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신가정인 집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날때 아빠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있는 상태여서 엄마가 임신해있는 동안 어떻게 힘들었는지 우리가 태어났을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잘 몰를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저희가 두살 때 한국에 들어오셨습니다. 아빠는 외국에 가있고 엄마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시면서 저희는 수원에 있는 할머니와 이모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그렇게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원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유치원을 들어가게 되면서 저희는 서울로 이사를 오게 #46124;고 비로소 네가족이 한 집에서 살게 #46124;습니다. 아빠는 그당시 잘나가던 호텔에서 근무 했고 엄마도 알아줄 만한 직장에서 근무 했기에 부족한것 없이 자랐고 초등학교는 명문대학교의 사립 초등학교로 입학 했습니다. 그렇게 부족할것 없는 생활을 하다가 2학년 #45131;날때 즈음 되자 엄마 아빠가 밤늦게 들어오는건 기본이고 자주 다투고 집에는 서류덩이들이 쌓여 갔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일이겠거니 했지만 가끔 집에 찾아와서 엄마,아빠를 찾는 사람들을 보니까 평범한 일 갇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끝날때즈음 저희 가족은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마 아빠는 더더욱 싸웠고 아빠는 술을먹고 늦게 들어와서 싸우기 일쑤었습니다. 그 때 아빠 친구분의 전도로 우리들 교회를 처음 가게 #46124;는데 엄마,아빠만 가고 저희는 안갔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여호수아 테이프를 틀어놓면 짜증이 났습니다. 만나 싸우는 엄마,아빠가 은#54700;로운척 하는 것 같았고 듣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아빠는 우리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음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집에와서 저희를 돌봐주고 잇는데 아빠가 술을 먹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랑 다투다가 선풍기를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할머니보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면서 화를 냈습니다. 오밤중에 할머니는 울먹거리시면서 집에 가시겠다며 나가셨고 아빠는 조금있다가 진정이 되는자 울먹거리는 엄마를 데리고 우리방에 들어와서 불을키고 안정된 말투로 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전 그때 방금전까지 선풍기를 집어 던지면서 싸우던 아빠가 그렇게 말투가 변한다는게 너무 충격이였고 아빠 표정또한 너무 덤덤해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빠가 쫌이라도 화를 내면 그 때가 생각나는데 아빠가 변했다는건 나도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또 일년이 있다가 우리 가족은 수원에 할머니댁으로 가서 살게 #46124;습니다. 거기가서도 엄마는 서류뭉치속에 파묻혀 살았고 아빠는 청주에가서 호텔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 쯤 엄마가 소송중이라는 걸 알았지만 별로 큰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내눈에는 일에만 열중하던 엄마였기에 회사일과 관련된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엄마가 집에다 편지한장만 써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학교갔다과서 그 편지를 읽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봤을때도 실감이 안났습니다. 그 날 저녁 아빠는 바로 수원으로 올라왔고 밤을 고박 세워가면서 엄마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 때 마침 아빠가 일하던 호텔에 엄마가 묵고 있다가 집을 나간거라서 호텔의 cctv를 돌려서 엄마의 행적을 알 수있었다고 합니다.그렇게 아빠는 고생고생 끝에 엄마를 찾았고 엄마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는 우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랑만 살게 되었고 가끔 엄마랑 아빠가 일하는 호텔에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집에 어떤 교도소에서 엄마의 입소소식이 우편으로 배달 되 왔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도 별로 놀래지않았고 덤덤히 할아버지의 책상에 올려놓고 친구랑 놀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6학년이 되도록 할머니랑 할아버지와 살았슴니다. 나름 학교생활도 잘 했습니다.
5학년,6학년때 학급회장도 하고 6학년 2학기 때에는 전교 부회장도 해서 학교생활에서도 그다지 불쳔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물도 주셨습니다. 마침 할머니댁 근처에 있는 새로 지은 초드학교가 있어서 그곳으로 전학을 간건데 그학교가 초등특성화교육 시범 학교 였는데 연극 특성화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4학년때 연극반에 들어가서 진짜 연극배우선생님도 만나고 힘들게 연습해서 전국대회 나가서 상도 타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를 올라가면서 아빠가 이제 네가족이 다시 모여서 살아야 한다면서 저희를 서울로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죽어도 싫었습니다. 수원 친구들이 좋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랑 떨어지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얘기였기에 서울로 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로 오고나서 가장 먼저 간곳은 우리들 교회였습니다. 전 우리들교회가 너무 싫었습니다. 설교도 싫었고 친구들도 싫었고 그 가족같은 분위기도 싫었습니다. 나눔도 싫었고 그냥 교회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런 교회에 덩그러니 우리 둘만 놔둔 아빠가 미웠고 싫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낯선 학교에 낯선 친구들 밖에 없었고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집에는 항상 설거지가 쌓여있고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항상 조용하고 어두웠고 아빠가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우리둘이서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잠들어야 했습니다.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고 교회,학교,집 어느 곳이든 맘편한 곳이 없었습니다. 집안일은 거의 내가 다 맡아서 해야했고 제 쌍둥이는 갑자기 변한 환경에 대해서 컴퓨터로만 풀려고 하다보니 거의 컴퓨터 중독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두어달을 보내고 5월달에 엄마가 집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적응 안되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이제 집안일을 안해도되고 학교갔다오면 맞아줄 엄마가 있고 제 쌍둥이의 컴퓨터 중독을 중재해줄수 있는 엄마가 와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또 저한테는 힘든시기가 있었습니다. 워낙 붙임성이 없어서 학교 친구들과는 친하게 못지내고 있다가 저는 다른 친구들 뒷담화를 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는 게 좋아져서 사람중독에 걸렸었고 교만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남님께서 1학기 기말고사때 저를 한번에 무너뜨려주시면서 사람중독을 끊어낼수 있었고 교회에 붙어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매주 교회가는 게 좋고 수요예배도 왠만하면 참석할려고 하고 큐티도 매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아빠가 사소한일 로 다투는게 불만입니다. 목장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목을 놓이면 아빠는 엄마와 약간 언쟁이 입니다 그러면 아빠는 끊었던 담배도 피고싶어진다고 하고 엄마가 바뀌지 않아서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끔보면 아빠가 목자가 된데 이해가 안가도 엄마가 부목자가 된게 이해가 안될때가 많지만 질서순종하고 교회에 붙어있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을 하나님 안에서 살수있게 되서 좋습니다. 한혜영선생님, 목장친구들 우리들 공동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