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4 아합의 집 길
열왕기하 8:25-29
철학자 중의 철학자 플라톤이 '인생은 나그네 길 같다.'고 했죠. 그런데 이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길 인생에서 우리가 방황은 오래오래 길게길게 하기가 쉽죠.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제 길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이 아니예요. 저마다 잘 살아보겠다고 신중하게, 열심히, 그저 잘 설계하고 인생길을 따라가지만 결국 사람이 악하자나요. 그래서 결국 각기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제 길로 가서 결론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여호람왕의 악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시기의 남, 북의 두 왕과 그 아들 두 왕이 이름도 똑같이 여호람과 아하시야인 것이 가장 악한 시대라는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의 이야기예요. 실제 주인공은 남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의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그들을 다윗의 집이 아닌 아합의 집으로 말해요. 아합이라는 이름이 그들만큼 많이 등장을 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주인공 아하시야에 대해서는 정말 아합의 집 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오늘은 우리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아합의 집 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불신결혼의 악을 떠나지 않습니다.
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 자, 여호람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창자에 중병이 걸렸다고 했어요.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요람 11년에 아하시야는 아버지 여호람을 도와 공동통치를 시작했습니다. 1년만에 여호람이 죽고 단독 통치를 시작하죠. 이때가 북이스라엘의 요람 제12년입니다. 그래서 남유다 아하시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여기에는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격동시켜가지고 여호람의 아들이 다 죽죠. 그래서 형들의 죽음이란 행운이 뒤따라서, 아하시야가, 그 행운이라고 그래야 되나요? 그래서 왕이 됐어요. 상상도 못한 왕이 되었는데 그릇이 안 되니까 1년만에 죽어버립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다시 다루겠습니다. 어쨌든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예후에게 살해가 됩니다. 앞서 지난주 18절에서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결혼했다고 했죠. 그 이름이 나오는데 아달랴예요. 이 아달랴는 어머니 이세벨 이상 악행을 저질렀는데요. 아달랴는 바로 이 여호람의 아내인 거예요. 그 어머니를 기록하는 이유는 항상 어머니가 신앙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여호람을 바알 숭배로 이끈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어떻게 교육시켰겠습니까? 나아가서 이달랴를 아합의 딸이라고 하지 않고 오므리의 손녀라고 해요, 오늘은. 그러니까 아합 가문 전체를 지금 다 등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왜죠? 이 가문이 총체적 문제임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므리에게서 시작된 악이 아합 때 폭발을 했고, 그것이 딸 아달랴를 통해 유다 왕조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버지 여호람도, 아들 아하시야도 유다의 왕이자나요.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다윗의 후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역사, 문화에 등장할 때마다 무슨 명찰을 달고 있는지 아세요? 다윗도 아니고, 솔로몬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이라는 기다란 명찰을 자기 이름 위에 떡하니 붙이고 늘 무대 위에 등장을 해요. 이것이 분명히 남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북쪽의 아합과 요람의 이름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무슨 얘기입니까? 악의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죠. 우리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은 너무나도 미약해요. 왜, 우리는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거기에는 전염이 되는데, 선행은, 우리가 선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선행은 아무리 가르쳐도 잘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큐티를 시키고 예배를 오게 하고, 듣게 하고, 보게 하고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이렇게 하다가 흘러 떠내려갔어도 반드시 어렸을 때 들은 것들을 다 기억해서 돌아올 줄 믿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듣기 싫거나, 아무리 그래도 애들에게 큐티는 시켜야 되고, 엄마가 하는 걸 보는 보여야 되고 그런 줄 믿습니다. 오므리 집안의 악이 왜 이렇게 유다 왕들을 잠식했나요?
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 27절입니다.
