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났을 땐 아빠는 할머니 때문에 그냥 형식적으로만 교회도 아닌 성당에 다니셨고 엄마는 불교나 점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돈을 버시느라 저와 저의 동생을 할머니 댁에 맡겨놓고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법고시를 공부하겠다고 하였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제가 3학년때 아빠가 이혼을 하셨다는 말씀을 할아버지에게서 들었습니다. 워낙 엄마가 집을 비우시는 날이 많으니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기 전 까진 이혼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도 저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성당에 복사라는 괴상한 일을 했습니다. 물론 재밌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새벽미사 같은 힘든 예베에 복사를 설 때 펑크를 내면 그 주일날 복사단 형들한테 기합받고 맞았습니다. 그렇게 남에게 눈치 보면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가 혁준이의 피아노 선생님을 데려오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러려니 했는데 그 땐 그 선생님이 저의 엄마가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처음에 할머니께서 그 선생님이 나의 엄마가 된다면 어떻다는 둥 슬쩍 떠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말라고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물으셨을땐 저는 차마 아빠를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못해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결혼하셔서 엄마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셨
을땐 더 문제가 심각해져갔습니다. 맨날 안 싸우는 날이 없었고 혹 안 싸운다 해도 그것은
아빠가 병원에서 주무시거나 늦게 돌아오실 때 뿐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할머니와 아빠가
싸우고 어떤 날은 엄마와 아빠가 싸우셨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버티다 엄마가 집
을 나가셨고 아빠는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라며 분가를 하려 하셨습니다. 어쩌다 할머니나
아빠가 너는 누구를 따라가겠냐고 하면 속으론 짜증났지만 겉으로는 아빠 혹은 할머니 마
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엔 아빠가 이기셔서 저와 동생은 평촌으로 아주 좋은 고층
아파트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은 크게 싸우셨고 저는 엄마를 그냥 증오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다
엄마와 아빠가 우리들교회에 오시게 되었는데 목장나눔을 하시면서 두 분이
점점 변하셨습니다.
싸우는 날도 줄어들고 큐티도 하시고 우리를 대할 때 화도 점점 안 내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변하기는 커녕 점점더 악해졌습니다. 엄마한테 반항과 인터넷에서 본
저주방법을 응용해 엄마를 저주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어떻게 해야 엄마를 안 볼 수
있을까? 등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 연수 때문에 우리 가족은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들 교회에서 하던대로 가족들과 큐티를 매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했다고 확 바뀌진 않았지만 조금씩 제 자신이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임신을 하시게 되었는데 임신을 하시고 난 후 너무 몸이 안 좋으셔서
먼저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많은 잘못을 했다는 생각에
엄마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 후 귀국해서 처음으로 여동생을 보게 되었
고 질투하기 보단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교회도 착실하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완벽하게 새엄마를 나의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우리 가족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저의 변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저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꿈입니다.
하나님을 전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이렇게 축복하시고 변하게 만들어주신 하나님 이번에 엄마가 또 임신
하셨는데 엄마를 보살펴 주시고 아직 저의 친모가 하나님을 잘 믿으시지 않은데 그 엄마 또
한 보살펴 주셔서 하나님을 믿게 해주세요.. 아멘. 0--0 꾸벅 0_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