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는
슬픔의 두 가지 이유는 무지와 희망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그래서 세상을 향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희망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슬퍼할 일들이 많은 한 주간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는 슬픔이어야 합니다.
사고로 인해 소모되는 물질과 시간과 체력과 비용들은
어디까지나 손해로 남아야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감사가 우리에게 넘쳤는지요.
무릎을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옳으심이
얼마나 큰 유익으로 남았는지요.
살아남은 서로를 보며 얼마나 큰 웃음을 웃었는지요.
고난이 축복 인 영적 원리는 세상의 시각으로 보기엔 아이러니 투성이 입니다.
그 역설의 삶을 은혜로 살지 못하고 억지로, 억지로, 살아내려니
십자가 고난이 아닌
지지리 고생으로 몸과 마음이 시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를 이곳에 두셨습니다.
멀리서 구원을 위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형배의 하나님,
복음 들고 달려가는 아름다운 발들을
더 큰 교훈으로 지켜주신
휴전도사님의, 선규의, 희윤이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이곳에서, 우리들 안에서 봅니다.
영적 무지와 세상 희망으로 눈 먼 나, 슬픔의 인생에게도
기쁨의 꽃을 피우신
하나님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