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7 딱풀 제자가 됩시다
요한복음 15:1-10
최성준 목사님
지금까지 제가 부부목장을 인도해 오면서 목원 집사님들과 1년에 한 번씩 꼭 하는 적용들이 있습니다. 다같이 하는 적용들인데요. 첫번째로는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과 아내 확인하고 이름 바꾸기. 두번째로는 부부목장이니만큼 우리 남편 집사님들의 적용인데요. 아내에게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요.'고백하면서 꽃다발 선물하기. 이렇게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 한 가정이 있는데요. 이 집사님 부부는 집에서는 서로 대화를 안 하시는 부부입니다. 네, 혹시 이런 부부 여기 계신가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원래 부부는 대화하는 거 아니지 않아요?' 대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이제 핸드폰에 적어 놓고, 노트에 적어서 그 날만을 기다렸다가 부부목장에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부목장이 얼마나 늦게 끝나겠습니까? 이 목장이 시작되면 남편은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말, 아내는 남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막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서로 보고하는 게 아니라 저를 보고 하거나 다른 집사님들을 보고 하는 거예요. 그 가정 때문에라도 목장을 한 주도 쉴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날만 유일하게 대화하는 날인데 입에 거미줄 쳐 질 수도 있자나요. 네, 그러니까 절대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가 꼭 하는 적용, 첫번째 적용하는 날이었어요.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과 아내 이름을 확인하고 바꾸는 날이었는데, 참고로 이 날은 예고하고 오면, 또 불출석하는 우리 성도님이 생기니까 성령의 감동을 따라, 제 맘대로, 주일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적용을 하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이 대화가 필요해 부부, 아내 집사님한테 먼저 물어봤어요. '집사님 남편 이름이 핸드폰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나요?'라거 물어봤더니 말씀을 계속 못하시고 머뭇거리시기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유, 괜찮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된다.' 그랬는데도 막 머뭇거리시고 말씀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욕이시냐?' 그랬더니 뭐 이렇게 말씀을 못하시다가 결국 하셨어요. 아내 집사님 핸드폰 속 남편의 이름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 저는 그때 알았어요, 핸드폰에 이름이 이렇게 길게 저장할 수 있다는 거를. 그날 모든 집사님들이 숨 죽여 듣다가 빵 터져가지고 배꼽 다 빠지도록 웃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밤에 전화 오면 더 무서웠을 것 같아요, 사단한테 전화 오니까. 집사님은 그날 적용으로 사단에서 하나뿐인 내 남편 ❤️로 저장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걸 못 바꾸시더라고요. 그래서 옆에 집사님이 바꿔 주셨어요. 그날 그렇게 바꾸실 때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목사님 핸드폰에 이렇게 뜨면 더 무서울 거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설교 준비하다가 제가 아내한테 물어봤어요. '여보, 여보 핸드폰에 나 어떻게 저장되어 있어?' 그동안 사실 목장에서 수 년간 목원 집사님들과 함께 적용해왔으니까 저는 이제 설교 준비하다가 확인 차원에 물어봤습니다. 당연히 뭐 하나뿐인 내 남편 ❤️ 똑같겠죠. 저는 추호도 의심 없이 그냥 점검차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나한테 전화해봐.' 이러더라고요. '옆에 있는데 그냥 보여주면 되지 뭘 전화까지 하라고 그래.' 그랬더니.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뜨더라고요. 보이시나요? 최성준도 아니고 ㅊㅅㅈ이었어요. 최근에 이제 육아 문제로 전쟁을 크게 한 번 치렀는데 그 날 아내가 핸드폰에 이름을 바꿨대요. 그래서 이름 세 글자도 꼴 보기 싫어가지고 사실 초성도 아까웠지만 그냥 이렇게는 표현해야 할 거 같아서 ㅊㅅㅈ 이제 이렇게 했대요. 참 할 말 없는 인생입니다. 이 얘기를 금요일에 한 전도사님과 나누었는데 그 전도사님이 그때부터 저를 '초성준 목사님'이라고 그렇게 부르세요, '초성준' 사랑하는 성도님들 핸드폰에 남편과 아내가 여러분 어떻게 저장되어 있으신가요? 이렇게 가족끼리 앉으신 분들이 많이 보이시는데 예배 후에 한 번 확인해주세요, 내 이름 어떻게 저장되어 있나. 이번주 목장에서도 솔직하게 한 번 오픈해 보시죠. 그동안 내 남편, 내 아내가 어떻게 저장되어져 있는지. 폰 바꾸시지 마세요. 술로, 외도로, 도박으로, 폭행으로, 또 성병으로 아내 집사님들께 참 많은 상처와 아픔만 남겨줬던 남편 집사님들이 적용으로 '이런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고 고백하면서 꽃을 선물했던 적용 사진인데요.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아내 집사님들의 반응이 결혼하고 꽃 처음 받아본다.', '나는 결혼 전에도 못 받아봤다.', '목자님 덕분에 남편한테 꽃도 받아보고 참 이게 왠 은혜냐. 목장 최고다.' 이런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봄도 되었는데 우리 사랑하는 남편 집사님들, 사랑하는 아내 집사님들께 이렇게 오늘 사랑 고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고 오늘 꽃 한 번 이렇게 아내들한테 안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꽃은 생각해보면 참 너무나도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꽃다발이 사실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어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땅, 생명을 공급하는 그 줄기, 그 근원으로부터 이미 꺾여졌고, 잘려져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꽃다발이 아무리 예뻐도 1년 이렇게 안 갑니다. 일주일 가면 많이 가죠.