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8.
주일예배
본문: 열왕기하 13:1-9
제목: 간구하매 들으셨으니
설교 말씀
요즘 간절히 기도하는게 뭐에요?
너무 간절해서 안 들어주시면 삐질 것 같은 기도제목을 들어주시면 좋겠지만 진짜 좋은 일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시지는 않지만 약속을 이뤄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간구를 듣고 계십니다. 모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북이스라엘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간구하매 들으셨으니를 우리의 음성으로 들어봅시다. 여러분의 삶의 결론이 이해됐으면 좋겠어요.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1절.
요아스 제 23년에 요아스가 성전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북이스라엘에서 개혁의 아이콘, 예후가 죽었습니다. 오므리 왕조 아합 집을 멸하고 아합 가문을 끊었습니다. 북한도 이런 사람이 나오면 좋겠죠? 바알 집도 멸하고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주인공 중 하나였습니다. 엄청난 업적을 1년만에 행했는데 나머지 27년은 죄를 짓다가 사망으로 끝났습니다. 요아스는 39년을 정직을 행하다가 1년간 온갖 악을 행했는데, 1년의 악, 27년의 악 중 누가 더 나쁠까요?
별 인생이 없다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1년간 악을 행한 것은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으니까, 비교가 안되는 악을 행한 것 아닌가요? 그니까 마지막이 예수로 끝나야 합니다. 마지막에 예수 영접 하고 가는 것이 그래서 기적입니다.
예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는 17년간 왕위에 있었는데요, 예후는 아들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붙드셨다는 이름을 지었어요. 회개 하는 마음으로 지었을 것 같지만,
2절.
여호아하스도 악을 행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보기엔 선하고 멋있고 위대한 사람이 많아요. 열왕기를 보면서 계속 보는게 여로보암의 죄 입니다. 떠나지 않는 여로보암의 죄가 뭐죠? 떠나지 못했다가 아니라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떠날 마음조차 품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죄에 대해 가장 많이 붙는 설명은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했다는 거에요. 느밧이라는 아버지를 욕 보이는 죄가 늘 따라붙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부터 온 가족, 온 이스라엘을 죄짓게 했습니다.
죄는 하나로, 혼자만의 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염성이 너무 강해서 최강의 전염병 같습니다.
누구도 떠나지 못한 죄가 금송아지 숭배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열 지파가 따라 나가서 북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나라가 분열되도 신앙이 분열된 것은 아닌데, 남유다로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될까봐 벧엘,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화려함으로 사로잡았고, 제사장은 아무나 세웠고, 절기도 바꿨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려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들어 하나님의 사람을 빙자해 나를 따르게 한 권력욕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을 알아도 보이는 것이 너무 화려해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부모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섬기는데, 자녀가 안 보겠어요? 아무리 속을 썩여도 삶은 부모를 닮기 때문에 구속사로 선택하는 것, 세속사로 선택하는 것을 눈으로 보기에 따라갑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부모 따라 악을 따라가고 떠나지 아니하였고 그대로 두는, 악을 선택했습니다.
집안이 힘들고 이상하게 자란 사람은 예수를 믿지만 환경이 좋으면 부모 말 잘 듣고 뒤에서는 악행하는 이중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데카르트의 이원론입니다. 그는 어려서 부모 말을 잘 듣는 소년이었지만 이원론의 창시자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모의 원색적인 모습을 보고 자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좋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풍토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너무 부럽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무리 예루살렘이 좋아도 벧엘의 화려함이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예수 믿지 않으면 다 헛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인간의 치적은 언급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일만 언급됩니다. 인간의 일은 부국강병이라도 한 줄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성품이 바뀌지 않으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부모가 너무 좋은 환경을 준 아이들은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안좋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없으면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 의가 생깁니다. 육신의 죄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육신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적)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까,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악합니까?
육신이 죄의 집합소라는 것이 얼마나 믿어지세요?
이렇게 악인줄 알면서 끊지 못하는 습관은 무엇입니까?
