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이 편지가 이르거든
열왕기하 10:1-11
저의 학창 시절은 아주 펜팔이 유행이었어요.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시기여서 미국의 청소년들과 펜팔을 하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는다고, 저는 못해봤는데 저의 바로 위에 언니는 펜팔을 했어요. 그리고 또 동급생이던 근처 학교 남학생에게 아주 그 자신의 사진까지 박아 넣은 아주 대단한 편지도 받았는데요. 그 사진이 아이돌 스타 같이 생겼었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선명하게 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공부도 잘하는 그 아이돌 같은 오빠가 그런데 저에게 편지를 보냈으면 저는 공부고 뭐고 그냥 그쪽으로 올인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다음에 이제 또 그 언니의 형부는 우리 언니하고 연애를 날마다 하면서 만나면, 집에 오면 집에 오면 영어로 쓴 연애 편지가 날마다 와 있게 했어요. 미국도 안 가봤는데 네이티브 스피커예요. 자랑하느라고 보냈겠죠? 그런데 그건 전부 다 우리 언니 추억이고 저는 희안하게 추억할 것이 없어요, 별로. 이거 너무 유감인데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전적인 보호하심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여기저기서 나오면 어떻게 해요. '내가 그 펜팔의 주인공이었다.' 이러면서. 요즘에 이런 펜팔의 편지는 자취를 감추었어요. 굉장히 낭만적이자나요, 그렇죠? 그 종이 편지.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오늘 본문에 예후는 종류가 다른, 간담이 서늘한 편지를 보냅니다.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편지 2통을 보내는데요. 이 편지로 아합의 집이 완전히 끝납니다. 이 편지처럼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는 이런 사건이 갑자기 배달이 될 수가 있어요. 밤새 안녕이라고 생각지 못한 소식과 사건이 우리들에게 갑자기 오자나요. 그래서 이렇게 이 편지가 이르거든하는 일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두려워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1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 예후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어요. 이 칼에 북이스라엘 요람왕, 또 남유다왕 아하시야도, 또 아합집의 모든 악의 끝판왕인 이세벨도 다 심판을 받았어요. 이제 이쯤이면 끝나야 되는데 아합의 집이 정말 질겨요. 아직도 아들이 70명이나 남아있다는 거예요. 70은 완전수자나요. 아합의 집 사람들 아무리 죽고, 죽고, 죽여도 아직 건재하다. 이 뜻이에요. 그들은 가장 강력한 요새인 수도 사마리아에 있네요. 예후가 군대를 장악했어도 사마리아를 직접 공격해서 점령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정통성과 명분을 얻기 위해서 이 일은 예후에게는 아주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예후는 군대 대신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이래요. 북이스라엘의 실권자들을 말하는데요. 그런데 너무 이상하자나요. 지금 여기가 사마리아예요. 그런데 사마리아 귀족이 아니고 이스르엘 귀족이라고 해요. 이스르엘은 지금 예후가 머물고 있는 성이죠. 말하자면 부산에 있는 예후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수신자가 부산의 의원들이라는 거예요. 이해되셨습니까? 아이고 어려워. 공부를 좀 못하셨나봐. 다시 가서 읽으세요. 들으세요. 그런데 이스르엘 장로와 귀족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예후의 편지 공세는 기가막힌 전략입니다. 예후의 편지를 받았을 때 이들은 소름이 돋았을 거예요. 10여 년 전에 그때 이세벨이 아합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은 귀족들이 여기 다시 등장해서 예후의 편지를 받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때 편지 내용은 그들이 이스르엘에서 함께 살던 동료 나봇을 죽이라는 거였자나요. 그들은 그때 찍소리도 못하고 편지가 시키는대로 했어요. 편지 한 통으로 아합의 집 악에 동조하게 되었죠. 이 편지를 배달한 사람이 그때도 그 이세벨의 총애를 받았던 예후가 아니었을까. 미친듯이 병거를 몰기로 유명했자나요. 그런데 이제 아합의 아들 요람도 죽이고, 왕후 이세벨도 죽인 예후가 보낸 편지가 지금 왔어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열어봤겠죠. 그랬더니 뭐라고 해요. 아합집을 위해서 예후 자신과 싸워보자고 하는 거예요.
