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작성자명 [석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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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4.09.09
살이 빠졌다. 순간 놓쳐버린 긴장감으로 인해 60kg까지 살이 쪘는데 천국에 올라와 40kg 한창때의 몸매로 돌아왔다. 살결이 고와지고 얼굴도 20대의 피부와 곡선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었다.
내가 천국에와서 처음으로 해봤던 턴은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쉬지않고 78번의 턴,무게를 거의 느낄 수 없는 발롱(점프하는 기술)은 가장 이상적인 곡선을 만들고 착지를 했다.
이 곳에서는 몸을 혹사하지 않고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원하는 모든 동작은 의지에서 온다. 따라서 실수란 존재하지 않는 발레리나로서는 최대의 장소인 것이다.
지상에서는 바르시니코프가 키로프에서 그랑주빼를 하다 넘어졌다면 아마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어떤 멍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피루에트를 연속 80번 100번을 해도 넘어질 일이 없다.
오늘은 투르 앙 레르 (Tour en l air)를 연습했다. 공중에서 여섯바퀴 반을 돌고 내려왔다. 지상에서는 세바퀴가 세계기록이었다. 내가 시도해본 바로는 여섯바퀴반이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지상에서 내 이름은 안나 파블로바 였다. 한동안 잊고 지내온 내 이름이 문든 생각나는 것은 생상 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만난 첫 날을 기억한다. 내가 미국으로 망명했을때 무대에서 연습을 하려고 나왔더니 어떤 피아니스트가 동물의 사육제에 나오는 백조 를 연주하고 있었다. 빈사의 백조는 나의 트레이트마크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내가 원했던 메조피아노의 느낌이 아니라 피아니시모 에 너무 가느다란 리타르잔도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마지막 부분이 너무 약한것 아닌가요? 물었더니
검은색 쉬타인웨이의 뚜껑을 닫으며 하얀 수염을 길은 피아니스트가
내가 이 곡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생상과의 만남은 즐거운 지상에서의 추억으로 천상에서는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난 마르시네비치 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사람들은 빈사의 백조 를 사랑했지만 난 내 사랑을 고백하기도 전에 숨을 거둔 그 사람을 위해 마른 잎새 를 평생 추었다. 그건 그 사람에게 바치는 추도였다. 난 그사람을 이 곳에 와서 만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그 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의 열정 나의 사랑 나의 아라베스크....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 주었다면 난 발레리나가 되지 않았을 것같다. 그에게 말도 한 번 건낸적이 없지만 그가 나를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완벽한 동작....완벽한 표현.....이것만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명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가 최고급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다니리라 상상하지만 난 5센트짜리 감자칩과 사과반쪽으로 평생을 보냈다. 내가 앉았던 센트럴파크의 드 피가로 카페가 사라진지도 100년이 다되어간다.
발레를 하려면 사랑하되 사랑해서는 안된다.
죽도록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발레.....
발이 찢어지고 관절염과 근육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완벽한 것을 위해 모든것을 희생해야한다. 천상에서는 그럴필요가 없지만 끊임없는 발레에대한 욕구의 원천이야 말로 사랑 이다.
마르시네비치 ....당신은 나의 춤을 봤겠죠?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그 어떤 존재를 위해 오늘도 토슈즈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