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일 주일예배
본문: 열왕기하 10:20-27
제목: 바알을 죽이라
설교 말씀
어버이 주일입니다. MZ세대의 결혼관이 너무 다르다고 하죠?
평등이 중요해서 부모의 간섭을 못 참고, 경제 공동체는 옛말이고 친구 정도로 생활비 통장만 만들어 쓰고 출산 계획이 있어도 반대한다고 하네요. 늦기 전에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대요.
시간과 돈이 생기니까 불타는 연애가 그리워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는거에요. 그러다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 이야기만 하고, 다방면으로 파악한다고 합니다.
결국 이혼을 많이 시킨 변호사도 결론은 배우자를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한 부부가 있는데요, 바로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다 물려주면서 바알 숭배도 물려줬습니다. 바알을 마음에 심어줬기 때문에 물려준 것이 똥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신이 결국 똥파리 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최고의 부모세요.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녀를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의 바알을 죽여야만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사명자도 될 수 있습니다.
바알을 죽이려면.
1. 특별대우의 예복을 벗어야 합니다.
20-21절.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는 예후의 계책이 시작됩니다. 대회를 거룩히 열라는 명으로 부흥회 광고가 온나라에 뿌려집니다. 바알교 핵심 지도자를 모아 아합 집이 제대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부흥하기 위해 필참하고 불참시 사형이라고 확실히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빠짐 없이 다 이르렀다고 해요. 참석률 100% 바알교 부흥회가 열렸어요. 엘리야가 아합 왕 시절에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 400인의 아세라 선지자와 싸운 것을 생각해 볼 때, 예후의 대외공표로 모인 선지자들은 이보다 많지 않겠습니까?
모아놓고 보니까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일사불란하게 예후의 부하로 모였습니다. 이것이 바알교의 특징이고 세상의 특징입니다. 요람은 바알을 없앴다고 하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예후가 바알교를 완전히 척결했다고 하지만, 100년도 더 지난 호세아 선지자 때도 바알 숭배는 여전했습니다. 도대체 바알은 왜 이렇게 질긴걸까요? 바알은 성공과 번영의 신이에요. 인간이 제일 바라는 것이 번영과 성공, 돈 아니겠습니까? 돈이야말로 우리를 대단하게 유혹합니다.
그래서 바알은 계속 죽여도 부흥합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알 신당이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바알의 집이에요. 특별히 종교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잘 살기 바라는 욕심은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기에 죄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워요. 모든 인간이 잘 살기를 바라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제는 이것들이 우리를 사로잡기 떄문입니다. 내가 제사장으로서 죽어져야 하는데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갈라집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전을 가득 채운 바알 교인의 욕심을 예후는 전부 특별대우 해주고 있습니다.
22절.
예복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만든 구별된 옷입니다. 바알의 집이라고 불린 바알 신전에는 예복을 보관하는 창고, 관리자가 있었어요. 평소에 예복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었는지 온 바알교인이 입을 수 있다고 했어요. 보통 때는 바알교 평신도는 예복을 입지 못했을거 아니에요? 이 특별한 날, 참석자 모두에게 예복을 입게 해주니 외적인 감각을 만족시켜주니까 인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계책의 귀재, 예후의 실력이에요. 군중 만족시키는 방법을 알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힐송 교회에 말씀을 들으려고 간게 아니라 목사님을 보려고 간다고 합니다. 옷을 너무 잘 입고, 지배욕으로 가득차서 찬양하며 짜여진 사업계획대로 하며, 유명한 사람들과 인맥을 구축하며 부흥의 성을 쌓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렇게 잘 나가다가 음행 등의 문제로 목사들이 하차했습니다.
또 다른 특별예복은, 종교개혁 이후에 만인제사장이라고 가르치는데요, 모든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믿어요. 그런데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서 교회를 부정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을 향해 우리도 똑같이 거룩하다고 하며 윗질서를 무시하며 반역했던 고라자손처럼 하는 것이 만인제사장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질서를 두셔서 때가 될 때까지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예복 입고 특별대우 받으려고 하는 것과 너무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 모이면 그저 군중일 뿐이에요. 그런데 군중심리로 뭉치면 모두가 대표라고 주장하며 특별해지려고 해요. 전부 그 위에 서서 질서를 폭력적으로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 사회의 모습이고, 바알 예복을 입은 교도들의 심리입니다.
아합을 그리도 섬기던 제사장들이 아합과 이세벨이 죽고난 뒤, 모여서 싸우다가 충성심은 개의치 않고 예후에게 모였습니다. 100% 찬송도, 100% 반대도 이상한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예복을 입혀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으니 너무 좋습니다. 우리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가 채워집니다.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은데, 예복을 입은 군중 속에 들어가니 힘과 지식과 돈의 예복을 입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열광하고 소리치며 행동합니다. 이것이 바알의 예복입니다.