2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 2절, 3절입니다.
너희 주의 아들들은 이제 아합의 자손들이라는 이런 뜻도 있고, 북이스라엘이니까 하나님도 믿는 자들이겠죠, 그렇죠? 다 교회도 나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는 지금 최고의 교육을 잘 받고 있는 바른 생활 청년들이라는 거예요. 모든 사교육은 다 받고 혈통, 지위, 권세, 재산 다 가지고 있어요. 최고로 키운 영재들인 거예요. 그런데 이 중에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해서 세로운 왕을 세우고 어디 한 번 총력을 다해 덤벼보라 얘기를 하는 거예요.
4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
-> 그런데 얘기를 듣고 4절에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그냥 이스르엘에서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을 때는 두렵기는 커녕 아무 감흥도 없어요. 그저 쓴 대로 했어요. 자기들의 친구 나봇을 죽이라는 무서운 명령인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왜죠? 나봇이 전혀 무섭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제 사마리아에서 예후가 보낸 편지를 받으니 무서워서 덜덜 떱니다. 사실 아합의 신하이기에 역적 예후에 맞서 싸우는 게 당연하자나요. 마땅히 해야 할 일 하라고 하는데도 그들은 심히 두려워합니다. 예후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죠. 10 여년 전의 이세벨도, 지금 예후도 사실 이 귀족들, 곧 장로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아요. 이들은 사회적으로 one of them이 아니고 최고의 금수저이애요. 원탑인 거예요. 그런데 이런 엘리트들이 악한 이세벨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자기 동료를 죽이고, 그리고는 그보다 또 좀 더 위인 예후 앞에서 이세벨을 배반하고 벌벌 떨면서, 조금 자기보다 권세가 있으면 늘 벌벌 떨면서 동료를 죽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저항도 못해요. 여러분 금수저, 다이아수저면 뭐합니까. 더 센 강자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꼼짝도 못하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은데 만일 두려워하는 게 없다면, 심지어 두려워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강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두려운 게 없다.' 이런 사람은 그 안에 감춰진 내 악을 봐야 합니다.
4 ...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 이스르엘 귀족들이 심히 두려우니까 그나마 뭘 했어요. 그냥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모두가 나와서 납작 엎드렸어요. 이제 그 시대에 금송아지 숭배, 물질 우상, 성공 우상이 지금 판을 쳤죠, 금송아지가 그거니까. 교육의 메카 사마리아에서 왕자 교육을 받는 정예 에이스인 이들 중에, 어질고 정직한 자가 70명 가운데 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선생님이에요. 자기네들이 가르치면서 여기는 어질고 정직한 자가 없대요. 그러면 지금까지는 무슨 교육을 했을까요?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결국 세속사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니까 결국은 나 살고 너 죽는 이기심을 가르치지 않겠어요? 좋은 말은 했겠죠. 그러나 보여주는 것이 나 살고 너 죽이는, 나 살자고 나봇 죽이고, 나 살자고 이세벨 죽이고, 나 살자고 또 이제 왕자들 죽이고 이러니까 뽑고 뽑힌 로열 패밀리 왕자 중에 어질고 정직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이 나라의 결론인 거예요. 자신의 집안을 위해서 죽겠다는 단 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애국자가 없는 거예요. 다들 지금으로 말하면 하버드 출신이었겠죠. 오늘 교육하는 자, 교육하는 자, 양육하는 자 세 번 나오는데 이게 크게 들어오네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너무 잘 자라주고, 학교도 초 일류 학교를 가고, 그래서 나중에 커서 사업을 하겠다고 돈 빌려달라고 그래서 돈을 빌려 달라고 그래서 많이 빌려주었는데 그 20년이 되도록 한 푼도 안 갚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정말 구속사, 세속사 정말 생각하셔야 되는데 세종대의 김성은 교수가 6월에 발표될 따끈따끈한 미 경제학 리뷰 American Economic Review (AER) 유명한 논문인데요. 이게 많지만 지난 주일에 얘기를 했었자나요. 부유층 사교육비 지출 감소가 저교육층 사교육비 지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논문의 관건은 사람들이 실제로 비교하는지를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게 여부인데요. 그 김교수님은 각 지자체가 청소년의 건강권,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학원 시간을
