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지자의 제자 ( 왕하 9 : 1 - 10 )
여러분은 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시나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년 전에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18살로 최연소 우승을 해서 요새 마에스트로 칭호를 받는 월드스타가 됐다.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손민수 교수를 뽑았다. 그런데 그분의 인터뷰를 보니 제자 임윤찬은 평소 자신의 말을 지나치는 법이 없고 피식 웃고 넘기는 것 같아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캐치한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 제자인가요? 어떤 제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임윤찬은 스승보다 더 거장이 됐다. 요한복음을 요즘 묵상하는데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유다도 제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무늬만 제자라고 하지 말고 주님의 제자, 성령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한 사람이 나온다. 1절 읽는데 선지자의 제자가 딱 뽑혔다. 스승의 엘리사도 주님의 제자이다. 선지자의 제자도 제대로 못하면서 주님의 제자가 될 수는 없다. 구약에서 제자가 많이 나오는 곳이 열왕기하이다. 이번이 마지막 제자가 나오는 곳이다. 제가 성령의 제자, 성령의 양육을 설교했는데 선지자의 제자는 처음인 것 같아서 본문은 달라도 날마다 똑같은 설교 오늘은 선지자의 제자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가장 평범한 사람입니다. 1절 - 오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열왕기하 시작하면서부터 엘리사 선생님이 수고를 너무나도 많이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떠난 뒤로 여호람, 게하시로, 여호사밧으로 인해 고민하다가 과부가정, 수넴여인 가정, 나아만 장군, 군대도 나라도 도시도 살렸다. 전국, 이웃, 아람까지 오가면서 하나님 말씀 전하고 사람 살리는 사역을 쉴새없이 했다. 이 엄청난 사역도 끝을 보이고 있다. 그 전에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맡기신 세가지 임무 중 마지막 임무를 하려 한다. 하사엘에게 , 예후에게, 엘리사에게 기름부으라고 했던 엘리야의 3가지 사역 중 1번을 수행하러 다메섹에 가서 하세엘을 쏘아보고 통곡하며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2번 예후가 남았다. 이것을 완수하려 한다. 엘리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북이스라엘 사람이다. 북이스라엘 왕은 요람이다. 남유다의 여호람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 요람은 지난번에 보니 아직 병중에 살아있다. 그런데 엘리사가 이제 뭘해야하는가? 예후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워야한다. 예후는 요람의 아들도 형제도 아니고 그냥 장수이다. 즉 반역이다. 왕이 살아있는데 그 밑의 장군을 왕으로 세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람왕이 엘리사를 안 좋아하는데 이 일을 알면 살려둘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예후에게 직접 가지 않는다. 다메섹에는 직접 갔으나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예후에게는 직접 가지 않는다. 몰래 해야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의 명령인데 왜 몰래 해? 떳떳하게 해야지 이런것이 인본적인 생각이다.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믿음은 초월적이라 어렵다.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이 상황마다, 때마다 필요하다. 이 일이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 일은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돌이켜 보시려고 온갖 수고를 다 쓰시고 온갖 애를 다 쓰시는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이다. 그러므로 가기도 어렵고 가기 싫은 이방의 다메섹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사역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직접 갔어야 했다. 얼마나 아람의 나아만 장군을 고쳐주며 이름을 떨쳤는가? 그러나 자기 나라 길르앗 라못은 엘리사의 유명세가 임무완수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여기는 직접 가지 말아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엊그제 죽이는 모의가 시작되니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엘리사도 제자 중 하나를 골라낸다. 제자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단지 학생이 아닌 같이 살면서 돌보고 섬기는 자식 같은 존재이다. 엘리사도 그냥 스승이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엘리야가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울 때가 있었다. 아합과 잘 살고 있는 이세벨이 죽이고자 했을때 엘리야에게는 자기 편이 없었다. 그런데 선지학교가 부흥해서 이렇게 아들같은 제자가 많이 생겼다. 이 제자 중 하나를 엘리사가 부른다. 누가 떠오르는가? 게하시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 이름이 안 나온다. 게하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늘 사환으로 소개됐다.물론 제자 중 수제자라서 엘리사를 수행하는 비서였으나 그를 선지자의 아들같은 존재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 게하시는 능력이 있고 인정도 받았다. 