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저에게 교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크게 일탈을 하거나 방황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저는 1살이 됐을 무렵에 아빠의 선교사역으로 인하여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별탈없이 잘 적응했고 걱정 없이 지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초등학교 때쯤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착하게 되었던 교회는 노숙자들에게 밥을 무료로 배식해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식에 사용되는 재정은 후원을 받은 물품을 다시 내다 팔아 충당했고 훨씬 더 많은 돈을 남겼습니다. 그 일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그 일은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바로 교회로 가서 일을 했고 하루하루 쫓기며 살았습니다. 친구들과도 마음 편히 놀 수 없었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밤늦게까지 물건을 팔던 중 어떤 한 분이 저를 보시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었고 앵벌이 아니냐고 하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술집에서 어떤 분이 저를 보시고 이상하게 여겨서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부모님은 아시냐”고 물어보시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시면서 점점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결국 그 분과 저희는 가게 밖으로 나와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눈물이 나왔고 그 분은 경찰에 신고하시겠다고 얘기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차라리 솔직하게 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동시에 경찰에 신고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감정을 더 회피하며 직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고3이었던 언니가 참다못해 터지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아빠에게 울며 전화했고 더 이상은 이 교회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언니는 저에게도 울며 얘기했지만 저는 계속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 감정을 더 회피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언니가 엄마의 외도 사실까지 알려주게 되었지만 저는 그 사실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회피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저와 달리 부모님을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아빠는 언니의 말을 들으셨지만 그 당시 엄마는 그 교회에 너무 빠져서 그 교회에서 나갈 수 없다고 얘기하셨습니다. 긴 고군분투 끝에 그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저는 지금의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 교회에 있던 시간들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신 것처럼 저도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 있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사라져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고 성소 휘장이 둘로 찢어졌듯이 저도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우리들 교회를 만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완성이고 십자가의 고난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저에게 구원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이해되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매일 큐티 말씀으로 해석해 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직면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감정들을 허락하신 공동체에 잘 나누며 직면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 것, 제가 공동체에 나눌 수 있게 도와주신 목사님, 목장 선생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