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도 참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의 공급처, 정말 예수님께 딱 붙어서 매일매일 공급받아서 살지 않으면 살아있는 듯 보이나 실상은 죽은 존재로 이제 살게 된다는 거죠. 아무리 겉을 화려하게, 여러 가지 업적과 성취들로 나를 치장한다 해도 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떨어지는 그 순간, 주님과 연결되어져 있지 않은 그 순간 우리는 죽는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가 생명력 있는 존재로, 그런 인생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오늘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붙어있는 것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5절과 8절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성령의 강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실 때 두번째 대지였어요. 올바른 강론으로 바울과 실라와 딱 한 편이 돼서 '딱풀처럼 따르는 딱풀 성도가 있었다, 생겼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오늘 제목을 그래서 이렇게 정해봤습니다. 딱풀 제자가 됩니다 우리 서로 한 번 인사해 볼까요? '딱풀 제자가 됩시다.' 딱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우리가 나무가 아닌 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오늘 말씀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실 포도나무 이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개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상징하는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면 시편 80편 8절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이렇게 이제 고백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포도나무로 비유해 늘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를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냐면 '나는 포도나무다. 나는 하나님이 이곳에 심으신 포도나무다.'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사야 5장 2절 상반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 이거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으시고, 관리하시고, 기르셨다는 거예요.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파면서 지극정성으로 키우셨어요.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뭘 바라셨을까요? 극상품 포도 열매를 바라셨죠.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 포도나무가 무슨 열매를 냈는지 아십니까? 5장 2절 하반절인데요.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시작 .... 들포도를 맺었도다 좋은 포도 열매를 맺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열린 열매는 들포도였습니다. 이 들포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냐면 이사야 5장 7절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은 정의라는 열매를 이스라엘이 맺기를 바라셨어요. 그런데 맺은 열매는 포학이었어요. 공의라는 열매 맺기를 바라셨어요. 그런데 맺은 열매는 부르짖음. 이 부르짖음이라고 해서 좀 안 와닿으실 것 같아서 괴롭히고 약자들을 압제해서 그래서 그들에게서 나는 부르짖음 이 불공정, 불공평이 불공의 열매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냈다는 거죠. 이스라엘이라는 이 나라의 포도나무는 사실상 열매 맺는 것에 실패한 나무였고, 또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봤어요, 이것이 이스라엘 만의 이야기였을까. '우리도 이렇게 들포도만 낼 때가 있지 않았나. 내 인생을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나면 이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이 실패, '이스라엘은 포도나무가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지금 시작을 하고 계시는 건데 그 당시 유대인들, 그리고 이것을 듣는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을 때 충격이 왔을 거예요. 좀 깜짝 놀랐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과는 다른 열매 맺는 새이스라엘, 참포도나무의 본을 보여주시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나는 참포도나무다.'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냐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뭐로 부르셨냐? 가지로 부르셨다. 이런 거예요. 가지로 우리를 부르셨다. '이제는 가지인 너의 삶에, 너의 가정에 들포도가 아닌 극상품의 포도, 구원의 열매로, 의의 열매로, 성령의 열매로 내가 채우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번에는 반드시, 이번에는 기필코 너의 삶과 너의 가정에 생명의 열매를 내가 맺게 하겠다.' 작정하시며 선언하시는 말씀인 겁니다. 5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는 뭐부터 점검 해야 되냐면 우리의 정체성부터 점검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뭡니까? 가지라는 거예요. 가지는 나무를 떠나서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가지가 해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어요. 뭘까요? 붙어있는 것. 그것만 하면 나머지는 나무이신 예수님과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거예요. 가지가 나무에 딱 붙어있을 때, 그 나무에 물관과 체관을 통해서 수 많은 수액과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고, 또 열매를 맺게 되는 거죠. 농부이신 하나님과 나무되신 예수님은 가지에게 끊임없이 공급하세요. 무엇을요? 생명을, 은혜를 공급해주십니다.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 일용할 은혜, 일용할 건강, 일용할 지혜들을 끊임없이 공급해주세요.