그러니 스승을 옆에서 모시는 사환이 됐다. 그러나 그는 늘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물론 나병치리도 받고 많은 큰 일을 직접 보고 겪으며 회개도 하고 큰 공도 세웠다. 요람왕에게도 큰일을 다 설명했으나 거기까지였따. 그는 자기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특별한 사환이었으나 거기서 멈췄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나다! 이것이 게하시의 태도였다. 그러면 누가 선지자의 제자. 아들인가? 여러 제자 중 하나로 있는 사람이다.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묵묵히 있는 사람이다. 자식이 왜 귀한가? 자식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기 때문이다. 차별이 있으면 문제부모이다. 믿음이 없어서 차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내 새끼는 모두 다 귀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가 없다. 첫쨰, 둘째, 셋째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귀하다. 그런데 거기서 더 특별하려고 자녀 중에 싸우고 무시하고 질투하면 부모된 입장에서 너무 속상하다. 나의 차별당함이, 또는 차별함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생각해보세요. 청년국의 한 청년이 초6때 따돌림 때문에 20살이 넘었는데도 10번째 음독을 했다고 한다. 이 아이가 9년만에 낳은 아이여서 너무 귀했기에 야망으로 기대가 너무 커서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사랑을 했다고 부모님이 회개하셨다. 이 딸로 인해 이 가정이 칼날 위의 물방울 같은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아이가 차별당한다고 생각하는게 문제이다. 그래서 이 아이로 인해 하나님이 상급이 되는 거룩한 가정이 되어가고 있다. 이 아이를 거쳐가는 교사들도 한결같이 회개한다. 이 아이로 인해 얼마나 많이 회개케 하는지 모른다. 평범하지만 부모도 아이도 모두 말씀이 잘 들린다. 그래도 큐페에 와서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이세상에서 힘들어도 다들 목적지에는 확실히 도착하실 줄 믿는다. 엘리사는 그렇게 제자 자체가 감사하여 여러 제자 중 하나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자 한명을 불러 그에게 자기가 완수해야 할 마지막 사명을 맡긴다. 허리를 동이라고 한다. 영적 무장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사명이니 몸과 영이 깨어서 긴장하라고 한다. 그리고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고 한다. 이것처럼 이 가정도 깨어있게 하시니 기름병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허리를 동이고 가야할 길르앗 라못이 어디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3절 : 길르앗 라못은 요람이 가족 신화로 싸우러 갔던 곳이다. 위대한 아버지 아합이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람도 거기서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로 후퇴한 상황이다. 주력부대는 여전히 그곳을 치려고 주둔하고 있었다. 총사령관 예후가 다른 장수들과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장수들은 예후와 함께 생사를 함께 한 형제같은 전우였다. 엘리사는 제자에게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라고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가라고 한다. 기름을 부어 예후를 왕으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니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한다.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전쟁 중 군대장관들이 다 모여있는 가운데 청년 하나가 갑자기 머리위에 기름을 붓고 네가 왕이다 라고 하면 곧이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혹시 반역을 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을 제압한다고 해도 남유다의 아하시야와 본국의 왕족들이 있다. 두 국가가 혈연으로 뭉쳐있는 가운데 있다. 북한이 살아갈만큼 뭐가 준비가 되어야 통일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 뭉쳐있다고 해도 하나가 되지 못한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것은 반역이 아닌가?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그 말을 전한 사람을 잡아다가 캐내거나 죽였을 것이다. 백전노장도 아니고 새파란 청년을 보냈는데.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일을 엘리사는 여러 제자 중 아무나 한명 불러서 시켰다. 특별했다면 이름이라도 나왔겠는데 그는 선지자 중 하나였다.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엘리사의 가장 위대한 사명을 맡은 가장 비범한 인생이 됐다. 평범한 자리를 여전한 방식으로 비비고 닦고 살았으니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평범한 인생을 가장 비범한 인생으로 살게 하신다. 내가 아플 때, 돈이 없을 때, 망할 때, 인간관계로 힘들때, 가족으로 힘들 때 그 때 잘살면 하나님이 불러주신다. 그런 고난을 잘 감당하고 있으면 불러주신다. 이 일이 굉장히 위험한만큼 큰 댓가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예후를 왕으로 세운 선지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새 임금으로부터 큰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유혹이 있는 일이다. 그래서 무조건 여기서 도망가야한다. 