악인 줄 알면서 계속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2. 학대 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십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해서 학대를 당합니다. 학대를 당하니 구하므로 자를 주십니다.
3-4절.
여호와께서 노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코가 탈 만큼 열받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열받으신 진노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벌입니다. 그래서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아람 왕들에게 넘기시는 심판으로 처벌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아람 왕의 손에 놀리는 심판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넘기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늘 입니다. 늘 범죄하니까 늘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니까 이렇게 쳐들어오는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사엘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대를 이어 밴하닷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민족의 죄악을 봐야 합니다. 남북은 할 수 없이 믿음과 불신의 차이를 보여주는 모델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도 그렇지만 내 자신도 악을 깨닫지 못하니 하사엘에게 넘기셔도 우리가 변하지 않으니까 더 힘든 사람의 손에 넘기신 거에요. 버려두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악행하는데 버려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노하심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4절.
학대받기 전에는 최고인줄 알고 살다가 간구하니까 하나님이 기다리셨다는 듯이 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처방이 마음 아파도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학대가 여호아하스를 깨닫게 하십니다.
히브리어에 간구하다는 뜻은 할라인데, 약해지다, 아프다라는 뜻이고, 동사로 쓰이면 부드럽게 하다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악행함에 대한 진노로 코에 불 나듯 굳어진 하나님의 얼굴을 부드럽게 했다는 것입니다.
높고 높은 자리의 여오아하스가 낮아지고 약해져서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진노하신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람 왕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자리에서 떨어지니까 진노하고 계신 하나님이 비로소 보입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맨날 아람이 날 미워했다 가 아니라 거길 통해 하나님께 죄를 범했군요, 하나님을 몰랐어요 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금송아지를 쫓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통해 학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금송아지를 섬겨서 학대 받았는데, 기도하면 예쁘다고 들어주시니 이게 은혜라는 것을 아세요? 인생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다가 기도할 대상을 알려주시니 간구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회개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여오아스가 고아서 그럴까요? 에스겔 말씀처럼 하나님은 악인이 길에서 떠나 돌아 사는 것을 좋아하세요. 하지만 오늘은 하나님이 백성들이 학대받는 것을 보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여오아하스가 살려달라는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도 언약 안의 백성, 하나님의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백성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악한 왕의 간구라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후에게도 하나님이 왕위가 4대를 이어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성을 향한 약속의 말씀, 예후를 향한 약속의 말씀 때문에 이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기뻐해서 간구하지 않기 때문에 학대받게 하십니다.
5절.
시간적으로 금세가 아닙니다. 학대받아서 구원자 주시는 것은 기다려야 합니다. 양육을 잘 받으면 말이 없어지고 변명이 없어지고 잘 기다리게 됩니다. 목장에서도 듣게 됩니다. 학자들은 이 구원자가 앗수르 왕이라고 추정하지만 구원자를 엘리사로 보는게 맞아요. 중요한 것은 성경 저자가 구원자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문맥 따라 읽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앗수르 왕이 잠깐 구원해 줬지만 진짜 구원자는 아닙니다. 엘리사도 기적을 많이 베풀었는데, 너무 베풀어서 하나님께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엘리사 이름도 감추셨습니다. 문제 해결자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도 학대 받던 백성들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들이 부르짖으니까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지금도 학대받는 백성을 보시고 엘리사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그들이 예표하는 진정한 구원자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구원자를 찾아 다니는 것이 헛수고이고 말씀을 듣는 것이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들었다 하시는 응답은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축복입니다.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최고의 응답인지 아십니까?
일상의 축복이 얼마나 대단한건데 그렇게 이혼하고 가출하고 죽고 그런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하고 나누는 축복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 학대받는 고난 가운데 낮아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억울한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늘 범죄하니 늘 넘겨주시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대를 이어 학대받는 것이 있습니까?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일상의 축복이 최고의 응답임을 믿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행한 것이 동기의 발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학대 당하므로 늘 범죄하니까 늘 넘겨주셔서 학대 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3. 은혜를 잊으면 티끌같이 됩니다.
