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에서 보면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저희 아빠는 거의 부재중이셨습니다. 친구와 술을 너무 좋아하셨던 아빠는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드셨고 초등학생이던 저는 아빠와 같이 저녁 먹은 날을 달력에 표시하려다가 관둔 적도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네 식구가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밥 먹는 평범한 풍경이 제게는 너무 큰 동경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교회를 다녔고 매일 저녁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지만 밖으로만 도는 아빠의 모습을 볼 때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주님이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빠의 부재로 인한 저의 결핍을 제 힘으로 채우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친구가 머리카락에 껌을 붙여도 아무 말 못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잘 하면 친구들이 날 건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로 인정 받아 나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시험에서 뚝 떨어진 성적표를 확인하고서는 주님께서 계시면 내게 이러실 수 없다고 하나님이 나를 배신했다며 세상 친구들과의 술자리, 남자친구와의 만남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했습니다.
2003년 엄마의 강요로 온 우리들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통해 내 사건이 조금씩 해석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에도 나의 소원은 아빠의 구원이라며 이를 위해 기도했지만 아빠의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부모님이 그만 다투시길 바라고 그저 행복하고 편안한 가정의 모습을 갖추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재중이었던 아빠를 원망하면서 아빠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나의 소중한 시간에 함께 하지 않았다며 불평했었는데 나 역시 아빠와 마찬가지로 부재중 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싸우실 때 마다 스무 살이 되면 시끄러운 집을 벗어나 나 혼자 평화롭고 조용하게 지내는 생활을 꿈꿔왔던 나 역시 아빠와 마찬가지로 집을 비웠던 딸이었으며 내 마음 역시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아빠가 집에 오려 해도 우리 집이 빈집이어서 올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아빠의 구원, 학교, 직장 등 내 욕심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안 주시는 심술궂은 분이라며 원망하고 불평했었는데 나를 힘들게 했던 내 모든 환경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을 헤매며 내 이름으로 된 성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를 돌이키시기 위한 어찌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내 죄가 보이니 아빠를 생각하면 원망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하지만 저의 환경은 아직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적으로 보면 더 나빠졌습니다. 제가 잠시 미국에 있던 사이 저 모르게 진행됐던 부모님의 이혼과 한국에 들어오던 날 아빠 핸드폰을 훔쳐 보며 확인했던 다른 여자에게 보낸 문자가 처음에는 절 힘들게 했지만 이 역시 나 밖에 모르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나를 정신차리고 깨어있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신호임을 알고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이 모든 것을 알기 전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환난과 환난 후의 구원에 대해 제게 먼저 약속하셨습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일과 후 술 한잔 걸치는 지금이 너무 좋으며 앞으로 남은 20-30년을 그리 보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무너지는 것 같지만 그럴 때마다 말씀으로 나와 언약을 새롭게 세워주시고 구원을 확증하시는 주님이 있어 참 감사합니다. 아직도 되었다 함이 없어 내 욕심 때문에 지친 날을 보낼 때도 있지만 말씀을 듣고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구원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주님을 너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