유혹도 있고 너무나 어려움이 있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특별해지려고 하다가 다 무너진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을 하루하루 평범하게 잘 살아야 하는데 늘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하며 비범만 매일 꿈꾸다가 가롯유다같은 가짜 제자로 끝난다. 끝까지 아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게하시 사환으로 끝날 수 있다. 왜 게하시를 보내지 않았을까 묵상해보았다. 처음부터 게하시는 너무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유명하다고 좋은게 하나도 아니다. 엘리사도 평범하게 밭에서 소몰며 일할 때 불러주셨다.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을때 이렇게 불러주신다. 엘리야의 사명을 엘리사가 이어받아 제자가 된 비결은 그의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이었다. 아내자리, 학생자리, 남편자리, 사환자리 평범이 비범이다.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 선지자의 제자가 된다. 적용 가족 중 한 사람, 지체 중 한 명으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나요?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애씁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 슬픕니까?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까? 나눔입니다. 불신결혼할뻔하다가 우리들교회 아웃리치(TT)에서 남편을 만나 신결혼했다.제가 무슨 복이 많아 신결혼을 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공동체에서 남편과 통하는게 너무 감사하다. 목장예배때마다 불신결혼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를 보며 신교제에 대한 감사를 많이 느꼈다. 공동체에서 솔직하게 나눔하는 남편을 보며 반했고 그런 남편을 쟁취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나누었다. 결혼해서 잘 사는게 얼마나 비범한 인생인가. 그런데 너무 최고의 결혼을 했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2. 절대 순종합니다. 4절 : 엘리사가 불러 보낸 제자 한 사람을 청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지자의 청년을 두번이나 말하며 강조한다. 이 청년이 사환이라고 번역한 단어와 같다. 사환이면 게하시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자 중 한 사람을 불러 보낸것이니 사환이 아니다. 말그대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제자 한 명이다. 그래서 만일 게하시였다면 아니 제가 왜 갑니까? 어떻게 찾아요? 잡히면 어떡해요?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제자 중 한 사람 무명의 청년이니 우리가 선생님 말씀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순종한다. 가라고 하니 간다. 절대순종이다. 이것은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독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구속사가 아니면 매일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된다. 5절 : 길르앗 라못에 도착해서 보니 장군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쳤다. 병사들이 붙잡고 말렸으나 청년 제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예후가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외쳤다. 이 제자는 선지자 엘리사 스승말대로 하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 미친 사람 취급 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사명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 우선인 것이 없다는 확고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엘리사 선생님이 주님이고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제자이다. 앞으로는 알겠다고 하면서 뒤 돌아서는 안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다. 최고의 제자는 배울 수 있는 배울 줄 아는 배우고 싶어하는 제자이다. 배우려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기가 어렵다. 배울 줄 아는 것은 곧 들을 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만큼 배우는 것이다.가장 훌룡한 제자는 이미 많이 아는 제자가 아니라 잘 듣는 제자, 잘 배우는 제자이다. 그래서 임윤찬은 한예종에서 손교수에게 배우다가 그 선생님이 외국으로 가니 임윤찬도 따라서 갔다고 한다. 얘는 거장이 됐는데도 따라서 갔다고 한다. 진짜 배움은 아는데서 머리속 정보와 지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내것이 된다. 따라서 진짜 배움은 절대 순종이다. 상대순종, 조건부순종이 아니다. 무조건 순종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제자가 해야할 것이다. 한 청년 목자의 나눔이다. 올해 다시 목자로 불러주셨는데 멀리 이사가면서 목원들에게는 교회 근처로 집을 구하라는 이상한 목자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이제 이사를 안하려는 적용을 하려는데 아파트 처분에도 매매를 할지 말지 공동체에 묻고 있다. 예상된 손해가 돈우상에 집착한 나의 죄보다 작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시간을 헛되이 쓴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는다고 나누었다. 이렇게 미리미리 산전수전을 겪어 신결혼의 주인공이 됐기에 이혼을 안하는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이다. 청년 때 이렇게 저렇게 고난을 많이 겪고 돈도 잃어보고 이것도 저것도 해봐야한다. 