그냥 지금 한 절에 아합의 집이 3번이나 강조하는 거예요. 큐티를 이래서 하는 거예요. 아하시야는 다윗의 집 자손이자나요. 그런데 다윗의 집이 아닌 아합의 집 자손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왜라고 그래요? 그가 아합의 집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라자나요. 다윗의 후손인데 왜 아합의 집 후손이 되냐고요. 아합의 집 외손자인 거인데서 끝나는 게 아니예요. 외손자인데서 모자라서 아합의 집 사위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모인지, 사촌 동생인지 아합 집안 딸 중에 하나와 결혼을 했다는 거예요. 겹 사돈을 넘어서 겹 불신결혼까지 했어요. 불신결혼 한 번도 모자라서 그냥 아주 쌍으로 했습니다. 대를 이어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불신결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하면 믿음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에요. 우선 일차적으로는 그렇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불신결혼은 결혼의 목적을 거룩이 아닌 행복에 두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상급으로 여기지 않고 내 소유, 명예, 성공, 만족, 쾌락을 인생의 상급으로 여기는 선택이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하면 불신이에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 속에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지만 인간이 100% 악하니까 '아니, 내가 세상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게 뭔 죄야?' 그런데 인간이 100% 악하기 때문에 결국은 악을 선택한다 이 말이에요. 이 땅의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고, 선해도, 성품이 착해도 그거는 선이 아니라는 거예요. 불신은 악이에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입니다.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을 불신결혼시켰어요. 이것이 얼마나 유다에 엄청난 구렁텅이로 몰아갔는지 몰라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라고 그런 거죠. 여호람이 그 아들 아하시야를 또 불신결혼을 시켰어요. 그것도 자기 처가 아합의 집과 말이죠. 왜죠? 아합의 집이 세상의 성공과 부귀와 안녕과 평화를 보장해주는 집이거든요. 경쟁자가 절대 없는 1등이거든요. 그러니 다른 집 찾을 필요가 없어요. 인륜? 그딴 거 다 필요하지가 않아. 그저 나를 더 높은 자리에 올려줄 것만 같은 집안, 업그레이드시켜 줄 것 같은 집안인 아합의 집만 보여요. 그 집안이 이미 내 처가인 거예요. 그러니 겹 불신결혼도 마다하지 않아요. 게다가 아합의 북이스라엘이 요셉의 후손이자나요. 강성한 왕가의 딸이니까 얼마든지 합리화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돈 관계가 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엣바알의 딸로, 북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는 왕의 딸을 며느리로, 아내로 데려왔어요. 그런데 이세벨 입장에서 보면 자기 친정의 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아들도 왕이에요. 이 딸도, 아달랴도 엄마를 그대로 닮아서 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게다가 아들도 왕이에요. 그야말로 로얄 패밀리 아닙니까? 그 결과가 무엇이에요? 모두가 아합의 집 길을 따라갔어요. 아합 집의 불신, 그 세속적인 가풍, 행복을 목적으로 한 삶의 방식을 따라갔습니다. 다윗의 DNA가 다 소용이 없어요. 아합의 집 사위라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그 집 같이 사는 게 너무 만족스러워요. 그래서 뭐예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러자나요. 그러면 게임 끝이자나요. 아무리 화려한 게임을 한 것 같아도 결과는 패배고 다 잃어요. 영원한 죽음이에요. 밑동 잘린 나무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아합의 집 길이 너무 넓고 곧은 탄탄대로라는 거죠. 도착지가 지옥이라는 게 안 보여요. 길 자체가 너무 화려하고 꽃길이고 비단길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곳을 떠나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불신결혼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경보를 시끄럽게 울리셔도, 빨간 신호등 아무리 켜셔도, 고난의 차단기를 거듭거듭 내리셔도 아합의 집 사람 되는 게 너무너무 좋아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소망이 너무 커서 이 불신결혼의 악을 떠날 수가 없어요. 이것이 아합의 집 길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좀 생각을 해보세요. 더 부러운 것은 여호람의 아내고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 남편 여호람이 너무 자기 말을 잘 듣는 거예요. 아들 아하시야도 어머니 말을 찰떡같이 듣는 거예요. 대체로 이 무서운 부인 밑에서 엄처시하가 나오고, 또 효자, 효부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 것만 갖춘 게 아니라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 신사임당상을 받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 가족이 찰떡같은 이 화목으로 그냥 똘똘 뭉쳤는데 이세벨은 그 아합과 잘 살면서 엘리야를 죽자고 죽이고자 했던 어머니예요. 이 세상에 엘리야를 죽어야 돼. 유다로 시집 온 그 딸은 남편과 하나가 되어,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엘리야를 넘어서서 유다의 예수 씨, 모든 왕족들 다 죽이려고 했죠.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집이 너무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이게 구속사 아니면 이걸 누가 알겠습니까?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불신결혼이 악이라는 것이 이해됩니까?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무 좋아서 떠나기 싫은 악은 무엇입니까?
