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목사님 메시지를 못 듣고 오늘 예배를 드리려니까
예전에 큐티모임할 때 한두달 방학했다가 개학하는 날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바깥 일이면 바깥 일, 집안 일이면 집안 일, 애정표현이면 애정표현..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편이 싫어서
복숭아 과수원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에게 발각되자 복숭아로 변해버리는 여인.. 그런 소설이 있답니다.
아무튼 그 소설을 생각하다가 영화 [해피엔드]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속 전도연이 왜 바람을 피웠는지.. 이유는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남편 최민식이 답답하고 무시가 돼서 그랬는지, 주진모가 너무 멋있어서 그랬는지
삶이 무료했는지, 그저 쾌락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무튼 실직자가 되어 집에서 애보고 살림하는 착한(?) 남편을 두고
신나게, 참 적나라하게, 용감하게 바람을 피우던 전도연은
주진모의 아파트에서 끔찍하게 살해를 당합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은 전도연의 외도 상대였던 주진모로 지목이 되고
영화의 결말도 그가 범인인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실 범인은 착한 남편 최민식이었는데 말이죠.
전에 다니던 교회 청년들과 함께 봤었는데 왜 제목이 [해피엔드]인지 모르겠다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 생각엔 그랬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영화 전체에서 착한 편은 최민식이고, 나쁜 편은 전도연인데
착한 편이 나쁜 편을 죽였다,
그런데 끝내 안 들키고 또 다른 나쁜 편인 주진모가 대신 벌을 받았다.
착한 편은 무사하게... 여전히 착한 남편으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끝난다.
완벽한 권선징악 형 해피엔딩 아니겠습니까??
착한 편이 살인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원인제공자가 있었기 때문에
착한 편은 벌을 안 받아야 되는 것,
그런 [해피엔딩]의 쾌감과 안도감을 그 영화에서 느꼈었습니다.
내 인생에도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바람피우다 들킨 순간 복숭아로 변해버린 여인처럼
살인을 저질렀어도 어디까지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끝내 죄가 드러나지 않는 최민식처럼
나의 죄악에 대해 피해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고,
정당한 이유를 들이대며 칼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
나는 봐주셔야 돼.. 하는 오만방자한 착각과 기대 말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나는 착한 편 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참.. 어떻게 그렇게 믿고 살았는지.. 어메이징할 뿐입니다.
내 죄가 숨겨지고, 내 원수(?)가 내 죄를 뒤집어쓰는 해피엔딩말고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눈처럼 희어지는,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