우리나라 옛 속담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참 조상들이 현명했구나, 지혜로웠구나, 참 유머러스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 속담 중에 이 속담이 있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죠? 저는 유리들교회 와서 비로소 이 속담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어요. 그런데 나는 놈 위에 또 어떤 놈이 있나요? 붙어가는 놈이 있더라고요, 붙어 가는 놈이. 붙어가는 놈이야말로 최고의 실력자인 줄 믿습니다. 잘 붙어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믿음이고, 또 참그리스도인으로 건강하고 거룩하게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놈이라고 해서 우리 여성분들 혹시 서운하신가요? 차마 제가 그렇게 부를 수 없어가지고 놈으로 통일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에서 자주하고, 또 자주 듣는 처방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붙어만 있으라.'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이신 예수님께 뭐 해라? 붙어만 있어라. 정말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진리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붙어 있어서 들포도 인생에서 극상품포도 인생으로 바뀐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죠? 여기 다 그런 분들만 앉아 계신 거죠? 여러분들 어떠십니까, 저도 참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제 인생에도, 우리 가정에도 늘 들포도만 이렇게 무성했던 가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 헌신하신 아버지는 정말 열정과 열심을 다 해서 목회에 올인하셨는데 결혼 후 혼자 미국 유학도 다녀오시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양이 차질 않아 방방곡곡 각종 세미나와 집회, 정말 열심히 온갖 곳을 다 다녔어요. 이 뿐만이 아니었어요. 때마다 성도들을 데리고 산 기도, 금식 기도, 밤 기도, 새벽 기도, 금요 철야, 새해 특새, 신년 부흥 성회, 무슨 부흥 성회 이름도 다 기억이 안 날만큼 하루, 한 달, 일 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정말 열심히 사역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제가 기억나는 한 때의 일인데요. 어릴 적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반 강제적으로 금식 기도원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저를 데리고 가셨는데 가보니까 금식 기도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3일 금식하고 내려갈 거야.'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하는 강제 금식이 저한테 시작이 됐는데 산 한복판에 있는 기도굴에다가 저를 넣어 놓으시고는 제가 나올까봐 밖에서 숟가락으로 이렇게 탁 자물쇠로 거시더라고요. 얼마나 배가 고프고, 또 서럽던지 '저분이 내 아빠가 맞나, 아빠의 탈을 쓴 다른 분 아닌가.' 3일 금식 둘째날 저녁이 고비자나요. 사실 모든 시간이 고비입니다. 그런데 둘째날 저녁에 집회 한다고 본당으로 올라갔을 때예요. 정말 얼마나 허기가 지던지 헛것까지 보이더라고요, 얼마나 돌도 씹어먹을 나이, 중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저녁 집회가 있어서 대성전에 딱 올라갔는데 머리가 하얀 백발의 강사 목사님이 마이크를 들고 강단 위로 성큼성큼 올라오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환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모습이 마치 흰 쌀밥, 가장가득 담은 고봉처럼 보이는 거예요. 은혜는 못 받고 그냥 입맛만 다시다가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조금조금씩 부흥하고, 성장하고 어느덧 본당이 차기 시작하니까 아버지는 성도들과 함께 교회 건축을 놓고 기도하고 작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 과정에서 재정 사고가 터졌고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를 떠나게 됐어요. 집 보증금, 교회 보증금까지 모두 다 잃고 졸지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데 그날 이후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얼음장 같았습니다. 당장 자녀를 굶길 수가 없으니까, 뭐라도 입에 넣어줘야 되니까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셔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 무슨 청소, 목욕탕 청소.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믿음 없다고 '사모가 믿음이 없어서 나가서 일 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사건을 해석할 말씀도, 해석해 줄 공동체도 없으니까 이 속상한 마음을 누구에게는 좀 쏟아내야겠고, 참 내 편 되어줄 것 같은 저와 여동생, 힘 없는 자녀로 붙들고, '이 자녀라도 붙들고 좀 쏟아내야겠다, 위로 받아야겠다.' 싶으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저희를 불러다가 어머니 욕을 막 하시고, 어머니는 저희를 불러다가 아버지 욕을 막 하시고. 서운하고 속상한 것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집 문 여는 것이 지옥문 여는 것과 같았어요. 차디 찬 이 집안의 분위기도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 없이 가고 저는 군입대, 여동생은 대학 기숙사로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훈련소 4주차 정도 된 시기에 부모님은 결국 저희한테 이혼을 통보하셨어요. 이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또 새로운 분들과 재혼을 하셨습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은 안된다. 남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사랑받으면서, 평범하게, 또 비범하게 나는 살겠다.' 