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노혜림입니다.
저는 간증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아니 꼭꼭 감춰두려 했던 아픈 상처와기억들이 솟아나서 짜증이 나고, 뭔가 홀린 듯 한 기분에 사로잡혀 눈물이 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져있었습니다.
간증을 어떻게 풀어나야 할 지 잘 몰라 답답하기만 하니, 엄마에게 간증문을 써야 한다고 도와달라고 하였지만, 온전히 오픈할 수 없는 엄마를 통해서 받았던 상처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컸기에 간증문 쓰기를 도와주고 있는 엄마한테까지도 화를 내며, 내가 힘든 것이 엄마 때문이라 생각하며 간증문을 안 쓰고 미루기만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이 습관처럼 되어있었습니다. 말을 하면 거짓말로 시작되니 주위에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중학교생활은 안 좋았고, 친구를 사귀면 학교생활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니 자연스럽게 술, 담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친구들은 저에게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니 학교를 안 가게 되었고, 부모님과의 관계와 학교생활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만 대하는 아빠가 싫었고 말만하면 싸우는 엄마 때문에 집안분위기도 안 좋았습니다.
저희 아빠는 한글을 못 읽고 못씁니다. 제가 이걸 알기 전 까지는 아빠가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항상 방에 들어가서 조용조용 읽기만 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에 대한 관심이 없기에 그냥 무시했습니다. 우리들 교회를 오고 나서야 엄마로부터 아빠가 한글을 못 읽고 못쓴다는 걸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걸 들은 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항상 무섭고 강압적으로 대했던 아빠가 나보다 못한다는 생각에 불쌍하기도 했지만, 막상 아빠를 보면 그 생각은 잠시뿐이었습니다. 화날 때 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 때문에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무섭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했습니다. 아빠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시며 저한테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도움을 청하셨지만, 전 바로 싫다고 얘기를 하고 늘 무시하기만 했습니다. 아빠가 한글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싫었고, 엄마는 아빠가 한글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무시하니 어투로 말을 하니 부모님의 싸움이 많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혹시라도 아빠가 엄마를 때릴까봐 엄마에게 그만하라고 말려도, 결코 내 말은 듣지 않으시고 아빠를 더 무시하시며 싸워댔습니다. 결국 무시를 참지 못하던 아빠는 엄마한테 폭력을 쓰는 싸움만 반복되어갔습니다.
아빠에 대한 상처는 더 심해지고 아빠가 저한테 조금이라도 뭐라 하시면 저는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게 되면 아빠에게 맞았고, 그럴 때 엄마께서 늘 막아주시며 저 대신 맞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막아주는 엄마를 보며 미안하고 불쌍했어도 그런 마음 또한 잠시뿐 이었습니다. 엄마랑 사이는 좋을 때도 있었지만, 엄마와 싸우게 되면 몇 시간은 기본으로 싸우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저한테 욕하고 때리고 물건 던지면 저도 똑같이 엄마한테 욕하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아빠로부터 막아주는 엄마와 싸우는 이유는 제가 엄마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와 싸우게 되면 나만 아는 엄마의 가장 큰 약점을 잡아서 협박을 했기에, 저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받은 충격과 상처가 크니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 안 좋은 부정적인 불신들로 가득 차있었고, 엄마를 보면 정죄하는 생각이 날까봐 집을 나간적도 있었습니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되는 갈등 속에 지내다가 엄마가 수술을 하는 일이 생겼을 때에도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평강이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핑계를 찾고 있었을 때, 그때 마침 교회수련회를 가게 되어 엄마 아빠에 대해 기도를 하게 되니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렸지만, 수련회 끝나고 집에 와서 잘하는 것은 잠시, 또 다시 고등학교생활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를 안 나가고 성적과 내신이 많이 딸려서 일반 다른 학교도 들어가기 힘들었을 때 중학교담임선생님께서는 저한테 특수반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하셔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특수반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반에서 수업 받는 것 보다 특수반에서 수업 받는 일이 더 많다보니 그것을 본 친구들이 나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극복하려고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수반으로 보이는 것이 싫어 학교를 빠지게 되면서 친구중독과 남자 중독에 빠지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연락을 안 하다가 고등학교 올라와서 어느 한 친구 때문에 다시 연락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연락을 하게 되니 학교는 더욱 가기 싫어졌고 나와 놀아주는 그 친구들과 만나서 학교를 빠지며 어울리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학교를 하도 빠지다보니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까지 열려 부모님이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께 죄송하다고 비는 것을 보는 순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씀드리며 다짐을 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또 안 나가게 됐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한번만 더 빠지면 퇴학조치 내린다고 하셔서 학교를 겨우 나가면서도 친구들의 시선이 힘들어 중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공포로 인해 자퇴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지만 그럼에도 나를 붙들어주는 친구 몇몇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야간자율학습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도 거짓말 하는 습관으로 인해 친구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나 친구들은 저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어 나와 어울리지 못하게 다른 친구들에게도 내 욕을 하며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이런 일이 생기니 결국에는 내 문제라는 것이 인식되어, 집에 들어가면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연습을 했고, 병원에 다니며 상담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 반 동안 친구 없이 혼자 지내면서 많이 힘들어지니 계속 친구 없이 사는 것 보다 내가 스스로 고치는 것이 낫다 싶어 최선을 다해 고치려 하니 멀어졌던 친구들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변한 것 때문에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제가 많이 행복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졌어도 학교생활이 엉망이다 보니 학교를 안 가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원망을 하며 집까지 찾아가는 엄마 때문에 숨어서 만나게 됐고, 친구들 못 만나게 할까봐 억지로 학교 다니는 적용을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놀고 싶어 집에 들어갔다가 새벽에 다시 나와 밤새 놀기도 했고, 남자친구와도 어울리면서 내 맘대로 살며 영원히 즐거울 것 같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친구에게 ‘나는 너와 어울리기 싫다’고 했다가 다른 모든 친구들로부터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해 결국 끊어지는 사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친구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 겨울 수련회를 가게 됐습니다. 놀아주는 친구가 없으니 어쩔 수없이 수련회를 가게 됐는데 말씀처럼 성령이 임해 많이 기도를 하며, 회개 하고 나서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빠로부터 받은 두려움 보다 더 큰 문제는 말씀에 의지하기보다 친구만이 나의 전부라 여기며 내 일상의 생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내 모습을 조금씩 보게 됐고, 그런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니 공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내게 공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새로 편성된 목장에서 만난 친구에게 공부가 무엇인지 묻게도 되었고, 대학이라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궁금해 하지 도와주는 친구들이 생겨서 공부도 하게 됐습니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공부보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고,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잊고만 싶어 했던 문제에서 조금 벗어나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니 우리들교회와서 많이 변한 아빠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하며 용서를 빌었고, 인정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게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내가 수련회에서는 많은 은혜를 받 진짜 하나님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의 문제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힘이 생겼습니다. 늘 기도해주시며 참아주시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고맙고, 제가 이렇게 간증하며 말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