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주일설교 열왕기하 8:7~15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최근 한달 이내에 운 적 있으신가요? 남성은 40%고, 여성은 75%가 울었다고 합니다. 울수있는 존재는 인간 뿐이라고 합니다. 더 자주 우는게,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인간적인 걸까요? 확실히 본차이나가 더 업그레이드 같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울보는 다윗입니다. 본문에 보니 엘리사도 웁니다. 우니까 믿음이 없는 하사엘은 엘리사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우리도 자기 사연 때문이 아니라 세싱은 이해하지 못하는 구원을 위한 이타적인 눈물을 흘려야 겠습니다.
1. 남은 사명 때문에 다메섹에 가야 합니다.
7절
6절까지 수넴여인이 받은 보담이 엄청 납니다. 아들 주시고, 죽은 아들 살려주시고, 기근 피하게 하시고 빼앗긴 재산을 다 찾게 하십니다.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 보이던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다고 합니다. 마지막 눈물의 사역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밑둥 잘린 나무이기에 되었다 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입니다. 이곳에 엘리사가 갑니다. 아람과이스라엘은 원수고 엘리사는 북이스라엘 선지자입니다. 평소라면 갈 일이 없는데 왜 갔을까요? 나아만을 만나러 갔을까요? 아람 왕 베나닷을 만나러 간걸까요? 반가운 사람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에게 다메섹은 사명의 마지막 남은 곳입니다.
엘리야에게 마지막으로 세 가지 사명을 주셨는데, 엘리야가 두 가지를 못하고, 세번 째 사명인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는 사명만 하고 승천합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사명을 받아도 사명은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입니다. 엘리야 때에는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했으니 무조건 가야한다 하면 안 됩니다. 때를 모르면 일을 그르칩니다. 때를 알게 하려고 하나님은 인내의 훈련을 허락하십니다.
엘리야 같은 선지자도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이 자기 한계를 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분별입니다. 자기가 못 했다고 이 사명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엘리사에게 맡겼습니다. 엘리사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자기 판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부지런히 시역하며 다메섹에 갈 때를 기다렸을 것입니디. 엘리야도 때를 기다리다 못 간 다메섹에 드디어 엘리사가 갑니다. 이는 아주 힘든 사역입니다. 조상 때부터 문제였는데, 해결할 엄두가 않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불의 선지자 엘리야도 못하고, 기적의 선지자 엘리사도 마지막에야 하는 어려운 사명입니다. 이스라엘 왕보다는 엘리사가 아람과 사건이 많았다. 아람에는 엘리사라면 이를 갈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연이 있어도 이스라엘과 아람은 원수입니다. 가기 싫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의 안전이나 평안함보다는 남은 사명을 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은 사명도 아닌데, 엘리사는 선생님이 남겨주신 사명을 다 하는 일로 마지막을 장식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본성을 거슬러 싸우며 스승님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더욱 높이는 적용입니다. 거룩은 이렇게 한 걸음 씩 인도함 받으며 내 욕심을 처리하며 가는 것입니다. 오늘 올라오는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엘리사는 이미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그가 다메섹으로 오는 것이 벤하닷에게도 전해집니다.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작정하고 발을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게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마침 벤하닷이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어도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8절
벤하닷은 하사엘에게 엘리사에게 가서 자기 병에 대해 물으라합니다. 벤하닷은 여호람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더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몸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호람은 건강하니까 아무리 기적을 경험해도 엘리사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돈 있고, 벤하닷은 엘리사를 지극정성으로 환영합니다. 하사엘을 보내 마중하라 합니다. 아무나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믿을 만 한 신하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합니다. 예수 안믿는 나라는 거의다 습관이 되어 점을 칩니다. 살려주세요 부탁하지 않고 살아나겠는지 묻는 것입니다.
9절
하사엘은 화려한 환영 행렬을 이끌고 엘리사 앞에 섭니다. 나아만이 엘리사 앞에 섰는데, 이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섰습니다. 마찬가지로 하사엘도 겸손한 자세로 엘리사 앞에 선 것입니다. 자기 왕 벤하닷을 엘리사의 아들이라고 할 정도 입니다. 예물 앞에 장사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어마어마한 예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사명을 예물에 팔아먹지 않습니다.
