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조은선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에 이단 소리를 듣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다니던 곳 보다 더 좋은 말씀을 찾던 엄마는 CTS방송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몇 개월 나오시다 제가 6학년 되는 해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처음에 와서 같은 반 아이랑 친하게 지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 아이와 친하게 같이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싫어하던 다른 아이들이 저를 무리로 끌어드리려 했고, 아직 편 가르기나 왕따 같은 집단 따돌림에 대응할 수 없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겪은 왕따의 상처로 인해 그 친구들 사이에서도 갈팡질팡했습니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저에게 무리들은 몇 번 경고를 하다가 점점 왕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적응이 안 된 교회에서 간신히 사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니까, 같이 놀았던 친구랑도 멀어지고 무리랑도 친해지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중고등부를 올라가게 됐고, 교회 나가기는 점점 싫어졌습니다. 아빠 차를 타고 교회는 왔지만 예배당에 들어가지 않고, 매주 그 주변을 돌면서 배회했습니다. 교회에선 왕따 당하고 친구중독과 대인 관계 장애 같은 것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우상이었던 저는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떠나가니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바깥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가족에게 풀었고, 이런 저를 엄마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 학교, 교회 모두 마음 둘 곳이 없고 사람과의 관계가 싫어져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이런 제 마음을 표현할 곳이 없어서 손목에 자해를 하기 시작해 시간이 지나 자해중독이 되었습니다.
우울증은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3살 때 동생들이 연년생으로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부모님 관심은 동생들에게 쏟아졌기에 그 때부터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동생들은 나이차가 거의 안 나서 학교나 교회를 가도 붙어있었지만 저는 항상 혼자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저와 동생들한테도 그런 건강한 사랑을 주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힘들었고 그로인해 쌓이던 화는 저보다 약한 동생들에게 폭력과 욕설로 나타나, 화가 나면 제어할 수 없는 성격장애가 생겼습니다.
점점 자란 동생들은 똑같이 저를 대하기 시작했고 집, 학교, 교회 모두 지옥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살 구멍은 하나 주신다고, 교회에서 사이 안 좋았던 무리들과 친해지고 오해가 풀리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너무 집착 한 나머지 배신당하는 결과가 생기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어느 곳도 붙어 있을만한 곳이 없어지자, 나한테 잘 대해주는 남자친구들에게 빠지게 됐고, 남자 중독이 시작됐습니다. 거절을 잘 못해서 5~6명까지 동시에 사귀게 되고 내가 차일까 봐 무서워서 먼저 끊어내고, 연락 씹는 등 다른 아이들에게 당했던 무시를, 싫어진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나를 왕따 시킨다고 욕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제 모습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인간관계에 눌리던 저는 학교나 교회를 기계적으로 다녔고 방학 때는 집에만 붙어있었습니다. 간혹 밖에 나갈 때면 남들의 시선이 너무 무서워서 항상 고개 숙이고 다니고, 사람들이 무서웠고, 옷이나 머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쳐다보고 비웃거나 무시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날로 더 심해지는 스트레스와 갈등으로 엄마 아빠한테 소리 지르며 대들었고, 그로인해 다혈질이고 잘 참지 못 하는 아빠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엄격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인생을 산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고 활발했던 저를 억압하고, 많이 혼냈습니다. 제 자존감은 낮아지고 머릿속으로는 너무 많은 말들이 떠오르는데 정작 입 밖에는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감정이 조금이라도 격해지면 목에 큰 사탕을 삼킨 것처럼 목이 아파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확실한 게 없다보니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냥 빨리 죽고 싶은 마음만 있습니다. 또 물질적 열등감이 심해서 돈이 우상이 되고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래에 대한 고민이 심해지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실함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이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아빠랑 오해가 생겨서 맞았는데 뇌진탕이 걸렸습니다. 아빠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고 또 맞았다는 사실을 엄마나 동생들이 모른다는 것에도 분노했습니다. 알아달라는 뜻으로 약봉지를 거실에다 놓고 다녀도 물어보는 사람 한명 없었습니다.
아빠가 미안하다면서 몇 번을 말해도 풀어지지 않다가 제자훈련 끝에 아빠를 용서하고 화해했고, 지금은 예전보다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항상 집안에서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저는 동생들의 고난을 처음 들었는데 저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힘들어 했고, 나와 똑같은 소외감을 느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미안하고 놀랐습니다. 나처럼 힘들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고난을 오픈해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붙어만 있었더니 엄마아빠가 변화되었고, 저한테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엄마아빠가 변화하고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먼저 화내던 아빠는 대화로 풀려고 하고 많이 참고, 때리지 않습니다. 엄마는 엄마 과거에 대해 저에게 오픈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관계가 더 좋아졌습니다. 집에서부터 좋아지니 친구들 관계도 편해졌습니다. 큐티 캠프 가서 절대 말하지 않았던 제 고난에 대해서도 오픈하면서 점점 입이 열렸습니다.
자해중독도 없어졌고 우울증도 고쳐나가고 있지만 아직 대인기피증, 조울증, 친구중독, 돈 중독 등 다른 문제들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어 하고 늘 혼자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때는 세례를 받을 때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축하한다고 말씀 해주실 때였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거에 대해 처음으로 감사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사마리아인이기에 길에서 강도 맞아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다가가 도움을 주며 부비까지 챙겨주는 사랑의 수고를 했습니다. 제사장, 레위인처럼 보고도 본채 만 채 하지 않고 힘든 친구들에게 다가가 내 고난을 나눠주며, 나를 살려주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 삶이 늘 넉넉하고 소유가 많아져 행복해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었지만 청소년기 시절에 교회 공동체에 잘 붙어가며 내 안에 주신 많은 것을 나눠주며 살고 싶습니다. 죽지 않고 살게 해 주시고 이만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