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 왕하 9 : 11 - 22 )
해마다 세계평화지수가 발표된다. 2023년 결과를 보니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아이슬란드라고 한다. 세계 163개국 중 대한민군은 43, 북한은 149번째라고 한다. 북한에도 하루 빨리 복음의 등불이 비쳐줘서 남북이 편화롭게 되기를 바란다.
평강, 평화, 평안 다 다르게 쓰이지만 원어로는 샬롬이라고 한다. 우리가 얼마나 평안을 좋아하면 인사로도 쓰이겠는가.
그런데 살면서 세상에 참 평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니 자꾸 엉뚱한 것을 쫓는다. 우리는 예수님을 쫓아야 하는데 자꾸 딴 것을 쫓는다.
선지자의 기름을 붓고 왕이 된 예후가 평안하냐~ 는 질문을 받고 준다. 예후의 주군이었던 요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예후는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며 찬물을 끼얹는다. 요람의 부하가 예후에게 또 물으니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아들이 죽었을 때 평안입니다 라고 외쳤던 수넴여인과는 너무 다르다. 평안이 나와 상관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평안이 나와 상관이 있느냐 첫번째
1.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 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11 - 12절
: 본문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가 영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어두운 시기의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일까? 두 왕국에 영적 어두움의 빛을 비춰줄 하나님의 대책은 북이스라엘 군대장관 예후였다. 예후는 엘리야이후 15년 뒤 등장했는데 엘리야는 때가 되지 못해서 예후에게 기름 붓지 못하고 엘리사에게 전했다. 엘리사는 계속해서 하사엘과 예후를 주목했을 것이다. 본문을 읽어보면 예후도 아합에게 했던 심판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때를 보며 상황이 무르익기까지 기다렸다. 이 때 예후가 모반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고 엘리사도 그것을 알고 준비했다. 하나님의 뜻은 갑자기 불이 내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이 때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믿음의 사람으로 분류되진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지러운 시대 일반은총도 실종됐기에 잔인함의 개혁으로 쓰임받은 왕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지자를 멸시했다. 그러니까 선지자의 제자보고 그 미친놈이 뭐라고 했냐고 묻는다. 이 예후 공동체에게 따라 다니는 말은 미친자이다. 예후는 선지자의 제자가 와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니 처음에 어리둥절했으나 신속정확하게 파악하려 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냐면 자기 부하들이 몰래 일을 벌였구나! 모반 모반 하더니 진짜 벌였네 깜찍한 것들, 내가 속아주는 척 해야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물어보니 알면서 왜그래~ 한다. 하지만 장수들의 반응이 심각하다. 우리는 그 미친놈과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예후가 장난이 아님을 알고 이것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구나 깨닫고 자기를 왕으로 세웠고 했던 말들을 알려준다. 미친놈이라고 무시하며 그가 한 말은 너무 궁금해한다. 군인들도 깜짝 놀랐다. 워메 이게 무슨일이야~ 전부대가 술렁였을것이다. 어떻게 반역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 사람들은 요람보다는 예후장군을 자기들의 주군으로 여겼던 것 같다. 옳고 그름을 외치며 다들 쿠데타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3 - 14절
: 성경은 이 때가 언제인지 친절하게 다시 한번 알려준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고 왕이 된 때가 요람이 출정했다가 아람군에게 부상입고 이스르엘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니 왕을 보위하는 친위대만 이스르엘에 왔고 주력부대는 그대로 길르앗 라못에 있었다. 그러니 요람이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로 피한 사이 예후가 회군해서 반역하는게 이상할 일이 없다. 혼란의 시기에 모반을 생각하는 예후이다. 엘리사의 제자를 미친자라고 하면서도 모반을 위해 명분이 필요했다. 그동안 엘리사가 엄청나게 기적을 많이 베풀었던 것을 기억하고 속으로는 엘리사를 인정했을 것이다. 이럴때 하나님의 계시를 이용해서 합법적인 혁명으로 만든다. 이것이 모반이어도 나에게 유익이 된다면 당장 따라가는 것이 배반이고 기회주의이자 군중심리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미친자가 하는 소리로 듣는다. 예수 믿는 자는 미친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그리고 이용당하고 미움당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때~ 요한복음 큐티하며 계속 들었다.