6절.
여호아하스와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가 그치고 장막에 들어가 편안히 산 건을 응답으로 여겼어요. 가장 차원이 낮은 결과입니다. 학대가 그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그러지 못하고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사건보다 예수님이 가장 큰 상급이 되어야 하는데, 여호아하스는 장막에 거하였으나 라고 합니다. 여전히 죄의 집에서 떠나지 않고 따라 행하며 아세라 목상을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징하고 끈질깁니다. 죄의 패턴이 너무 아프고 슬픕니다.
왜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망하게 하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게 됐는지 쓴게 열왕기 상하라고 했잖아요. 학대 받았는데, 여전히 아세라 목상을 세웁니다. 자식이 너무 좋아 껌뻑 죽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 보고 너무 좋아서 하나님을 13년간 잊었습니다. 하나님 자리에 편안한 환경이 있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집에서 금송아지를 따라 세우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갚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 받았는데, 그 은혜를 우상에게 갚습니다. 하나님께는 원하는 것만 빼내고 입 싹 씻고 욕심 가운데 삽니다.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교육열은 열등감의 반로라고 학자들이 말합니다. 그렇다고 나르시시즘처럼 자녀에게 나만 닮으라고, 자기 비하로 나처럼만 살지 말어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내적, 외적으로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사는 부모가 성공적으로 사는 부모라고 합니다.
7-9절.
하나님을 버리고 불신결혼하고 은혜를 잊으면 결과는 진노의 도구인 아람왕이 배은망덕한 여호아하스와 백성들을 멸절하는 것입니다. 털려서 가치 없는 존재, 세상에서 지워지는,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럼에도 남겨두신 것이 있습니다. 항상 이런 것을 찾아야 합니다. 아합 때는 병거가 2000대라고 하는데, 10대 남고 백만의 군대는 만명 남았습니다. 그리고 역대 지략에 남길 업적과 조상과 함께 잘 수 있는 자리도 남겨두시고 후손도 남겨두셨습니다.
악한 왕임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를 남기신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후 왕조가 4대를 이어가게 하신다고, 남유다에서는 다윗의 등불을 허락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후 23절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약속까지 기억해 내셔서 살리려고 하십니다.
이 패역한 이스라엘, 반역한 유대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려고 하십니다. 누구도 가망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사기에서도 범죄, 회복이 반복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모두가 바뀌어도 내 맘, 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큐티하고 목장에 가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게 하셨는데, 왜 떠나고 죽고 죽이려고 합니까? 그것이 스스로 기회를 버리고 티끌같이 되는 것입니다. 집 떠나고 이혼하고 자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멸절 당하는 것 같아도 남은 것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인간에게 하신 약속이라도 깨트리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악인에게 한 약속도 지켜야 합니다.
적)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까맣게 잊고 금송아지를 찾아다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멸절당하는 가운데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기억하며 이번 주에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섬김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나를 닮기를 원합니까?
자존감으로 나를 닮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최선의 응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것 나누고 가는 것이 전과 같이 장막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간구하매 들으셨으니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그래서 학대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심으로 전개가 이어집니다. 은혜를 잊으면 티끌같이 됩니다. 남은 것을 봐야 합니다. 여호아하스인들 살기 쉬웠겠습니까? 죄의 패턴을 넘어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여정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할 말이 없네요.
기도제목
A
목장 잘 나올수 있도록
한주 말씀으로 잘 살아 낼 수 있도록
B
수도권에 거주할 처소를 세워주시길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수 있도록
C
양육 잘 수료할수 있기를
D
운동열심하기
여자친구에게 연락 꼬박꼬박 잘하기
E
순종하는 우선순위를 잘 정하기
쌓여있는 일 가운데 잘 해나갈수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F
매일큐티 하기
매일 운동하기
양교수료 할수있도록 잘 순종하기
G
내안의 음란의 금송아지를 묵상며 목장에 고백하기
여자친구에게 자존심 부리지 말기
신결혼을 위한 기도와 적용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