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6 하늘이 열리며
에스겔1:1-3
야곱의 구속사인 요즘 신간 주님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에 나왔던 나눔인데요. 이제 이 분은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나오신 아주 수재 중에 수재 집사님인데요. '지금까지 인생에서 내가 본 기적 하나를 나누고싶다. 아쉽지만 내게 일어난 기적은 아니고 바로 김양재 목사님이시다. 평범한 부인으로 사시다가 교회를 양적, 질적으로 성장시킨 목사님이 되시다니 이것이 내게는 기적이다. 목사님의 인생이야말로 자기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는 과정 그 자체인 것 같다. '환난이 주제요, 성경이 교과서요, 성령이 스승이다.' 이 말이 아득하게 느껴지다가도 목사님을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 나의 일은 개인이 기업을 상대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큰 금융 회사들과 협상할 때 세상 명예가 없어서 스스로 풀이 죽을 때가 많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모습이 불순종하는 자녀라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세상 명예 없는 걸 탓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명예가 생각나고 그 은혜에 송구스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여전히 이런 저런 내 생각에 묶여있다.' 경영학을 최고로 공부하신 집사님이 저보고 기적이라고 그러니까 성경은 경영학 교과서가 맞습니다, 맞고요. 이 분은 이 축복의 개념을 알고 있는데 왜 누리지 못할까요? 여러분도 이 분과 같은 마음이세요? '목사님 삶은 기적인데 나는 아니야.' 여러분,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늘이 열릴까요?
하늘이 열리려면,
1. 사로잡혀야 합니다. (1-2절)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 서른째 해 삼십년은 에스겔의 나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봅니다.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사로잡혀 있으면서 아무 일도 이렇게 못 했어요. 강대국 바벨론의 그발 강 가는 절대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너무 풍요로워서 안 나타날 거 같고, 또 너무 고난이 극심해서 안 나타날 것 같은 곳입니다. 잡혀갈 때도 1차, 2차, 3차로 점진적으로 잡혀 갔고, 풀려날 때도 1차, 2차, 3차로 점진적으로 회복을 시키세요. 오늘 날 예수 믿고 짠 이러는 거는 없어요. 하나님은 단번에 망하게 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계속 경고하시면서 사로잡혀 가게 하시는데 우리가 이런 경고가 안 들리니까 정신을 못 차리죠. 그래서 특별한 마지막 능력인 이스라엘의 왕, 나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서 땅끝까지 내려가야 하늘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 나의 왕이 사로잡히고서도 1, 2년 갖고도 안되고 또 5년이 돼야 한다고 해요. 인생이 이렇게 질깁니다. 내가 목을 매고 바라보던 최고 강대국 바벨론 갈대아 땅인데 막상 그곳에 가서 사로잡힌 삶을 살다 보니까 그곳이 너무 슬픈 땅인 거예요.
우리는 큐티하는 교회가 돼서 제가 오늘 큐티 식으로 간증을 좀 해보겠어요. 그러니까 에스겔 나이 서른 살, 제 나이 서른 살에 저도 보니까 최고의 강대국 바벨론에 있더라고요. 거기 가긴 했는데 제 모습을 보니 노예로 저도 사로잡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지 5년 만이라고 했으니까 일평생 저의 능력인 피아노가 사로잡히고 시집살이 5년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사로잡힌 저의 간증을 지금 수 십년 동안 해왔는데요. 성도님들은 다 아시지만 오늘 오신 한 분을 위해 다 같이 또 다시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보다 더 처음처럼 들으세요. 처음 듣는 것처럼 들으세요. 그 한 분을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모든 성도가 오늘 한 분을 위해서 다 같이 경청해주십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시기마다 사로잡히게 하셨어요. 그리고 사로잡힌 만큼만 하늘이 열리더라고요. 또 간증을 하지만 할 때마다 여전히 사로잡힌 것이 있기에 조금 더 하늘이 열리고, 조금 더 보이는 저의 추함이 또 있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이 그발 강 가의 영광을 사모했어요. 그래서 그발 강 가에 사로잡혀서 목을 매고 그곳에 가고자 했습니다. 