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문받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에 깔끔하고 명확하게 답을 한다면,
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했다는 것이고,
만약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그 쪽의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므로
나를 좀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QT를 하다보니 학교 친구로 부터 질문을 받는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예수가 세 아니면 부처가 세?
넌 예수를 본적 있니?
참 많이 받는 질문의 종류고 그만큼 단순(?)한지라,
차근차근히 설명을 하려고 나는 오늘 말씀을 되뇌였다.
그리곤 대답한다.
내가 보고 믿는다면 꼭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있겠어?
나는 전적으로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라는 말씀에 동의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가지 괴물(?)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갖가지 무서운 일을 행하는데,
정말 보고 믿는다면 그런 두려운 존재들을 믿겠고,
예수님을 내가 보고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과연 답을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나에게 더 많은 표적과 더 많은 복을 주시기만을 원하는
기복적인 신앙이 되지 않을까?
라는.... 이러한 논리로 설명.....
하지는 못했다-_-;;;;
그것은 글쎄, 그 친구가 꼭 도마처럼
찔러보고, 만져봐야 믿을, 믿지 않는 자 로 생각이 되어서 그런듯 하다.
예수님은 의심이 많은 도마를 이해하시고,
직접 만져보게 해주시고, 또 믿게 하신다음 가르치셨는데,
어째 나는 사람을 이해하기 보다는 판단하여 그래버리니 ....
내용이 어렵든 쉽든, 듣든 듣지 않든 잘 얘기해주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든다.
나도 보면 도마의 모습을 참 많이 가졌다.
긍정보다는 부정에 익숙하며, 보고, 믿고, 판단하는 모습.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라는 말씀이 꼭 나의 그런 부정적 견해와 비판의 습관에 대해 주신 말씀이라 생각된다.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나부터 믿는자가 되어야, 다른 사람도 믿겠지!
조금씩 나를 바꿔가는데 노력과 기도를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