창피를 무릅쓰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에 절대순종해서 예후에게 소리친 제자는 어떻게 됐는가? 6절 -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안 예후가 다가갔다. 그리고 이 청년은 따로 방으로 데려가서 선생님이 주신 기름병의 기름을 예후 머리에 붓는다. 이것도 정상은 아니다. 새파랗게 어린 청년 선지생도가 와서 이스라엘 총사령관을 따로 독대하겠다고 부른 후에 머리에 기름까지 붓는다. 믿음은 상식이다. 그런데 믿음은 초월적이다. 이것이 믿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제자는 선생님 말씀에 절대순종하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옳다는 생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선생님이 자기보다 옳으시기에 자기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무조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순종하는 믿음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제자이다. 적용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싶습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의 권면을 잘 듣나요?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하나요? 지금 가정에서 절대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입니다. 저는 골수라고 할만큼 진보성향이 강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 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선은 영혼구원이구나 생각이 들고 그것만이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라고 느꼈다. 비판하던 나 자신에게 회개가 되고 내려놓고 정치유튜브 보던 것들도 즐기던 것들도 말씀을 보기 위해 잘라내는 적용을 했다, 요즘 큐티에 바리새인도 사두개인도 모두가 예수 죽이는 모의를 하는데 예수의 길이 있다고 한다. 남편과 아내가 이혼하려고 하면 서로 옳다고 할텐데 이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서로 양가 집안도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데 이 부부를 위해 이번 주일에 장로님이 목자가 무릎을 꿇고 대신 빌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목원들이 다 무릎을 꿇고 다 빌어줘서 이혼을 말렸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의 길이다. 예수만이 길이라는 것이다. 3. 들은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6-10절 : 엘리사가 제자에게 하라고 한 말은 3절 한 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라는 말이다. 그런데 제자의 말은 6-10절이나 된다. 그러면 제자가 절대순종하지 않고 많이 보태서 한 것인가? 자기 생각을 보탠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게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예후에게 더 분명한 메세지를 준 것이다. 이 평범한 제자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6절에서는 예후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분명히 한다. 예후, 너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네 왕이신 하나님이 너를 자기 백성의 왕으로 삼으신다, 영적인 것을 하나도 모르는 예후에게 확실하게 알려준다. 7절에서는 예후를 왕으로 기름부으시는 목적이 아합의 집 죄악 심판에 있음을 가르쳐주신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이 세가지임무를 주실 때 열왕기상 19장에서 말씀하셨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멸했다. 나봇같은 사람을 죽이며 자기 욕심을 채웠다.이 죄악을 갚는 심판의 도구로 예후 너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말고 임무를 다해라고 한다. 엘리사가 보낸 제자는 자기 생각을 더해서 말하는게 아니라 선생님께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예후에게 딱 맞게 전한다. 8-10절 : 나봇사건 이후 하나님의 심판을 3절로 간추려서 전한다. 돌아올 기회를 주실만큼 주셨고 기회를 주셨으나 이제는 기회가 없다. 아합 이전의 여로보암, 바아사 왕조가 멸절한 것처럼 이제 아합의 왕조가 멸절한다는 것을 예후에게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너는 왕이 되도 그들처럼 하지 말라고 전한다. 그러나 예후도 나중에 그렇게 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제자는 자기 말을 덧붙인게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하나님의말씀을 예후 수준에 잘 맞추어 전한다. 말씀을 다 전한 다음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곧 문을 열고 도망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선물 좀 안 주나? 한자리 주지 않으려나? 이런 생각으로 기웃거리지 않는다. 말씀을 전하자마자 곧 문을 열고 도망가는 것은 끝까지 자기를 특별히 여기지 않고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이대로 하면 성경이 얼마나 이타적인 정치 경영 교육등의 교과서인줄 아시겠죠? 그래서 큐티해야한다. 그런데 이기적인 정치를 생각하니 늘 정치를 한다고 말한다. 분이 나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내 편 네 편을 가르니까. 뭐든지 이타적으로 성경말씀을 적용해서 들어야 한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할줄아는것이라고는 무조건 순종하는 바보같은 한 사람이 어떻게 엘리사의 제자가 됐을까? 어떻게 엘리야 엘리사로 이어지는 막중한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됐을까? 그것은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 엘리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되새기며 기억했다. 