘리사는 한 컷, 한 컷 잘게 쪼개서 명령을 하고, 요아스는 그 명령대로 이행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인도함 받고 해야 돼요.
그러자 엘리사가 그 이유를 알려줘요.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여기서 여호와를 위한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화살이라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위한 화살이 아니고, 여호와를 위한,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화살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 싸우면 그것이 믿음이 되어서 끝없이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부르심이 먼저인 거예요. 그런데 나를 위해 싸운다면 한계점이 오면 금세 무너져요. 사건 하나가 오고, 누가 말 한마디 하면 금세 무너져. 여호와를 위해서 결혼을, 전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전쟁을 했기 때문에 말 한마디, 사건 하나, 실직 하나에 이혼 타령을 지금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저를 보니까 하나님을 신앙하고 하나님 때문에 전쟁을 하니께 하나님이 저에게 끝없이 힘을 주시는 걸 여러분들이 보시자나요, 그렇죠? 하나님을 위한 전쟁을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을해야 되는 거예요. 끝없이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좀 그만 하시고. 아무 믿음 없는 요아스인데 기복적인 걱정이 고난이 되어 말씀의 자리에 내려와 울기만 했더니 지금 구원의 화살을 얻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 읽기만 해도 깨달아 지는 게 있자나요. 어떤 전쟁을 하더라도 큐티를 할 때 한 단계, 한 단계 이렇게 인도를 받으라는 거예요, 물어보고, 질문하고. 남편과 아내와 자식과의 전쟁, 회사의 전쟁도 그래요. 취하라면 취하고, 활을 잡으라면 잡고, 중간에 내가 힘들까봐 엘리사가 왕의 손에 한 번 안찰해주자나요. 그러니까 우리 이거 목장 모임에 가서 안찰 한 번씩 받고, 서로 기도하고. 그런데 이렇게 예수 믿는 믿음이 생겨 구원을 약속 받은 다음에는 적용해야 될 게 있어요.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 18절, 19절이에요.
엘리사가 이번에는 화살을 '쏘라.'가 아니고 '집으라.'고 그랬어요. 요아스는 집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명령을 해요.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해요. 요아스가 쳤어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추가가 되죠. 그냥 친 게 아니고 3번을 치고 그쳤다는 거예요. 엘리사는 3번 치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치라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아스가 지 마음대로 3번 치고 그쳤어요. 그러니까 엘리사가 노하는 거예요. '아니, 대여섯번을 치지 왜 3번만 치고 그쳤냐? 그러니까 너 아람을 3 번만 이기고 이제 진멸하지는 못한다.' 그럼 엘리사가 이상한 가요? 뭐가 문제일까요? 요아스는 지금까지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엘리사가 말한대로 순종을 했어요. 그런데 화살로 쏘라 했을 때는 그것이 늘 해왔던대로, 화살은 쏘라고 있는 거자나요. 그런데 땅을 치라고 그러니까 그 화살이 부러질 거 같자나, 비싼 화살이 땅을 치자다. 그러니까 자기 생각이 나왔어요, 지금. 그러니까 17절에 멸절하도록 치라고 그랬는데 그 아드칼레는 문자적으로 완성되기까지, 끝장이 날 떄까지. 그런데 자기가 생각해보니까 '이게 뭐지? 이건 굉장히 비상식적이네.' 자기 생각이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엘리사 말을 끝까지 지금 순종을 안 하는 거죠. 시늉만 낸 것이에요. 자기가 생각하기에 엘리사가 틀렸어요. '활을 이제 그만 쳐야 되겠어.'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어요.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한 승리를 얻비 못합니다. 우리 적용이 그래요. 적용이 온전해야 영혼 구원이라는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있자나요. 여러분, 목장에서 목자가 이렇게 온전히 순종해서 적용을 해야지 큐티만 한다고 목장 식구들이 변하지 않아요. 큐티 목회를 한다고 말씀만 설교를 한다고 변하지 않아요, 목사님이 적용을 하셔야지. 막 힘들다고 적당히 하고 적당히 하고 그치고 내 생각대로 '이쯤이면 되겠지.'하면 온전한 승리를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누구도 이 적용을 해야지 끝까지 가는 거예요. 세 번만 하다 그치면 안돼요. 적용이 힘든거지,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 목사님인데 이혼한대요, 미국에서 메일이 왔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런 목사님하고 이혼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다 내 마음대로 그치는 거예요. 너무 비상식적이라서 이혼해야 되는 거예요. 온전한 순종이 뭐예요? 이거 어떤 정도나 크기를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온전한 순종을 할 수가 있겠어요. 온전한 순종은 들은 말씀대로만 하는 거예요. 엘리사가 말하지 않은 것, 자기 생각대로 판단해서 세 번만 치고 그쳤자나요. 그러니까 넬슨 만델라가 이혼하는 게 자기 생각이 얼마나 많아, 하나님 말씀을 모르니까. 온전한 순종은 대단한 순종이 아니고 들은 말씀대로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잘 들어야 되죠. 그냥 다른 게 아니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날마다 큐티하면서 질문하고 구속사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게 아니고 우리는 이제 구원의 시각으로 하루에 주신 말씀만큼만 하루 손종하며, 순종하려고 읽어야죠. 내가 큐티하면서 '이건 하나님 틀렸자나요.' 이러시면 안되자나요. '이 말씀이 틀렸네, 하나님도 그때 졸으셨나.' 뭐 이러면서. 온전한 순종을 주님이 받으시고 온전한 승리를 주시는 거예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시키는 걸 잘합니까, 시키는대로 하는 걸 잘합니까? 내 생각과 달랐지만 말씀 그대로 해서 승리한 적이 있습니까? 이번 명절에 구원을 위해 적용해야 할 온전한 순종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예선
1.가정과 직장에서 경계를 잘 그을 수 있도록
2.잘하라고 허락하신 직장이 아님을 기억하고 날마다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나에게 구원의 화살을 잘 쏘도록
3.건강관리를 위해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은우
1.남아 있는 죄의 과녁에 화살을 쏘아주시고 안찰하여 주셔서 사명따라 가는 인생되도록
2.야망 아닌 사명으로 멈추라고 할때까지 순종하여 가라한 곳에서 처소를 잘 지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