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말씀: 열왕기하 10장 28-36절
제목: 그 죄에서 떠나라
절대 떠나지 못하는 그 죄가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는 정관사를 붙여서 그 죄 라고 합니다. 예후가 철저히 개혁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그 죄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임해서 각자가 매여있는 그 죄에서 떠나는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1. 금송아지 숭배의 죄(돈 신의 죄)
28-29절)
바알신당을 변소로 만들며 예후가 바알을 멸합니다. 하지만 멸하였으나 합니다. 그러나가 있는 것입니다. 예후가 28년을 통치했는데 아직 1년 차인데, 바알을 멸한게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직 27년이 남아 있습니다. 잠깐 1년은 연기할 수 있으나 27년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모습 뒤에 드러난 예후의 본 모습의 실상은 무엇인가요?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디서 인가요?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그냥 죄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죄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죄도 아닙니다. 이미 90년전에 시작된 여로보암의 죄라고 합니다. 느밧의 삶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언급할 때마다 아버지 느밧이 함께 등장합니다. 온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그 엄청난 죄를 시작한 여로보암도 문제이지만 그 죄가 아버지 느밧에게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게 맞습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회개를 해야 하는데, 계속 탓만 합니다. 가족에 문제가 있으면 서로 적용해야 하는데 하지 않습니다. 믿음 있는 자가 먼저 회개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사과 한번 하는 게 어려워 교회를 떠나고 싶으세요? 안타깝습니다. 믿음 있는 그 한 사람이 사과를 해야 합니다. 왜 사과가 안 되나요?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이죠?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입니다.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켜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강성해졌는데 한 가지 없는 것이 성전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가는 게 로망인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국경에 금송아지를 북쪽에 만들고 하나님 대신에 기도하라도 합니다. 이건 말씀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사이비 입니다. 그때 여로보암은 자금의 예후보다 더 부지런해서 솔로몬이 인정했을 정도였습니다. 예후와 마찬가지로 여로보암도 도구로 쓰셨습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12지파 중 10지파가 따라 나와 남유다 보다 강해지니 금세 하나님을 대신할 금 송아지를 세웠습니다. 우리도 잘 살고 잘 먹으면 당장 하나님의 율례를 무시합니다. 여로보암도, 예후도 너무 부지런하고, 왕들에게 가장 신뢰받던 부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배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목장에 물어보며 가면 잘되든 못되든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됩니다.
왜 소였을까요? 당시 농경사회는 소가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풍요의 신 바알에게 절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바알은 나쁘고, 금송아지는 괜찮은 걸까요? 예후가 아합을 뛰어넘으니 이제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닌 존재 자체가 특별해집니다.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에게는 다 이루었다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이 나라가 남유다로 복속되어 왕권이 없어질까 걱정되어 금송아지를 불사르지 못합니다. 바알을 개혁했으니 금송아지도 불살라야 합니다. 금송아지만 불살랐어도 개혁의 의지가 있다고 보여지겠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기들의 권력이 하나님보다 1순위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 예루살렘으로 가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예루살렘으로 가면 북이스라엘이 망한다고 생각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후가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현상유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가장 쉽고 확실한 수단이 금송아지 숭배입니다. 황금을 보여 주면서 너희도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고 내게 충성하면 황금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종 맛있는 것을 주고 돈을 주고 예복을 입혀주면 모두가 예후하며 숭배합니다. 금송아지를 통해 자기만 경배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욕심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그 죄입니다. 끊지 못하는 그 죄입니다. 그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죄가 북이스라엘의 원죄 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예후처럼 높이 올라가면 욕심이 끊어질까요? 그런 게 없습니다. 욕심을 채울 수 있는 힘과 지위가 너무 좋고 더 큰 걸 탐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욕심이 바로 그 죄, 북이스라엘의 원죄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는데, 여호와를 찾아야 하는데,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한발짝도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 금송아지 숭배입니다. 한마디로 교회를 다녀도 돈이 좋고 절대로 못 내려 놓는 것입니다.
Q. 내 인생 거룩의 여정에서 세상의 성공 때문에 구원의 진도가 도무지 안 나가는 곳은 어디입니까?(불신 결혼, 이혼, 사과 안 함, 목장 떠남, 살림 안 함, 육아 안 함, 회사 떠남, 질병 뒤에 숨음, 각종 사연 등)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원죄인 '그 죄'는 무엇이 있습니까?
