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월요일 성경과학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 남서울 은혜교회를 찾았다.
1주차는 지난 주에 이미 했고 2주차 부터 듣게 되었는데...
주일학교 대표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가게 되었고
지난 오후예배에서 들었던 강의와 마찬가지로 무척 좋은 강의여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올립니다.
성경과학 아카데미는 김명현 박사님이 강의하시는데 진화론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성경과학 백신프로그램으로 이 땅에 창조신앙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과학적 변증으로 계속된다고 합니다.
2회의 주제는 <기적과 영혼>으로 성경 속의 여러 가지 행하신 기적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주셨다. 위치를 잘 몰라 쪼금;;헤매다가 앞부분은 놓쳤다.ㅋ
^^들은 부분부터 시작~^^
1. 과학이 무엇이냐. 
과학은 좁은 의미에서 물질세계에서의 자연과학을 의미한다. ‘과학이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것은 ‘사과가 무엇인가’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동양사람들이 사물을 볼 때 종합적인 인식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 서양사람들은 조목조목 나눠 생각하는 분석적인 인식이 발달되어 있어 동양사람들 보다 훨씬 과학을 발전시켰다.
과학은 인간이 지혜와 지식을 통해 현재의 우주를 잘 이해하고 다스리기 위해 만든 학문이다.
2. 과학적 탐구 방법 
과학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방법에는 4가지가 있는데
1) 관찰은 사물의 현상을 주로 다룬다. 예를 들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을 말한다.
2) 생각!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흔히^^왜??!!!!!떨어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라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인과율을 믿기에 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이다. 그를 토대로 분석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3) 표현 생각을 했으면 표현을 해야지 아니면 다~~무용지물이 된다!
연구를 표현할 때 과학자들은 이론과 법칙이라는 2가지방법을 쓴다고 한다.
법칙( ~이다)은 실험적 증명에 의해 재관찰이 가능하고 예외가 없는 것이다.
그 예로 작용반작용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있고 이에반해
이론은 ~일 것이다 라고 쓰여지는 실험적증명이 가능하지 않은 방법을 말하는데
빅뱅이론 카오스이론등이 있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부분은 태초에 주님께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마라 라고 말씀하 셨는데 이것이 하나의 법칙으로 볼 때 하와는 자신의 생각으로 따먹어도 될 것이다 라 는 이론을 생각하면서부터 죄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칙과 이론을 잘 구분하여 혼돈에 빠지지 말자고 하신다.
또 성경책에 대부분은 ‘~이다’ 라고 쓰여진 예외가 없는 것인데 우리가 잘못된 자기 해석으로 인해 ‘~일 것이다’라고 이해하고 자기 해석에 집착하므로 혼돈에 빠지고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는 낳게 된다.
따라서 이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법칙에 어긋난다면 다시 연구해야 하므로 확실한 법 칙에 의거하여 이론을 평가하자고 한다.
4) 응용 더많은 발전을 위해서는 응용을 필요로 한다.
과학을 연구하는 목적을 살펴보면 진리탐구와 행복을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다나은 편리함을 위해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평안과 편리가 공존해야 하는데 말이다. 편리만 얻기 위하다보니 과학으로 인해 편안함을 많이 잃었고 과학의 피해도 심해져 결국 미래에는 행복함보다는 불안함으로 치닫고 있게 되는 것이다.
평안과 편리,, 두가지 모두 발전을 위해 과학을 연구하는 것임을 주지하자.
3. 과학과 과학주의 
과학과 과학주의는 같은 말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고 한다.
과학주의는 과학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다. 성경을 보고 많은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보이지도 않는데 이런걸 어떻게 믿어?!” 이런 사람들이 과학주의 사상을 가진사람들로 볼 수 있고 과학은 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연구하는 것인데 이대로 잘연구하면 성경이 과학적임을 증명 할 수 있다고 한다.
성경은 과학적이다!!!
4. 과학적 연구의 한계 
1) 관찰의 한계 우리는 보통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런 물리적 존재들 말고도 비물리적 존재들이 있다. 마음 정신 영혼등 말이다. 마음이 어디있냐 물으면 정확하게 가리킬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있는 것을 믿는다. 이렇듯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못 믿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학주의의 예이다.
2) 증명의 한계 일회적인 사건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재관찰이 불가능하다.
일회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역사이며 역사는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역사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기록 확인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장군이 만든 거북선이나 삼국시대의 우리땅 영역등...재관찰, 증명이 되지 않는데도 믿고 있다. 이렇듯 나름대로 조금 조금의 근거들로 우리는 역사를 믿는다.
역사도 믿음의 대상이다!