2. 가족 신화를 지키려고 계속 싸웁니다.
28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 요람과 여호람으로 구분해줬으면 되자나요. 그런데도 열왕기 기자는 아합의 아들이란 이름표를 떼지 않고, 제발, 아합의 악을 잊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그 길로 들어서지 말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아하시야에게 아합은 외할아버지고, 요람은 외삼촌이에요. 아하시야가 외삼촌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갔어요.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려고 갔죠. 여러분, 하사엘이 얼마나 강한 왕이라고 들었죠?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 길르앗 지방의 중심 성읍인데요. 원래 북이스라엘의 영토였지만 아합의 부친 오므리왕 때 아람에게 빼앗긴 듯해요. 그런데 아합이 아람을 물리치고 평화조약을 맺을 때 아람왕은 오므리에게서 뺏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열왕기상 20장에. 하지만 아람왕이 위기를 면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여러분,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약속을 안 지켜요. 나라도 약속을 안 지켜요.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예요. 구속사, 이 구원을 받은 사람만 약속 지키는 거예요. 그 다윗에게 허락하신 약속, 절대로, 그러니까 사람 간에 약속에 대해서 여러분 상처받으면 안돼요. 이 세상 사람은 약속 안 지켜요. 불신결혼 약속 안 지켜요, 그래서. 돈 많았다고 약속 지킵니까?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고 군대를 일으킵니다, 약속 안 지켰다고. 그런데 이 전쟁에서 아합이 전사해요. 나가지 말라고 미가야 선지자가 막 얘기했자나요, 시드기야 와서 뺨을 막 때리면서. 기억하시죠? 이렇게 성경을 구절구절 읽혀 드리는데도 우리들교회에서 못 알아들으면 제가 정말 너무 절망이 됩니다. 아합이 전사한 건 하나님의 심판이에요. 믿음이 하나도 없는 요람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걸 인정을 하겠습니까? 위대한 임금이었던 아버지 생각만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길르앗 라못이에요.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공격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돌아가신 곳이에요. 요람에게 길르앗 라못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한이 맺힌 곳이에요. 후계자인 자신이 반드시 복수해서 수복해야 할 땅이에요. 그래서 군대를 일으키는데요. 혼자서는 벅찬 거예요, 하사엘이 너무 능력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미 자신과 끈끈한 결혼 동맹으로 한 집안이 된 조카 아하시야를 부르는 거예요. 아하시야에게도 길르앗 라못은 사연이 있는 곳이죠.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죽을 뻔했던 곳이자나요.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죽을 뻔했던 곳이고. 어릴 적 일이었지만 들어서 알았을 것이에요. 또 자기 땅도 아닌데, 이게 북이스라엘 땅인데 결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가고 싶은 땅은 아니지만 군말 없이 외삼촌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출정을 해요. 왜 그렇습니까? 그가 다윗의 집보다는 아합의 집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큰 것이에요. 다윗의 집은 당연하고 거기에 더해진 아합의 집이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아합의 집이 더 크고 중요한 거예요. 외가요, 처가자나요. 상아궁에서 으리으리하게 살자나요. 그러니 요람이 이 어려운 부탁을 하는데도 바로 달려갔어요. 요람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영웅이신데 길르앗 라못, 그 한가지가 오점으로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오점이라고는 있을 수 없다고 여기니까 길르앗 라못을 생각할 때마다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걸 뭐라고 하나요? 가족 신화하죠. 집집마다 신화, 문벌 신화. 하나님 보시기에 오므리나 아합은 다 악인이자나요. 그런데 자기네들은 영웅이라고 모시고 살아요. 