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보았다
2023년 03월 31일 일요일 요한복음 20:10-18
김양재 담임 목사님
큰 기대를 가지고 높은 전망대나 산 위를 올라갔는데 미세먼지가 많으면 실망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미세먼지와 날씨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팔복산 정산에서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부활하신 주를 보아야 한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주를 보았노라 하였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 내가 주를 보았다 하며 주님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 오늘 마리가 어떻기 주님을 보았는지 알기 원한다.
1. 문제 때문에 울 때 의외의 천사를 만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고 요한도 그렇다.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없어진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갔다고 생각해 너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말했다. 이렇게 지체들에게 알려야 한다. 안 믿는 친구에게 말하면 안 된다.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시신을 당장 찾아야 하는데, 제자들이 시신이 없어진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고, 시신이 없어졌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다는 게 없다면서 집으로 간다. 힘든 문제를 그저 회피하는 우리 모습과 같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 무덤 앞을 지키고 있는다.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그 앞에서 울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와 같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귀신까지 들린 밑바닥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도 밑동린 이런 인생이다. 소망이 없으니 두려운 인생인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고,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가느니 그저 무덤 앞에 있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이다. 믿었던 예수님마저 돌이가시고 그저 죽을 때까지 무덤에 찾아오는 것을 낙으로 살려고 했는데, 그 시신마저 도둑 맞은 것이다. 시신을 도난 당한 것을 알면서도 안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과 판박이다. 그런데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이 계시던 그 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 한편으론 너무 놀라고, 한편으론 소망이 생겼을 것 같다. 천사들은 이일이 울일이 아닌데, 왜 우느냐 한다. 근데 마리아의 입장에선 시신이 도난 당한것만 생각이 드니 이 질문을 알아 듣지 못한다. 우리도 힘든일이 생겼을 때 다 이렇게 내 입장에서 내 힘든 것만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힘든 일이 있는 죄인을 위해 이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적용) 어떤 문제 따문에 울고 또 올고 있습니까? 의외의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까? 누군가에게 천사 같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2. 의외의 환경에서 양육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내가 울고 있는 상황에서 내 뒤에 예수님이 서계시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내힘으로 돌이키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슬퍼할 정도로 찾았던 에수님인데 왜 마리아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내 자녀는 잘 나가야하고 내 남편이 바람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믿어도 내 고정관념이 굳세니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 같지만, 내 사건, 나의 유익때문에 우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다. 예수님이 없으면 누가 나를 사람대접해주겠나 했을 것이다. 환경이 어려우면 말씀이 깨달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눈 앞에서 부활하셨는데, 시신이 없어졌다며 울고 있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이 일어났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건이 온 것인데, 힘든 일이 생겼다며 울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사들과 같은 질문을 한다.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다. 니가 찾는 그 사람이 나라며 어린 아이를 가르치시듯 양육하시는 것이다. 날마다 오늘 말씀만큼만 살라고 하신다. 고난은 전력질주 하던 내가 낭떨어지에 떨어지지 말라고 막아주시는 안전바와 같다. 고난이 오는 것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던 것을 유턴하여 주님을 집중해보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앞에 두고 시신을 찾아달라고 한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사건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사건으로 오는 것이다. 남편이 술집여자와 바람펴서 만나고, 부도가 나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담임목사님을) 동산지기로 아니, 네가 무엇을 아느냐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착한 것이 아니고, 마지막까지 분별이라는 것이다. 외모를 보지 말고, 분별을 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으니,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마리아야 하고 부르신다. 그러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마리아가 내 힘으로 돌이켰을 땐 보이지 않게 되던 것이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니 게임 끝나는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 때문에 울고 있어도, 내가 되었다함이 없어도 내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예수님 앞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이 불러주시는 그 이름이 대단한 것이다.
적용)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신 고난과 말씀은 무엇인가요?
3.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사명 감당하게 하십니다.
주님이 돌이키시니,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그 순간에 길이 보이는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과 함께 했던 그 행복한 때가 떠올라 육신의 예수님을 붙잡고 싶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남편이 바람펴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남편이 돌아오니 그저 예배 안드리고 놀러다니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육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에게 가 내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소리친다. 우리는 사건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사명을 감당하는 것까지 가야한다. 내 인생의 결론은 성경이 이루어 지는 것이고, 끝까지 설경에 목이 말라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에 너무 목마른 것이다. 우리가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마리아 처럼 내가 주님을 보았노라고 말하고, 전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인생의 질곡을 벗어날 사람이 없다. 내가 주를 보았다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제자들과 주님의 가족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남편의 시체 찾아 지옥을 살 뻔 했는데 예수님을 만나 해석 받고 지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인생을 사시게 된 것이다. 사부님을 통해 훈련 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고 갈 때 어떤 말을 들어도 감당하실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적용) 놓치고 또 놓쳐도 또 불들려고 하는 육신의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내가 들고 싶은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보있습니까? 부활이 내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까? 남편, 자녀, 돈 등이 기쁜 소식입니까?
나눔
A: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어?