인간은 악하고 음란한데 선한 것 하나 없는 군중심리는 철저히 자기 유익을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예후는 왕이다! 외친다. 어쨋든 예후는 이 예언을 듣고도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한다. 대담하면서도 지혜롭게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데 소위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것 같다. 어차피 이것은 엘리사가 허락한 일이니 밀어붙이자! 하며 자기 의로 모반을 일으킨다. 그래서 예후 왕조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후 스스로 만들고자 했다면 요람의 부상부터 시작해서 치료하러 이스르엘로 갔던 것, 언제 군대를 일으킬지, 명분은 어디서 찾을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회사에서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내도 이것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얼마나 머리가 아프신가요? 기업가들도 1조가 목표라고 하면 1조를 열심히 고민하고 머리굴리고... 인생은 평안할 틈이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예후가 만든 상황이 아니다. 우연이 어디있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우연은 없다.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다. 요람을 전쟁에 나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 요람이 부상을 입게 한 분도, 요람이 군대를 예후에게 맡기고 이스르엘로 치료하러 가게 한 분도, 선지자의 제자를 보낸 분도, 장수들과 군대의 마음이 예후에게 향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상황을 만들어 예후에게 주셨다. 그래서 예후가 이 엄청난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후는 자기 스스로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굽은길, 내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은 평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북이스라엘의 악을 하나님은 악한 자가 쟁취하게 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과 반대되는 아합의 집 길이다. 어떤 경우도 여러분이 복수하려 하는 것은 성도로서는 가장 미련한 일이다.
우리는 내 감정, 내 생각대로 원하는 상황을 내 힘으로 만들어야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내 힘을 키우려고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모른다. 내가 성공해서 복수하고, 서울대학가서 복수하고 뭐해서 복수하고~
한 목자님이 어릴적 아이들에게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서울대학가서 원수갚아야한다고 얘기하며 가족신화를 부르짖었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가 노름해서 땅을 날려먹었기에 우리의 옛 영광을 찾자! 를 외쳤다고 한다.
우리가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능력을 갈고 닦는 노력은 귀하나 그 목적이 내 행복에 있으면 결코 평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이다. 하나님꼐 둬야 행복과 평안이 따라온다. 거룩과 행복을 이원론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저 목사는 왜 맨날 행복이 아니냐고 하냐~ 하지만 우선순위를 하나님꼐 두어야 한다. 평안한 사람은 잘 기다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뜻하신 떄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뜻한 때가 아니다. 내가 언제 나을까 승진할까 잘될까 나는 왕이 되고 싶은데 이 왕이 되고 싶은 상황을 하나님이 언제 열어주시나 하면 안된다.
선지자의제자는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잘 사는 사람이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계속 자꾸만 반복적으로 계속!! 내가 특별하려 되려하기에 여러분들 가운데는 평안이 없다.
지금 내게 주신 사명의 자리를 감사하며 지키기 보다는 날마다 내가 이거 해야하는데~ 그러니까 여기와서 뭐든지 잘하는 것도 결국 우리 식구 잘되라고 그래서 내가 목장도 하고 다하는데 된게 뭔데!! 내가 목장을 몇년을 왔는데!! 입이 있으면 말해보슈!! 이러는 것이다.
나에게 주신 부르신 사명 그 뜻을 감사하게 누려야한다. 우리가 감사하는 만큼 평안해진다. 그렇게 가장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이 딱 맞는 상황에 한사람을, 환경을 허락해주실 것이다.
