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청정하고 고요한 것만 좋아하고 부국강병의 도리는 강구하지 않는다. 서장[티베트]과 몽고를 돌아보면 불교만 믿어 나라가 곤궁해지고 백성이 피폐하니 그 이익이 없음을 알 만하다.
회교는 억지로 사람을 복종시키며 또 운명은 다 하늘이 정한대로 움직이니 사람들이 바꾸기 어렵다고 하므로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모두 세상사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 터키, 이집트, 페르시아를 살펴보면 국토가 위축된 데서 그 무익함이 명백히 입증된다.
기독교는 영혼을 구제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외에도 필히 격물치지(格物致知)해 국가와 인민들을 이롭게 하는 덕목이 있고 선인들의 좋은 가르침- 바로 유교가 가장 중시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을 조금도 업신여기지 않으니, 학자는 열심히 배워야 마땅하다.
또한 사해가 다 형제임을 중시하니 만국이 한 집안과 같아서 피차에 속이고 모욕하는 풍조가 없다. 위로는 반드시 상제를 공경하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생각을 항상 가져 상제의 생명을 중시하는 미덕을 본받아 마음을 다해 선하게 살면 인간세상의 벼슬을 구하지 않아도 천상의 벼슬이 따라오며 100년 뒤에 천당에 올라 상제의 옆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조사시찰단 어윤중이 저술한 수문록, 각교총론<各敎總論>에서 발췌.
어윤중: 1848~96. 응교 정4품. 교리.부교리.전라우도암행어사.응교
어윤중은 고종의 밀명을 받아 명치유신이래 부국강병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을 조사시찰하여 장차 조선의 개혁을 위한 구상이나 참고할 만한 내용을 두루 배워오는 조사시찰단의 단원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등지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선교사들의 기독교관이나 교리를 반영하는 여러 글을 자세히 서술하였는데,
어윤중은 이와 동시에 조선 지배층의 성리학 사조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 때문에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옛사람은 누구나 빈곤함을 즐기는 안빈을 어진 것으로 삼았으니 진실로 옳지않다. 사람들을 안빈하게 함으로써 살아갈 방도를 세우는데 힘쓰지 않게 하였으니 어찌 그 입과 몸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윤중이나 개항이후 개화파 지식인들, 그리고 경제적 부를 쥐고 있음에도 신분상으로 차별을 면치 못하던 서북인들이(황해도 평안도) 새로운 정신적 지주로 내세의 영혼구제와 현세의 부국강병을 함께 도모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세상적으로 바라본 생각)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