제한한 조례를 도입한 것에서 중요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결과 그 조례는 고소득층의 사교육비를 지출을 줄이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또 그 사교육비를 줄이면 저교육층에서도 같이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이 확인된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이제 되니까 출산율도 모든 소득층에서 상승했다는 거예요. 이게 뭘 얘기를 하냐면 우리가 이제 비슷한 환경이라면 잘 할 아이들은 자기 실력으로 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평한 거예요. 옛날에 전쟁 때도 다 못 먹고 못 살아도 잘 할 놈들은 잘 했어요. 그러면 은사가 각각이니까 전부 공부를 잘해야 쓰임 받는 게 아니자나요. 욥기에 요새 짐승들 다 나오는데 그 짐승들은 왜 이 땅에 왔는지 우리도 잘 몰라. 그런데 다 은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돈으로 바르게 되면 내 아이도 똑같이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교 의식이 맹렬하게 올라오자나요. 똑같은 환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비교에 가장 민감한 나라가 중국이고 한국이라는 거예요. 학원 시간을 제한한 것이 억지로 비교를 멈추게 한 것이라면, 우리들교회 구속사는 가치관이 어렸을 때부터 이 구속사로 듣던지 안 듣던지 계속 이거를, 이기적이 아니고 이타적으로 살라고. 이게 들으니까 자기 죄를 보니까 저절로 비교하지 않아서 우리의 결혼율, 출산율이 높은 거자나요. 이것도 데이터를 좀 이제 내야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샘 리처드 교수의 강의가 유튜브에 떴는데요. 전 세계 학생보고 뭐 다 질문해요. 중국 학생 보고는 '무엇을 차별하냐?'고 했더니 거기는 예수도 없자나요. 유물론이자나요. 가난하고 지방에서 온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거예요. 걔는 아주 금수저 아들이자나요, 그 학생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그 중국의 또 지방에서 온 아이들이 차별 받지 않으려고 얼마나 이를 갈며 공부하겠습니까. 그리고 출세하면 또 그대로 똑같이 차별을 하게 되는 거죠. 금송아지 숭배는 이 시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난리 치고 세계 10위권에 들어간 한국은, 그보다는 하나님이 자유민주주의를 줘서 공부를 사실 이렇게 하게 된 거자나요. 그러니까 나라가 잘 살아지고 이렇게 되다 보니까 돈이 최고라고 지금 교육열이 아주 세계적이죠. 대졸자가 70%가 넘는 나라가 없다는데 장점도 있지만 그것을 오늘같이 나약하고 부정직하고 어질지 못한 아합의 70명의 왕자를 키워내는 나라가 된 줄 믿습니다. 안 믿어요?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선생들은 예후가 말하니까 '당신이 보기에 좋은대로 행하세요.' 생사를 예후 손에 맡겨요. 그래서 그냥 잠시의 죽음을 면합니다, 조금 이따 죽을 건데 이 사람들. 여러분, 사람을 죽이는 악을 행하는 게 무서워요,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과 싸우는 게 무서우세요. 이스르엘 엘리트들은 나봇 죽이는 것보다 자기가 죽는 게 더 무서워요.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생각도 잘 못해요. 그저 Tank처럼 전진, 전진 돌격만 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던지, 그래도 두려운 게 있는 사람은 멈출 줄은 알아요. 너무 두려우면 제자리에서 삽질만하다가 Sink해서 또 가라앉죠. Tank나 Sink나 똑같애요. 하지만 두려워해야 할 때 두려워하면 이렇게 Think를 해야 Thank가 된다 그랬자나요. 두려움 없는 게 좋은 게 아니예요. 겁이 좀 있어야 돼요, 인생에 대해서.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365번 나오지만 두려워하라는 명령도 10번 이상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하나님을 경외하라.'죠. 마태복음 10장 28절에 주님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는데 우리는 두려움도, 두려움의 체계가 고장났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데 반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은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늘 세상에서 심히 두려워 떨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게 조금 더 쉬워요. 따라서 예후의 편지처럼 나를 두렵게 하는 소식이 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멈춰 세우시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두려운편지가 이르거든 원망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생각을 하시기 바래요. 내가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하며 밀어부쳤던 게 뭔지 생각하시고,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시고, 내가 납작 엎드려 사과해야 할 것이 뭔지 생각하세요. 그러면 갑작스러운 이 편지가 왜 나에게 배달됐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나를 심히 두렵게 한 소식이 있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것이 비교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인지합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고 있습니까?
