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작성자명 [은경]
조회 190
댓글 0
날짜 2005.09.13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 : 15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만큼 깊고도 넓다. 그러나 인간이 그 자식을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자식과 언제나 함께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탓이다. 아빠가 직장에 나가있는 동안 그는 자식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엄마가 만사를 제쳐놓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자식의 곁에 붙어있을 수도 없다. 비록 한지붕 아래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부모가 매일 밤 뜬눈으로 자식을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결코, 영원토록 자식과 함께 할 수가 없다. 부모는 반드시 그 사랑하는 자식을 남겨두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물론이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굳게 약속하시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사 52 : 12)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을 행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뒤에서도 우리를 호위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도 계시고 뒤에도 계실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수십 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개개인들의 앞과 뒤에 개별적으로 계실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면서 또한 빛이신 고로 가능하다.
먼저 전등을 생각해 보자. 어두워지면 전등을 켠다. 그러면 불빛이 어디에 있는가?
그대 앞에만 있거나 혹은 그대 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빛은 그대 앞에도 있고 그대 위데오 있고 그대 옆에도 있다. 방 안에서 어디를 가도 빛은 그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대가 방 안에 있는 한, 사실은 그대는 전등 빛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방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방 안의 빛은 더 이상 그대와 함께 하지를 못한다. 전등빛은 벽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태양빛을 생각해 보자. 태양빛의 위력은 전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늘에 태양이 떠있는 한 그대가 백리를 걸어가도 그 빛은 그대 앞에서, 그대 뒤에서, 그대 옆에서 그대와 함께 한다. 그대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면 태양도 그대를 따라 부산으로 간다. 그와 동시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태양은 자기를 따라 서울로 온다. 집 안으로 들어가도 그 빛은 그대를 떠나지 않는다. 그대가 낮잠을 즐기는 동안에도 그 빛은 그대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그 빛은 더 이상 그대와 함께 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면, 그대가 설령 땅 위에 있다 할지라도 그 빛은 그대와 함께 할 수가 없다. 그대 앞에서나 그대 뒤에서,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태양빛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까닭이다.
그러나 빛이신 여호와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빛이시다. 땅속이든 바닷속이든 하늘 위든 그 빛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과거든 미래든 영원 후든 그 빛이 닿지 않는 시간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언제 어느 곳에 있든 그대와 늘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낮 동안에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앞에도 뒤에도 태양빛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수십억의 인구가 있다 할지라도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개개인의 앞에도 뒤에도 계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터득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 : 5 - 10)
하나님꼐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알았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자기의 계산과 어긋나는 결과가 주어졌을 때, 재난이 닥쳤을 때, 절망하고 근심하며 불행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어떤 경우든지 불행이나 절망이 있을 수 없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결코 불행일 리가 없다. 그대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나쁜 결과를 주시기 위해 그런 상황을 연출하실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산과 방법으로 그대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재산, 가정, 명예, 건강 등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잃었다. 그야말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처참한 형국이었다. 만약 하나님꼐서 그와 함꼐 하시지 않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불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고 계씬 중에 그 같은 사건들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들은 불행일 수 없었다. 오히려 욥을 연단하여 더 크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다시스로 가던 요나는 무서운 폭풍이 몰아치는 바닷속으로 내던짐을 당했다. 절망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와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것은 절망일 수 없었다. 오히려 가야 할 자리, 있어야 할 자리인 니느웨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에만 비로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기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끝은 반드시 선한 결과로 귀결될 것임을 믿는 까닭이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 : 4-5 )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상황 속으로 빠져들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망의 골짜기로 떨어졌다면, 그 골짜기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막대기와 지팡이를 경험케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의 골짜기임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대는 지금 어떤 상황 속에서 절망하며 근심하고 있는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대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 지금 그와 같은 상황을 그대에게 연출하셨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불행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행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잊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을 제한하고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치 말라. 그대의 생각이나 계획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하나님을 끝까지 그리고 전폭적으로 신뢰하라. 그때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의 뜻하심이 그대 삶 속에서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 55 : 8-9)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믿음이요 순종이며, 이 터전 위에서만 인간의 절망과 근심과 두려움은 종식된다. 아니 이 기초 위에서만, 인간은 참된 평강과 소망 그리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이재철 목사님의 <새신자반> 中 에서---------------
제은 오빠가 올린 글보고,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구절이 생각나 조금 발췌해보았어요..^^a
발췌하면서도 제가 은혜 받네요..ㅎ
그럼 있다 교회서 뵈요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