내 안의 바알을 죽이기 위해 특별대우의 의복을 입으려고 해서는 안되고 이미 입고 있다면 벗어야 하고, 특별대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면 죽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입으려고 하면서 그게 아니고 만 외치고 있다면 내 안의 바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특별하게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우리는 이 대단한 특별대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 받은 특별 대접이 주님의 생명만큼 큰데 말입니다.
적) 교회보다 더 거룩히 여기며 위하는 모임이나 대회가 있습니까?
가족모임, 골프모임, 동문회 학부모 모임, 다단계 모임 등 거기서 어떤 특별대접 받기 원합니까?
내가 당장 벗어버려야 할 바알의 예복은 무엇입니까?
2. 여호와의 종과 함께 생명 걸고 적용해야 합니다.
23절.
예후가 바알 신당에 혼자 들어가지 않고 여호나답과 함께 들어갑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바알교 척결이 예후 혼자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치적으로라면 바알 교도를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척결은 여호나답의 뜻입니다. 여호나답의 지지가 앞으로 필요했습니다. 예후가 믿음은 없지만 정치 천재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뜻을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알교도 무리와 대면하는 자리에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여호나답을 동행시킵니다.
예전 엘리야가 바알선지자와 대면하듯이 바알교도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자는 신당에서 나가게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와 벨리얄은 공존할 수 없어요. 이제는 예후 계책의 클리막스입니다.
24-25절.
드디어 바알교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신당에서 번제와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때 예후는 80명의 병사를 신당 밖에 배치하는데요, 가장 전력이 센 친위대였습니다. 그래서 바알 숭배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놓치면 대신 생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부흥회가 끝나고 한 사람도 못 나가고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명령대로 군사들은 모든 숭배자들을 죽여서 신당 바깥으로 던집니다. 이세벨도 던져졌는데요, 이세벨의 영적 자식인 바알숭배자들도 던져집니다. 잠시 전까지는 들떠서 들어왔다가 제사를 올렸는데, 결말은 칼에 죽은 시체가 되어 던져집니다.
신당이 마치 괴물 같아요. 숭배자들을 삼키고, 단물을 빼먹고 찌꺼기를 뱉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 거짓종교의 기본 구조입니다. 숭배자들은 배를 불리기 위한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자기 열심으로 우상을 섬기지만 우상을 앞세워져서 소비될 뿐입니다.
잠시 뒤 버려질 것인데 죽어도 좋다며 달려갑니다. 요즘 정치와 문화도 우상숭배처럼 되어져가고 있습니다. 어리석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부터 눈물로 회개해야 할 이 시대의 악입니다. 욕심에 눈 가려져 바알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내 안의 바알을 죽여야 하는데요, 내 마음에 우상 섬기는 마음이 살아 있으면 단지는 다시 생깁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자기 안의 바알을 혼자 죽일 수 없습니다.
예후가 아무리 활을 잘 쏴도 혼자서 모든 바알 숭배자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한계를 스스로 넘을 수 없기에 하나님 섬기는 여호와의 종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예후가 여호나답과 함께 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서 믿음의 지체와 함께해야 합니다. 예후와 여호나답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예후는 평생 아합의 군대에서 밑바닥부터 바알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이고 여호나답은 믿음의 가문 사람이에요. 그런데 둘이 바알교 척결하시려는 하나님 섬기는 동지가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맞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 섬기는 일에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됩니다. 뭉치면 강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거기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세요. 약하디 약한 우리 한 사람이라도 예수 이름으로 함께 하면 강한 우리들이 될 줄 믿습니다. 항상 구원 때문에 이 일은 함께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헤어지더라도, 모든 것을 구원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안됩니다. 견고한 바리새인의 벽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종 지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후가 생명을 걸고 바알 섬기는 자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부하들은 실행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지체들과 생명을 걸고 말씀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 지는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기 싫고, 힘든 것을 말씀 때문에 하는 것이 생명의 적용입니다. 하기 싫은 순종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적용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의 바알을 없애주십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적용하려고 하기만 해도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십자가 지는 순종을 하면 다음에 오는 열심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열심으로 순종하려고 하면 예후처럼 됩니다. 우리 안에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각종 바알을 주님이 죽이실 줄 믿습니다.
적) 바알을 섬기는 자입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종입니까?
내 안의 바알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통하는 영적인 동지가 있습니까?
생명 걸고 적용할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생명 내놓고 교사 부목자 목자 마을 초원 장로 권사 목사를 하고 있습니까?