가난한 고학생이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시간에 사로잡히고 인정 중독에 사로잡혀서 드디어 서울대학을 가고, 그것도 엄마의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아노를 전공하여서 아르바이트로 점철된 삶이지만 그래도 저는 각종 음악회를 섭렵하며 연주와 반주로 사실은 아주 화려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4년 우등까지 하고 저는 이제 서울 예고의 저 이렇게 나오라고까지 얘기를 했는데 그 학벌로 기업가인 장로님, 권사님 댁에 의사 남편 만나서 이 바벨론의 그발 강 가 같은 시댁에 입성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발 강가에 사로잡혀서 문 밖 출입을 못하며 걸레질로 사로잡혀 있는 노예 신세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또 누구입니까. 인내의 여왕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입시를 치렀겠죠. 제가 출산할 때 17시간이나 산고를 겪으면서 제가 비명을 안 질렀어요. 왜냐하면 아이 낳을 때 비명 지르는 거 보면 그 성격 다 드러난다고 남편이 늘 흉을 보기 때문에 아픈데도 그 말만 기억나서 제가 비명을 안 질렀어요. 그걸 보고 남편이 '앞으로 아프면 너무참지마.' 아주 굉장한 제가 상을 받았네요. 그 당시 이스라엘은 포로로 와서 왕까지 붙들려 왔기 때문에 이제 후로는 유다와 바벨론과의 협상이 잘 진행되어 다시 나라가 정상화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도 남편이 수입이 없어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지 전문의만 붙으면 시댁과 협상을 잘 해서 결혼 생활이 정상화 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로잡힌 이 상황을 내 힘으로 극복하고자 잘 보이려고 열심을 내었어요. 그러면서 '나 같은 며느리는 한국 땅에 한 명 밖에 없다.'를 부르짖으며 '네, 네.'를 외쳤습니다. 남편이 레지던트가 끝났어요. 전문의 시험에 붙었어요. 아버님이 둘을 앉혀 놓고 '너희들 살림 나간?' 나겠니 물으셨어요. '이제 진짜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하면서 당연히 남편이 '네.' 할 줄 알았는데 제 앞에서 저와 의논 한 마디 없이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일생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장남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정말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내가 그래야 되자나요. 나와서도 제가 그러지 못했어요. 교양이 9단이라 지금까지 잘 한 것이 물거품이 될까봐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런데 하늘이 조금 더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니까 제가 말하지 못한 이유는 시부모님이 무섭고, 남편이 무서우니까 내가 점점 더 말을 못했던 것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착함이라기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계속되는 언어의 폭력과 더불어 사람이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매를 한 번 맞게 되면 이렇게 말을 잘 듣게 된다고 해요. 그러다가 또 한 번 잘해주면 완전 가스라이팅이 되어서 길이 들여지고 고분고분해진다는 거죠. 그러니 그대로 가면 정신병이 되는 거예요. 저는 이미 정신이 병이 들었어요. 저는 정말 직전에, 정말 이렇게 구출이 된 건데요. 그런 것을 내가 착하다고 착각하며 비굴하게 살고 있으니까 제 비굴한 걸 나만 모르고 다들 아는 거예요. 어머니는 미국에 가셔서 바로 위에 형님에게 이 저를 보고 '그렇게 비위 잘 맞추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칭찬인지 욕인지를 하셨어요. 제가 무학자이신 어머니가 조종하는대로 '네,네.' 했지만 사랑으로 '네, 네.'한 것이 아니기에, 정말 사랑하는지는 개도 안다고 정확하게 보신 것이 맞죠. 그러니까 내가 지금처럼 구속사를 알았다면 '맞아요. 그러게요.' 했을텐데 옛날에 우리 시대는 이 다방이 있었어요. 차를 팔려면 비위를 잘 맞춰야 되자나요. 그런데 '내가 그 당시 다방 레지도 아닌데 왜 나보고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하시지?'하면서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이 도우미 아주머니가 또 저에게 너무 함부로 대해서 한 번은 남편에게 말을 했어요. 이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거보다도 자기 자존심이 상하니까 아주머니를 잡았어요. 남편 출근한 후에 이걸 시어머니에게 일렀어요. 그냥 우리 그 아주머니의 위상이 대단한데 '며느리 잘못 들어왔다고 그 쌀쌀맞은 시어머니의 눈총과 더불어 온 집안에 난리가 나고 그 무서운 적막이. 그러니 제가 또 가스라이팅이되어서 그 다음서부터 더욱 더 입을 못 벌리게 되니까 착한 것이 아니고 이 바보가 따로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 화나는 일이 있으면 제가 화풀이 대상이 되었어요.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았어요.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소리지르고 뭐라고 하면 그때부터 저는 말문이 탁 막혀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싸움은 잘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저를 보고 바보를 바보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는 생각이에요. 