우리들교회 목장다니고 예배드리며 평범하게 삶을 살다가 이것이 비범인 것을 알았다는 나눔도 있었다.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주시면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그 환경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살면 된다.
열어주시는 상황마다 감사하며 하루하루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진정한 평안이다.
내게 어떤 상황이 오면 늘 평강을 바꾸려고 하니 평안이 없다.
적용
요즘 평안합니까? 불안합니까?
내 힘으로 만들고자 하려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상황에 순종하며 살았더니 평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2. 헛된 평안을 구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15절
: 뜻밖의 상황이 열린 예후가 길르앗 라못에서 군대의 충성 맹세를 받으며 즉위식을 마쳤다. 예후가 왕이 되자마자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다. 환경에 장사가 없다. 어제까지 군대장수였는데 이제 모든 군대를 휘령하는 왕이 됐다. 권세는 하나님이 영생때문에 구원때문에 주시는 것인데 예후처럼 그러지 않는 사람을 보기 힘든다.
왕이 되면서 고상한 척을 하는 예후이다. 폼나게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하며 명령을 한다. 그러면서 길르앗 라못에서 아무도 이스르엘로 도망가지 못하게 봉쇄한다. 반란의 소문이 요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상황을 통제한다. 자기 명령으로 자기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 불안이 시작됐다. 불안하니 가만히 앉을 수가 없다. 성 출입을 봉쇄하고 곧장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간다. 길르앗 라못에서 서쪽으로 70km이니 병거로는 빠르면 4시간 늦으면 6시간 정도 걸리는데 예후는 당연히 병거를 빠르게 몰았다. 미친듯이 빠르게 병거를 모는 것은 예후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평소에도 스피드광 예후인데 나라를 뒤집어야하는 명분이 생겼으니 요람을 빨리 죽이러 빨리 가야하는 지금은 더 미친듯이 갔다. 심판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들킬까봐 실패할까봐 두려워한다. 문제와 사건이 없는 상태를 평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건 세상에 없다. 불안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과 수고는 더욱 더 깊은 불안을 일으킨다. 문제를 문제로 덮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신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힘으로 눌러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포장하는 평안이다. 그래서 이 힘을 얻으려고 그렇게 수고를 한다. 헛된 평안을 구하면 참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으니 기쁨이 없다. 날마다 불안하다. 미치게 병거를 몰아도 예수 이름으로 구한 것이 아니니 항상 더 올라가야하니 불안하고 평안이 없다. 예후가 병거타고 달려오던 그 시각, 이스르엘의 상황은 어떤가?
요람은 누워있다. 부상을 치료하기도 해야했지만 병거 탈 정도로 회복되어있는데도 누워있다. 엘리사가 있었던 여러 사건을 들어봐서 알지만 요람은 심각한 게 없다. 불안이 많아도 문제지만 요람처럼 없어도 문제이다. 평생 귀하게 컸기에 어려운 것은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대로 저지르기만 한다. 분별을 전혀 못한다. 부하들이 요람을 버리고 전부 예후 편에 서는게 당연하다. 성경은 남유다 아하시야의 상황도 빼놓지 않고 강조한다. 외삼촌 요람을 보러 이스르엘로 왔다고 알려준다. 심각한 일이라는 것이다. 가족신화에 물들어 다윗의 길을 버리고 아합의 집 길로 간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인생 마지막 종착지가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이다. 가족신화 좋아하다가 다 멸망하기 직전이다. 슬프고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보고는 가족 신화에서 나오라고 경고하신다. 가족이라고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 가족을 객관적으로 봐야하는데 이게 그냥 전국민이 전세계가 어렵다.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쓰실 것이다.
