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4년 3월 3일
본문: 열왕기하 8:25~29
제목: 아합의 집 길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님
Ⅰ본문
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랍 제삽이년에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28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29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
Ⅱ설교말씀
아버지 우리가 다윗의 길을 가야하는데, 아합의 집길을 그리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 길을 안 가도록 해 주시옵소서 아멘.
철학자 중에 철학자 플라톤이 인생은 나그네의 길 같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잠깐 지나는 나그네의 길에서 방황은 너무 오래오래하기가 쉽지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같아서 이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이라고 고백한다. 제 길이 함부로 살았다는 게 아니다. 그저 열심히 설계하고 인생을 따라가지만, 사람은 다 악해서 다 제 길로 가서 멸망을 행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여호람 왕의 악을 살펴봤다. 이 시기 남북의 두 왕 이름도 똑같다. 여호람과 아하시야왕이 등장한다. 오늘은 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의 이야기이다. 실제 주인공은 남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왕인데, 그런데 그들의 집을 다윗이 아닌 아합의 집이라고 말해요. 아합이라는 이름이 그들만큼 많이 등장합니다.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아합의 집 길이라는 표현한다. 오늘은 우리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할 아합의 집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불신결혼의 악을 떠나지 않습니다.
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랍 제삽이년에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지난 주 여호람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창자의 중병에 걸렸다고 했다.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요람 11년에 아하시야는 아버지 도와서 공동통치 시작한다. 1년만에 요람이 죽고, 이스라엘을 단독 통치한다. 이 때가 요람 제12년입니다. 그래서 아하시야는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왕에 올랐는데, 여기에는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격동시켜서 여호람이 죽인 형들의 죽음과 행운이 깃들어서 왕이 되었다. 그릇이 안되니 여호람이 1년 만에 다 죽었다. 형들의 죽음을 행운이라 해야하나요? 그 행운으로 상상도 못하던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그릇이 안되니 1년만에 죽어버린다. 엘리사에 기름 받아 왕이 된 예후에 사례가 된다. 지난 주 18절에서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결혼했다했는데, 그 이름이 아달랴다. 그 어머니 이세벨 이상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어머니 기록하는 이유는 항상 어머니가 신앙의 배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호람을 바알 숭배로 이끈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나? 아합의 딸이라 하지 않고, 오므리의 손녀라고 한다. 아합 가문 전체를 등장시킨다. 왜죠? 오므리에서 시작한 악이 아합 때 폭발했고, 그것이 딸 아달랴를 통해 유다 왕조에게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 여호람도 아들 아하시야도 유다의 왕이잖아요.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다윗의 후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무슨 명찰을 달고 있는지 아십니까. 다윗도 아니고 솔로몬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이라는 길다란 명칭을 자기 이름에 떡하니 붙이고 나온다. 이것이 분명히 남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에 대한 이야깅린데, 북쪽의 아합과 요람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무슨 말입니까? 악의 전염성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성이 악하고 음란하다. 선한 영향력은 너무 미약하다. 악한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전염이 된다. 선행은? 우리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선한 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잘되지 않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선한 것을 보고 듣고 가르쳐야하고, 아무리 떠내려가도 어려서 들은 것이 생각나서 다시 돌아올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듣기 싫거나해도 큐티 시키고 본을 보여야한다. 오므리집 악이 왜 유다 집안을 잠식하였나?
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이 한 절에 아합의 집이 3번 나온다.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큐티하는 것이다. 아하시야는 다윗의 후손인데 아합의 집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아합의 집 사위가 되었다. 다윗의 사위인데 왜? 아합 집안의 외손자도 모자라서 아합의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모인지 사촌동생인지도 아합과 결혼했다고 한다. 쌍으로 겹 불신결혼 했다고 했다. 하나님 왜 불신결혼 하지 말라고 하나? 믿음 지키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결혼의 목적은 거룩이 아닌 행복으로 두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상급으로 여기지 않고,내 소유와 성공과 쾌락, 명예를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불신이다. 인간이 백프로 악해서 불신결혼을 하면 악을 선택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을 거역하는 것이다. 이 불신결혼이 유다에 얼마나 큰 구렁텅이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반면교사되라는 거지요. 여호람이 자기 아들 아하시야도 불신결혼 시켰다. 아합의 집이 경쟁자가 없는 절대 1등이다. 내 집안과 나를 업그레이드 시킬 것 같은 아합의 집안만 보인다. 그 집안이 이미 내 처가이다. 아합의 북이스라엘이 요셉의 후손이고 강성한 왕가의 딸인데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다. 사돈관계가 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엣바알의 딸로 북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는 딸을 데려왔다. 이세벨 입장에서 보면 시아버지, 남편, 아들, 딸 모두 왕이다. 아달랴도 마찬가지다. 아합의 가족이 모두 왕이다. 그래서 가풍을 따라왔다. 삶의 방식도 따라갔다. 다윗의 DNA가 다 소용이 없다. 아합의 집 사위라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뭐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럼 게임 끝이다.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 앞의 결론은 악이다. 그 착지가 지옥이다. 불신결혼 안된다고 경고를 올려도 고난의 차단기 내려고 아합의 집 너무 좋아서 떠날 수가 없다. 이것이 아합의 집 길의 실상이다. 생각해보세요. 더 부러운 것은 아하시야 어머니 아달랴다. 아들이 나의 말을 너무 잘 듣는다. 무서운 엄마 밑에서 효자 효부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기 가족의 찰떡같은 화목으로 이세벨과 너무 잘 살면서 엘리야를 죽자고 죽이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집이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이게 구속사다. 이것을 누가 알려줍니까.
