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시간 대에 글을 올리니 온 가족이 다 싫어합니다.
남편은 불빛때문에 잠을 못자겠다고 하고, 아이들은 자기들 얘기를 쓴다고 싫어하고,
뭐하러 그런 글을 올려서 자기들 컴도 못하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너희들이 엄마의 자랑이기 때문에, 실패가 주는 교훈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에... 등등의 말을 하면서 달랬습니다.
사실 제 자녀얘기를 저의 신앙 간증에 예화로 삼아 많이 말했는데 아이들은 처음에는 너무 싫어하더니 이젠 거의 포기하고 엄마가 또 주책을 떠는구나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미련하고 주책스럽고 어리석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 인생에서
10년 주기로 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찾아 와 주셨습니다.
1976년 엄마의 돌아가셔서 텅빈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1986년 시댁식구들과 관계, 경제적 문제, 남편의 직장문제와 어려움을 통하여 어김없이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고난 을 일컬어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 이라고 정의 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믿음으로 잘 이용하면 더 전진하고 더 큰 축복을 받지만, 고난을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면 고난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1994년 여름, 교회에서 단기선교로 필리핀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 전에 복음이 들어갔으나 천주교와 토착신앙이 혼합되어 우상숭배가 심하고 마을마다 중심에 아기 예수 동자상이 모셔져 있어서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기도하고 꽃들을 꽂아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1879년 4월, 영국 선교사 로스와 한국의 의주 상인 이응찬과 서상륜, 백홍준이 만주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신약전서 문리 를 한글로 마태복음에서 로마서까지 번역을 하였고 그후 1911년 최초로 신구약 우리말 성경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말씀이 기초되어 복음이 뿌려졌기 때문에 바른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선교에 대한 마인드가 별로 없으신 것 같아 저는 1994년 말에 선교학을 전공하신 이동원 목사님의 지구촌교회로 옮겨 체계적인 선교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7년 9월에 어떤 집사님의 소개로 김양재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월요큐티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나간 날부터 충격이었습니다. 성경을 저렇게도 해석하는구나, 말씀의 권세가 느껴졌습니다.
1998년 저희 아들이 고등학교(휘문고)를 들어가자
공부를 하지 않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놀기 시작하며 양가집 규수의 성적을 받아오며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말과 행동으로 타일러도 아들은 점점 더 반항하며 학원간다고 하며 학원을 빠지고 PC방에 가질 않나, 오직 외모에만 관심을 갖고 자주 메이커 있는 옷과 운동화를 사달라고 떼를 써서 저와 충돌하였습니다.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머리를 노랗게, 어떤 때는 하얗게 물을 들이며 애를 태웠습니다.
하루는 모 잡지사에 모델로 지원을 하려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진 작가의 스튜디오에 가서 옷을 갈아 입으며 100여 컷의 사진을 찍는데 4-5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저는 아들의 고민과 방황의 사춘기를 이해하기가 싫었습니다. 어서 빨리 방황을 끝내고 공부에 전념하여 대학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만 굳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학은 멀어져 가고 아들의 방황은 끝날 줄 몰랐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가 일쑤이고 그러면 저는 혈기충천하여 물 한바가지 들고 아들 침대 앞에 서서 너 대학안 갈꺼니? 도대체 왜그러는 거야? 하면서 고함을 지르면 아들은 엄마대신 벽에다 대고 주먹을 내리쳤습니다. 너 멋대로 하려면 집 나가라 했더니 아들은 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큐티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날 따라 김양재 목사님께서 목사님의 아들이 사춘기때 공부 안하고 잠만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들 친구들을 데리고 매일 잠자는 아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큐티나눔을 하셨고 메이커 옷과 운동화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기도해 보고 응답이 오면 사준다는 말씀을 하시고 결국 사주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계속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모든 것은 나의 삶의 결론이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기 보다는 세상적인 욕심으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자녀를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죽음으로 이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한없이 울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은 제 뜻과 다르게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공부는 왜 해야 되는지 아들에게 제대로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무조건 공부만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아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고 무조건 좋은 대학가기만을 바랬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의 문제를 잠시 하나님께 맡겨두고 대신 다른 자녀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지식으로 머리만 커지고 교회 활동에만 치우쳤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웃에게 관심이 부족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처럼 내 자녀가 힘들게 하면 다른 자녀를 돌보면 하나님께서 내자녀를 책임지실텐데 오직 내힘과 내뜻대로 내가 해볼려고 했던 삶의 결론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의 청소년의 고민은 무엇일까요?(내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