왜 그랬는가 생각을 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딸로 태어나서 사랑을 못 받아가지고 제가 이제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바로 이게 왕따고 은따가 아니겠습니까. 거기는 군중이 어머니와 두, 세 무학자가 군중이자나요. 저를 얼마든지 왕따 시킬 수 있는 거죠. 그렇게하면서도 저는 속으로는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서울대학 내왔는데 바보라고?'이러면서 핀트를 점점 더 못 맞추고 있으니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바보가 됩니다. 제가 생각해도 매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맞는 말을 했는데 난리가 나니까.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이렇게 큐티를 열심히 시키고 주님을 만나게 하면 이런 거를 깨닫게 되니까, 할 말, 안 할 말을 할 줄 알게 되니까 왕따를 지혜롭게 피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바보같은 나보고 밤낮 대학 나온 거 맞냐고 여기저기서 하도 들어대니까 저도 이제 '내가 대학 나온 거 맞나?' 할 정도였어요. 제가 이렇게 맹종하며 살고 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착합니까? 저도 속고 남도 속이는 바보인데 착하다고 착각하며, 분해하며, 속으로는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없고. 그러니까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 그러면서 '네,네.' 했으니까 이런 지옥이 어디있겠어요. 제 편을 들어주는 친정도 없고, 교회를 다녔어도 제 고난을 나눌 지체도 없으니까 고난이 막 태산 만큼 큰 거예요. 왜 크죠? 상대 평가자나요. 저는 그때 너무 이뻤고 학벌도 최고인데, 그러니까 그에 준하는 고난이 태산만큼 큰 거예요. 그러니까 속으로는 분해하면서 다들 이래서 이혼을 덜컥하는 거예요. '무시받고 살 수 없다. 매 맞고 살 수 없다.' 그래서 덜컥 이혼하고 나만 사랑해 줄 것 같아서 또 덜컥 재혼하고 그랬는데도 또 사랑받지 못하니까 또 덜컥 이혼합니까? 내가 다른 건 참아도 외도하고 바람 피는 거 만큼은 이혼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면, 언약의 대표가 결혼인데. 다들 이혼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러니까 이혼율 1위자나요. 사실 제 얘기는 인권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이제 천 번을 이혼을 해야되는 입장인 게 맞아요. 사람은 사랑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는데 제가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가짜자나요. 오래가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석이 도무지 되지를 않는 거죠. 어떤 분이 보기에는 그것이 큰 고난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삶의 디테일에서는 억지가 춘향이를 이긴다고 도무지 답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시댁도 무시를 하고 남편도 무시를 하는데 여기 더 무시하는 사람이 한 분이 있으니 살 수 없는데 저 사는 새댁이 잘 붙어 있으니까 저를 무섭게 무시하는 분이 계시니 이혼을 당하고 온 도우미 아주머니였어요. 그 분은 음식을 너무 잘하니까 우리 시어머니가 아주 총애를 하시는데 그렇게 음식을 잘하시는데 아들을 못 낳아서 10년 만에 이혼을 당한 거예요. 이 얘기를 이 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어떻게 해서든지 이혼을 시키려고 무시하면서도 그분도 저를 가스라이팅하니까 막 '새댁 뭐 땜에 이러고 살아.'이러면서 또 나를 막 무시, 너무 치사스러운 일이 많아서 제가 한 번 얘기했으니까 차츰차츰 보따리를 풀겠어요. 잘 해주다 무시하다 이걸 반복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형님한테 나를 이혼시키려고 했다고. 이렇게 조금 더 해주면 이혼 할 거 같은데, 그분까지 보태서 이혼의 사명을 가지고 하루종일 사단은 저를 이렇게 멸절시키려고 했죠. 그러니까 그분이 어머니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까 저를 무시해도 가책이 없었어요. 그분에 비해서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무시 당해도 당연해요. 대학 나와도 음식을 잘 하나, 걸레를 잘 빠나. 어떤 것도 못하는 거예요. 저는 왕따가 맞아요. 제가 그 분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때 레지던트 월급이 7만원인데 거기서 뇌물까지 제가 상납을 했어요, 그분만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두 분 한테.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것까지 이르겠다고 저를 협박을 했어요. 