17 - 19절
: 평안이 제목에 나온게 일리가 있죠? 이스라엘 왕의 별궁이 있는 제 2의 수도 이스르엘이다. 당연히 적국의 침입을 경시하는 망대가 있었다. 파수꾼이 경계를 서고 있는데 아군이 달려오고 있었다. 길르앗 라못에서 오는 부대였다. 바로 왕실에 보고를 했다. 그러자 요람은 한 사람 말을 태워 보내어 맞이하라고 한다. 평안하냐~ 전황이 어때?? 물어보라고 한다. 그게 궁금하긴 했나보다. 그런데 평안하냐고 물을만한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 사람에게 물어야하는데 자기를 죽일 사람에게 평안을 묻는다. 우리는 누구에게 날마다 평안을 물어야할까 계속 나에게 좋은 소식을 갖고 오지 않을까 평안을 찾지만 요람 자체가 평안을 물을 자격이 없다. 우상 숭배 죄 가운데 있으면 평안을 엄청나게 찾는다. 별일 없냐고 날마다 묻지만 죄를 짓고 있기에 다급해지니 평안을 더 찾는다.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엄마 별일없죠? 아버지 별일없죠? 이것밖에 여러분들이 인사할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부모님도 큐티하셔서 그날 말씀으로 인사를 주고 받아야 한다. 오늘 우리보고 다 하나가 되라고 하셨는데 엄마 아빠는 하나가 됐슈?? 이거 하나만 해도 대단한 안부이다.
요람이 앉으나 서나 평안을 찾는다. 그렇다고 찾아지는가?
내가 깨끗하고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평안이 있다.예후는 요람의 전령자에게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다. 파수꾼은 정확하게 파수꾼 역할을 하며 미치게 병거 모는 예후에 대해 예고를 한다. 전령자는 예후의 카리스마에 압도가 되어 예후에게 항복했다. 그 쪽으로 붙었다.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요람은 들을 귀가 없어서 손에 의지하던 장관도 백성에게 밟혀 죽었다. 자기가 가장 신뢰하던 예후에게 배반당하고 죽기 일보 직전이다. 누구에게 배반당하셨나요? 여러분들의 삶의 결론 아니겠어요? 예후의 병거까지 달려간 연락병, 평안하냐는 왕의 질문을 전한다.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두번이나 예후가 뭐라고 대답하는가?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하며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한다.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곳이 전장이라고 한다. 구시대의 왕 요람을 새시대의 왕인 자신이 제거할 것이라는 것이다. 승리는 자기 편이니 죽기 싫으면 내 편에 서라고 위협한다. 그래서 합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멀리서 살펴본 파수꾼이 곧바로 왕에게 보고한다. 요람은 연락병을 다시 한번 보내라고 했지만 그 연락병도 다시 예후 편이 된다. 자기는 이스르엘 궁궐에 누워있지만 죽어도 그 아람과의 전쟁만큼은 이기고 싶어한다. 아버지 아합의 명예를 살리기 위한 그래서 벌인 전쟁이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것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수고없이 열매만 바라는 모습이 요람의 모습이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은 없다. 우리는 십자가는 너무 싫고 영광은 너무 좋아한다. 예수님도 나사로 하나 살려주려면 그때부터 예수님을 죽이는 모의가 시작됐다. 한 사람을 살리려면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 그런데 날마다 입으로 평안을 외친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이것이 평안이 아니다.
우리는 적용없이 교회 나오게 만들고 싶고 목자되게 하고 싶다. 이게 다 문제없는 평안을 바라는 것이다. 헛된 평안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에 기뻤다 슬펐다하고 행동 하나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평안이 없다. 목장에서 말 한마디를 못드러낸다.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사건이 와도 평안하려면 십자가 업는 평안은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참된 평안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십자가가 없는 것이 평안이 아니다. 아무리 험한 십자가라도 주님때문에 기꺼이 지는 것이 평안이다. 그런데 진짜 목장에서부터 분쟁이 일어나면 여러분들의 구원은 멀리멀리 떠난다. 목장에서부터 평안을, 십자가를 연습하셔야 영광이 있다. 자꾸 옳고 그름을 따지시면 안 된다. 십자가 지는 적용과 순종에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
적용
십자가 없이 얻고 싶은 헛된 영광은 무엇입니까?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가지게 되니 불안한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과 함게 기꺼이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졌는데, 원하던 곳에 갔는데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불안해한다. 원하던 아파트에 갔는데 횡단보도가 있으니 우리 애가 거기서 사고 당할까봐 너무 불안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제 초원님이 우리 남편이 뭐가 망해도 말씀이 들리게 좀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결국은 다 망해서 말씀이 들린다고 나누셨다.
