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외갓집과 친가집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5살 때 엄마와 아빠는 물질적인 이유로 다툼이 벌어져 별거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개인 레슨을 하셨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서 집을 팔아 학원을 내주셨고, 우리는 삼촌의 인도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에는 할머니께서 엄마와 아빠를 재결합시키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쫓아다니셨고, 어느 날은 할머니와 엄마, 저와 동생이 함께 금식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고집도 있고 엄마와 같은 삶을 이어 산다는 예언자의 말로, 유치원생이였던 동생이 금식을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학원을 차려주셨던 할머니께서는 불안함으로 인하여서 우울증에 걸리셨고 현재까지도 몇 년째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다. 그래도 아빠와 엄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저와 동생을 돌보아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 고난이 있습니다. 엄마께서는 아빠의 빈자리를 엄마의 성공으로 채우려고 하셨습니다. 또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느낄까 봐 저희에게 항상 제일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고 엄마아빠가 다 있는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랐습니다. 아빠가 없이도 이런 행복한 삶은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평소 친하게 지내시던 분들의 전화를 피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는 대신 전화를 받아 ‘엄마 없어요.’ ‘엄마 가까운 데 나가셨는데요. 핸드폰을 안 들고 나가셨어요.’ ‘엄마가 어디 갔는지 잘 몰라요’라는 말로 둘러대야만 했습니다.
6학년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절친했던 이모, 집사님, 아줌마라는 분들이 빚쟁이의 모습으로 한꺼번에 찾아와 소리를 질렀고 엄마에게 욕을 하며 신체포기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저와 동생을 팔아 버리겠다며 협박하며 심지어 집사님의 남편은 엄마에게 폭력을 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서로 자신의 돈이 먼저이니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저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가 빚진 것이 수치스러웠습니다. 그 날 이후 빚쟁이들은 밤낮 상관없이 찾아왔고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삼촌까지 괴롭히며 다그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책상 밑을 찾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 일부러 듣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 빚쟁이들 중 한 분은 엄마의 인도로 우리들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목사님 설교를 인용해서 부모가 빚을 졌으면 자식도 빚쟁이라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 앞에서 엄마의 빚진 사건을 말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엄마께서는 항상 잘 해결되었다고 하셨지만 저는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너무 속상했고, 하나님이 있으시면 정말 이러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빚쟁이들은 할아버지도 책임이 있다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불러냈고 빚쟁이들은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했으며, 극에 달한 할아버지께서는 ‘죽는 것 하나도 두렵지 않다’ 하시면서 가방 안에 신문지로 싼 칼과 망치를 준비하셨습니다. 집사님의 남편은 동생과 저에게 “어른들의 말을 엿듣는 것이 너희에게 좋고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금 있는 일을 생생하게 다 적어서 미니 홈피에 올리라”고 했습니다. 빚쟁이들은 “너희 엄마의 생활 방식이 잘못되었기에 고쳐주려고 하는 것이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며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며 이모라고, 집사님이라고 하셨던 분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어른들이 싫었습니다. 엄마는 적응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저를 데리고 우리들교회에 제일 먼저 온 이모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이모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저희 세 모녀는 엄마가 평소 알고 지내시던 한 목사님이 마련해 주신 돈으로 반 지하 단칸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먼저 살고 나서 빚도 갚는 것이라며 연락도 끊고 먼 곳에 거처를 얻을 것을 충고했고 목사님께서도 편히 지내라고 얻어주셨지만 엄마는 그래도 우리들교회 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빚쟁이들에게 집과 전화번호를 다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급식 배달, 개인 레슨, 학원 청소를 하고 집에 들어오면 기다렸던 빚쟁이들이 집에 오기 일쑤였고, 방이 하나기에 엄마와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나와 동생은 바깥이나 차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더 속상하고 울컥하였습니다. 급기야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엄마는 동생과 저에게 이혼하기를 원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왜 진작 안 했냐고, 우리를 찾지도 않는 아빠와 그냥 이혼해 버리라고 했고, 아빠는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 저희를 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속이 상해서 왜 항상 아빠는 이런 식이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지금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기 전 숙려 기간이십니다. 엄마는 아빠가 그래도 많이 변했다고 하시며 아빠에게 교회에 4번만 나와 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바빠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빠의 영혼 구원에 대해 애통치 않습니다. 항상 좋은 딸, 좋은 친구, 좋은 학생, 좋은 손녀로 남아야 하고, 공부도 잘 해야 하고, 엄마 옆에서 엄마를 잘 도와 착함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머리와 말로만 말씀을 듣고 말하는 바리새인 같은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제 자신을 보면 덜 깨달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죄가 아닌 엄마가 저지른 죄이고, 속으로는 빚쟁이들을 욕하고, 또 같은 교회를 다니고는 웃고 지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정말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재 엄마께서는 우리들교회에 나오시지 않고 계시는데 엄마에게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전처럼 우리 가족의 언어가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건이 왔을 때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말할 수 있는 우리들 공동체가 있어 행복합니다. 빚쟁이들을 원망하지 않고 애통의 눈물로 기도하며 원망이 아닌 축복의 기도를 해줄 수 있는 나로 바뀌어 갔으면 합니다. 여전히 힘들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며 8복을 잘 감당하며, 나의 고난과 사건을 통해 깨닫고 나누는 인생이 되겠습니다. 우리들 공동체, 전현은 선생님, 김형민 목사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