B: 회사에서 입소를 원하는 애들을 다 받아야 하나 이야기가 나왔다. 무분별하게 다 받으면, 아픈 아이들이 많아져 케어가 안될수 있어 고민이다. 현재도 애들 정신적인 케어가 문제인 것 같다. 아픈 아이들이 많으니,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 거 같다.. 인권 문제 때문에 대놓고 전도도 못하니 더 어려운 것 같다.ㅜ 이직도 고민 중이다. 불편하던 팀장님과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C: 이사를 하느라 일을 못했다. 남자친구도 나도 바쁜 한 주를 보내느라 예민해진 상태에서 만나 같이 양육 숙제를 했다. 남자친구가 집중을 못하는 게 보여서 짜증이 났다. 저번주에 참는 적용하겠다고 해서 계속 참아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남자친구가 성경 내용을 잘 몰라서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했는데 내가 자꾸 짜증을 내니 남자친구가 양육 숙제에 나한테 서운하다는 내용을 적었다. (남자친구는 양육 두 번 받는 기분일듯. 양육자의 역할을 뺏으면 안 된다. 과제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양육자한테 물어보는 게 맞다. 각자 과제에만 집중하기!)
A: 나는 일만했어ㅜㅋㅋ 지금 방송이 얼마 안남아서 사람들이 예민해. 나는 소리에 좀 예민해서 시끄러운 걸 되게 싫어해. 근데 일하면서 다들 쉼없이 싸운다. 팀장님이 작은 일도 큰일 처럼 행동하고, 말투도 날까로우니 짜증난다. 그런 상태로 야근까지 했다ㅜ. 그 와중에 전에 있던 곳에서 4월 중순에 다시 와달라고 해서 고민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진로와는 다른 느낌이라 고민이 되는 것 같다.
적용질문: 어떤 문제 때문에 울고 또 올고 있습니까?
B: 어릴적에 스스로 해쳐 나가야 하는 것들이 어려워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가 선생님이라,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공부를 못하면 망한 인생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나는 망한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들었다. 그런데, 커보니 아닌 거 같다ㅋㅋㅋ 공부 못해도 망한 인생은 아닌것 같다. 엄마가 칭찬을 잘 안 해주신다. 그거에 대한 상처가 좀 남아있는 것 같다. 칭찬을 왜 안해주냐 하면, 칭찬할 만큼 잘 해야지 라고 말해서 진짜 놀랐다. 그래도 어릴 적엔 공부 못하는 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을 아니까 좀 괜찮은 것 같다.
C: 내 힘으로 안되는 문제들 때문에 운다. 이사 때문에 pc 사용을 못하게 되니 양교숙제도 못하고 일도 못했다. 양교 숙제를 다 못한게 너무 화났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데도 참는 게 잘 안 된다. 이러다 나중에 하나님이 내 의가 꺾이는 사건을 주실까봐 무섭다.
A: 나는 내 죄가 안 보여서 우는 것 같다. 너무 교만한데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항상 내 의가 높다. 생활 예배 잘 드리고, 주일 예배 잘 드리는데 사건이 오면 화가 난다. 사건이 오면 바짝 엎드려서 내 죄를 봐야 하는데, 난 사건이 오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받아야 하냐며 화를 내는 것 같다. 사건을 사건으로 받아 드려야 하는데, 죄가 안보여서 운다. 팀장님이 화낼때 속으로 욕 엄청 하는데도, 내가 그걸 회개 해야 하는게 아니라, 욕 할만 하니까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참 죄인인거 같다ㅜ
적용질문: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신 고난의 사건은 무엇인가?
B: 앞에 적용 질문이랑 이어지는 것 같다. 엄마의 교육 때문에 어릴 적 자존감이 낮았다. 칭천을 받아 본적 없으니 남을 칭찬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은 자존감이 많이 올라왔고,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게 되고, 말씀을 또 듣다보니 회복이 된 것 같다. 창세기 말씀 중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힘이 되었던 것 같다.
C: 일 때문에 교회를 떠났었다. 하루도 못 쉬고 일하는 환경이 너무 힘들었다. 번아웃이 와서 엄마한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동시에 동생 사건까지 드러났는데 일 핑계로 외박하며 죄짓던 것들과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주일성수를 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르며 내 죄 때문에 동생이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을 살다보니까 다시 공동체에 돌아와서 수련회가고 예배 드리는 게 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하나님 없이 사는 걸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A: 나는 엄마의 사건 같다. 나도 가정에서 나만 믿는 사람이 아니였다면, 주일 성수를 타협 했을 거 같다. 나는 교회를 떠나지 않으니, 주일 성수는 타협해도 되지 않을까? 했을 거 같다. 가족 모두가 다 믿음이 있었다면, 예배의 소중함을 몰랐을 거 같다. 감사까지는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나 불신결혼 했을 거 같다.
기도제목
A
1. 내게 온 고난을 나를 살리는 사랑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2. 일이 바쁜데 체력과 건강 지켜주세요
3. 동생에게 사랑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B
1. 한주간도 말씀 보며 적용할 수 있도록
2. 심신이 지치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 얻을 수 있도록
3. 아빠가 부부목장에 나갈 수 있도록
4. 가정의 문제가 잘 회복 되어져나가도록
C
1.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2. 남자친구도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3. 내 힘, 내 열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도록
4. 남동생의 주일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D
1. 4월말에 이사가는데 이사 무탈하게 할 수 있도록
2. 4월에는 교회 한 번이라도 갈 수 있도록
E
1.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하셨는데 잘 회복될 수 있도록
2. 신앙생활에 소홀하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