이런 외침의 부모님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이혼이 답이라 생각했고, 또 재혼이 답이라고 생각하셨던 부모님의 선택은 결국 온 가족의 삶에 들포도만 가득 맺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기도했어요. '하나님, 왜 우리집에 이토록 이렇게 들포도만 무성합니까, 도대체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안 되는 것들 투성입니까?' 이런 환경을 만든 부모님이 너무나도 밉고, 또 원망이 되고, 또 하나님까지도 원망이 되었어요.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죠. 우리 가정에게만 유독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우리 가족에게만 유독 하나님이 인색한 것만 같고, 아니면 능력이 없으신 건지 하며 하나님을 향해 불신과 불평과 원망의 말들을 쏟아냈어요. 지난주 말씀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 슬퍼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신 목사님의 질문에 딱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들포도 밖에 낼 수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어버려두시지도, 포기하시지도, 또 잊으시지도 않으시고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주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인 우리들 공동체에 이렇게 접붙여주셔서 날마다 세속사가 아닌 구속사의 양분으로 저를 공급해주시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구속사의 말씀이 제 안에 차오르기 시작하니까 관점이 바뀌고 가정을 직면할 힘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가정을 그냥 덮어놓고 보지도 않았고, 그냥 쳐다보기도 싫었던 가정이었는데 직면할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죠. 왜 우리 가정이, 내 인생이 이토록 들포도 밖에 낼 수 없었는지 말씀 앞에 서보니까 비로소 깨달아지는 게 있더라고요. '참포도나무 되시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길 못했구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질 못하고 내가 구속사가 아닌 자기 연민에만 사로잡혀서, 거기에만 붙어서 옳고 그름, 피해 의식, 자기 연민, 우울과 분노, 판단과 정죄라는 그냥 들포도만 맺고 있었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너무너무 회개가 많이 되었습니다.
각양의 사건들을 당한 위기의 가정에 심방을 할 때가 참 많은데요. 제가 심방을 갈 때마다 제가 더 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참 되었다 함 없는 이 수치의 간증, 너무나도 부끄러운 들포도만 맺었던 죄 고백과 간증들이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접붙이는데 쓰임받는다는 것이 또 너무 감격스러워서 은혜가 되고요. '나의 이 부끄러움과 고백, 또 간증들이, 정말 나는 버려야 되는 건 줄만 알았더니 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접붙여지니까 이것도 하나님께서 사람 살리는 도구로 쓰시고 구원의 열매 맺는데에 쓰게 하시는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너무 은혜가 되더라고요. 인생이 너무 지치고 버거워 포기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실 수 있어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집나간 자녀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우리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희 어머니처럼 더 이상 내 배우자, 내 자녀, 내 부모, 내 형제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나는 할만큼 했다.'고 하시는 분들 계실 수 있어요. 뭐 하나 쓸 만한 열매 하나 없어서 그저 들포도로만 가득한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 없어 우울하신 분들, 저와 같은 분들, 인생에 산적한 이 모든 문제의 답은 어디에 있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모든 답은 결코 다른데서 찾을 수가 없어요. 이 때가, 사실 고난 중에 있는 이 때가 골든 타임인데요. 이 때 더 힘써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됩니다. 이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목장에 더욱 힘써 붙어 있어야 돼요. 그러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못 살 거 같은데 하루하루 살아지는 역사가 있어요. 살 소망이 생기고, 오늘 못 살 거 같은데 오늘 하루 살 힘이 공급되어지는 거예요.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집 나간 내 배우자, 우울한 내 가족, 무기력한 내 자녀를 기다릴 힘을 이렇게 때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신다는 겁니다. 이혼이 답일 것만 같고, 재혼이 답일 것만 같고, 낙태가, 자해가 답일 것만 같으십니까? 여러문 속지 마시길 바래요. 예수 밖에서 찾는 그 어떤 답도 사실 해답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선택은 나를 죽이고, 자녀를 죽이고, 내 배우자를 죽이는 최악의 선택 들포도를 내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뭐라고 하십니까? '가지는 나무를 절대 떠날 수 없다. 떠나서도 안 된다. 떠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하시는거예요. 아무것도 답도 찾을 수 없다. 내가 가지임을 인정하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잘 붙어있는 것만이 생명의 열매를 맺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 가슴에 새기는 이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참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가지로 잘 붙어 계신가요? 나라는 이 가지가 예수라는 참포도나무에 어느 날 이렇게 접붙임 된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생 최대의 사건이고 가장 위대한 사건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드리겠습니다.