이스라엘에 미친 악한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 위대한 할아버지, 민족의 영웅 우리 아버지.'하면서 아합의 집 길을 더 탄탄하게 닦고자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해도 말씀이 안 들리니까 아합의 원수를 갚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렇게 피해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천 년이 가도 이걸 해결할 수가 없어요, 항상 구원의 시각으로 봐야되는 거지. 그러니까 등불에서 악을 덮어야 되자나요, 그런데 '악을 갚아야 된다. 원수 갚아야 된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이처럼 가족 신화에 사로잡혀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게 그 길이에요, 그 가풍이에요, 전통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안을, 이 나라를.' 이러면서 계속해서 싸움을 벌입니다. 원수를 갚고, 한을 풀고, 오명을 벗고, 오점을 지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워요. 여기에 누가 물이 들었습니까? 다윗의 후손 아하시야가 이 악에 물이 잔뜩 들었어요.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올 때 선견자 예후가 왕에게 나와서 얘기했어요.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렇게 경고를 했어요. 성경에 다 나온 얘기예요. 이를 심판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유가 외가이자 처가인 아합의 집이 너무 좋아서 처가 말을 듣고 아내가 하라는대로 다 하니까 이제 그 길에 딱 붙었어요. 딱풀이 돼서 떠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자기 싸움이 아닌데도 그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요. 힘과 시간을 낭비하여, 지금 있자나요 가족 신화에, 효자에, 열부에 다 모여가지고 나라를 거덜내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알아듣겠습니까?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다 가족 신화를 가지고 있어요. 잘 나가는 집안일수록 가족 신화가 아주 두꺼운 책이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성공해야 되고, 돈 잘 벌어야 되고, 좋은 학교 가야 되고, 사고 치면 안 되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온갖 항목을 가지고 신화를 씁니다. 들들 볶아요, 가족들을.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게 누구입니까? 자식이에요.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니가 이 원수를 갚아. 너는 반드시 서울대학 가서 우리 집의 원수를 갚아야 돼, 공부, 알았지?' 이게 다 가족 신화예요. 부자는 부자대로 지켜야 되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니가 우리 집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 저 집을 물리쳐야 돼.' 따지고 보면 아하시야가 이런 가족 신화의 최대 피해자인 거예요. 여호사밧이 불신결혼 시켜서 들어온 그 아합의 집 가족 신화가 그 아들 여호람에게서 꽃을 피웠어요. 그 이름도 똑 같은 형님 요람이 너무 좋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처가가 너무 좋아요. 그러니 아들에게 '너도 나처럼 아합의 집에 장가 가거라. 너무 좋아. 최고야.' 어려서부터 가족 신화를 계속 넣어줬어요. 게다가 아달랴가 욕심이 많고 야망이 크자나요. 아들에게 '너는 외할아버지 아합 대왕처럼 되거라.' 가르치면서 마음 속에 가족 신화를 점점 더 화려하고 두껍게 새겨줬을 것이에요. 그래서 대를 물려 아합의 집과 불신결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여호사밧의 이 아내인 아하시야의 할머니는 왜 등장을 안 할까? 존재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여호사밧이 이세벨과 아달랴에게 뻑이 갔나봐. 이 성군인 여호사밧이. 자기 아내는 여기서 존재도 없어. 왜 이름까지 등장을 하지 않았을까. 살기 싫었을까. 아이를 낳았으니까, 여섯 명을 낳고 여호람이 그 형제들을 죽였자나요. 글쎄, 찾아본 사람이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길 바래요. 그런데 이렇게 가족 신화 지키려고 열심히 싸운 싸움의 결론이 뭐라고 말씀해주세요? 부상만 당하는 거에요. 아합의 집 길 끝에는 상처만 남아요. 하나님이 아합의 집 길 위에서 싸우는 싸움은 절대로 승리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가족 신화, 우리 가족 사랑하는 거는 그거는 개들도 하는 거예요. 