2. 잘~ 보다 전심으로!가 중요합니다. (열심의 죄)
30-31절)
하나님이 예후를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했다고 합니다. 예후는 자기 마음이 정직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해주십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니라 그 일이 진실하고 정직했다고 얘기하십니다. 나아가 잘~ 행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아합 집을 완전히 멸한 것이 잘 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예후 왕조가 4대를 이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그러나가 있습니다. 모든 잘 하는 예후인데, 그에게도 그러나가 있습니다. 강력한 왕조를 주시며 칭찬하시지만 그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러나가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멸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또다른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후가 뭐든지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고 잘 했지만, 전심으로 하지 않은 게 있다는 것 입니다. 전심으로는 열심이 아닙니다. 제일 힘든 상사가 무능한데 부지런한 상사라고 합니다. 해결책은 주지도 않고 무서운 열심으로 탱크처럼 밀어 붙이기만 하니 힘든 것입니다. 반대로 제일 좋은 상사가 게으른데 유능한 상사라고 합니다. 해결책만 주고 괴롭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 이 열심보다 중요한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열심은 말 그대로 뜨거운 마음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열심은 기본적으로 소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욕심입니다. 아무리 선한 열심도, 심지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심은 온전한 마음입니다. 집중되어 있는 마음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알이나, 금송아지 섬기는 것은 특별한 열심일 수 있지만, 결코 전심은 아닙니다.
한 나눔에 보면 주보에 열심의 끝은 속임수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를 보고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하기 위해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열심과 전심은 다릅니다. 전심은 무엇을 잘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을 할 때, 하나님께 전심이 되면 사업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둘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전심인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큐티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의 건축자 입니다. 삶의 가준이 하나님늬 말씀에 있는 사람, 날마다 큐티하는 사람이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누구보다 잘하는 한 가수가 뺑소니를 쳤는데, 큐티를 안 하니 거짓을 고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파만파 퍼집니다. 큐티 적용이 사소한 것 같지만 전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큰 싸움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가 큐티하며 왔기에 하나님이 우리들 교회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열심도 우리가 지을 수 있고, 잘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열심의 모델이 예후라면 전심의 모델은 여호나답이 있습니다. 예후 왕조가 4대나 이어진 것을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하는게 일반이지만 에스쥐그라프는 이를 축복의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도 있다고 말합니다. 4대만 이어지고, 이후에는 아합가문 처럼 그 왕위가 빼앗긴다는 심판의 메세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의 말씀에는 표면적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에 대한 심판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만큼 예후는 끝까지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잘난 사람도 끝까지 구속사를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예후의 모습을 레갑 족속의 자손인 여호나답이 지켜봅니다. 바알숭배가 끝났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은 멀었구나 했을 것입니다. 이해타산이 끝났으니 예후와의 관계가 끝납니다. 아마 이때 큰 좌절을 경험한 여호나답이 광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택자는 늘 어떤 경우도 내가 틀렸다 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와 함께 하지 못한 자기 죄악을, 그리고 자기열심으로 예후와 함께 한 자기 죄악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예후 개혁의 시초는 나봇의 포도원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충돌을 표현합니다. 이럴 때, 여호나답은 예후처럼 또다른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삶의 표본을 보여주는 적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레갑 족속에게 광야로 갈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어떻게 250년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광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밤에는 추운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말씀이 나오고 말씀이 들리는 곳이 바로 광야 입니다. 얘후는 악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광야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택하지 못한 길입니다. 그런데 아 길을 레갑족속이 택합니다. 그들은 선조의 말도 듣는데, 이스라엘 너희들은 왜 하나님 말을 안 듣냐고 꾸짖으십니다.
열심과 전심은 다릅니다. 전심은 내가 섬기는 것이 아니고 적용 하는 것입니다.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고, 말씀이 들리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전심은 우리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생기는 은혜인 것입니다.
목회자 세미나를 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전심으로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무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묶어두셨습니다. 주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저절로 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한 사람, 한 가정, 한 교회가 살아났다는 간증을 곳곳에서 듣게 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전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Q. 내 열심입니까, 하나님께 전심입니까?
광야가 말씀이 나오는 비결인 것을 믿습니까?
