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오예진 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8월에 말레이시아에 5년 계획으로 유학을 갔지만, 올해 2월 말에 6개월 정도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아빠는 교수 이시면서 하시는 사업도 잘되셔서 물질적 걱정이 없어, 영어공부도 맘 편히 할 수 있고, 엄마는 허리디스크와 어깨 저림 등 몸이 많이 안 좋으셨고, 따뜻한 나라에서 쉬고 싶다고 하셔서 아빠를 한국에 두고 저와 엄마는 말레이시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말레이시아는 수학도 쉽고, 아이들도 순수하고, 또 그곳에서 살면영어는 저절로 될 것이니 한국에서처럼 힘들게 공부하지 말고 유학 가서 놀면서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후 다음날부터 바로 말레이시아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수업은 원어민 선생님께서 진행하시고, 학생들과 원장님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제가 그 학원에 들어선 순간 저와 동갑인 한 아이는 수업시간에 아이라인을 그리며 선생님께 자신이 예쁘냐고 물었고, 모든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씨발, 존나 등 욕을 넣어가며 말을 했습니다.
나름 한국에서 순수했던 저는 많은 충격을 받았고, 그 학원과 수학학원도 병행하며 다니다가 저는 9월에 international school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는 유난히 한국학생들이 많아 학생 전체 비율에 40%가 한국인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여기저기 한국 욕이 들리며, 다른 나라아이들도 한국 욕을 다 알고, 선생님들도 한국학생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학교의 규정은 다른 학교보다 유난히 쎄었지만 제 친구들은 염색과, 화장, 수업시간에 렌즈를 끼며 선생님께서 혼을 내셔도 꿋꿋하게 할 것을 다하였습니다.
공부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역사나 과학은 모든 문제가 서술형으로 나왔고, 학원숙제와 학교 숙제도 너무 많아서 항상 새벽 1에서 3시 사이에 잠을 잤습니다. 또, 아침 6시 30분까지 스쿨버스를 타야 해서 항상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는 자고, 학원에서는 한국 수학까지 배우며 집에 와선 바로 숙제만 했습니다.
말레이인들에게 한국인은 부자라고 인식이 되어있어서, 한국인 살인사건도 많고 납치, 갈취 등 무서운 사건들이 많아 주말에도 놀러 가지도 못하며 항상 집 학교 학원 교회만 차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놀면서 공부하는걸 원하셨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고, 정말 죽을맛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의 사업이 잘될 듯 잘될 듯 하면서 안 되어서 그로 인해 집의 돈을 사업 자금으로 가져가시고 빚까지 지게 되셨습니다.
며칠 전에 알았지만 12월쯤에 너무 힘드셔서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처음엔 아빠를 원망하셨지만 금방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서 주신 사건이라고 하시며 회개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월말이면 집의 계약이 끝나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 참에 한국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레지아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아빠의 사업을 어렵게 하시는 것 같다며 영어에 눈을 뜨고 있는 저의 공부가 아깝고, 아빠도 계속 생활비를 보내 주겠다고 하셨지만, 환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한국으로 가자고 12월쯤에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동안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가정은 감사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들 교회 목자이신 아빠가 일중독자로 매일 새벽에 오시거나 안 오시거나 하면서도 미안해 하지도 않고, 엄마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항상 일만 생각하시는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시면서 그런 아빠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몸이 아프다고 병원과 경락 마사지와 건강식품 사시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으시고 많은 돈을 쓰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두 번씩 다녀도 풍족함에 감사가 없었고,학원비가 아까운 줄 몰라 공부도 열심히 안 했고, 친구우상으로 친구들만 신경 쓰고 살았습니다. 물론 부모님께도 순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돈 우상으로 교수를 하시면서도 큰 돈을 버시고 싶어 사업을 하시면서 학원강의도 나가시고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쉬는 날이 없이 사시면서 가정엔 무관심하셨습니다.
대화도 없었고 평일 저녁에 아빠와 식사했던 날이 지금까지 열 번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병원가!" 한마디면 끝이고, 해외여행을 가도 노트북을 가져가서 일만하시거나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이러던 우리가족이 아빠의 사업이 안되어 물질의 어려움을 겪게 되니 갑자기 맘이 가난해 지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빠께서는 메일로 말레지아에 계신 엄마께 그 동안 엄마를 외롭게 하여 몸도 맘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셨고, 돈만 많이 벌어 주면 남편 역할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왔다고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엄마는 그 동안 아빠의 수고와 고마움을 모르고 돈만 의지하며 교만하게 살았고 질서에 순종하지 못함을 사과 하셨습니다.
말레지아에 오니 남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셨다고 하시며 그 동안 소중함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아와 과부가 된 것같이 사니 고아와 과부의 심정을 알겠다고 하시며 힘든 이들의 맘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회개하셨습니다.
저도 하나님보다 친구를 사랑하고 부모님께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못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단골 한의원을 한국에 오셔서 적용으로 안 간다고 안가셨는데 아빠께선 아빠의 적용으로 일도 줄이시고 예전보다 일찍 퇴근하셔서 엄마를 매일 밤 마사지와 지압을 해주십니다. 출근 전에도 해주십니다. 아빠 손가락이 부러질 듯 아프셔도 참고 해주십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아픈 허리와 어깨가 치료가 되고 있어 통증을 모르겠다고 하시고 안 올라가던 팔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그 동안 큰 돈 들여 전문가에게 마사지와 지압을 몇 년을 받아도 효과가 없었는데 비전문가이신 아빠께서 해주시니 치료가 되고 있어 신기할 따름이라고 엄마는 기뻐하시고 제 공부도 아빠께서 봐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얘기 할 때 귀 기울여 들어 주시는 아빠의 변한 모습이 놀랍습니다. 만약 지금도 아빠의 사업이 승승장구했다면 저는 지금도 말레지아에서 지옥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고 엄마와 아빠는 돈을 하나님으로 알고 교만한맘으로 여전히 불만족하며 투덜거리고 서로의 소중함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 고난을 주시고 고난가운데 회개하고 감사하니 아빠께서 하시는 일들을 조금씩 풀어주고 계십니다.
이 사건은 교만했던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했던 사건이었고 이런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