제가 그냥 하루 종일 사는데 무서워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 세 분이 저를 공격하는데 서울대씩이나 나온 제가 무서워서 이 비위 맞추는 수 밖에 없고, 그런 제가 너무 기가 막혀 위선자 같고, 또 그걸 참자니까 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위장병, 편두통에 아프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는, 새들새들 말라가는 그곳에서 저는 남자들의 직장 생활이 똑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이 안되는 사람이 왕따를 시키고, 그래서 그 남자들은 시집살이가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 우리는 큐티는 평범한 얘기를 잘 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는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잘하고 성실하고 소녀가장에 교회에서 반주도 하고 교회, 학교, 집 밖에 몰랐는데 왜 내가 갇혀서 이 무시를 받고 문 밖 출입을 못하는가.'이러고 있으니까 이거야말로 생지옥인 거예요. 자, 내가 착하면 지옥인 거예요. 그 착함으로 내가 잘났으니까 결국 이혼과 자살밖에 생각나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때 이혼하고 뛰쳐나오고 같이 때려주고 이러는게 맞지, 그렇게 참는 게 맞냐?' 여러분 예수 없으면 다 똑같은 거예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 주신 이 환경 있자나요.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감옥을 코로나 때 가 보았어요. 그 알 카포네 등이 있었던 악명 높은 그 감옥은 살아서는 못 나온다는 곳이었어요. 작은 독방에 침대가 있고, 수세식 변기가 하나 있고, 그런데 거기는 망망대해인 해변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나가서 해변을 볼 수가 있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내가 시댁에서 그 작은 하늘을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돼요. 저는 하루종일 시장도 아주머니가 보러 갔어요. 진짜 저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카트라즈 감옥이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그렇게 침대 있고, 그 변기도 재래식 아니고 수세식이 있는데, 거기서 성경 보고, 생각하고, 또 망망대해, 또 죄수들끼리 이렇게 하루에 한 번은 운동하자나요. 정말 그러고보니까 너무 괜찮지 않아요. 그만큼 제 시댁과 결혼의 감옥은 힘들었어요. 여러분들 제가 얼마나 힘들어서 오늘 이렇게 목사가 됐겠어요. 저를 이렇게 겉으로 보고 '그게 무슨 고난이냐?' 이러시는데, 그러니까 제가 이혼해도 누가 뭐라고 그럴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나 해석이 안 된 이 상태로 이혼을 하면, 나한테 때려서 못 되게 해줘서 이혼하면 또 똑같은 상태로 재혼하는 거예요. 그럼 또 똑같은 상태로 이혼하는 거예요. 자,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이 다섯이 있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내 남편이 아니라고 요한복음 4장에 나오자나요. 제가 너무 이혼이 하고 싶을 때 이 말씀이 딱 펼쳐졌어요. 제가 말씀 묵상도 모르고 그냥 기도하고 울어대니까 '오늘은 못 살겠어요. 말씀 좀 달라.'고 그랬더니 이 말씀 거기 딱 펼쳐졌어요. 그래도 저는 택자가 되어서 그때 그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조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그러고나서 다른 또 좋은 남자하고, 나이스한 남자하고 결혼하면 그 남자가 또 바람 피면 어떻게 해. 또 좋아서 했는데 또 그 남자가 아파서 어떻게 되면 어떻게 해. 이게 이게 꼬아지더라고요. 똑같은 거예요. 제가 조금 하늘이 열렸어요. 주님을, 하늘이 열려서 말씀을 묵상하는 건 은혜받을라고 읽은 게 아니라 죽지 않고 살려고 말씀을 묵상하니까 이제 THINK, 생각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다 똑같은 거예요. 그분들이 나쁘신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말하면 우리 시아버님은 아주 똑똑하시고 잘생기시고 난 분이세요. 사업도 일으키셨고 100을 못 세는 그 어머니를 리어카에 태우고 자녀들과 함께 월남하신 분이에요. 엄청난 효자예요. 무학자이신 아내의 모든 화를다 받아내신 애처가세요. 그런데 회장님이 바람도 안 피셨어요. 그분들은 최선을 다 하셨던 분들이에요. 그런데 문화가 다른 거예요, 문화가. 우리 7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사람도 아니자나요. 제가 50년 전에 결혼했다고요. 그러니까 문화가 다른 거예요. 그런데 그 문화에서 저는 너무의 최고의 공부를 한 거죠. 그러니까 우리집의 문화가 달라요, 기독교가 빨리 들어온 집이니까. 그분들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서로 최선을 다 하는데 저는 죽을 것 같아 숨이 막혔던 것이죠. 나쁜 것이 아니라 정말 모르세요. 여자와 사발은 내둘리면 이가 깨진다. 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밟아야 된다. 이 얘기를 남편은 공공연하게 저한테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게 말이 되나 그러지만 지나고 보면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편도 이제 그런 문화에 속해서 날마다 그렇게 듣고 살다가 보니까 사실은 그 문화의 피해자인 거예요. 