[적용] 나는 어떤 포도를 내는 인생이었나요? 내가 가지임이 인정이 되시나요? 오늘 내가 딱풀 제자로 붙어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2.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우리가 더 열매 맺는 가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행하는 작업이 있다고 하세요. 그 작업이 뭐냐? '농부되신 하나님이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라는 거예요. 어떻게 깨끗하게 하실까요? 가지를(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말씀합니다. 제거해 버리시고 이 말을 처음 딱들으면 어떤 느낌이세요? 우리가 구원 받았다가 이 열매를 못 맺으면 하나님이 가지를 딱 잘라버리시는 것처럼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느낌으로 여러분들 혹시 들리시나요?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을 너무 잘 설명해준 성경학자가 있는데요.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 우리 뭐 아시는 분들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친숙한 브루스 윌킨스 박사가 이 본문을 가지고 포도나무의 비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제거해 버리고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아이로라는 말인데요. 이 아이로를 직역하면 들어올린다, 집어서 올린다 이런 뜻이에요. 포도나무 가지들은 사실 밑으로 쳐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대이면서 먼지가 덮이고 진흙이 묻죠 그러면 그 축축한 가지에 뭐가 펴요? 곰팡이가 핍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포도원 농부가 그 가지를 어떻게 한다고요? 아이로, 들어올린다고요, 집어 올린다고요. 그냥 집어 올리는 게 아니라 그 가지를 지탱할 다른 지지대를 세워서 올려놓습니다. 이게 아이로 작업입니다. 들어올리고, 또 이제 씻어주고 위쪽에다가 묶어주면서 그 가지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거예요. 브루스 윌킨스는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자녀의 삶 속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그들이 열매 맺는 인생을 살도록 때마다 이 아이로의 작업을, 들어올리는, 집어올리는 작업을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포도나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사실 저는 이렇게 포도나무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뭐 그냥 도시에서 쭉 자라와가지고. 그런데 포도를 먹기만 열심히 먹었지 본 적이 없으니까 궁금한 거예요. 물론 구글이나 인터넷 자료나, 또 이제 가지고 있는 성서 자료들을 보면 '포도나무가 이랬구나.' 이렇게 알 수 있겠지만 좀 실제로 좀 내가 보고 나무도 만져보고, 가지고 한 번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너무 들어서 내가 좀 가 볼 만한 포도 농가가 있는지 검색을 했더니 마침 포도 체험 농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난주에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실제로 가서 보니까 오늘 본문이 너무 이해가 되는 거예요. 포도나무에 대한 일단 첫번째로 제 환상이 다 깨졌습니다. 겨울이기도 해서 잎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포도나무의 전지 작업은 겨울에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지 작업을 해 놓고, 그래서인지 마치 포도나무가 죽어 있는 것만 같은 거예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하면 뭔가 되게 우리한테 느껴지는 이미지가 '풍성하고, 듬직하고, 우직하고, 기품 있고, 좀 잘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자나요. 그런데 이사야 53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표현한 말이 이런 말이 있어요.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포도 농장 가서 포도나무 보고 바로 이 이사야 말씀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진짜 포도나무는 철저히 열매 맺는 데에 포커스가 맞춰진, 그냥 존재의 의미가 열매 맺는 거에 맞춰진 나무더라고요. 제가 본 포도나무는 나무라고 사실 부르기에도 애매한 그런 나무였습니다. 포도 넝쿨에 가까운 볼품 없는 나무였는데 고운 모양도 당연히 없고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나무 중에서도 관상용 나무라고 해서 막 청송 같은 나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멋있습니까? 향나무, 떡갈나무, 재목으로 쓰는 나무, 아니면 뗄감으로 쓸만한 나무, 그런 모든 나무에 속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썩혀가지고 거름으로 쓸만한 나무같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래서 포도나무가 열매를 못 맺으면 진짜 쓸모가 없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깨달아졌어요. 농가 주인 농부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 아주머니께 사실대로 말했어요. '저는 사실 목사고 포도나무 말씀을 준비하다가 포도나무가 너무 보고싶어서 왔다.' 말씀드렸더니 그 분이 '나는 권사인데 너무 잘 오셨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권사님에게 질문을 엄청 했습니다. 포도 농사에서 이 아이로 하는, 들려주는 작업과 가지치기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봤더니 포도나무의 특성상 들어올려주는 작업, 이렇게 지지해주는 작업과 가지치기 전지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면 지지해주거나 들어올려주지 않으면 그 가지는 땅에 쳐박혀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포도나무의 특성이래요. 이 작업들, 그리고 전지 작업도 물어봤더니 이 두 작업은 절대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숙련된 농부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바로 열매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말 신경 써서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가지에 또 다른 가지들이 많이 달리자나요. 한, 두개가 아닌데 도대체 무슨 가지가 열매 맺는 가지고, 또 무슨 가지를 정리해줘야 되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를 가까이 데리고 가더니 '여기 순 보이시죠?' 