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집사입니다.
고3 친구를 따라 우리들교회에 출석한지 일년이 채 안되었을때 부모님께서는 이혼하셨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가정에서 이성과의 건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한 제게 연애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불신결혼으로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쪼개지고 후에 이세벨과 아달랴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막을 뻔 했다는 큐티를 하면서 불신결혼은 가장 큰 불순종이고 예수 믿는 우리는 신교제 신결혼을 해야 한다고 묵상하면서도 이혼가정의 자녀이고 돈도 없고 학벌도 별로고 이성 교제에 대해서는 온통 두려운 마음 뿐인 내가 과연 신결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고3때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청소년부 교사와 간사로 섬기던 중 수련회를 준비하며 지금의 남편과 친해졌습니다. 뭔가 만만하고 좀 이상한 저런 애는 절대 결혼 상대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저의 교만한 마음이 있었는데 자꾸 남편이 가로수길 햄버거 먹으러 가자고 하고 카페 가자고 하고 나중에는 남아공 아웃리치까지 쫓아왔습니다. 열번 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했는데 저도 결국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나의 고난과 죄패를 솔직하게 나누고 가는 공동체에서 만났기에 남편은 저의 가정 환경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 큐티 말씀은 룻기였습니다. 보아스가 불쌍한 과부 룻에게 이삭을 줍게 허락한 것처럼, 남편은 조건이 초라한 저를 있는 그대로 귀하게 여겨주었습니다. 상견례를 두번 해야 하는 것도, 돈이 너무 너무 없는 것도 다 이해하고 맞춰주었습니다. 그러한 남편 덕분에 저도 수치를 무릎쓰고 발치 이불을 들어 보아스 옆에 누운 룻처럼 지금의 환경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적용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교회에 붙어만 있었을 뿐인데 공동체와 목장이 저의 혼수가 되어 과분한 축복과 기도 속에 판교 탄설홀에서 신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고등부 목사님께서 결혼 선물로 밥솥을 사주셨는데 그걸로 목장 예배때 밥도 해먹으면서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는 거라고 하셨는데, 교회에서 인정받는 결혼을 한 것 같아 제 마음이 한껏 높아져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사건을 허락하셨습니다. 뱃속에 온 아기를 7주 만에 천국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남편과도 사이좋게 지내는데 내게 왜 이런 사건이 왔는지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산 판정을 받은 다음날 휘문 예배당에 앉아 남편과 펑펑 울며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설교 제목이 <공평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무렵 제 마음 속에는 불행한 가정 속에서도 교회 열심히 다니고 봉사했더니 결국 신결혼 했더라 라는 자기 우상이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제가 또 영적 후사를 우상 삼으려는 것을 알고 저희 가정에 이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제서야 고난 뒤에 숨어서 문제 부모 아래서 나는 이만큼 잘 자랐어 하며 모든 가족을 정죄하며 죽인 가해자였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직면하게 하려고 뱃속의 아기가 짧은 시간 이 땅의 사명을 다 하고 먼저 천국에 간 것 같습니다. 이후 엄마와 성령의 화해를 하고 골이 깊었던 관계가 회복되니 하나님께서는 다시 지금의 해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밥 먹다 숟가락 집어던지고 얼굴을 자꾸 꼬집고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고 드러눕는 해서를 키우면서 인내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되어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지 근심하며 기복산에 오르려는 저에게 하나님은 벌써부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를 허락하심으로 예수님만 보이더라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은 깨끗한 호적과 큐티하는 습관인 것을 잊지 않으며 기쁨으로 육아라는 팔복산에 오를 수 있게 기도 부탁드립니다. 구름이 덮여 암흑과 같았던 청소년기에 저를 만나주셔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사역이라는 사명 감당하느라 바쁜 와중에 매일 청소기 돌리고 빨래 돌리며 나와 살아주는 남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