우리가 집에서 가족간에 십자가 질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60-70대 부목자분들이 십자가 짐 같은 고난이 다 사명이 됐다. 다 행복하여라~ 하는 것은 십자가 없는 영광이다.
어떤 분은 아들에게 폭행당한 부목자, 50대 늦깍이가 교제중이고, 이혼 재혼, 또 이혼, 첫부인 재결합한 십자가, 딸의 조현병으로 의로운 삶에서 벗어난 나눔, 어머니 소천으로 머리깎고 주님을 대적한 나눔, 비행아들의 수감, 사채 조폭 건달로 살아오다가 목장 통해 변한 부목자 나눔도 있다. 너무 살기 싫었는데 이것이 부목자분들 나눔이니 사명을 받으시고 해석한 것이다.
우리는 밑동 잘린 나무이니 주님 만나는 것이 최고이다.
이분들에게 구속사의 말씀이 나이아가라 폭포가 거꾸로 올라감 같은 변화와 새생명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들 위해 기도하다가 천국 가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아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데리고 가며 내 탓으로 여기는데.
그런데 내가 아무리 잘해도 우리 아들이 그런걸 어떡해요~ 나는 다 싫어요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은 십자가를 버리겠다는 것이다.
3. 악을 끊지 못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20 - 21절
: 파수꾼이 요람왕에게 상황을 다시 보고한다. 두번째로 보낸 연락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가로 중요한 보고를 하는데 다가오는 사람이 왕이 그렇게 좋아하는 예후 장군이라고 한다. 예후처럼 병거를 미치게 모는 사람은 없었다. 보고를 듣자마자 요람이 너무 좋아서 병거를 타고 마중나간다. 게다가 같이 있던 유다왕 아하시야가 같이 나선다. 다 죽으려고 환장한다. 가족신화로 두 왕이 얼마나 꼭 붙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하시야나 요람이나 고난이 없으니 분별을 못한다. 우리끼리 화목하면 다야 한다. 이것이 아합집의 특징이다. 그런데 왜 요람은 병거를 직접 타고 예후에게 갔을까? 사마라아성이 아람군에게 포위당했을때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다가 죽었던 장군이 있었다. 그때는 요람이 그 장군을 그의 손에 의지했다고 했다.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장관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예후였다. 예후는 아합때부터 완전 신임을 받던 아합집의 가신이었다. 왕명을 받고 알아보러 간 부하가 둘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왕이 되가지고 눈치를 채야하지 않는가? 상식아닌가? 예후에 대한 요람의 신뢰가 너무 두터워서 철썩같이 믿는다. 상식적이지 않는데 믿는다. 요람이 엘리사 말 안 듣는 것 외에 잘하는 거 또 하나가 사람을 의지하고 믿는다. 자기가 좋아하기로 믿은사람은 끝까지 좋아하는것이다. 인간적으로 매력적이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사람믿고의지하다가 망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으로 사람 믿는 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의 정치가 사람을 믿는다. 우리는 친구 아이가 하며 다 믿는다. 한편으로는 의심이 됐기도 하면서도 설마설마 하며 내가 나쁜놈이야 내가 어떻게 예후를 의심해 이러는 것이다. 미숙할수록 정에 끌린다. 그럴리가 없어~ 여러분 항상 그럴리가 있습니다. 항상 객관적으로 봐야한다. 얼마나 얼마나 큐티를 하면 똑똑해지는지 모른다. 너무나 지혜로워진다.