2.회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
-> 6절입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 귀족들과 기타 지도자들의 항복 편지를 받은 예후는 이제 두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이게 사마리아후서겠죠. 앞에 사마리아전서는 '내게 덤벼보라.' 그거자나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 편이 되어서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왕족을 다 죽여라.' 이거자나요. 그때 나봇을 죽인 이 귀족들은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까요? 왜 없었겠어요. 애써 외면하고 잊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을 거예요. 나봇을 포도원을 지날 때마다 괴로웠을 거예요. 그래서 모조리 사마리아로 이사를 간 것 같아요. 어찌 생각하세요. 자, 우리가 다 그래요. 아합도 하나님을 믿지만 나봇의 포도원을 너무 갖고 싶자나요. 여러분 하나님 믿지만 불법을 행해도 애들이 대학을 갔으면 좋겠고, 승진을 했으면 좋겠고 이게 다 우리들의 염원이자나요. 그래서 이제 왕자들을 다 죽이라는 예후 편지가 이르렀을 때 귀족들은 지금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기억하고 회개할 기회예요. 이세벨도 그 기회를 놓치더니, 이 사람도 전부 다 온통, 온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놓쳐요. 여러분들 내가 예수 믿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사마리아 유니버시티를 나오면 뭐하겠어요. 하버드 유니버시티를 나오면 뭐하겠어요. 이게 놓치는 거예요. 사마리아 유니버시티를 나왔기 때문에 회개를 못하는 거예요.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 6절, 7절이에요.
나봇을 죽일 때와 똑같자나요. 편지가 시키는대로 왕자를 죽여요. 그것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스승이 왕자들을 다 죽이는 거예요, 무차별로. 진짜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똑같은 죄악을 반복해요. 그때는 동료를 돌로 쳐 죽였는데 지금은 방금 전까지 주인으로 섬기던 왕자와 왕손들을 칼로 잔인하게 죽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못할 일이 없는 거예요. 엘리트들이, 지도자들이 전부 다 이런 일을 같이 저지르고 있어요. 믿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학벌이 무슨 소용이에요. 머리로, 안방에서, 탁자에서 배운 공부가 무슨 소용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 어렸을 때 아무리 학원을 많이 보내도 애들은 넘어지고, 무너지고 이러면서 상처 가운데 세상에 경험을 하면서 그거를 쌓아야지, 그거를 아무리 내가 자전거를 타는 거를 아무리 이론으로 배워봐 자전거 탈 수 있어요? 넘어져도 타야지. 이 사람들이 쓸모가 없는 거예요. 물론 이들은 그때와 달리 지금은 예후 편에 서서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일을 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뿐 그들이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게 아니예요. 그들은 늘 언제나 악을 저지르고 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조차 선하게 사용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선하실 뿐 그들은 언제나 악해요. 이 귀족들은 오직 자지가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이세벨을 두려워했고, 그 다음에는 이세벨을 죽인 예후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것이 진짜 좋아서 이세벨을 경외하고 예후를 경외한 것이겠어요? 자손심이 너무 상하지만 내가 내 자리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욕심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두려워 한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하니까 속으로는 생색이 얼마나 많이 났겠어요. 그러면 그 생색은 어디로 이어지냐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쏟아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약함을 악함으로 자기보다 약한 나봇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잔인함으로 이제는 아합의 자손, 자기한테 생사여타를 다 맡기고 있는 그 아합의 왕자들 다 죽이는 거예요. 이것이 회개 없는 인생의 결론이에요. 엘리트인 귀족과 장로들이 이런데 어느 누가 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정치인들 맨날 욕하지만 정치인의 수준은 딱 국민의 수준만큼 되는 거예요. 그들의 모습이 우리 자화상이에요. 여전히 우리는 지역 감정, 진영 논리 똑같아요. 욕할 게 아니라 거기서 내 모습을 보고 반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성장해야 훌륭한 정치인도 나오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구속사 말씀을 듣고 아직도 지역 감정, 진영 논리에 휩싸여 있으면 정말 소망 없는 거예요. 