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88또래 김혜인입니다. 저의 엄마는 연구소에 다니시다가 지역신문사 사장으로 아빠는 대기업에서 일하시다 사업을 하시는 이른바 엘리트셨지만 너무나 서로가 잘났기에 한 치도 서로에게 양보하지 않으며 매일 싸우셨고 그러다 제가 9살 때 아빠가 집을 나가셨습니다. 저와 동생이 어렸기에 부모님은 아빠가 출장에 간걸로 입을 맞추셨고 그때부터 저의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저에게 풀었습니다. 저는 옷을 삐뚤게 걸어놔도 맞았고 설거지를 안 해놔도 맞았습니다. 그냥 맞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제 머리채를 잡은 채 온 집안을 끌고 다니며 손에 잡히는 걸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습니다. 저는 1년에 맞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매일 맞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아빠와는 1년에 두 세 번 밖에 볼 수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엄마가 저에게 했던 것 처럼 약한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고 분풀이를 하면서 방황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빠가 출장가신 것이 아니라 두 분이 헤어지셨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엄마한테 더 이상 맞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고등학교 때 아빠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들을 아빠에게 위로받고 싶었지만 아빠는 “니까짓게 힘들면 얼마나 힘들었냐고 나는 너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셨고 저는 더 큰 상처를 받으며 마음속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아빠에게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이러한 저에게 아빠를 무시한다며 너는 엄마가 때려서 엄마 말을 잘들은 거라고 그러니까 나도 너를 때릴 거라며 저를 짐승취급 하시며 때리기 시작했고 저는 또다시 매일 술을 마시며 학교도 거의 가지 않고 일주일에 3,4일은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바닥을 치며 제 상처들을 짓눌렀습니다.
결국 저는 도피하듯이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스무살 때 캐나다로 갔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우울증으로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한 채 캐나다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출을 해서 친구와 함께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매일 술과 담배에 절어있었고 그 사이 고모친구분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목사님의 말씀은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였습니다. 저에게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고 세상적으로 잘나가시는데 무엇이 부족하냐고 안해준 것이 뭐가 있냐고 부모님은 삐뚤어지고 방황하는 저를 탓했습니다. 이혼가정에서도 바르게 잘 크는 아이들이 많은데 너만 이상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목사님께서, 아니, 하나님께서 니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오픈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채 썩어진 상처들이었기에 한마디 한마디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통해지고 있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교회에 나오고 난 후 저는 병원에서 중증의 우울증으로 판명되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하기 위해 불려 오신 부모님은 저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부정하셨고 그로인해 저는 과대망상으로 판정받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바뀌지 않는 감옥 같은 환경에 저는 수없이 자살시도를 하고 결국 작년 여름 저는 먹지 않고 모아두었던 수면제를 모두 먹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그것으로 저는 심장 간 신장 손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일 만에 저는 기적처럼 아무 이상 없이 살아났고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어 감사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신교제 하던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저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시도를 해서 응급실에 오게 되면서 저는 23년만에 처음으로 눈물의 회개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저의 죄 때문에 남자친구가 수고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퇴원을 한 후 우리들교회 여름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처음으로 회개한 저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하나님이 제게 처음 주신 말씀은 아빠를 용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싫다고 애써 소리 내어 외치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이미 네 아빠를 용서했으니 너도 이제 그만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그 선하신 타이름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아빠를 용서하겠다고 그러나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수련회에 갔다 그 다음날 자유해진 것은 아빠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과 기쁨이 있었고 오랜 우울증으로 의욕이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저는 주님이 주신 참된 행복으로 집안일을 하고 아빠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 나 하나만 믿음으로 잘 서있으면 온 가족의 구원이 일어날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믿고 이제는 왜 하필 나를 선택하셨냐고 원망하지 않고 죄 많고 연약하고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를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저를 통해 저희집안에 내려오는 저주를 끊고 하나님의 가정으로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내 상처가 빛의 면류관이 되어 아픈 사람들에게 비춰줄 것만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처음에 저는 목장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목장식구들을 끊임없이 시험 들게 하는 그야말로 문제아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과 목사님과 우리들 공동체가 있었기에 죄 많고 연약한 제가 이렇게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직 저는 온전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끊지 못한 중독이 있고 우울증 치료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 마음에는 부모님을 향한 어마어마한 살기와 분노가 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라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부모님을 미워해서 지옥을 사는 것은 바로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환경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엄마는 제가 캐나다 유학 중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속이고 아빠는 내가 널 위해 얼마나 더 참아야 하냐며 저를 독촉하십니다.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바꿔주셨고 저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힘든 환경과 훈련을 주시더라도 그게 여러분 바로 자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사랑임을 늘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