어떤 광야에 계세요? 물질, 건강, 인간관계(나 홀로, 부부간, 부모 자식 간, 목장, 회사, 학교 등)에서 전심으로 지켜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3. 업적은 그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업적의 죄)
32-36절)
열심이던 예후에게 당장 심판이 임합니다. 우리는 구속사로 인생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잘라내기 시작하십니다. 아람의 왕 하사엘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쓰십니다. 전에는 찔끔찔끔 공격하던 하사엘이 이제는 총 공세를 펼칩니다. 결국 요단 동편 땅을 전부 빼앗깁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하고 생명력이 풍성한 땅을 달라고 했는데 그곳에도 성전이 없었습니다. 이것만 사달라고 하고 샀다가 앗수르에게 다 빼앗깁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땅은 남에게도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쟁이 끊임 없이 있다가 결국 앗수르에 빼앗깁니다. 선남선녀가 결혼을 하면 이혼을 잘 합니다. 결혼을 잘 할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굴의 광야를 택해야 합니다. 항상 광야를 택하는게 축복입니다. 언제나 이타적으로 택해야 합니다. 예후가 아합을 이겼다고 좋아했을 텐데, 이제는 아합 뿐 아니라 그 앞의 모든 왕보다 못하게 되는 수치를 당합니다. 후에 이 땅을 회복할 때까지 수치를 벗지 못합니다. 업적이 쓰인 사람이 유다에는 맨 마지막에 히스기야만 업적이라는 말이 쓰이고 그 뒤로 예후와 그 왕조에게 쓰였습니다. 예후의 왕가는 위대한 왕가가 맞습니다. 많은 업적을 남기지만 아무도 그 업적을 모릅니다. 기록 하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왕좌도 아들에개 넘겨주고 다른 사람들처럼 죽었습니다. 28년 왕좌에 있었지만 1년 칭찬 받고 나머지 27년 아람에게 영토를 빼앗긴 수치를 받다가 끝났습니다. 예후도 정치를 잘했지만 그 위대한 업적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업적으로 그 죄를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땅에서도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광야로 간 레갑 족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이들은 북이스라엘의 멸망뿐 아니라, 남유다의 멸망 때도 살아 남습니다. 잡도 없고 유목 생활을 하던 자였기에 이동이 쉬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에 택한 삶이었지만 비천한 삶과 청빈은 그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비천한 자, 레갑 족속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후에 성문을 중수할 때 가장 힘든 문을 중수 합니다. 레갑 족속은 850년 동안 조상의 명령을 지키다가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목도한 목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레갑 족속은 남은 자가 되어 자금도 가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비천하고 묵묵하고 늘 자기 자리에서 섬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행한 어떤 업적도 우리 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예후는 4대지만 레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전심으로 다가 오십니다. 그 전심으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전심으로 우리 삶에 오십니다. 성령님의 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더럽고 약한 인생이지만, 저마다 짐처럼 이고 있는 그 죄를 떠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생이지만 우리도 성령님의 은혜로 죄의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그죄를 떠나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땅에서만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진정하게 빛날 업적일 줄 믿습니다.
Q. 그 죄와 광야의 비천한 생활을 가릴 업적 쌓으려다가 더 큰 수치를 당했던 적은 없습니까? 입시 실패, 취업, 재수, 승진누락, 허황된 재테크, 외모지상주의
비천한 삶과 청빈함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주제를 알고 '맞습니다'합니까, '그게 아니구요' 합니까?
그래서 지금은 내죄를 가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 A
- 이번주도 집에서 잘 나가서 공부하고 운동할 수 있도록
- 수면 패턴 일정하게 맞출 수 있도록
- 병원 진료 예약할 수 있기를
* B
- 매일 큐티하도록
-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도록
- 나의 생각대로 살지 않도록
* C
- 매일 큐티할수 있는 시간과 의지 주시길
- 그림 공부하는데 아이디어와 지혜주시길
- 아빠 구원과 건강을 위해 + 아빠 교회나올수 있도록
- 신교제, 신결혼
* D
- 건강 잘 챙길 수 있도록
- 한 주 잘 살아내도록
- 가족들 위하여
- 할머니가 사랑 제일 교회 분별할 수 있도록
* E
- 잠 잘 자며 건강 잘 챙길 수 있도록
- 휴식 시간에 일 생각하지 않도록
- 아빠 건강 지켜 주시기를
* F
-이번주 한주 잘 지내길
- 요즘 마음이 많이 불안한데 이겨낼수 있기를
* G
- 한주동안 인간관계에 있어서 분별 잘 할 수 있기를
- 일주일 동안 큐티 5번 이상 할 수 있기를
- 과제랑 공부 미루지 않고 미리미리 할 수 있기를
* H
- 곧 이사를 가야 하는데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거주할 처소 허락하여 주시길
- 내 열심이 아닌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 막내 동생 교육기간 잘 끝내고, 힘들지 않은 곳으로 자대배치 받고 만남의 축복 허락하여 주시길
- 둘째 동생 졸업식 까지 마무리 잘 하고 한국 올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진로의 길 열어 주시길
- 신결혼 준비 잘 해갈 수 있도록
* I
- 예배 집중할 수 있길
- 큐티 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