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이수민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특별한 고난은 없습니다. 제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하나님께서는 아직 제게 큰 고난을 주시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로 옮기고 나서부터 고난이 없는 게 고난이 되어버렸습니다.
중학교1학년 2학기 때 체육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체육중학교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숙사를 써야했고 오전 수업 이후에는 하루종일 훈련만 해야 했습니다. 사격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훈련은 하루도 빠짐없이 했고 근력운동과 중심을 잡는다고 나무스틱 위에 서서 양팔에 아령을 들고 2분씩 서있는데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사격 그까짓꺼 그냥 손가락 운동 아니냐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대회에 나갈 때마다 기록이 안나왔습니다. 연습 때는 기록이 정말 잘 나오는데 시합때만 되면 덜덜 떨어서 ‘연습용’이라고 불렸습니다. 배짱이 없고 대담하지 못해서 큰 시합에만 나가면 성적도 안나오고 벌벌 떠는 저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평생 연습 때만 잘하다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중3때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운동선수의 길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제가 가려고 했던 고등학교는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니던 교회를 못나가게 되자, 그 교회 권사님께서 저희 가족을 우리들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식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내 또래의 아이들이 간증이라는 것을 할 때부터 다른 교회랑 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이라는 것을 할 때도, 정말 충격적인 고난을 갖고 자란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놀랐습니다. 나는 힘든 일이라면 그저 친구랑 싸웠을 때가 고작인데, 가정환경이 평범하지만은 않은 친구들이 내 주위에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처음 한 두번은 신기했고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한 얘기가 재미있었지만 나눔이 매주 반복 될수록 저에게는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난이 쎈 애들 앞에서 내가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눔을 할 때면 할 말이 없어서 선생님이 뭘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했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얘기만 듣고 있다는 생각에 교회에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런 제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한 때는 고2가 되면서, 예배장소도 지금 이곳으로 바뀌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나눔을 할 때 조금씩 친구들과 얘기도 하게 되고 힘든 일도 아무렇지 않게 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친해져서 그런지 나눔 할 때마다 까입니다. 내가 대학안가고 취업하겠다고 하면 시끄럽다고 무조건 대학가라고 하십니다. 취업이 나쁜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대학만 가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취업하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되야가는데 괜히 대학가는게 두려워서 회피하려고 들먹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잘난 줄 알고 허세부리다가 이제야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인정중독에 빠져 살다가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한, 아직도 연약한 저입니다. 그런데 중3때 진로가 갑자기 바뀌면서 운동과는 동떨어진 분야인 미디어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체육중학교 애들은 모두 공부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공부를 하는 저만 이상한 애가 되어버렸습니다. 공부하는 애가 나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1등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찾던 중, 엄마가 이화미디어고등학교를 추천해주셨습니다. 특성화고등학굔데 대학 진학률이랑 취업률이 아주 높다면서 그 학교에 갈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저는 벌써 큰 화젯거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체육중학교에서 전교1등하던 애가 왔구나 하시면서 저에게 기대를 품고 계시는 교장선생님의 한마디가 정말 큰 부담이 되었고 점점 나의 본 실력이 들어날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그렇게 관심 받는 것을 즐겼고 좋았습니다. 찐따같던 중학교 생활에 한이 맺혀서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좋아해주니 점점 친구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아졌고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주면 괜히 서운해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인정중독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정받는 것의 즐거움도 잠시, 고등학교에 올라와 처음 본 중간고사 시험 때문에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늘 1등만 해왔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중학교때의 벼락치기는 꿈도 못꿨습니다. 날이 갈수록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안 갔고 특히 수학은 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그 후로 성적은 늘 바닥을 기었습니다. 입학 할 때의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제가 한 순간 이렇게 무너지는 꼴을 보니 그동안 자만했던 게 우스웠고 바보같이 한심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다가 안하니까 살은 급격히 쪄갔고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자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해 지금은 친구들이 저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착하게 생겼다고 하는 얼굴 때문에 착한 척을 하며 살아왔고 기독동아리 단장이라는 이름표 때문에 욕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갔고 결국은 교회의 나눔시간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욕하는 것도 차근차근 적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같은 반, 같은 동아리 친구가 한명 있는데 저랑 무슨 악연인지 무슨 일만 하면 걔랑 엮입니다.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가방 속에서 과자봉지를 뜯어 혼자 야금야금 먹고 선생님들한테 알랑방구끼는 그 애의 가식적인 모습에 정말 증오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더욱이 나한테만! 다른 애들한테는 무슨 말도 못하면서 나한테만! 뭐 잘못한거 있으면 다 내 탓으로 돌리고 아주 야비하게 선생님들 앞에서 나를 까고 또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아 이용해먹는 그 나쁜 놈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지만 또 바보같은 나는 싸움을 일으키기가 싫어서 화도 못내고 그냥 참고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분노의 눈물이 났고 스트레스만 받았습니다. 참다못해 엄마한테 얘기하자,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수많은 애들 중에 필요할 때 너를 찾고 너를 이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니”라고...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 그 애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친구 없는 그 애가 다른 애들한테 까일 때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국은 선생님들 앞에서 알랑방구끼는 그 애나, 속으로만 욕하고 겉으로은 아닌척 했던 저의 모습이나 똑같은 가식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지금 여기에도 분명 고난이 없는 게 고난인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저의 얘기를 통해 위로 받으셨음 좋겠고 고난있는 친구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수준 낮은 제가 고난이 왔을 때 얼마나 슬퍼하고 감당 못할 줄 아시기에 아직 고난을 주시지 않음을 압니다. 지난 과거 일에 집착하고 후회했던 저의 생각과 마음이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나눔을 통해 처방받은 대로 적용을 해 나가면서,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아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았고 고난이 없다고 열등감을 갖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지금의 환경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