성경이 그대로 지금 얘기를 해주는데, 이걸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하는데. 가정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보기 싫은 사람 안 보면 그만일 수 있자나요. 그런데 우리가 싫은 사람일수록 더 잘보여요. 더 거슬려요. 그러면 거기 사로잡혀 사는 거예요. 판단하고 미워하고 욕할수록 더욱 그 노예가 되는 거죠. 오직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회개 뿐이에요. 미운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보내시는 편지예요. 내 모습 보라고 보내시는 편지예요. 그러니까 그 미운 사람이 곧 내 자신이에요. 나를 비추는 거울이에요. 그래서 미운 사람 통해서 내 자신의 미운 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해야 되는데 언제까지 '누구 틀렸다.' 그냥 '죽여라 살려라.' 이러시겠습니까. 사탕을 이만큼 놔뒀는데, 그러니까 다 와서 한 주먹씩 다 가져갔는데 거기다 거울을 딱 하나 갖다놓으니까 집었다가 다 도로 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게. 그런데 우리 어려서부터 하나님 보고 있자나요. 그러니까 위로받고, 경고받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하나님 믿는 것은 최고의 도덕과 윤리를 그래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노선이에요. 무서운 소식을 담은 편지같은 사건이 갑자기 이면 이를 악물고 버틸 게 아니라 내 약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해야 하고, 두려워하고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예요. 거기서 멈추지 말고 반드시 회개까지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주님은 왜 우리를 빨리 천국 데려가시지 않고 이렇게 수고스러운 인생에 머물게 하실까요?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내가 회개할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거예요. 내가 고집부리고 버틸수록 주님이 인내하셔야 되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이 고집 부릴수록 부모가 인내해야 되자나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회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사과는 미룰 게 아니예요. 생각날 때 바로 해야 되는 거예요. 오늘 가족과 지체들에게 사과할 것 있으면 바로 하시고, 하나님께 회개할 거 있으면 바로 회개하셔서 인생 최고의 기쁨과 자유를 맛 보시면 좋겠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요즘 너무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에게 비친 내 미운 모습은 없습니까? 회개하기를 미루며 반복하는 죄악은 무엇입니까?
3.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이루어집니다.
8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전하여 이르되 그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이르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9 이튿날 아침에 그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 자, 8절, 9절입니다.
자, 이스르엘 귀족들이 아합 자손의 머리를 가지고 이스르엘에 왔어요. 예후는 왕조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 머리를 두 무더기로 쌓아서 이스르엘 성문 앞에 두라고 했어요. 머리가 70개면 그런 머리가 들어갈 바구니가 있었나 몰라. 그런데 모두가 그걸 보고 두려워서 예후에게 절대 복종할 거라고 기대했겠죠. 그리고는 아침에 나가서 이러는 거예요. '이 끔찍한 짓을 벌인 사람은 이스르엘 백성도 아니고 자신도 아닌데 누가 이 끔찍한 짓을 행했노.' 이러는 거예요, 글쎄 예후가. 무섭지 않아요, 이 세상? 자기가 다 시켜놓고 '누가 이 사람들, 이 왕자님들을 누가 죽였소? 귀족들이 가슴이 철렁했겠죠. 시키는대로 주인을 배신하고 그 집 자손을 다 죽이고 증거까지 가지고 왔는데 갑자기 범인 취급을 합니다. 예후는 내시들이 이세벨을 죽게 해서 내시들과 이세벨을 이간질시켰자나요. 지금 왕자들도 자기 손 하나도 안 대고 스승의 손으로 죽게 했어요. 그런데 열어분들 누굴 믿겠어요. 하나님이 없는 사람 그 어떤 최고의 위치에 있어요. 최고의 직위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 있겠지만 정말 믿음의 대상이 아닌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예수 안 믿으면 절대로 지체가 못 돼요. 그러니까 은퇴하고 나서 결혼식 같은 거 가지 마요. 하나도 고마워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내가 부조하고 왔는데 나한테 연락 없다.'고 그냥,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예요.
10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 10절, 11절이에요.