그러면서 순을 딱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순에서 가지가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이렇게 얘기하시는데 저는 이 순이, 이 순 같고, 저 순이, 저 순 같고 다 똑같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아, 그래서 알았어요. '이래서 숙련된 농부가 중요하구나. 이래서 베테랑 농부가 중요하구나.' 전지 작업한 포도 가지를 좀, 이제 그래도 여기 왔다는 증거가 필요하니까 '가지 좀 주실 수 있겠냐?' 이미 근데 전지 작업을 다 해놔가지고, 뭐 이렇게 제가 몰래 할 수가 없어가지고 '있겠냐?' 그랬더니 저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데 거기 갔더니 포도나무 가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면서 '이게 다 전지 작업한 가지다. 원하는 만큼 다 챙겨 가셔도 된다.'고 라고 얘기하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다 챙겨 오겠습니까? 사실 휘문 채플, 판교 채플, 대구 채플을 위해서 다 챙겨와가지고 하나씩 나눠드리면 너무 좋겠지만, 그래서 딱 요것만 가지고 왔어요, 요것만. 그런데 요거는 누가 봐도 죽은 나무가지처럼 보이자나요. 그런데 이거는 사실 지금 며칠이 지났는데도 사실 성성합니다. '이걸 왜 자른 거지? 여기에서도 포도 열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런데 이 가지는 전지 작업이 필요했던 가지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때 알았어요. 정말, 아, 이본문은, 제가 포도 농가를 방문하고 나서 깨달은 건데요. '이 본문은 심판의 메세지가 아니구나.'라는 걸 알았습니다. 2절과 6절만 보면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열매 못 맺는 인생을 가차 없이 심판하시고 불구덩이에 집어 넣어버리는 하나님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농부 권사님, 농부 하나님을 만나보니까 어떻게 해서든 건강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365일, 24시간 그 나무와 가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겨울에도 안 쉬시더라고요. 전지 작업을 하고, 거름을 넣어주고, 혹여나 나무가 춥지는 않을까 흙 속에 나무를 때로는 묻어두기도 하시고, 365일 주야로 나무를 신경쓰고 있더라는 거예요. '아, 농부 하나님도 똑같으시겠구나.' 예수님께 붙어있는 이 나라는 가지에 하루에도 수 십 개, 또 수 만 가지의 잔가지들이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이것을 결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겠구나, 용납하시지 않으시겠구나, 좋은 포도, 극상품의 포도를 내게 하기 위해서 내 인생에 크고 작게 뻗어 나온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오늘도 잘라내주시겠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너무 은혜가 되더라고요. 사실 가지 입장에서 보면 내 몸에 붙은 가지 잘려져 나가는 것이 왜 안 아프겠습니까, 왜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생살을 도려내는 건데. 그런데 그 작업을 가지가 아플까봐 안 한다? '어, 가지가 얼마나 아플까?'하면서 전지 작업을 안 한다? 농부는 절대 그렇게 안 한다는 거죠. 이거는 마치 이런 거랑 똑같은 거예요. ' 아이고, 우리 성장통이 얼마나 힘들어. 성장통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힘들까.' 마음이 아픈 나머지 '우리 아이는 평생 안 크고 딱 이 사이즈로 이렇게만 자랐으면 좋겠다.'하시는 부모님 계십니까? 이런 부모 있으면 얼른 신고하셔야 돼요. 없습니다. 성장통이 안 와가지고 고민하고, 병원 가서라도, 아프게 해서라도 이제 키우려고 하는 거지. 정상적인 부모라면, 정상적인 농부라면 좋은 열매, 극상품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면 생가지라도 자를 수 있다는 거예요. 설교를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뭘 알았냐면 우리나라에 기네스북에 등재된 포도나무가 있더라고요. 알고 계셨습니까? 세계 신기록입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포도 열매가 무려 4500송이가 열렸답니다. 우리나라에 4500 송이 열리기 전에 일본 포도나무가 랭킹 탑을 하고 있었는데 3000송이가 탑이었는데 우리나라가 이제 이겼습니다. 너무 신기했어요. 참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가지를 길이를 재보니까 40M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 농부가 흘린 땀과 노력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친환경 농법으로 진짜 주야로 정말 그 나무를 키웠다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실속없이 무성하게 퍼지기만 한다고 해요. 그게 포도나무의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지치기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숙련자 농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자아를 꿰뚫어 보시고 아주 세밀하게 다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 앞에 더 순종하도록, 우리의 자아가 제대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갖고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때마다 시마다 우리를 가지치기 해주신다는 거예요. 성도들의 삶에서 경험되는 인생의 시련들은 종종 이렇게 하나님의 가지치기일 수 있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6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시작.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가위를 들고 내 인생에 가지치기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을 너무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낙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해요.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내가 어디에서 초점이 벗어나 있었는지, 내가 우선순위가 뭐가 잘못되어 있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고 헌신하는 자리에 우리가 이렇게 정말 더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위대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거죠.
