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위한 기도의 방향성..
작성자명 [조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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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4.06.29
한 형제의 글을 퍼왔습니다.
1.
김선일씨의 죽음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가 넘쳐흐르고 있다.
더구나 그의 이라크 체류가 선교적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교회 내에서도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애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한국교회는 이 사건을 향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김선일씨의 죽음은 이라크를 복음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 선교의 시작이라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은 앞으로의 이라크 선교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일입니다 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역사에 길이 남을 일 하나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처럼 기도하는 것이 정확한 반응이 아니겠는가...
주님, 이 형제의 피가 헛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로 김선일씨의 뒤를 따라 이라크로 보내소서. 우리 동족 형제의 죽음으로 인해 뿌려진 순교의 피가 이제 우리 교회들의 기도로 이라크에 열매 맺어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이라크에 보내어 주소서. 우리가 그들을 섬기겠나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신앙이다. 예수의 피가 모든 만민을 살려내는 것처럼, 그의 뒤를 따르는 순교의 피와 믿음으로 그 길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 민족들이 주께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성경의 메시지이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그만큼 광범위한 파장을 낳고 있고, 말은 하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이와같이 내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지고 이라크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자들이 누구인가
2.
또한 이 일은 한국이나 서구세계 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유명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한국군 파병문제로 약간의 반한 감정이 싹터왔지만,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인들을 위로하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지게 되었다. 이 때 한국인들의 반응은 전세계인과 중동인들이 주목하는 사안이 된다.
정부는 이라크파병 원칙을 더욱 공고히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방법은 아니다. 정부는 정부로서 그러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는 중동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파병으로 인해 어려워진 한국인들의 입지....그러나 한 형제의 무고한 희생으로 인해 우리 한국교회는 다시 화해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희생당한 자가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할 자격이 있다.
중동지역에서의 모든 분쟁의 그 핵심에 있는 예루살렘 지역은 이러한 화해자가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테러의 대상이 된다고 두려워 하지 말자. 한국의 기독교인 은 중동에서 서구의 기독교인 과 그 이미지가 다르다. 김선일씨의 납치도 그가 기독교인 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군납업체의 직원이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서구 기독교인들의 실수와 같은 제국주의적 성격의 기독교인들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때 한국의 교회가 중동을 향해 침묵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디에 설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평화를 외치는 것이 종교적 폭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서구의 신제국주의에 조용히 편입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위협과 죽음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아무런 물리적 무기도 가지지 않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용서의 행진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현지의 어려움들에 대해 오해하지 말자. 갈등과 핍박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해하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정직하게 이 오해를 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희생하며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공개집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하지 말자. 왜냐하면 공개적인 침묵이야말로, 현재와 같은 시국에서는 십자가의 길과 용서의 원칙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적극적인 용서의 메시지를 전할 시대적인 요청에 직면해 있다.
3.
전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세상 정부들은 많은 대책들을 내놓으려 하고 있지만, 그들의 대책은 미봉책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국 폭력으로 사태에 대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땅에서 흘려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인해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때 더욱 깨어 있어 하나님의 선지자적인 음성을 대언하여야 할 것이다. 그 음성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용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평화 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지금은 침묵하고 검은 옷만 입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더 많은 피가 흘릴 곳을 향해
용서와 화해의 행진을 할 때인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이 십자가의 핵심을 알고, 중심으로 이것을 고백하는 모든 자들은,
오히려 우리는 저 죽음의 땅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용서와 화해의 행진을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모든 중동 땅에 은혜의 해 를 선포하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이 일을 위해 누군가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