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창조론의 대표적 편견은 진화론은 과학적 원리로 생각하고 창조론은 종교적 교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대립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이 이원론적 세계관인데 과학은 객관적, 사실적,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종교는 주관적, 관념적, 감정적으로 접근합니다.
과학은 엄격한 기준의 실험적 증명입니다. 진화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에서 지구의 역사를 45억 년이라 했는데 재관찰할 수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고 이론이기 때문에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진화되었을 것이다 가 옳은 표현입니다. -일 것이다 에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창조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하려면 창조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창조도 이론이고 과거의 일이고 역사입니다. 역사는 증명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미숙한 표현 때문에 진화론자를 사탄의 자식으로, 창조론자들을 광신도라 부르며 서로 싸우는데 둘 다 이론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증명은 안 되었지만 증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격투 끝에 B가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피와 머리카락들이 남아있습니다. A가 B를 죽일 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증거가 구체적일수록 A가 가능성이 높지만 증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배심원들은 주로 증거를 통해 믿는데 그 상황은 증거+믿음이 됩니다. 이와 같이 창조와 진화도 같은 상황입니다.
결국 증거를 통해 믿게 되는데 앞으로 남은 10강 동안 수많은 증거들이 제시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과학적인 증거들은 모두 진화론을 지지했는데 교회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진화론 쪽으로만 계속 교육받은 것은 사회적인 책임입니다. 교육에서 양쪽 다 가르쳐야 합니다. 증거들이 뚜렷하려면 사람의 몸에 뼈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많이 주는데 당연한 증거로 알고 있으면 힘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과학
예수님의 몇가지 기적을 살펴보면
1)포도주 기적(요2:7-11) 물(H2O) → 포도주(C2H5OH)로 <화학반응 법칙에 어긋남>
2)오병이어의 기적(마14:19-21) 오천 명을 먹이심 <질량보존의 법칙에 어긋남>
3)물위를 걸으심(마14:23-24) <부력의 법칙에 어긋남>
예수님의 기적은 모두 법칙에 어긋납니다. 이론이 아닌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법칙에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에 법칙을 정하신 분입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은 법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법칙을 정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법칙을 정확하게 알면 법칙에 벗어난 것도 압니다. 예수님의 법칙에서 벗어난 행동들 때문에 예수님을 오히려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록된 그대로 보지만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적을 단지 miracle이 아닌 sign(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메시야가 절대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증거입니다.
4)부활의 기적(요11:25-26)
과학자들이 발견한 생명의 법칙 중에 죽음의 법칙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강력한 증거를 주고 가셨는데 부활 사건입니다.
과학이 무엇이지 모르면 생각이 구별되지 않는데 과학의 법칙을 알면 법칙을 벗어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의 기적은 의미 있는 기적으로 이해되어집니다.
5)거듭남(重生)의 비밀(요3:1-10)
거듭남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영혼(spirit)을 가지고 있는데 영혼이 무엇일까요?
시19:7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성케’는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데 율법의 온전한 속성 때문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안경의 초점이 잘 맞으면 선명하듯이 과학의 원리를 알게 되면 신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1)차원(dimention): 길이는 길이로 인식하고, 무게는 무게로, 시간은 시간으로 인식하듯이 차원도 차원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로 볼 때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인식하려면 나의 마음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2)질서(order): 화가 나거나 마음의 갈피를 못 잡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질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 질서가 흐트러진 사람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3)표준(standard): 길이를 재는 자도 국제 표준 눈금이 있듯이 내 마음도 표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준 질서를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표준 질서이기 때문에 완전하여 영혼이 소성케 한다고 합니다. 내안의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완전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질서가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은 해병대의 spirit을 가지고, 불교신자는 불교 spirit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spirit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제 거듭남(born again)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지위와 학문을 갖춘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을 알려면 첫 번째 태어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되는데 정자는 생명의 유전 정보를 에너지(꼬리)가 하나의 완전한 난자에 들어가 정착하여 자라서 태어납니다.
사람이 살면서 외부로부터 생명에 대한 정보(말씀)가 들어오면 그 다음 세상,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천국)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듯 두 번 태어나는 것(거듭남)은 외부로부터 생명의 말씀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나 스스로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내 삶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말씀과 말씀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말씀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삽니다.
“태초에 말씀(logos, true information)이 계시니라...”(요1:1)
진리의 메시지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8)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면 살고 안 받아들이면 둘 다 죽습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요8:37)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말이 spirit이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영적인 사람은 가장 성경적입니다. 영은 성경적인 질서를 가지고 말하는지 아닌지를 분별합니다.
예수님의 임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요17:8)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길이를 재는 자는 국제 표준 눈금을 받아들이면 어디서나 통합니다. 천국에서 말씀의 자를 가지고 대어보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산 사람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자가 통하면 통과됩니다. 교회 다니면서 철학이 기준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악인의 꾀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