여러분 혹시 가지치기 당하고 계십니까? 너무 고통 중에 계십니까? 저 또한 하나님의 가지치기 작업을 통해 불필요한 잔가지들이 잘려나갔던 양육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1년이 채 안 됐을 때의 일이에요.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귀한 생명의 열매를 주셨는데 아내로부터 이 사실을 처음 들었던 날이 지금도 너무 생생합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내가 아빠가 된다니.' 너무 감사했고, 신기했고, 감동이었습니다. 태명을 지어서 아침, 저녁으로 불러주며 아내 배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의 정기검진 날이었어요. 저는 사역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고 아내 혼자 다녀왔는데 보통은 검진 후에, 검진 끝나면 문자를 주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는데, 보통 초음파 사진도 보내주고 하는데, 그 날은 오전이 다 지나고 오후가 되어가는데도 연락이 없는 거예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아내에게 뒤늦게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그런데 아내의 우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여보, 무슨 일이야.' 정말 무슨 일이 있구나, 생겼구나, 이제 뭐 아이가 조금 상태가 안 좋거나 뭐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예감을 했는데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울면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여보, 미안해.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는데. 내가 아이를 못 지켰어.' 이렇게 하면서 우는 거예요. 아내에게 위로를 하긴 했지만 사실 이 날 어떻게 이 하루가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시 유산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서 병원을 찾은 날이었습니다. 순서를 이렇게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유독 배가 산만한우리 산모들이 많이 보이는 겁니다. 남편들이 같이 아내와 앉아있는데 만날 아이를 기대하는 그 부부들 사이에 저희는 떠나 보낼 준비를 하는 부부였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안하고 계속 울고만 있고, 저도 뭐 아내한테 해 줄 말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서로 위로하면서 지냈던 시간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7년이라는 난임 시간이 시작이 됐는데요. 유산과 이렇게 난임을 겪으면서 해결된 줄 알았던 저의 이 피해 의식과 자기 연민의 감정이 다시 한 번 요동치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 질문이시작됐어요. '왜 매번 제 인생에 이렇게 떨어지는 사건만 있나요. 왜 망하고 이혼을 깨지고 재혼으로 갈라지고 이제는 아이까지. 왜 제 인생은 이렇게 사건들만 계속되는 건가요?' 탄식이 막 터져나왔어요.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고 막 씨름하고 있는 때에 뭐를 좀 보게 됐냐면 제 안에 뼛속까지 그런 질문들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 안돼. 나는 이런 실패를 겪으면 안돼. 나는 예외여야 해.' 이런 교만의 가지가 제 맘 속에 있었음을 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정의 이혼, 재혼의 사건 속에 외쳐됐던 '나는 피해자, 부모님은 가해자.' 가해자인 부모님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것처럼 똑같이 이 유산과 난임의 과정에서도 똑같이 이 노래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 하나님은 내게 도대체 왜 이러시냐 불평과 원망을 쏟아낸 거죠.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서 잘라도 잘라도 또 자라나는 저의 이 교만과 피해 의식, 자기 연민의 가지를 가지치기 해 주신 겁니다. 이제는 제 인생에 허락하신, 그리고 앞으로 또 허락하실 그 어떤 사건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을 사랑해서 주신, 그리고 사랑해서 주실 그런 가지치기의 사건임을 믿고 끝까지 신뢰하며 이 자리를 지켜가기로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적용질문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가지치기에 괴로워만 하고 있지 않나요? 날 살리시는 가지치기에 순종하고 계신가요? 내 안에 가지치기 되어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3.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요한복음 15장에서 '나의 안에 거하라.' 이 말이 10번이나 반복해서 계속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한 거죠. 여기 본문에 거하라는 이 말은 제안도, 요청도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Command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거, 생명을 걸고 해야 되는 명령이라는 거죠. 거한다는 말은 산다, 삶을 공유한다라는 의미예요. 필요할 때 잠깐 들린다 이런 말이 아니예요. 다시 말해 내가 항상 연결되어져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주 안에 항상 깊이 머물러 있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당장, '그럼 주 안에 어떻게 거한다는 거예요? 거한다는 게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겁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겠죠. 그래서 굉장히 구체적인 적용점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데 7절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그 다음 말이 뭐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요한복음 1장 1절, 14절 혹시 기억하십니까? 