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편예은
요새는 가출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도 가출을 한 사람이 잦고 제가 다니는 학 교 동급생에서도 가출한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중 어떤 애가 말한 것을 지나가는 말로 들은적이 있는데 자기가 가출을 했는데도 부모님이 연락을 안한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솔직히 좀 부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습니다. 가출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출을 안할것같은 애들도 하게만드는 이유는 엄마 아빠한테 나 가출했다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 가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나 가출했으니 걱정 좀 해주세요 할 대상이 없기에 가출을 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말을 안해도 학교에 가듯이 습관처럼 매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와 반대로 아빠는 기독교인은 아니였기에 가끔 내킬 때만 다녀오셨습니다. 또한 아빠는 자주 늦게 퇴근하셨고, 2004년쯤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시지를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려서 아빠가 들어오시지 않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4년간 지내다가 갑자기 살고 있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버렸고, 마침 언니가 강남에 있는 중학교에 통학중이였기에 강남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나서였나 엄마가 김양재 목사님이 쓰신 책을 읽으신 후 그 해부터 거의 매 주 우리들 교회에 수요예배만 나가셨습니다. 저도 가끔 시간이 나면 엄마를 따라가고는 했는데 그때 처음 본 우리들 교회는 좀 솔직히 말해서 이상했습니다. 학교 건물을 빌려서 하는데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모이고 간증을 하는게 저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다음해인 2008년에 엄마는 저희 남매만 우리들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엄마도 우리들 교회에 나가셨으면 좋았겠지만 전도사로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수요 예배만 가셨습니다. 또 2008년 그 해에는 아빠가 신기하게 거의 매주 저희와 우리들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교회 가시면 거의 졸거나 늦게 가는게 다반사였습니다. 게다가 혼자가려고 하지 않았기에 저희도 형제모두 아동부나 중등부 예배에 가지 못 하고 아빠와 함께 대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른설교는 이해도 잘 안가고 재미도 없어서 교회가 지루했습니다. 예전교회는 말씀이 길어 봐야 20분이였는데 여긴 더 오래하고 귀에 들리지가 않으니 잠만 왔습니다. 아무튼 아빠는 그렇게라도 나오셨고, 2008년 11월에 저의 식구는 제가 가고 싶었던 중학교 때문에 부자동네 쯤 되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쪽에 있는 작은 아파트 아무튼 그런 집으로 성적을 잘 받는 전제하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집에 제법 자주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2009년이 되자 나가던 교회도 점점 안가시게 되었고, 아빠가 집에 오는것이 저는 너무 짜증나고 귀찮았습니다. 아빠는 보통 아빠라면 하지도 않을 니들이 아빠가 집에만 오면 다들 자기 방에 들어가고 놀아주지도 않는다는 생뚱맞은 소리를 하시며 또다시 집에 점점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말이 저로서는 웃기기 그지없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쯔음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들이 전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평소처럼 지냈습니다. 또한 저는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잘만 지내서, 마음을 다해 열심히 할 열의가 없었기에 성적은 초반엔 그럭저럭 중상위를 유지했는데 갈수록 나태해져 1학기 중간고사와 2학기 중간고사 전교등수 차이가 100등이 넘어서게 됐습니다.
2학기 기말고사에 밤새워 공부를 한것도 그나마 ‘가’를 맞지 않기 위해서 ‘양’을 받을 정도의 공부만 했습니다. 밤을 꼴딱 새서 공부한 덕에 그 다음날 한자 시험을 보는데 열개정도 풀다가 막혀서 그 문제를 노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뜨니 반도 못풀었는데 5분남았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말고사도 죽을 쒔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초에는 아빠의 가게가 모두 불에 탔습니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용돈은 잘만 들어왔습니다. 비록 엄마가 이사를 가는게 낫겠다며 학원을 다 끊었긴 했지만 그래도 살만했습니다 가게가 모두 불에 탔다고 했는데도 용돈은 부족할 새 없이 자꾸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겨울 수련회에갔을때 목사님의 ‘부잣집 청년’이란 말씀이 참 와닿았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신지 7년이 넘어가지만 아빠가 안들어오시니까 더 편했고 오히려 관심 갖는 것이 더 귀찮았을 뿐더러 엄마는 신대원에 다니셔서 집에 자주 없는데다가 가끔 MT나 수련회도 가셨기에 그런 날은 아주 밤을 새워서 컴퓨터에 열중할 수 있고 아빠에게 용돈도 받고 학비도 다 대주시고 그렇게 돈에 대해 무지할정도로 살아와서 애통할 것이 없어 울면서 기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련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긴 했지만 그뿐이였지, 집에 와서는 별다른 변화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지난 5월 20일 저녁에는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초파일에 같이 할머니가 계신 절에 가자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절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물쩡거리며 안가겠다고, 내일은 다른데 가기로 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아빠는 할머니가 더 중요한게 아니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 일로 그날 밤 우리들은 돌아가면서 아빠의 전화를 받으며 진땀을 뺐습니다. 엄마께서 받으면 구구절절 옳은소리만 하니까 자꾸 우리 남매들에게 전화를 하시며 곤란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초파일에 저희는 절에 가지 않았지만, 그날 엄마는 제게 왜 너는 제대로 말을 못하냐고, 해야할 말이면 꼭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렇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한편으로는 그렇게 옳은 말을 했다가 용돈이 끊기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도 어쩔 수 없는 물질만능주의자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빠의 전화가 싫고, 그래서 팥빵 하나로 동생에게 여름방학이 끝날때까지 집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다 받으라 하였고, 여전히 돈을 최고로 여겨 동생이나 언니가 돈만주면 옷도 선뜻 빌려주고, 게임도 다운받아주고 피씨방에 간 것도 눈감아줍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자훈련도 하며 서서히 컴퓨터도 끊으려 노력하고 있고, 이젠 학교에서 하루죙일 퍼질러자지 않으려고 매일 2~3시까지 놀다가 자는습관도 고쳐 되도록 12시 전에는 잠들려고 하고, 수업시간에도 필기 놓치지않으려고 졸려도 참아보고.. 아무튼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고 구원받아야할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열심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길 바랍니다. 특히 제가 볼땐 제 고난은 그, 부자청년뿐만아니라 스스로가 열의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앞으로 잘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잘모르겠습니다... 잘 해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큐티하고 노력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