3. 그 근원을 불사르고 헐어야 합니다.
26-27절.
바알은 우리 안의 욕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기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익숙하고 친근한 우상이기에 인기 얻기가 쉬웠습니다. 신전이나 성, 마을 회관, 시장, 집에 모셔두기도 쉬웠습니다. 그래서 만들기도 쉽지만 없애기도 쉬웠습니다.
바알 숭배자를 모두 해치우고 예후는 석상을 산산조각냈습니다. 소련이 해체될 때 스탈린 동상이 해체됬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꼭 그런 사람들은 동상을 만듭니다. 예후가 부하들을 시켜 산산히 부숴버리라고 합니다. 아합 왕조, 아합 집의 상징이기도 한 바알 상이 무너집니다. 다윗의 집이 하나님과 하나이듯, 아합 집도 바알 신과 하나잖아요? 아합의 집은 이제 진짜 끝이 났습니다.
아합 집의 멸망이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신당이 무너진 자리를 변소로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그런 곳이 힌놈의 골짜기였는데, 바알이 있던 자리가 사마리아 판 힌놈의 골짜기가 됐습니다. 거룩히 모시던 신을 변소가 있던 자리에 세우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열왕기가 기록된 시기까지 변소로 남아있다고 하니까, 예후 때로부터 최소 300년 이상 내려왔습니다. 강력했던 아합과 이세벨 왕조가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고난 중에는 마음이 조심하게 되지만 형통할 때는 마음이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 교회라고 그런 일이 없겠습니까? 형통하다가 사건이 생기고 고난이 오는 것은 그래서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드러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릴 버리지 않으시고 천국 입성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천국학교 졸업 위한 커리큘럼입니다.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가 예후 인생에서 쓰임 받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엘리야를 통해 아합 집에 하신 말씀을 예후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진짜 열심이 있는 여호나답과 동맹했기에 바알 집을 불사르고 헐었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예후는 사실 더 나아가 진짜 개혁을 완수했어야 하는데, 여기서 멈췄습니다. 예후는 바알 숭배의 근원이 목상과 신당이라고 생각해서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내 바깥의 바알은 다 죽일 수 있지만 안의 바알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속사적 말씀 묵상이 꼭 필요합니다. 말씀의 빛으로 내 옆 사람, 할 일, 주변 상황을 비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비춰서 해석하는 지혜가 있어도 내 자신을 보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 입니다.
내 안의 감춰진 죄악을 비춰서 봐야 합니다. 내 안의 가득한 바알 우상을 보지 못하고 바깥의 우상을 아무리 없애봐야 계속 만들게 됩니다. 근본은 안에 있습니다. 뿌리는 땅 속에 있기 때문에 땅 파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금요일 본문에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시는데, 굳고 완악한 내 맘을 기경해야 합니다. 큐티를 하며 선택하는 훈련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영성을 쌓아가는 훈련입니다. 가장 보화 쌓는 훈련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서 우리 안의 바알이 드러나는 역사가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 바알의 목상처럼 불사르고 헐어야 할 나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는 가까이 가기 싫은 변소로 만들기 위해 이번 한 주 어떻게 불사르고 헐어버리겠습니까?
<기도제목>
정현
- 양교 마지막 한 주 남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잘 마칠 수 있도록
- 알맞은 직장으로 인도해 주시길
- 새언니가 임신 초기인데 출산까지 산모와 태아의 건강 지켜주시고 오빠네 가정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길
- 신교제, 신결혼 준비될 수 있도록
해윤
- 직장을 관두는게 좋을지 그만 두는게 좋을지 좋은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섬김
- 하나님과 예의,격식 차리며 얘기하려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날것 그대로 얘기하고갈 수 있도록
- 하나님은 나를 스파르타로 훈련시키시는 분이 아닌 인격적이시고 내 목소리에 귀기울이시고 나의 자유의지를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가도록
-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공동체와 하나님께물어보고 내감정 잘 확인하고 가도록
- 남동생의 교회등록을 위하여
혜인
- 직장생활 적응 및 컨디션 조절 잘 할 수 있도록
- 자책과 원망 사이에서 중심 잘 잡고 반대의 영으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 신교제, 신결혼
송연
- 가족구원
지원
- 팀이 바꼈는데 담대하게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 말씀 잘 생각하면서 한주간 잘 보내기
- 신교제, 신결혼
채연
- 다음 세입자가 8/31일 만기전에 잘 구해져서 무탈하게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 신결혼 준비가운데 여러가지 두려움 사로잡혀 있는데 먼저 내 마음을 인정해주고 공동체에 잘 나누며 갈 수 있도록
- 가족구원과 건강을 위해서 늘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