[적용질문] 불신 결혼이 악이라는 것이 이해됩니까?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무 좋아서 떠나기 싫은 악은 무엇입니까?
2. 가족 신화 지키려고 계속 싸웁니다.
28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요람과 여호람으로 구분해줬음 되잖아요. 그런데 열왕기자는 아합의 이름표를 떼지 않는다. 제발 악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러 갔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의 중심 성읍인데요. 원래 북이스라엘 영토였지만, 아합의 부친 오므리왕 때, 아람에게 빼앗긴 곳이다. 그런데 아합이 아람을 물리치고 평화조약을 맺으려하자, 아람 왕은 오므리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람 왕이 위기를 면하자 약속을 안 지켰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약속을 안 지킨다.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약속을 지킨다. 그러니 사람 간 약속에 대해 상처 받지 말라. 불신결혼 약속 지키지 않는다. 아합은 아람이 약속 안 지켰다며 군대를 일으켜 전쟁한다. 이렇게 성경을 구절구절 읽어드리는데, 우리들교회에서 못 알아들으면 제가 너무 절망이 됩니다. 아합이 전사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런데 믿음 없는 요람이 하나님 심판 임을 인정하겠습니까? 위대한 임금이었던 아버지만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이 길르앗 라못이다. 실패를 만회하고자 공격했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그래서 복수심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런데 군대가 부족하다. 하사엘이 너무 능력있다. 그래서 이미 끈끈한 가족으로 동맹이 된 아하시야를 부르는거에요. 아하시야에게도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죽을 뻔한 장소가 길르앗 라못이다. 또 자기 땅도 아닌 북이스라엘 땅이다. 전쟁하고 싶지 않지만, 외삼촌 말에 따라 전쟁한다. 왜 그런가? 그가 다윗의 집보다 아합의 집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합의 집이 더 크고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요람이 이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도 달려갔다. 길르앗 라못은 한이 맺힌 지역이다. 아하시아는 외가가 더 중요했다. 자기 집에 존경하는 할아버지, 아버지 오점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뭐라 하나요? 가족신화라고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오므리나 아합은 다 악인이다. 그런데 자기네는 영웅이라고 모시고 산다. 이스라엘에 미친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아합의 집 길을 더욱 탄탄하게 닦는다.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너무 어렵다. 오로지 내 어머니 아버지밖에 몰라서 전쟁이 안 끝난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미친 악영향 생각 안하고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아합의 집 길, 가풍이다. 오점을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여기에 누가 물이 들었나? 다윗의 후손 아하시야가 물이 잔뜩 들었다. 자기 싸움도 아닌데, 외가쪽에 힘과 시간을 낭비해서 거덜내며 싸운다. 우리는 어떤 모양이든 가족신화가 다 있다. 잘 나가는 집안일수록 가족신화가 두텁다. 그리고 그것으로 가족을 들들 볶는다.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자식이다. 여호사밧이 불신결혼 시켜서 들어온 불신결혼이, 아들 여호람에서 악이 꽃을 피웠다. 그 이름도 똑같은 요람이, 처가가 너무 좋으니 아합의 집으로 장가가라고 어려서부터 넣어줬다. 게다가 아달랴가 욕심이 크다. 그래서 대를 물려 아합의 집과 불신결혼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신화 지키려고 쌓은 것으로 부상만 당한다. 아합의 집 길 끝에는 상처만 있다. 하나님이 절대 승리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적용질문] 우리 가족은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가족 신화 때문에 끊임없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입니까? 가족 신화로 가족들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결국 제자리 걸음으로 끝납니다.