그래서 자기가 준비하지 않았어도 예후 앞에서 예후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인생을 비범한 사명의 인생 되게 하는 힘은 오직 주님의 말씀의 힘이다. 엘리사도 선지자의 제자 한 명도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가 됐기에 영적으로 완벽한 한팀이 되어 대를 이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교회도 진짜 교회로 존재하려면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피가 아무리 진하다고 해도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감정으로 돈으로 나뉘고 가족신화로 갈라진다. 좌건 우건 우리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부부가, 가정이 하나 될 수 있다. 그래야 구원의 사명으로 나아가는 진짜 가정이 되는 것이다. 무명의 제자 한사람이 엘리야도 엘리사도 직접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완수한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삶을 겸손하게 잘 살았기에 절대 순종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이 사람의 환경이나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육의 계절이 돌아왔다. 양육을 통해 말씀이 들리는 복을 받으시기 바란다. 이번만 아니라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양육에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씀이 들리기를 바란다. 들은 말씀이 우리 인생을 바꿀 줄 믿는다. 저는 우리들교회 평범한 성도님들이 이런 사명을 감당하심을 믿는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가장 위대한 사명을 무명의 제자가 한 것처럼 우리 목자님들도 그렇겠죠? 아이낳는 적용으로, 힘든 아이 돌보는 삶으로, 망한 집 살아내기로, 외도 배우자 용서하기로 하나님은 부르셨다. 그래서 가장 비범한 삶을 살아내고 계신 줄 믿는다. 그러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이 무명한 평범한 사람 덕분에 우리들교회가 열매가 됐다.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목회를 하는가... 이것을 좀 알아야 한다. 적용 들은 말씀으로 살아난 경험, 살린 경험이 있나요? 우리 가정은 말씀으로 하나가 되고 있나요? 요즘 말씀이 잘 들립니까? 안 들린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목자님이 글로벌 기업의 CEO 면접을 봤는데 글로벌 기업이다보니 외국 CEO도 다 들어왔다고 한다. 다각도로 면접을 보는데 회사에서 가장 아! 하고 놀랄때는 언제인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기억해서 문제가 보이면 놀라서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안 보이면 문제다를 영어로 말했더니 그 말을 외국 면접관이 놀라서 받아 적었다고 한다. 압도적인 점수로 CEO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 면접을 위해서 평소에도 자주 듣지만 지난 주는 주일설교를 15번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할일이 없어서 한가해서 들은 것이 아니다. 늘 주일설교 들은 것을 가지고 하면 회사에서 늘 잘 써먹는다고 한다. 이분에게 맡겨진 일이 교회에서도 많다. 그런데 평범한 일을 잘 감당하니 모든 것을 잘 감당하니 자꾸자꾸 올라가는 것이다. 늘 교회에서 들은 말로 회사가서 써먹고 승진 좀 하세요. 제자 되실 줄 믿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는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다. 우리 중의 못될 사람이 없다. 그런 제자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분란없이 가는 것이다. 이해타산 가지고 했으면 우리들교회는 옛날에 이미 무너졌다. 이해타산이 없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생기니 이어져왔다. 절대순종을 한다. 들은 말씀을 너무 귀하게 여기고 목장에서 사람들을 살려낸다. 우리 각자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A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떼부리는 기도를 많이 했다. 애매하게 재능이 있다는 생각과 쉐프로서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졌다. 불신교제를 계속 하면서 역시 나는 뭐하나가 되는게 없다라는 생각에 낮아지고 낮아지는 삶을 살았지만 감사한 것은 지금은 오히려 평범한 삶을 살지만 남친을 통해 보는 것이 많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라고 얘기해준 것 자체가 귀하게 쓰임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평범한 삶을 산다는게 되었다 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평범함으로 인해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특별한 일이구나 깨달았다. 제자 4만 9천 몇번째쯤 되는 제자로 세워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라는 것을 들었다. 지금의 길이 나를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해주신 것이 인정이 되서 감사했다. -> 남친과 잘 양육받고 양육하기 B 요새 은혜의 한 때를 보내고 있음, 그동안 열등감으로 나를 포장하며 살았고 왜 나는 특별하지 않냐며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는데 누군가에게 삶을 나눌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도록 이토록 낮아지게 하신 하나님께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마음이 유해지며 가족에게도 부드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곧 양교를 앞두고 있는데 그 자리를 잘 문지르고 비비고 닦으며 갈 수 있기를 기도부탁함 -> 불편하고 힘든 사람에게 한마디 따뜻한 말하는 적용하기 C 공부도 딱 중간으로 평범했고, 중산층이었는데 주변에 잘사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나는 가진게 없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다. 