그때 제가 학교 나가고, 그렇게 저를 예고 강사를 나가게 했다면 저는 반드시 누군가를 만나고, 그러면 반드시 이혼을 100%로가 아니라 1000%로 했어요. 저를 안 내보내신 것은 정말 잘 하신 일이에요. 신의 한 수 였어요. 제가 잘난 게 하나도 없어요. 늘 말하지만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살았죠. 있으면 또 따라 뛰쳐나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겸손은 그래서 환경이에요. 누구와도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외로웠죠. 교회에 이렇게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다들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일어날 힘이 전혀 없는 제가 날마다 이혼과 자살을 생각하던 날들이었어요. 오픈할 수 있는 고통은 그래도 약한 고통이에요. 누군가에게 말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이 딱 한 분이 계시다면 오늘 제가 그분 때문에 이 설교를 하는 거예요. 수석 장로님 자부야말로 아무에게도 말도 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다들 나를 부러워하는 거예요. 나는 이혼과 자살을 생각하는데, 그런 한 분 때문에 제가 이 똑같은 간증을 또 하는 거예요.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또 알아듣지도 못할 사람한테 하면 '사치스러운 얘기 하지 말라.'고. 에스겔이 제사장 가문에 태어났어도 이 문자적으로 사로잡힌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하늘이 열릴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4대째 모태신앙이지만 완전히 사로잡히는 훈련이 필요했어요. 이런 훈련이 없었다면 교양 있게 마음껏 교만하게 살면서도 제가 얼마나 교만한지도 모르고 살다가 지옥을 갔을 거예요. 이세벨, 북 이스라엘의 그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왕의 씨인 예수 씨를 멸절하려고 했다고 했는데 저는 일생의 방주요, 피난처가 이제 시댁이고 시댁이 저를 훈련시키고 보호하신 성전 중의 성전이었다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저는 거기서 목회를 다 배웠어요. 얼마나 아끼고 살고, 정말 복종의 언어를 써야 되는지 이거를 너무나 배웠어요. 천국은 홀로 가는 거예요. 엄마 안의 치맛도리 잡고 못 갑니다. 우리도 홀로 있는 거를 미리미리 연습한다면 유익이 될 것이에요. 홀로서기는 혼자 살라는 게 아니고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제가 그 아줌마, 어머니, 세 무학자, 한 고학력자 날마다 얘기를 하면 처음 듣는 것처럼, 또 너무 재미있는 것처럼 제가 듣는 거예요. 어머니가 얘기 시작하면 그 천 번도 더 해서 다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제가 처음 듣는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목회를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정말 무학자들의 그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듣게 하셨어요.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세요. 이거 연습시킨 것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어떤 그발 강가에서 무엇에 사로잡혀 있나요? 학벌, 돈, 남편, 아내, 자녀, 질병, 도박, 마약, 여자, 남자, 비교, 시기, 질투 중에 뭐예요? 착함이 악함이라는 것이 인정되십니까?
그렇게 하늘이 열리면,
2. 모든 때에 순종하게 됩니다. (1-2절)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 그러니까 나의 사로잡힘이 하늘이 열리는 비결이고,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니까,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 거 만큼 나의 추한 모습이 이제 비례로, 반비례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땅끝까지 내려가니까 드디어 제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주님은 문제에서 벗어나 자신을 직시하라고 우리를 외롭게 하십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8절까지 각종 때를 다 언급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때를 거부해요. '고난의 때를 멀리 해달라.'고 '물러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는데 그 모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거예요. 제가 항암을 믿음 없이 치렀다면, 사명이 아니라면 그거 너무 힘들어서 못하죠. 사명 때문에 아름답게 하신 그 항암을 겪어봤으니까 신빙성이 있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상아궁을 짓고 정치를 최고로 잘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악하다고 했어요. 