29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
요람 왕이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병이 들어 어찌합니까? 큐티하고 물어야지요. 내 죄 깨닫고 회개해야지요. 아합의 집 길은 회개 없다. 오직 가족신화과 자기확신만 있다. 그래서 부상당한 여호람이 간 곳은 이스르엘로 갔다. 결국 제자리 걸음이다. 아합의 집과 탐욕이 폭발하여 포도밭 훔쳤다. 거기서 나오는 와인을 마시면 상처 금방 나을 것이라 기대했겠죠. 이스르엘에 가면 내가 치료할 수 있다 생각한다. 절대 자기 잘못 돌아보지 않고, 돈이 있으면 휴양지로 멀리멀리 간다. 내가 패했는데, 회개할 생각이 안 난다. 그 부상이 치료 됩니까? 치료는커녕 병이 된다. 외삼촌 보기 위해 자기도 이스르엘로 간다. 아합의 집 길로 추락하는 선택이다. 영적 육적 좋은 것 다 갖췄는데, 다윗이 아닌 아합의 집 길로 가니 제자리 걸음만 한다. 그렇게 제자리 걸음만 하다 예후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대단한 나라가 있는데, 그 작은 곳이 뭐가 중요한다. 사소한 것에서 우리 인생에서 망할 수도 있다. 이게 다 반면교사다. 솔로몬 권력과 돈이 생기니 아무 말씀도 안 들린다. 여자에 미쳤다. 심지어 이방 산단을 세워서 여자들에게 바쳤다. 그러면서 잠언을 썼다. 음부에 넘어가지 말라고 썼다. 그러나 천 명의 여자를 거느리며, 아들에게 보여줬다. 여기서 어찌 문제아가 없겠는가. 어린 나이게 못 볼 꼴 보고 자란 것이 르호보암이다. 은쟁반에 옥구슬 같은 말씀을 들어도, 아버지의 삶이 못 볼 꼴이다. 그럼에도 이런 솔로몬에도 하나님이 다윗의 길을 허락하셨다.
[적용질문] 문제 자녀의 방황이 불신결혼의 결론인 것을 깨닫습니까? 말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세상 성공의 가치관을 온몸으로 보여 주며 자녀의 불신결혼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열왕기상 2장 3절에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무슨 길이에요? 하나님의 명령, 말씀을 지키는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길이다. 순종의 길이다. 다윗의 길이 아니라 내 길이락 하신다. 그런데 다 듣지 않는다. 여로보함의 길, 아합의 집 길 모두 같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가려다 제자리 걸음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합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가면 우리 인생을 제자리 걸음 걷게 하지 않게 하신다. 그런데 이 불신결혼을 사르코지를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느헤미야 13장에서 느헤미야가 불신. 결혼을 막기 위해 느헤미야가 어찌했나. 수양궁의 관리였잖아요. 정말 우리 불신 결혼은 솔로몬도 다 예외가 없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느헤미야는 그들을 모두 책망하고 저주하며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 불신 결혼 막는 사람이 느헤미야 하나 밖에 없다. 대제사장까지 혼인 동맹 맺으니, 느헤미야가 목숨 걸고 막는 것이다. 불신 결혼으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는데, 그것으로 주님 만나면 괜찮은데, 잘살기까지 하면 영원한 고통이 남아있다.
[적용질문] 이스르엘처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치료해 줄 것 같은 곳은 어디입니까? 그런 이스르엘이 없어서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내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A
1. 내 생각과 확신의 불신에서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주셔서 불신의 영들이 떠날 수 있도록
2. 새학기 지치지 않고 보낼 수 있도록
3. 건강과 체력 관리 잘 하도록
4. 부모님 건강과 오빠 근무 환경에서 지켜주시고, 오빠 가정 인도해주시도록
5. 목장 식구들 영육 건강과 신교제 신결혼
B
1. 체력의 경계 잘 지키며 말씀 잘 듣고 갈 수 있도록(쓰큐!)
2. 직장과 신결혼 위해 지혜주시길 기도하도록(결혼예식에서 말씀이 들리는 그 한사람을 위해 기도)
3.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도록
C
1. 어머니 구원
2. 큐티로 중심 잡기
3. 영육간 강건
4. 신교제신결혼
D
1. 일하는 것에 아이디어와 능력 주시고 잘 해나갈 수 있길 체력 부어 주시고 건강하게 즐겁게 잘 할 수 있길
2. 모든 관계에 지혜길 있길 눈치보지 않고 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대화의 스킬이 생기길(남을 배려하는 게 맘이 편하다고 늘 생각했는데 주존감으로 배려도 하지만 또 해야할 말은 지혜롭게 잘해서 관계에 지치지 않고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길)
3. 만남의 축복과 결혼의 결실이 있길(하나님이 가장 베스트인 배우자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내 배우자를 알아보는 눈을 주시고 그 배우자 또한 나를 알아볼 수 있길)
4. 부모님과 오빠네 가정의 구원
5. 부모님 건강하게 두 분 행복하게 오래 잘 지낼 수 있길(엄마의 허리가 4,5 번이 협착이 돼서 다리까지 이상이 왔는데 엄마가 물질의 우상으로 몸까지 아파가면서 무리를 하는데 빨리 회복되어 이 사건으로 인해 구원되고 하나님 안에서 평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