이제 백성에게 예후는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여러분들 모든 사건에서 알아야 할 게 있다는 거예요. 항상 사건에서 남의 집 불구경하듯 '그런가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낼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 예후 입으로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인가요? 열왕기상 21장 2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라고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아합에게 속한 남자는 다 멸하신다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제 이루셨다고 해요. 그래서 아합 집에 속한 남자를 다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씀을 믿고 가면 좋은 사람이든지 나쁜 사람이든지 반드시 그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다는 거예요. 이거 믿으세요? 악한 자를 통해서도 내가 믿은 말씀을 이루신다는 거예요. 악한 자를 악한 날에 이렇게 심판을 하시자나요. 귀족들, 양육하는 자들 어떻게 됐겠어요. 70명의 머리를 들고 당연히 다 죽었어요. 심판을 예고하신 말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내가 오늘 말씀을 믿고 가는 게 얼마나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인지 몰라요. 여러분들이 이타적으로 살고자 하면 두려운 게 없어요. 그런데 늘 이기적으로 살고자 하니까 늘 두려운 게 많죠. 이스르엘 귀족에게 불현듯 이른 예후의 편지는 그들이 회개할 마지막 기회였어요. 그러니까 예후를 두려워하지 않고 덤볐더라도 죽었겠죠. 그런데 두려워하고 시키는대로 해도 잠시 후에 이렇게 다 죽어요. 그러니까 내 목숨을 구걸하고자 하는 것은 이 땅에서도 비굴하고 결국은 죽어요. 그들이 살 길은 회개 뿐이었는데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회개할 수 있는지 몰라요. 나봇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해도 담대하게 순교를 했지만 이스르엘 귀족들은 두려워 떨다가 결국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여러분, 세속사는 악한 역사이기 때문에 세속사에 소망을 두면 안 되는 거예요.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구속사를 써 가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미리미리 들어둬야 되는 거예요. 복음은 장차받을 환난이자나요. 큐티는 예방주사 맞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나는 무슨 일 생길까봐 우리들교회 안 가.' 뭐 이런 사람도 있는데. 정말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쥐새끼가 구멍에다가 머리 쳐 박고 '나는 고양이 싫어.' 이러는 거 하고 지금 똑같아요. 우리는 밑동잘린 나무인데 말씀을 미리 들어두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그러자나요. 모든 일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제가 부족해도 제가 죽어라고 말씀을 이렇게 날마다 읽고 가기 때문에 그냥 제가 잘난 게 없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들교회를 지키셨어요. 내가 정말 잘난 게 없어요. 그런데 평소에는 말씀 관심 하나도 없이 있다가 일이 생기면 그제서야 살길 찾아 삼만리 뛰어다니는 건 참으로 어리석고요. 물론 그렇게라도 돌아오면 사는 것이지만요. 이걸 미리 들어두면 얼마나 좋습니까. 글어둔 말씀이 있으면 놀라지 않을 수 있자나요.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말씀이 딱 기억이 나서 해석이 되자나요. 그런데 이걸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우리 목장이 있는 거 아니예요? 목장에서 대신 미리 말해주고, 대신 보여주고, 대신 해석주자나요. 말씀을 입에 딱딱 넣어주자나요. 보험은 그렇게 많이 드는데 왜 목장을 안 가시려고 해요. 목장만한 보험이 없어요. 최고의 보험인 거예요. 늙어서 은퇴하고 친구 사귀려면 사귈 수 있는 줄 알아요, 미리미리 사귀어둬야지.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전부 목장에 나가셔서 꼭 붙어가시길 바랍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기대했다가 뒤통수 맞은 일이 있습니까? 그 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졌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이번 주 매일 큐티로 예방주사 잘 맞겠습니까? 우리의 부족함을 보는 곳이 목장임을 아십니까?