믿는 우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구속사의 관점으로 봐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을 세상은 못 알아듣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점진적으로 보여요. 코끼리 뒷다리 보다가 점점 보이는 거예요. 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주님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를,책을 제가 이번에 보면서 '야, 정말 이 책 너무 재미있구나.' 진짜, 제 책이라서가 아니라, 읽기 진짜, 제가 거기 이제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는 건 결국은 형을 속였기 때문이자나요. 그런데 늘 '에서 형님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이거만 말하지 '내가 형님을 속이고 옛날에 도망쳤다.' 이 얘기는 쏙 빼놓고 싶습니다. 형을 속인 게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직면하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무덤 속까지 가져갈 그 일이 나를 또 홀로 있게 합니다. 나를 외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야곱은 그렇게 그 얘기를 하지 않고도 가장 자랑하는 그 환도뼈, 튼튼한 환도뼈로 돈과 건강, 부인, 자녀들 다 얻었어요. 회개하지 않고도 다 얻었어요. 그런데 그걸 하루 아침에 다 강 건너 보내게 하셨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리고 나서도 형이 무서워서, 두려워서 벌벌 떨고서 외로울 때 하나님 찾아오셨어요. 하나님하고 씨름했어요. 드디어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셔서 그의 가장 자랑하는 능력인 환도뼈를 치셨어요. 힘을 못 쓰게 하시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어요. 몰라서 물으시겠어요? 드디어 자기를 직면하고 하나님 모습을 봤자나요, 지금. 직면하고 '나는 야곱.'이라고 외치는 거예요. '나는 속이는 자.'라는 거예요, 속이는 자. 그랬더니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주셨자나요. 이혼이냐 아니냐, 죽느냐 사느냐가 되니까 야곱이 '형이 나를 죽이려 해서 힘들다.'에서 '원래는 내가 형을 속이고 도망쳤다.'를 고백한 것처럼 저도 밑바닥까지 가니까, 한 번 하늘이 열리니까 자꾸 THINK하게 되니까 생각지 못했던 저의 죄가 보이더라고요. 나는 날마다 착하고 믿음 좋고 이럴 때는 생지옥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모습을 보이시니까 나를 직면하게 됐고, 바리새인들 보시고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런게 다 저의 모습이 깨달아지게 됐어요.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사기꾼에 거짓말쟁이인 그 야곱의 모습인 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게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이 THINK 훈련이 중요한데요. 열심히하고 잘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돈 좋으니까 무서운 열심으로 공부한 것이 제가 깨달아졌어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컨닝도 한 적이 있고, 그러니 거짓말도 한 것이죠. 제가 시어머니 무서워서 비굴한 것이 겉으로는 착함을 가장하는 그 욕심임을 직시하게 됐어요. 너무 외로우니까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나 좀 누구 만나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야곱이 여자 좋아하는 음란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저에게는 열심만 있고 하나님을 향한 전심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신 것은 그만큼 나의 추함을 보이신 것이에요. 이 일이 너무 놀라운 일이어서 똑같은 시공간이지만 내 죄를 보니까 더 이상 거기가 감옥이 아닌 거예요. 감옥에서 천국으로 신분이 바뀌는 일이었어요. 이걸 얘기하라고 제가 5년만에 주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은 계속 저를 13년 동안 가둬놓으셨어요. 그런데 하늘이 열린 AD/BC가 완전히 갈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무슨 환경, 시댁 이게 문제가 아닌 거예요. 나하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제가 거기서 전도하고 할 거 다 하기 시작했어요, 묶여 있었는데.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사로잡힌 환경에서 여러분의 돈과, 여자와, 남자와, 사기와, 거짓말 좋아하는 추함이 보입니까? 아직도 환경을 풀어달라고 때만 씁니까? 날마다 옳고 그름을 판단만 합니까?
모든 때에 순종하게 되어 어떤 때라도 하나님은 아름답게 하셨다고 그랬어요. 최악이라 고 생각하는 그때를 아름답게 하셨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되면,
3. 말씀의 권능이 임합니다. (3절)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 3절입니다.