예후는 요람을 죽이러 칼을 품고 온다. 하지만 요람은 그저 예후가 반갑다. 그런데 둘이 만나는 장소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이다. 아합과 이세벨이 이 토지를 뺏으려고 나봇을 죽였다. 아합집의 교만과 탐욕이 폭발한 곳이다.하나님이 병거의 속도와 시간까지 계산하셔서 나봇의 토지 위에서 만나게 하신다. 말씀이 응하고 있다. 틀림이 없으시다. 그러니 날마다 큐티하며 퀘스쳔 타임하면 그것이 바로 가장 최고의 성공 비결이다. 최고의 비범이다. 아침마다 말씀 읽고 내가 잘 몰라도 말씀대로 대답하고 결정하겠으니 도와주세요 성령님 해야 한다.
요람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다 전세계에서 왕을 하고 있다.
22절
: 요람은 예후가 그저 믿을 수 있는 장군으로 보인다.길르앗 라못의 전황만 궁금하다. 이겨서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직접 만나 평안하냐고 묻는다. 그런데도 평안에 미련이 남아서 평안하냐고 묻는다. 평안이 너무너무 갖고 싶다. 어떤 수고가 없지만 평안을 얻고 싶다. 이 질문에 대한 예후의 대답은 무섭고 단호하다. 예후는 직선적이고 잔인하고 개혁적이다. 병거를 몰고가도 미친 스타일로 몬다. 금방 알아볼 정도로 스타일이 있다. 특히 왜죠? 예후는 이제 요람의 부하가 아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경쟁자가 됐다. 네 어머니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바로 그 여자 이세벨 때문에 어찌 평안이 있겠느냐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후의 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도 대대로 내려오는 악을 인정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으니 반역자를 통해 말하게 한다. 요람 당신이 악을 끊지 않고 이어가며 유다까지 악을 물들이고 있으니 어찌 평안이 있겠느냐~ 한다. 그렇다고 예후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가리려고 너무 열심히 자기 의를 세운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인다. 이것이 힘써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열심이다. 예후에게 이 일을, 개혁의 일을 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엘리사가 피를 묻히면서 요람을 처단할 수 없다. 악한 일은 악한자게에 하게 해야 한다. 평화의 사도 본헵퍼 목사님이 히틀러 암살에 관여하셨고 미리 발각되어 순교자가 되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히틀러를 심판할 다른 악의 세력을 하나님은 준비하신다. 아무리 아합과 그의 아들이 악을 행해도 엘리사가 직접 피를 볼순 없다. 그래서 이 세상 왕도 하늘이 낸다고 한다. 선지자의 제자는 부름받고 예후는 그 제자에게 기름받아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다. 좋은역할, 나쁜역할로 쓰임받는다. 예후는 너무나도 악한 시대에 심판의 역할로 쓰임받았다.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으나 이 악한 북한을 위한 심판의 도구로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한이 쳐들어가면 안된다. 악한 자는 악한 자가 심판해야 한다. 좌건 우건 내가 복수하면 안된다.
한 의사선생님이 절대순종에 고민하시며 나누셨다. 사직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민 한사람으로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맞겠구나 생각이 든다고 나누셨다.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 것 같은데 많다. 돈이 제일 그렇다. 이것만 주시면 제가 다음에는 주를 위해 뭐든지 할게요 이렇게 찾는 이것이 우리에게 다 있다. 바로 이것이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이다. 끊어야 할 술수이다. 악을 끊지 않으면 평안할 수 없다. 남편과 아내 바꿔타면 평안할 것 같은가? 교체선수는 평안을 줄 수 없다. 헛된 평안이다. 이세벨의 악이 아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끊을 수 없는 악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 봉사는 교회를 위한 일인 것 같으나 섬기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계산상으로는 절대 못한 일이다. 이 일을 지체들과 함께 하며 내가 끊지 못하던 악이 다 끊기는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의 몸을 함께 섬기며 함께 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여러 봉사, 목장 다른 사역에서 여러 봉사로 섬기는 것이 가지로 포도나무 안에 거하는 것이다.