자!!! 그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어떻게 믿어야 할까.. 교회에 다니니까 단순히 믿쑵니다!! 하고 믿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을 것이고 기적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증명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으로 볼 때 여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일임을 증명해보쟈. 예를 들어 설명하시기를,,
그림에서와 같이 1차원에 사는 개미는 2차원에 사는 바퀴벌레를 볼수없었고... 어느날 A지점에서 순간 바퀴벌레를 보았다. 너무 놀래 기적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어느순간 B지점에서 또한번 만나게 되었다. 이순간부터 개미는 바퀴벌레를 신이라고 생각하며 믿게되며 다시 한 번 보길 원한다. 바퀴벌레역시 우연히 메뚜기를 보았다. 바퀴벌레도 메뚜기를 신이라 생각하며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믿게 된다. 여기서 개미에게는 이 일들이 기적이었겠지만 메뚜기에게는 그냥 가던 길을 갔었던 과학에 불과 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다! 살고 있는 3차원외에도 높은 차원이 있을 것이고 그 중하나가 시간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길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사람들은 화내며 돌로 치라 하고 말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당연한 과학이신 주님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에도 계셨고 한동안 안보이실 것이고 다시오신 것이 라는 말씀이 모두 시간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있는 3차원의 세계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닫힌 세계관이고 그 이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열린 세계관’인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열린 세계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3) 과학자의 한계.. 전지전능 영생불멸 무소부재 순결 선 정직 공평등은 모두 신의 속성이다. 과학자들은 이 영역을 해결하지 못한다. 과학은 미래를 알수 없고 타임머신이 없는 한 미래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된 현재의 영역속에서는 과학자들은 편견과 결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과학자는 신이 아닌 구도자일뿐이다.
5. 증거를 통해 창조론을 믿자 
우리는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데 1주차에서 말씀하신 것 같이 진화론도 하나의 이론일뿐 법칙은 아니였고 많은 오류들이 있었다.
창조론도 이론인데 이 창조론은 과거의 일을 다룬 역사이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역사는 믿음의 대상이다. 창조론도 믿음의 대상이다.
어떤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구별할 때 우리는 머리카락이나 피를 분석함을 통해 증거를 얻어 범인임을 추출해낸다. 여기서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확실함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없지만 증거를 토대로 범인임을 믿는 것 이다. 증거가 많을 수록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증거와 믿음을 통해 창조를 믿자.
6. 예수그리스도의 기적과 과학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보자.
1) 포도주의 기적 (요2:7~11)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꿔주셨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로 변해 이런 의심 뿐 만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것은 H₂O(물) = C₂H#8325;OH(포도주)+...... 화학식은 명백히 “화학반응법칙”에 위배된다. 갑자기 탄소가 생기고 늘어나고 말이 되지않는다.
2) 오병이어의 기적 (마14:19~21) 예수님은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이 넘는 많은사람을 먹이시고도 12광주리나 남게 하셨다. 어떻게 그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단말인가!! 이것은 “질량보존법칙”에 어긋난다.
3) 물위를 걸으심 (마 14:23~24) 예수님은 물위도 걸으셨다. 물보다 무거운 예수님이 어떻게 물위를 걷는단 말인가..이것은 “부력의 법칙”에 맞지 않다.
이렇듯 모든 과학적인 방법들이 맞지도 않은데 무슨 성격이 과학적이란 말인가....
법칙에서 어긋난 것을 믿는 우리들....힘들지만 믿쑵니다!!!하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살짝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만약....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그 법칙을 만드신 분은 가능하지 않을까!!!! 알다시피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다.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 법칙의 주인도 주님이시다. 만드는 법도 아시고 그 법칙을 벗어나는 법도 아는 분이 주님이시다. 이렇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더 확실히 느끼고 믿을 수 있다.
4) 부활하심 (요11:25~26)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죽음의 법칙이 있다..하지만 우리 주님은 다시 사신 이적을 보임으로써 가장 강력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5) 거듭남의 비밀 (요3:1-10) 요 3:3에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말하고 계신다.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혼은 또 무엇일까요?
시19:7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라는 말씀이 있다.
‘소성케’는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율법이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데 율법의 온전한 속성 때문에 살아나는 것이다.
안경의 초점이 잘 맞으면 선명하듯이 과학의 원리를 알게 되면 신앙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a)차원: 길이는 길이로 무게는 무게로 쌍방의 차원이 같아야 되듯 차원도 차원으로 인식해야 하고, 이렇게 볼 때 옆 사람의 마음을 인식하려면 나의 마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b)질서: 삐뚤어진 마음, 화가난 마음으로는 아무리 내 마음을 인식했다했도 옆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질서가 있어야 타인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c)표준: 내안의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완전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질서가 있는데 불교신자는 불교 질서를 가지고, 기독교인들은 성경적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율법이 표준 질서이므로 완전하여 영혼이 소성케 한다고 한다.
이제 거듭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지위와 학문을 갖춘 니고데모조차도 거듭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고...
살면서 생명에 대한 정보(말씀)가 들어오면 그 다음 세상 즉,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천국)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듯 다시 태어나는 것(거듭남)은 외부로부터 생명의 말씀이 내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남은 절대적인 진리가 내 삶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말씀과 말씀을 믿는 우리들이다. 따라서 영원한 말씀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것입니다.
절대적 진리인 생명의 말씀으로 영원한 삶을 누립시다.^^
7. 천국의 열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하나님의 본질은 이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8)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은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엄마 몸 안에 있는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면 살고 안 받아들이면 둘 다 죽습니다. 이렇듯 “...내 말이 너희 속에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요8:37) 간절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요17:8)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전달하러 오셨습니다.
길이를 재는 자는 국제 표준 눈금을 쓴다면 어디서나 다 통합니다. 천국에서 말씀의 자를 가지고 대어보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산 사람에게는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자가 통하면 통과됩니다. 교회 다니면서 철학이 자신의 기준이 되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천국의 열쇠는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