1절에 하늘이 열리는 것은 28절의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리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똑같은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말씀을 알아먹을 사람에게 임하게 하시는 것이에요. 만인 제사장 시대에 4대째 모태신앙인 저희 집안도 제사장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사장 가문의 딸로서 이 바벨론 시집살이에 사로잡혀 있던 제게도 말씀이 특별히 임했습니다. 부시라는 이름은 멸시받다는 뜻이거든요. 부시의 아들 나 에스겔은 하나님이 힘 주신다는 뜻이에요. 저는 하늘이 열리니까, 자꾸 내 속의 죄가 보이니까 제일 먼저 몸빼 바지 입고 변소 청소하던 부시 같은 어머니를 자타가 다 무시해요. 우리는 교회에서 변소 청소를 하면 무시를 하더라고요. 학교 가다가 만나면 그 몸빼 바지에서 똥내가 나자나요, 제가 시골도 아닌데, 대한민국 제일 부자 동네에 살면서. 너무 창피해서 피해간 것이 생각이 났어요. 지금 와서 THINK를 해 보면 사실 예수 믿으려면 그렇게 믿어야 하는데, 그 엄마를 딸인 제가 무시하는데 시댁에서 엄마 밑밥 발바닥도 못 따라가는 저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그러니까 제가 잘난 게 아니라 우리 엄마가 평생에 변소 청소와 남의 집 빨래를 보여줬기 때문에 제가 교만하기도 하지만 기준이 거기니까 진짜 이렇게 하나님이 저를 목사를 시키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제가 늘 눈물을 흘립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며 반주로 섬겼지만 사명으로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야망으로 피아노 치고 공부하고 결혼했다는 것이, 더 쉽게 말하면 돈 좋아해서 공부하고 결혼했으니까 내가 이런 시집살이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날마다 깨달아졌어요. 누가복음 16장에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옳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신다고 그러더라고요. 저하고 지금 똑같은 거예요. 제가 바리새인이자나요. 남들에게는 너무 지금 다 열심히 하는데 돈 좋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으니까 날마다 난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고 스스로 옳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게 인생의 목적이에요. 얼마나 인정했으면 가난뱅이 딸을 이렇게 피아노를 그냥, 정말 거의, 제가 돈 내고 그렇게 다 배웠으면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인정을 받는 게 제 인생의 목적인데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안 통하는 집이 있었으니 우리 시댁인 거예요. 제가 피아노 치는 거 상관이 없어요. 고무장갑 끼고 빨래도 못하게 하세요, 썩어질 놈의 몸땡이를 그렇게 애낀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저는 훈련을 받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임하니까 저의 죄 됨을 보여주시니까 권능이 임하더라고요. 제가 이 거창한 목회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나를 이렇게 주님께로 인도해주신 어머니의 영혼이 불쌍하고, 그래서 정말 영혼 없이 '네네.' 하면서 맹종하다가 구원 때문에 기뻐서 하는 순종으로 바뀌니까, 이 두려움이 영혼 구원의 순종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게 무서워만했던 어머니에게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저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했어요. 똑같은 삶에서 말 한 마디 못하다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달라졌으면 오늘날 이렇게 설교자가 됐겠어요. 여러분들은 옛날에 저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는 맨날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맨날 저 무덤에서 뛰어나오겠다 이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저것이 맨날 네네네네 하다가 저것이 뭘 잘못 먹었나.' 그러니까 나도 13년 동안 나의 은사가 이렇게 있다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에게, 사람이 자존감이 있으면 영혼 구원 때문에 나가면 자신이 생기는 거예요. 자존감이 있어야 사람이 매력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의 저를 생각하면 사랑도 받지 못하던 것이 서울 대학은 갔으니 속에 피해 의식은 있고 못 봐주는 거예요, 저를.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학벌이 좋다고 깨닫습니까? 이게 학벌이, 제가 그 나왔던 시절 알 자나요. 전혀 설득 못 시킵니다. '어머니 저랑 같이 예배드리십시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우리 어머니 너무 놀라가지고 '아니 저것이 뭘 잘못 먹었나.' 그런데 권사님이자나요, 명색이. 그런데 옜날에는 그런 실력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도 글세 앉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어요.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어머니, 사람들이 저를 다 믿음 있다고 그러는데 어제는 어범이 소리지르니까 너무 미웠고, 오늘은 어머니가 야단치시니까 너무 미웠어요. 