여기 왔는데 고난이 없어서 너무 평범한 거 같아서 말할 것도 위로해줄 것이 없어서 힘들었다. 나의 평범함을 남친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남친이 기도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지만 화가 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학교에 가서 교수님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가 됐다. -> 지금 남친과 만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같이 훈련하며 가면 훈련의 기간이 짧아지니 결혼 전에 잘 생각하기 -> 양육, 큐티묵상과 말씀을 통해 나의 아픔의 근원이 어딘지 볼 수 있는 시간 가지기 D 가족 중 나만 장애가 있다보니 나는 약하다,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내면에 있었다. 또 타인이 봤을때는 키만 작을뿐 나머지는 정상으로 보니 집안에서 나를 도와주면 했을때 선을 긋는 행동을 하면 마음이 안 좋았다. 봐줬으면 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특히 엄마에게 더 배려받고 싶은 마음이 았음 -> 엄마와의 분리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홀로서기를 해야함, 도움이 필요하면 받아가면서 차근차근 분리해보기. 엄마가 하는 방법을 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방법을 해본 뒤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기 ->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파악하기 E 장애를 인정하고 나니 수화 사랑팀으로 세워주시기도 했고 사랑부에서도 버디임에도 스탭을 섬기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장 특별해지고 싶은 곳은 회사인데 팀장한테 보고하기 전에 점장님께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들은 후 더 답답했다. 또 장애직원들과 일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자기가 왕인줄 아는 모습때문에 힘이 들었다. -> 절대순종하기, 질서에 순종하기 A - 직장내에서 질서순종을 잘 할 수 있기를 - 하나님께 사소한 것이라고 물어보면서 갈 수 있는 한 주가 되기를 - 신교제의 때를 잘 기다릴 수 있기를 - 매일 큐티 하면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기를 B 1. 이번주부터 양교 시작인데 잘 준비하고 잘 나누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2. 평범이 비범임을 알며 내가 특별하려고 노력하고 열심을 내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도록 3. 내게 어떤 힘든 사람, 환경이라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허락해주시기를 4. 신교제와 신결혼 5. 내가 백프로 죄인임을 인정하며 큐티를 하기를, 큐티하면서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하며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6. 사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한 언어 생활을 하며 특히 가족들에게 더 잘 섬기는 한주가 되기를 7. 요새 너무 바쁜데 계획을 세울 때 기도하며 묻고,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할 수 있도록 8. 전도할 대상을 잘 정해서 전도할 수 있도록! C 1.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 말씀 늘 보며 갈 수 있도록 2. 예배의 온전한 회복 3.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D 1. 이번주 양교 숙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내 삶을 잘 나눌 수 있도록 2.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준비되어 질 수 있도록 3.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4. 배우자를 잘 분별하는 지혜 주시길 5. 가정에서 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 6. 마음 속으로 판단과 정죄하지 않도록 E 1. 예배가 회복 될 수 있도록 2. 엄마와 분리가 잘 될 수 있도록 3. 엄마와 트러블나지 않고 이사준비 잘 할 수 있도록 4.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고 갈 수 있도록 5. 특별한존재가 되지 않더라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존감 회복할 수 있도록 F 1. 평범함이 비범함을 상기하여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며 하루하루 잘 살아내길 2. 아버지와 동생의 구원 3.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나에게 예비하신 사람을 잘 분별하여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G 1.병원에서 상담하면서 마음이 넘 힘들었는데 이번주 마음회복이 잘되어서 주일성수하고 목장참석하도록 2.교회 목장 공동체에 붙어가도록 H 1. 회사에 새로 오신 차장님께 잘 순종하며 질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2. 특별함을 찾기보다 평범함으로 하루하루 살아낼 수 있도록 3. 주님이 주신 은혜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나를 위한 사건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4. 남자친구 양육을 마지막까지 잘 도울 수 있기를 I 1. 하나님의 큰 뜻을 받아들이기 2. 열내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