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기윤(중등부)
2006년 12월 2일,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필리핀으로 해외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유학을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협박에 가까운 강요로 인해 여권 사진도 억지로 찍고, 여행가방도 억지로 챙기고 되었고, 매우 친했던 친구들과도 울면서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유학을 간 곳은 필리핀의 수도권이 아닌 교육도 뒤쳐진 시골 지방 ‘일로일로’의 명문이라 불리는 어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순전히 광고에 속았던 것이었습니다.
어학원 기숙사에는 저보다 한 살 많은 5명의 한국인 아이들이 있었는데 첫날부터 텃새를 부리며 제 가방에 있는 물건을 마구 꺼내보고 심지어 어떤 애들은 그걸 가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런 행동이 싫었지만 솔직히 무서워서 아무 말도 안하고 노려볼 수밖에 없었는데 날이 갈수록 친구들의 괴롭힘이 심해지자 결국 원장 할머니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원장은 오히려 저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그 애들이 얼마나 착한데 무슨 헛소리냐고 저를 혼내셨습니다. 심지어 얼마 안 가서 원장은 저희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져서 그런 취급은 더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환경도 안 좋은 사립 학원에 보내지게 되었고, 학원에 간 첫날부터 원장이 교복 맞추는 것을 자꾸 미룬 탓에 저 혼자 사복을 입게 돼서 다른 학생들의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사게 되었습니다. 학원에는 저랑 사이가 안 좋았던 5명의 한국 아이들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저는 그 애들한테 매번 수업 때마다 욕을 들었고 물론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그곳 선생님들은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이동 수업 때 모든 책걸상과 학생들의 소지품에 분필이 잔뜩 묻은, 일명 ‘분필 테러’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애들은 저를 범인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았던 저는 편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중에는 담임선생님과의 사이가 더욱 더 틀어져서 담임선생님이 제 시험 성적을 보고 남의 답안지를 베꼈냐는 어이없는 추궁을 하였습니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기숙사에서도 그 애들은 단체로 제 방에 몰려가서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고 심지어 남자애들은 제 머리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한 번은 그들 중 한 남자애가 중국어 시간에 저를 심하게 욕하는 바람에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남자아이의 가족들에 대해 모욕을 주었습니다. 당한 걸로 치자면 제가 억울한 쪽이었지만 화가 난 그 남학생은 저를 수업 도중에 때렸고, 저도 이성을 잃고 그 애와 주먹싸움을 벌이다가 학교에서 세 번 이상 싸움을 벌일 경우 퇴학당한다는 교칙 하에 첫 번째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지나서 다른 여자애가 시비를 걸어와서 또 싸움을 벌인 탓에 두 번째 경고를 받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부 상대방 잘못인데 어학원 원장은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연락이 가는 일은 없었고 전 간절히 귀국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한테 연락이 가기만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괴롭힘은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밤 10시경에 스무 명의 어학원 학생 전체가 수영장에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 그곳에서 그냥 물에 발만 담그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물 밑에서 발을 잡아당겨서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이 아주 깊은 곳이라서 전 위기감을 느끼고 헤엄쳐서 얕은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누군가 제 머리를 눌러서는 억지로 물 밑에 가라앉게 했고, 머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거의 몇 분 동안 숨도 못 쉬고 더러운 수영장 물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순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되나하는 생각들이 치밀어서 위에서 절 누르고 있는 애들을 확 밀어냈습니다. 조금만 더 오래 있었으면 질식사 했을 거라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이 일로 인해 생긴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서 가만히 있으면 꼭 답답해서 죽을 것 같고 손발이 덜덜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제 방을 나와서 복도를 걷다가 그 다섯 명이 하는 얘기를 문 너머로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애들이 처음부터 저를 재미삼아 죽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들은 매번 저를 죽이는 일을 실패한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반년이 넘도록 당한 살인적인 학대에 저는 스스로가 이미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게다가 너무 원한이 심해서 자살할 생각은 안 들고 오히려 살인충동이 생겨서 정말 부엌칼을 들고 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옥상에 올라가서 그 애들 중 가장 눈엣가시였던 여자애를 꾀어낸 뒤 자살을 위장해서 추락사시킬 살인 계획까지 짜기도 했습니다. 제가 당시 나이가 만 11세라 들켜도 소년원에 갈 수 없다는 것도 계산에 넣어서 그 애가 자살한 것처럼 보이게 그 애 필체를 흉내 내어서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써진 거짓 일기를 썼습니다. 다행히 그 전에 귀국하게 되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국한 다음에도 학대로 인한 충격으로 발생한 후유증이 계속되어 저는 한국 학교에서 남들 모르게 여자애들을 뒤에서 때리고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남자애들의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때렸습니다. 남들을 괴롭히는 일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아졌지만 아직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제가 필리핀 유학생활을 통해 얻은 것은 정신병 밖에 없었고, 정작 중요한 영어 공부는 거의 발전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으로의 유학 생활은 저에게 있어서 의미 없는 스펙 쌓기에 불과했습니다.
한 참 힘이 들 때, 어머니의 권유로 저는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1년이 넘도록 전에 다니던 교회를 쉬고 있던 저는 교회를 오기 위해서 일일이 지하철을 타야 되는 것이 귀찮았지만 좋은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설교하시는 전도사님은 매일 다른 종교를 규탄하는 설교만 하셨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고, 다른 교회와는 달리 간증을 하는 시간이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의 교회에서는 목장이 재미없고 권사님이 학교 수업 시간에도 매일 전화를 걸며 끈질기게 사생활에 참견해서 그냥 대충 다녔는데 우리들 교회는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에는 저에게 그런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많이 원망하고 저주했었는데 그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는 버릇이 고쳐지고 대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