봄이 왔다. 여러 봉사 하시면서 끊어지지 않는 악을 다 끊어내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양육과제하며 꺠닫는 것이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과 녹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나누셨다. 그동안 부부목장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더니 녹취하는데 2.5일 걸렸다는데 전에는 4일 걸렸는데 너무 뿌듯하다고 나누셨다.
적용
절대 믿었다가 배반당한 사람은?
이것만 있으면 평안할텐데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 끊지 못한 악은 무엇인가요?
교회에서 어떤 봉사로 섬기고 있습니까?
이분은 법대를 나와서 의사가 된 집사님이시다. 양육을 받으면서 독후감 면접에 대해 쓴 것이다.
작년에 저는 주일에 목요일마다 일했다. 공부방 비용이 올랐고 당시 남편의병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남편에게 상의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파트타임 의사를 구한다고 수요예배 직장예배에 무리를 안주는 곳을 권해서 이력서를 썼다고 한다. 나는 검진센터에만 일해서 휴직기간이 길고 애들도 잘 못돌본다~ 두렵다 그렇지만 쌍둥이 한꺼번에 중학생이 되니 교육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저는 목욜만 가능하다고 했더니 바로 다음주부터 일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와서 얘기했더니 목자님이 면접책대로 하셨네~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게 일하겠다는 사람의면접이냐며 그런데 어떻게 붙었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하루를 위해 전날에 집안일 마무리하고 아이들 일찍 재우기 위해 전쟁이고 처방도 자기가 힘드니 개떡같이 처방해도 찰떡같이 처방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일하는 동안 힘들어도 힘들어하는 직원에게 큐티책을 전달해줬고 말씀과 주님을 붙들었기에 남은 날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나누셨다. 이 분이 평안이 있겠는가? 요람왕이 평안이 있겠는가? 결국 아이 셋을 키우니까 남편이 할 수 없이 페이닥터 주는 병원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첫번째는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고 해서 없다. 또 헛된 평안을 구한다. 또 악을 끊지 못한다. 이러면서 매일 평안을 부르짖는다. 이 말씀이 이해되세요? 여전히 어렵습니까?
본문은 달라도 날마다 똑같은 말씀입니까?
<기도제목>
그림
1. 양육 전에 양육숙제 티스쿨에 올리기
2. 출근할 때 잘 배우고 잘 적응할 수 있길
3. 이번주 저녁에 집에 오면 건강식으로 챙겨 먹길
유진
1. 이번 주 토욜 자격증시험 합격할 수 있길
2. 팔복산 기도회 1번은 갈 수 있길
3. 하나님이 우선순위되는 신교제할 수 있도록
4. 은퇴하신 아빠에게 잘 대해드릴 수 있길
소아
1. 감정컨트롤 할 수 있길, 뒷담화하지 않길
2. 독촉전화에 잘 대처하길
3. 더 나은 선택할 수 있길
4. 팔복산 기도회 갈 수 있게 깨어주시길
이지현
1. 육적 절제할 수 있도록(소비, 식단), 운동하기
2.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3. 정죄하지 않길
은미
1. 내 불안과 걱정을 힘들여 덮으려 하지않고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도록
2. 주시는 진짜 평안 누리는 한 주 되기를
우지현
1. 엄마 건강 지켜주시길
(4/3 항암주사 3차 맞으시는데 효과 있도록)
2. 회사에서 내가 유다임을 인정하도록
3. 신결혼
슬아
1. 돈을 좀 헤프게 쓰는거 같은데 절약하는 습관 가질 수 있도록
2.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와 찬양으로 풀 수 있도록
3. 우리가족 구원
4.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