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 안에서 주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다녔던 저는 중학교 3학년 되던 해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가시게 된 사건을 겪게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지병이 있으셨지만 돌아가시던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출근하셨던 터라 정말 어이없게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되면서 그간 꾸준히 이어왔던 신앙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꼈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가던 예전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빈자리가 어색하게 되면서부터 저를 비롯해 어머니와 동생마저도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은 저희 세 식구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을 견뎌 나갔습니다. 가계를 위해 몇 년간 일을 하셨던 어머니는 저희 자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셨기 때문에 고등학교시절에는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을 각자의 열심으로 채우려던 노력 때문에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 무렵, 걱정 않고 있던 동생이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세 살 터울인 동생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그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꼈지만, 그동안 우리 가족이 마음을 나누며 서로 돌봐줄 겨를이 없었기에 외로움이 점점 커져가다 결국 마음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4년간 아버지를 빨리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교회도 나가지 않았지만, 갈급한 마음이 들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참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두 손을 모으지 못했고, 그렇게 탕자처럼 떠나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해 2003년, 김양재목사님의 큐티모임에 다니셨던 어머니와 함께 우리들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인 저를 따듯하게 안아주시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동생의 사건을 통해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저 하나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삶을 회개하며 가족들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의 목사님 말씀이 모두 저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고, 제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에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모르는 척했던 제 안의 상처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고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좋지 못한 선입견으로 저를 바라볼까하는 걱정이 열등감이 되어버린 나머지 남을 잘 의식하게 되었고, 이런 열등감을 한 번에 역전시켜버릴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고 싶었습니다.
07년도 대학 졸업 후,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도 불합격하게 되면 남들에게 보여줄 멋진 전리품이 없다는 두려움이 시험자체만큼이나 큰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불합격한 후에도 그간 들었던 말씀덕분에 잘 견딜 수 있었고, 붙든 안 붙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합격했다면 아마 다른 전리품을 좇느라 또다시 열등감과 씨름하면서 감사함을 잊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때때로 느껴지는 공허함을 세상 것들로 화려하게 채우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그치지 않지만, 부단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 노력하면서 ‘복 주시는 삶’을 살라고 부족한 저를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중등부에서도 섬길수있게 해주셨습니다.. 세상적인 무엇인가를 갖추는 것이 복이 아니라, 겸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경배하는 삶을 진정으로 ‘복 주시는 삶’으로 여길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학교와 가정, 교회에서 허락하신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동생도 말씀으로 인생의 빛을 볼 수 있게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