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편하은
평범한 줄만 알았던 가정이 엄마 핸드폰의 수신함을 보고는 초등 6학년이 돼서야 알게 된 엄마아빠의 이혼 사실에 남들처럼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고 더 많이 웃었고 애써 환한 척 했던 나의 모습이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혼한 걸 알고서도 별 생각 없이 지낸 거 같습니다. 나 말고 좋지 않은 환경을 가진 애들이 많을뿐더러 이혼해도 내가 할 것은 막말로 공부밖에 없기 때문에 한마디로 내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냈던거 같습니다. 달라진게 있다면 너무 활발해서 혼나기도 했었던 성격이 거의 죽었다는 것입니다. 남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것도 있고 좀 많이 얌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숙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착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전혀 착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모태신앙인 나는 교회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다녔고 초등학교 때는 성가대도 섰었고 중학교 때는 찬양팀도 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그만 뒀지만 그 신앙 때문에 옳고 그름을 늘 가렸었고 친구들 앞에선 웃으면서 잘해주지만 뒤에선 뒷담을 까던 나였습니다. 그런 이중인격과 함께 집에 가면 본모습으로 돌아와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곤 했습니다. 아무튼 건축 사업 초창기 때 그 때는 우리 가족 다같이 교회도 갔었고 나름 평온했었고 아빠의 사업도 잘되어갔고 사업이 잘되니 당연히 사람은 다른길로 빠져 내가 3학년 때 비행기 삯을 이미 내서 아빠 빼고 어쩔 수 없이 캐나다에 갔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아빠의 바람이 시작되었고 남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 이혼도장을 찍은 후로 아빠가 집에 안들어오셨습니다. 그 때는 아빠가 매일 일 때문에 늦게온다 못온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달라는 것은 다 사주고 잘해주고 좋은 아빠, 착한 아빠로 인식했었던거 같습니다. 그 때는 솔직히 엄마가 더 싫었습니다.
잘 몰랐기 때문에 늘 엄마는 우리가 싸우면 혼내고 잔소리 하고 했었고 엄마의 표정이 많이 어두웠었기에 더 그랬던거 같습니다. 그래도 이때 가정예배는 꼭 드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아빠의 사업이 망해서 처음으로 샀던 30평짜리 예쁜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고 아마 그 때 아빠가 한달간 감옥에 있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정신을 차리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고 드디어 아빠가 돌아오나보다 했지만 얼마 안되서 다시 그 여자에게 가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내가 중학생 때 강남으로 이사를 왔고 분명 집근처에 걸어서 30분인 회사가 있는데도 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기억은 없습니다. 아무튼 또 개성공단이 막혔고 그걸 감안해서 미리 준비했었던 음식점을 해놔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쯤에 도곡역쪽으로 이사를 왔는데 새로 온 집이고 해서 또 아빠가 집에 오긴 했지만 늘 엄마 욕을 하며 청소를 시키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차라리 집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뭘 잘한게 있다고 집 힘든데 같이 돈을 벌어야지 왜 맨날 교회에 가고 애들은 공부도 시키지도 않고 하냐며 우리에게 말을 하는데 정말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왜 내가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내 집 환경을 원망하며 밤에 울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우리는 아무말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대고 뭐라하면 화내거나 때릴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새맞은 기억은 없습니다. 고1때 오랜만에 보는 친할머니 한테 뽀뽀 안했다는 이유로 슬리퍼 밑창으로 머리 맞은거 이외로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친척들이 더 합니다. 이제와서 엄마가 얘기를 해줘서 들은 거지만 아빠가 우리가 초딩 때 이혼해달라고 협박하고 그래서 많이 싸웠다고 합니다. 원래 바람나서 가정이 깨지면 가족들이 혼내는게 정상인데 아빠 친척들은 오히려 돈 많은 그 여자의 편을 들며 그 여자를 며느리로 생각했고 아빠를 전혀 혼내기는커녕 잘했다는 식으로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돈달라 할까봐 뭐라하고 솔직히 친할머니한테도 많이 실망했습니다. 아빠가 그 여자에게 가게를 열어줬는데 늘 그곳에 들락날락 거리고 그랬다고 합니다. 왜들 그렇게 돈에 환장을 하는지...하지만 나 역시 돈이면 좋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빠가 돈을 잘번다기보다는 우리가 세명인데 그 비싼 학원비에 생활비에 용돈도 두둑히 주는데 용돈 받으려고 아빠에게 전화하는 나나 그 친척들과 할머니와 결국은 같았습니다. 아무튼 친척들과 교류도 끊긴지 오래다 다른 애들은 명절 때보면 친척들도 많나고 용돈도 많이 타오고 나름 돈 많거나 외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친척들을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돈 때문에 엄마를 외면하고 오히려 엄마를 적으로 돌린 그 사람들을 보면 내가 못서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빠의 음식사업도 역시 09년도 12월말에 누전으로 불이나 또 망했습니다. 사실 이 불난 것을 듣고는 너무 웃었습니다. 왠지 아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는데 결국 아빠 뜻대로 안되는 것을 보며 이제는 정신 차리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집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간간히 잠깐 집에 들르는 것은 있지만 다른 가족들처럼 밤에 자고 아침에 나가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사실 중 3때 엄마가 우리들 교회의 김양재 목사님 말씀을 인터넷으로 듣고는 좋아서 우리들 교회로 옮기라 하셨을 때 내가 다니고 있었던 교회가 편했고 친구들과도 헤어지기 싫었기 때문에 정말로 옮기기 싫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를 맘대로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게 생각나 좀 생떼를 부렸지만 어째든 결국 오게 되었고 처음에는 정착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 때 아빠가 몇 달간 교회에 같이 나왔는데 아빠가 어른예배 다같이 가지 않으면 안나온다 해서 아빠를 계속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 싫지만 같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매일 졸았고 내 여동생도 졸았고 남동생은 핸드폰 게임만 하고 나는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어른들이 간증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 집사정이랑 그런걸 왜 사람들에게 말하는 지 이해가 안 #46124;습니다. 원래 그런 속마음이라던지 힘든 부분은 숨기는게 낫지 않나 생각을 해왔고 어릴 때부터 힘들거나 내 집사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왜 이 교회는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간증을 하면서 치유를 받고 그 간증을 듣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되니 간증을해야되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와서 난 간증이나 집 사정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고 제자훈련 할 때도 사실 완전히 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오픈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많이 나아진 것 같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고 오히려 내가 먼저 오픈을 하고 싶습니다.
또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옳고 착하고 그런 줄 알았지만 오히려 교만하고 커가면서 겉모습을 보며 판단을 했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아직 철들지도 않았고 간증하기엔 너무 빠르지만 그래도 내가 힘들 때 공동체를 통해 치유받고 외롭거나 힘들 때도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찾는 나를 보며 그래도 조금은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 겉모습보고 판단하고 내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닌 딴 여자와 살고 있는 아빠도 정말 싫지만 아빠가 교회에 다시 와서 말씀듣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 다같이 주일아침에 예배드릴 그날이 오리라 믿고 나의 신앙을 키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