목장 가서 치료는 무슨 치료예요. 목장 가면 싫은 사람 투성이에요. 그래서 가면 저 인간이 싫어. 그러니까 속으로 부글부글 끓으면서 얼마나 다 피로 갚주고 사신 공동체기 때문에 내가 잘난척 할 수 없는 거예요. 거기서 얼마나 내 교만을 보는지 몰라요. 교만을 보라고 목장에 가라고 하는 거예요, 치료는 나중에. 그러니까 이제 이런 평원님이 이런 처방을 좀 내리셨어요. 상담 전문가도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못해요. 의사가 진단을 내리기 전에 검사를 많이 하듯, 상담하기 전에도 검사 많이 하고 얘기를 충분히 듣고 나서 검사 결과를 이야기하는데 우리들교회는 처방을 막 하자나요. 저희가 조심해야 될 부분인데 우리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마음이 딱 닫혀버려요. 그래서 옳은 소리를 하는 게 좀 조심스러워요. 공감이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정답을 얘기하거나 처방을 내리면 마음이 닫혀서 공동체를 떠나가거든요. 저희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담에서 말하는 아줌마 상담이 있는데, 아줌마들은 말을 많이 하자나요. 그러면 이제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할머니 상담을 하래요. 할머니는 '우리 손주 그랬어.'하면서 토닥여주시는데 아줌마 이야기는 잔소리지만 할머니는 받아주는 할머니로 기억이 있자나요. 그렇게 들어주고 받아주면 본인이 이런 과정 자체만으로 치료가 되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줌마 상담이 아니고 할머니 상담을 하는 게 효과가 좋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면 목원들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면서 알아지는 게 있는 거예요.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없어서 다 병들었자나요, 그렇죠? 목장에 오시면 일단 이렇게 들어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 그래서 어떤 일이든지 '그럴 수 있다.'고 '붙어만 가라.'고 이 얘기만 해주시면 돼요. 말씀, 오늘도 이 말씀 얼마나 어려워요. '붙어만 가라.'고, '나도 몰라. 나도 모르는데 그냥 아는척하고 앉아 있는 거야.' 이러셔요, 그냥.
그런데 이제 그 할머니 상담이 좋을 때가 있지만 이것이 한부모 가정이 되면 할머니 상담에 한계가 있자나요. 무서운 역할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디 나가서 쓴 소리를 못 들어요, 늘 '우리 손주 최고.'라고. 그렇다고 또 무서운 역할만 하는 한 부모는 가정은 또 상처를 줄 수 있자나요. 언제나 '너는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되고.' 그러니까 목장에서의 상담도 할머니 상담, 아줌마 상담 골고루 단계마다 처방이 달라져야 되는데 이게 분별이죠.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이게 분별이 안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원들은 '우리들교회 목자라면서요.' 이러죠. 그런데 목자가 뭐 죄 졌어요? 맨날 목자가 되가지고 그냥 참아야 되고 인내해야 되고 돈 받는 것도 아닌데 내 집 내가면서 이렇게 하는데 끊임없이 목자에게 요구를 하고. 그러니까 목장마다 안 싸우는 목장은 이상한 거예요. 다 싸워야 돼요. 그래서 거기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야, 주님은 이런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그러니까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면 수 없이 제가 Reject를 경험하고, 그걸 했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아니까 어떤 것도 내가 수용을 했는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큐티를 해야 되고 양육을 받으셔야 돼요. 그냥 목장에서만 있으면 안되고 일대일로 양육을 좀 받으시면서 나를 직면하셔야 되는 거예요. 목장은 싸울수록 목장이에요. 안 싸우는 목장은 로터리 클럽이에요. 싸우는 목장은 굉장하자나요. 그래서 다 깨워서 목장에 매 주일 이상한 사건들이 다 배달이 되자나요. 집집마다, 뭐 사역 부서마다 배달이 될 때 오늘 이렇게 이거를 두려워하며 생각해야 되는데 '너 잘났다, 나 잘났다.' 이러고 싸우시면 이제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목원들도 목자 타령 좀 고만하시고 '목자님이 왜 그 모양이냐.' 이 얘기 좀 그만하시고. 하, 정말 내가 목자를 하도 들볶아서 미안해요, 뭔 죄가 있어가지고 이렇게. 죄송해요, 꾸벅.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이제 두려워하면서 '나 그까짓 것 하나도 안 무서워.' 이러지 좀 마시고, 두려워하면서 생각을 해야 되고 회개까지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큐티를 하고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돼야 되겠는데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그냥 '너 잘났다.' 이거 이제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가 해석을 잘 해서 다 해결하는 각 목장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