자기 가족 좋아해요. 우리는 이타적으로 살아야 되자나요. 객관적으로 자기 자녀를 봐야 되자나요. 그런데 식구들끼리 너무 좋은데 그것이 밖으로까지 나가게 되겠어요. 그건 인간으로는 힘들어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하나님이 한계 상황을 보라고 여러가지 우리들교회에 문제를 많이 주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인간은 그냥 다 악하니까 이 한계를 보라고 이렇게 저렇게 사건을 주는 게 축복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땅의 기복적인 시각으로는 고난이 어떻게 축복이겠어요. 그런데 이 구속사가 여러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우리 가족은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가족 신화 때문에 끊임없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입니까? 가족 신화로 가족들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결국 제자리 걸음으로 끝납니다.
29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
-> 싸움에서 부상당하고 패하는 사건이 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는 큐티를 해야죠. 말씀을 펴고 하나님께 이 사건을 물어야 됩니다. 해석받고,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되자나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됩니다. 그러면 상처가 별이 되고 약재료가 되자나요. 그런데 아합의 집 길 위에는 회개의 유턴같은 거 없어요. 오직 가족 신화, 자기 확신만 있기 때문에 자기 잘못 인정하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나는 죽음으로 내 모든 걸.' 죽으면 영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부상당한 요람이 돌아온 곳이 어디예요? 이스르엘이에요. 이스르엘 여기가 어디입니까? 아합이 별궁을 짓고 제2의 수도로 삼은 도시예요. 이스르엘이 굉장히 지형적으로 비옥한 교통의 요지였거든요. 그런데 이 좋은 곳에서 아합과 이세벨 부부가 한 짓이 뭔지 기억나세요?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아합의 집과 탐욕의 교만이 폭발한 바로 그곳이에요. 정해진 땅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 하나님이 가문별로 나눠 주신 땅의 소유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이자나요. 그런데 아합은 이미 하나님 위에 있기 때문에 그냥 사람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거예요. 가족 신화 지키려고 싸움을 벌인 요람이 싸움에 져서 돌아온 곳이 이스르엘이에요. 결국 제자리 걸음이에요. 풍요의 땅, 별궁이 있는 휴향지, 부모님이 절대 권력으로 빼앗은 이 좋은 포도원이 있는 곳, 거기서 나오는 와인을 마시면서 잘 쉬면 금방 상처가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겠죠. 구속사를 모르면 다 삼천포로 가는 거예요. '이스르엘에 가면 내가 치료할 수 있다.' 이렇게 외쳤을 거예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죄가 안 보여요. 자기 잘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패했는데 회개할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여러분, 엘리사를 여러 번 만난 요람이에요. 게하시가 설명한 큰 일도 다 들었어요. 수넴 여인의 간증도 다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12년 동안 왕 노릇을 했어요. 수많은 기적을 보여줬어요. 그런 게 소용이 1도 없어요. 기가 막히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저를 욕하는 게 당연해요. 이 북의 여호람도 12년 동안 하나도 안 들리니, 여호람도 안 들리고, 요람도 안 들리고. 그래서 기다려야 되니까 눈물이 나는 거죠. 왜 소용이 없어요? 그냥 마음이 자기 집안에만 있어요. 아합의 집이 세상의 전부예요. 자기 집안도 믿는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우리가 금송아지만 예수님처럼 믿는다. 자기 집안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사건이 와도 그것을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여 적용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왜요? 