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공유신입니다. 5살 무렵 친척의 전도를 통해 엄마와 저는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엄마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셨고,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접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주도에 있던 국제학교에 다니다가 인천에 있는 국제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학을 오게 된 이유가 엄마가 우리들교회 예배에 매주 참석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던 저는 겉으로는 성실하고 착한 모습을 유지해왔지만 실은 우리들교회의 방식대로 공동체에 붙어가는 것이 그저 걸림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제게도 저의 하나님을 만나고 능동적으로 우리들 공동체에 붙어가게 해주신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2022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은 저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같이 살다가도 어느 날이면 몇 개월째 볼 수 없었던 아빠, 친가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흐르는 어딘가 모를 어색함이 바로 제가 혼외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란도 모자라, 원래 건강이 안 좋던 아버지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셔서 뇌 수술을 받으시고 형제들과 자신의 사업을 두고 법적인 싸움을 하게 되는 사건 또한 찾아왔습니다. 혼란 속에서 저는 제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존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더 먼저, 아빠와 다른 여자의 정상적인 혼인관계 속에 태어난 두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제가 아빠의 우선순위이지 못하고, 아빠는 언제든지 저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저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또한 아빠의 사업과 관련된 법적 싸움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제가 누리고 있던 유복한 환경을 빼앗길 수 있단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미래가 너무나도두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내일 눈을 뜨는 것이 너무 두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점차 매일 밤 잠에 들 때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당시 제가 구할 수 있었던 가장 강한 진통제 23알을 한번에 복용했습니다. 이후 과호흡 증상이 나타나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받고 밤새 응급병동에서 위액까지 토해내고 나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입원 기간 동안 저에게 제일 위로가 되었던 것은 우리들공동체였습니다. 걱정해주신 엄마의 목장 식구들, 청소년부 전영욱 선생님과 당시 사역자셨던 최도원 전도사님의 기도 덕분에 퇴원 후 자해 중독이 단번에 끊겼습니다. 그 해 여름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은혜 또한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점차 편안해진 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의 저는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큐티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는 죄인입니다. 현재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한국 입시를 통과함으로 우리들공동체에 계속 붙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려는데, 저는 그저 저의 망한 미국 입시 결과에만 집착하며 하나님이 기반을 다져 건설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의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쌓아 올리려는 것들만 붙들고 있습니다. 지난 주 주일 말씀인 예레미아 1장 8절에서는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저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사건을 통해 빼앗길까봐,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을 하니님이 뽑고 파괴하실까봐 두려워 제 고집대로 행하려 합니다. 그러나 제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부모님이나 제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이 연약한 제게 주신 것입니다. 이 고백을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 고백할 수 있는 제가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님이 뽑고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그 뒤에 건설하고 심으실 것들을 바라보며 말씀 붙들고 갈 수 있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매일 카톡해주시며 큐티 안하는 저에게 말씀 읽게 해주시는 고등부 선생님, 제가 힘들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목장 식구들, 매주 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귀한 말씀 전하시는 청소년부 목사님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연약한 저를 붙드시고 두려워하는 저의 옆에서 항상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