제가 읽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무슨 말입니까? 말씀이 곧 예수님이고, 주님이고, 주님이 곧 말씀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거고, 뒤집어서 말씀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겁니다. 지난주 예후에게 기름부었던 선지자의 제자, 그때 그가 어땠다고 말씀해주셨죠? 첫번째로는 평범한 사람, 두번째로는 순종하는 삶, 절대 순종하는. 마지막으로는 들은 말씀이 있는 사람.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 안에 거하라, 내 말을 너희 안에 두라.'고 말씀하세요. 말씀 안에 거하라고, 그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며 살라고, 그리할 때 우리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어떤 역사가 있다고 하세요? 열매 맺는 역사가 있다고 하십니다. 딱풀 제자의 삶에 어떤 열매가 맺힙니까?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생명의 열매, 정말 구원의 열매가, 말씀의 열매, 극상품의 열매가 맺히는 줄 믿습니다. 능력의 주체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하고 좀 소망했으면 좋겠는 건 '하나님, 우리 가정이 말씀이 흥왕하는 가정이 되게 해달라.'고 '내가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하길 원한다.'고 이렇게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소설이 있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아는 분들도 계시고, 모르는 분들도 계실텐데, 아는 분들은 연식이 좀 있으신 거죠? 영국인 첩보 요원 로렌스를 중심으로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1차 대전 이후에 로렌스는 중동 지역의 친구들을 다 데리고, 중동의 족장들을 다 데리고 파리로 옵니다. 그래서 개선문을 보여주고, 나폴레옹의 무덤을 보여주고, 엘리제 궁을 보여주고, 막 이제 많은 것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족장들에게 가장 충격이었던 건 뭐냐면, 최고급 호텔에 딱 들어갔는데 욕조였습니다, 욕조. 호텔 욕조에 있는 수도꼭지가 이 족장들에게는 신세계였어요. 왜냐하면 물을, 이렇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끄면 물이 안 나오고. 그들은 이걸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물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그렇게 좋은 침대도 있는데 욕조에만 있어가지고 계속 틀었다 잠갔다, 틀었다 잠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시간이 돼서 중동으로 돌아가야 할 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 호텔로 로렌스가 찾아갑니다. 그런데 깜작 놀래요. 왜 깜짝 놀랠까요? 족장들이 전부 다 수도꼭지를 다 떼고 있었던 거예요. 갖가지 공구를 들고 이걸 막 다 가져가려고 떼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뭐하냐?' 물었더니 '우리나라에 이게 필요하다. 이 수도꼭지가 필요하다. 내 인생에 필요하다.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원하는만큼 물을 쓸 수 있지 않냐?' 족장들 눈에는 이 수도꼭지에 모든 능력이 있어 보이는 거예요, 이것만 틀면 나오니까. 수도꼭지 가져가서 중동 자기 집에 틀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안 나옵니다.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져 있어야, 물에, 저수지에 접속이 돼있어야 그 수도꼭지로부터 물이 나오는 거지 물의 근원지, 말씀의 근원지, 은혜의 근원지에 내가 접속이 되어져 있어야 되는 게 핵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틀 때 콸콸 물이 나오게 된다는 거죠.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데 여전히 주차장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 계시다면, 운동장 성도님들 계시다면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하시 마시고 주님 안으로, 말씀의 자리로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품으로 전도 축제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도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하는 건 저희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 품으로 좀 나와서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촉되고 딱 붙어가는 그런 가지가 되셨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내 가족, 내 바우자, 내 자녀, 부모, 형제들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시는데요. 이번 전도 축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의 역사가 주렁주렁 맺히는 그런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적용질문입니다.
[적용] 매일 큐티하고 계신가요? 목장예배, 공예배 사모함으로 참석하고 계신가요? 팔복산 기도회 전체 참석하실거죠?



이미지 출처:https://blog.naver.com/smoker3/222883639056
기도제목
예선
1.뻗어나가는 여러 생각들을 말씀으로 가지치기 하고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도록
2.월마감 및 분기마감 기간인데 마무리 잘 할 수 있는 지혜주시길
3.금요일에 휴가를 내어 1박 2일 동생 운전 연수 겸 여행을 가는데 오고 가는 길 지켜주시길
은우
1.나봇의 포도원 같은 문제가 일어났는데, 미리 알았고 해석해 주셨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인 줄 알고, 근심이 기쁨 되어 매일 말씀으로 부활 하도록
2.단 한가지 구할 것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를 구하오니, 모든 악한 영으로부터 지켜주시고 기쁨을 빼앗을 자 없는 저와 목장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