치료해 줄 것 같은 이스르엘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그 부상이 치료됩니까? 오늘 마지막에 치료는 커녕 더 심해져서 병이 되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하시야도 요람과 똑같이 움직여요. 전쟁에서 졌으면 빨리 군사를 정비해서 나라로 돌아가야 될 거 아니예요. 그런데 어디로 가요? 외삼촌 요람을 보기 위해 자기도 이스르엘로 내려가는 거예요. 이거는 영적으로, 육적으로도 내려가는 길이에요. 다윗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아합의 집 길로 추락하는 선택이에요. 영적, 육적으로 좋은 환경과 조건을 다 갖췄는데 다윗의 길이 아닌 아합의 집 길을 가니까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하는 거예요. 요람과 아하시야는 이스르엘에서 이렇게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진짜로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거예요. 둘 다 예후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거예요. 오늘 이스르엘에 가서 나봇과 그 형편없는 일개 그 사람의 토지를 뺏은 게 뭔가. 이 대단한 나라가 있는데. 여러분, 이 사소한 것에서 우리는 목숨이 날아갑니다. 사소한 것에서 우리 인생의 전체적인 것, 모든 것, 이루었던 것 하루아침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반면교사로 우리 읽으라고 써 놓으신 거예요. 아합의 집 길은 멸망의 길로 정해진 길이에요.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심판하셨어요.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을 어디에서 주셨나요? 이스르엘에서 주셨어요.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은 직후에 말이죠. 이것을 요람이 몰랐을까요? 여호사밧과 여호람이 몰랐겠어요? 아하시야는요? 당연히 알았죠. 그런데 그 말씀을 믿지 않아요. 화려한 아합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이 초라한 엘리야가 딱 무시가 되는 거예요. 아합의 집 길은 말씀을 무시하는 길이에요. 말씀을 거역하는 길이에요. 겉으로 화려해보입니다. 겉으로 자기가 제일 의로워요. 하지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끝나는 길이에요. 그러니까 느헤미야가 가장 처참한 불신결혼의 예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하자나요. 솔로몬이 처음에 십일조 신앙, 안식일 신앙에 성전 짓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다가 말할 수 없는 지혜와 돈과 능력을 주시고, 무역으로 세계 강국을 이루게 하시니까 딱 달라졌어요. 여자에 미쳤어요. 여호와를 떠났어요. 하나님이 두 번이나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고 진노하시고 갖은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셔도 솔로몬이 권력과 돈이 생기니까 아무 말씀이 안 들려요. 심지어 예루살렘 앞 산에 이방 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어서 여자들에게 바쳤습니다. 솔로몬이 이러면서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잠언을 썼어요. 자기는 안 들으면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고 썼어요.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음녀의 홀림에 넘어가지 말라고 보석같은 잠언을 썼어도 아들 르호보암에게 보여준 삶은 천 명의 여자를 바꿔가며 거느린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문제아가 안 나오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못 볼 꼴을 보고 자란 사람이 르호보암입니다. 은쟁반에 옥구슬 같은 기막힌 말을 해도 아버지 솔로몬의 삶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했어요. 10지파를 잃어버렸어요. 남북이 갈라지고 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모든 원인이 올라가보면 솔로몬에게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솔로몬에게 다윗의 등불을 허락하셨어요. 그러니까 옳고 그름으로 보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정말 이 구속사가 들려야 되는데 머리로 안 들려요. 이방 여인을 취한 것이 범죄 중의 범죄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요. 여기서 적용질문 하나 드릴게요.