남들은 제가 착한 줄 아는데 저는 이렇게 사랑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이제 나눔을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한글도 못 보시는데 늘 그렇게 돋보기를 끼고 계세요. 그래서 요러고 저를 쳐다보시면서 '너는 착해 얘.' 이러시는 거예요. '나야 말로 내 아바지가 왜 그렇게 미웠다 고왔다 하는지 모르겠다 야. 고저 나는 교회 뜰만 밟고 왔다갔다 한다 야.' 그럼 제가 '어머니, 아니예요, 믿음 있으세요.' 이래야 되는데 '그게 있자나요, 왜그러냐 하면요. 어머니가 팔자가 늘어지셔서 그래요. 어머니는요, 생선을 가운데 토막을 탁 내가지고 소금을 탁탁 뿌리는 것처럼 그렇게 쌀쌀 맞으세요. 아세요?' 그랬더니만 '알디.' 또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또 이제 하나 더 나갔죠. '어머니, 눈물의 어머니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데 왜 아범 위해서 기도를 안 하세요.' 그랬더니 '내가 기도할 줄 알간?', '지금 하신 말씀 그대로 하면 돼요.', '못해 야.','아니, 고거 그래도 한 번 해보실래요? 해보세요.', '못해.' 완전 양육 들어갑니다, 제가. 드디어 이제'하나님 아바지, 저는 고저 아바지가 미웠다 고왔다 합니다. 고저 교회 뜰만 밟과 왔다 갔다 하무다. 저는 그냥 기도할 줄도 모릅네다. 고저 불쌍히 여겨주시고래. 아멘.' 이렇게 기도를 제 앞에서 하는 것과 아닌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되었어요. 저는 이제 아줌마들과 맨날 우리 시어머니 뒷담화하던 그 식당에서, 바보같은 노예에서 주인 의식을 가진 주인으로 달라졌어요. 부엌에 잔소리하시면 '어머니, 이러시면 다들 싫어해요. 방에 들어가서 쉬세요.' 안 들어가시면 막 어깨를 붙잡고 들어가서 '앉아 계세요.' 이러고 이제 나와서 일 끝나면 다시 안방에 들어가서 '어머니, 예배 드리십시다.' 이러면 갑자기 제가 무슨 카리스마가 생겼는지 주섬주섬 또 일어나시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저를 보시고 이러는 거예요. '얘, 내가 너만 시집살이 안 시켰지?' 이러시는 거 있죠. 제가 너무 잘 하니까 옛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그러시더니 그날 '하나님 아바지 저희 집안에 이렇게 훌륭한, 귀한' 주의 딸도 아니고 '주의 종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무다.' 제가 그런 기도를 받은 몸이에요. 여러분, 서울 대학을 나오면 뭐합니까. 전혀 설득을 못 시켜서 왕따를 당하던 저는 정말 생각만 해도 우습지 않아요? 그럴 때 이혼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때 우리가 큐티를 해야 돼요. 공동체에 들어가서 자기 모습을 나눠야 돼요.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의 모습을 보니까 권능이 임하게 하셨어요. 서두에 그 수재 집사님께서 '목사님의 인생이야말로 자기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는 그 자체인 것 같다.'고 '환난이 주제요, 성경이 교과서요, 성령이 스승이다 이 말이 아득하게 느껴지다가도 목사님을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여러분, 오늘 그것을 느끼셨나요? 한국 교회의 세대가 이제 우리집은 벌써 6대까지 내려갔어요. 그러니까 저와 같은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았어도 행위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거를 누군가를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주님은 제게 정말 참 이상한 사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때는 너무 가난하고 지금은 10위권에 들어갔기 때문에 만세 전부터 저를 택하셨다는 생각을 해요. 늘 정확한 복음을 들어야 갑작스럽게 닥쳐온 고난도 해석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가도 그날 에스겔 말씀으로 저는 살아났고, 또 구원을 확증해주시니까 이것이 권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개미들이 전 세계 개미 군단을 모아서 쳐들어 와도 사람이 한 번 밟으면 끝이자나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나님이 한 번 밟으면 끝이죠.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면 하늘이 열리며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게 되는 줄 믿어요. 오늘 각종 힘든 아픔으로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하늘이 열리는 권능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사로잡힌 사건에서 말씀이 특별히 임해서 죄를 보고 해석이 되어 권능이 임한 경우가 있습니까? 쉽게 말하면 바른 복음, 바른 적용으로 설득이 되어서 상처가 별 이 되어 전도한 적이 있나요?
기도제목
예선
1. 목장의 중보로 집으로 잘 돌아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옳고 그름에 사로잡혀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임하여 죄를 보고 해석하고 갈 수 있도록
2. 허락하신 자리에서 하루만 잘 살도록
3. 목장 식구들 각자처한 상황에서 말씀으로 위로받고 영육간에 보호받고 갈 수 있기를
은우
1. 그발강가인 말씀과 목장에 사로잡혀 베풀어주신 구원 잔치에 잘 참여 하고 사명 감당하는 저와 우리 목장 되도록
2. 사울왕이 아멜렉의 전리품을 남겨두고 회개하지 않아 (주께 버림 받은) 것을 알고 (영적 민감함)으로 적용 할 지혜와 용기 주시도록
3. 죽음의 환난에서 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장 식구들의 신음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인생이 해석되어, 넉넉히 이길 약속의 말씀 허락해 주시고, 다윗의 등불인 목장에서 구원의 진리를 누릴 만한 겸손함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