[적용] 문제 자녀의 방황이 불신결혼의 결론인 것을 깨닫습니까? 말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세상 성공의 가치관을 온몸으로 보여 주며 자녀의 불신결혼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면, 다윗의 길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처럼 남긴 말이에요. 열왕기상 2장에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그 길로 행하라. 무슨 길이에요? 하나님의 명령, 말씀을 지키는 길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곧 길이에요. 십자가를 길로 놓는 순종을 말해요. 이 길을 그냥 다윗의 길이라고만 하지 않고, 이 길을 내 길이라고 하세요. 열왕기상 3장에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이 말을 내 길, 또 북이스라엘 초대왕 여로보암에게도 하셨어요. 그러니까 다윗의 길이 하나님 아버지의 길이에요, 하나님의 길이에요. 그런데 다 듣지를 않아요. 여로보망믜 길, 아합의 집 길이 다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길 버리고 내 길 가는 거예요. 인생 내가 원하는 길로 가려다가 결국 제자리 걸음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함, 말씀 듣고 지키는 길을 가면 우리 인생을 제자리 걸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죠. 우리 길을 길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불신결혼을 사르코지도 안 되고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느헤미야 13장에 불신결혼 어떻게 막았는지 보겠습니다. 성전을 짓고 이제 수산궁에, 다 이제 자기가 관리였자나요. 수산궁에 갔더니, 정말 우리가 이 불신결혼은 솔로몬왕도 그때 대제사장 엘리아십도 불신결혼에 다 예외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25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느혜미야는 그 모든 귀인들, 이 모든 사람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머리털을 뽑았어요. 여기서 불신결혼을 막을 사람은 느혜미야 한 사람 밖에 없는 거예요. 유다 귀인,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대제상까지 삼발락과 도비아 같은 원수와 혼인으로 동맹을 맺고 '가서 잘 살면 되지 불신결혼이 무슨 상관이야?'하고 있으니까 지금 느헤미야가 목숨을 걸고 막고 있는 거예요. 불신결혼은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으로 이 땅에서 주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가서 잘 살면 그야말로 죽고 나서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막아야 되는 거예요. 여기서 책망하다는 리브 동사는 느헤미야 13장 11절에서 십일조 문제로 민장들을 꾸짖을 때 이 단어를 썼어요.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7절에서 안식일을 안 지킨 유다 귀인들을 꾸짖을 때 이 책망하다라는 단어를 썼어요.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십일조, 안식일, 그 다음에 오늘 불신결혼을 책망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잘 하고 어렸을 때부터 안식일을 지키면 불신결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돈이 더 좋으니까 십일조 안 하죠. 돈이 생기니까 이제 안식일을 또 안 지켜요, 사업이 잘 되면. 당연히 불신결혼 하죠. 돈 많은 사람끼리 결혼하죠. 각각 사안은 달라도 영적으로는 똑같은 죄인인 거예요. 적용입니다.
[적용] 이스르엘처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치료해 줄 것 같은 곳은 어디입니까? 그런 이스르엘이 없어서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내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예선
1.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2.지난주부터 감기로 밤에 잠을 잘 못자서 힘든데 회복시켜주시길
3.미루고 있던 2024 골 세팅 관련 이번주 목요일까지 제출해야됩니다. 지혜주셔서 작성 마무리 할 수 있도록
4.토요일에 상담 가는데 잘 나누고 오도록
은우
1.모든 인생문제의 주체자가 주님이신 것을 알고, 정해진 처소에서 하루만 사는 은총 누리도록
2.다윗의 등불이 아니면 제자리 걸음인 것을 알고 잠잠하도록
희연
1.주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아합의 집 길'이 아닌 다윗의 길로 갈수 있도록
2.이식한 신장 뿐만 아니라 영육 건강하게 회복되어서 예배와 목장 나갈 수 있기를
3.엄마 구원과 몸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4.조카들 새학교와 유치원에서 적응 잘 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도록
5.언니의 가정이 평안하고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길
6.목장 식구들 목자 언니를 포함하여 모두 건강하게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승리하고 은혜 받도록
7.주님의 말씀위에 저를 세우시고 저의 모든 삶을 동행해주시고 주관하시는 주님께 영광 드리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