10절
엘리사는 이상한 예언을 합니다. 반드시 낫지만 반드시 죽으리라고 합니다. 벤하닷의 질문에 대한 엘리사의 답이 결국은 반드시 죽는 다는 것입니다. 심판입니다. 엄청난 예물에 마음이 팔렸다면 미안해서라도 하지 못 할 말입니다. 하지만 엘리사에게 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명입니다. 무슨 사명인가요? 엘리사에게는 벤하닷 대신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우라는 명령이 있는 것입니다. 알게 하셨느니라에 해당하는 동사는 13절에도 나오지만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하사엘이 왕이 될 것과, 그가 행한 일을 직접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엘리사가 직접한 한 모든 사역보다 가장 본질적인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베푸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 이보다 본질적인 사역은 없는 것입니다.
예물에 한 눈이 팔렸다면 엘리사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예언을 하면서 아까움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물에 걸려 넘어집니다. 물질 뿐 아니라, 인정, 칭찬 등도 예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나쁘니까 하지 말아라 이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를 기분좋게 하는 것이 마음을 빼앗겨 본질것인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물보다 더 중요한 건 사명입니다. 다메섹에 예물 때문에 갔다면 후회만 있겠지만, 사명 때문에 갔기에 가장 복 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말씀에서 목장에서 나누고 처방하는 것은 어떤 기적보다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집사님은 우리들교회 와서 첫 목장을 갔는데, 가관이었다고 합니다. 치고 박고 싸우는 지체들을 보며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이구나 하며 마음이 열렸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남편을 고발 했는데, 다 남편 편을 들어서 위로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나중에 목자님이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처방을 잘 들어야 하는데, 자꾸 위로만 듣고 싶어합니다.
- 조상 때 부터 내려오는 해결할 수 없는 남은 사명의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 사명보다 마음이 더 끌리는 예물은 무엇입니까?
- 가감없는 처방을 기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2. 나라가 당할 모든 악을 알아야 합니다.
11절
벤하닷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사엘에게 말한 엘리사는 하사엘을 쏘아 봅니다. 민망해 할 때 까지 쳐다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웁니다. 여기서 운다는 것은 통곡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는 자기를 쏘아보다 통곡을 하니 하사엘이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12절
하사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악을 다 안다며 이스라엘 성에 불지르고, 백성들을 죽이는 악을 행할 걸 알기에 운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호의와 존경을 거절한 게 미안해서 그런것도 아니고, 예물이 아까워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사엘로부터 당할 모든 악을 알았기에 웁니다. 항상 관심이 자기 자신보다는 나라와 백성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가 뭘까요? 여러분에게 나라는 무엇인가요? 어느 순간 우리나라가 둘로 나뉜 거 같습니다. 자유민주국가니 의견과 갈등은 당연한데,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내 편과 다른 건 틀렸다며 나누는 거 같습니다. 나라가 없는 민족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가 없습니다. 이 한마디로 다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 위에 세워져 있기에 이렇게 마음 껏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정권을 잡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교회를 말살 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분리를 말하는 데, 이는 국가와 교회가 나뉘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힘과 종교의 힘을 한 사람이 가져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침범하지 않고, 견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다른 악이 있습니다. 창조 질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동성애, 낙태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성을 태우는 것 같은 장정을 죽이는 것 같은 갈등과 경쟁, 아이를 던지는 것 같은 교육 문제, 아이 밴 배를 가르는 것과 같은 낙태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사엘은 나쁜놈* 이게 아닙니다. 나라의 닥칠 악을 알고 운다는 것은 나라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악을 보시며 우십니다. 우리가 이런 아버지의 애통한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새벽마다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예배로 모일 때마다 우리 가정문제도 기도해야 하지만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쌓이고 있는 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기도할 때, 주님이 고쳐 주실 줄을 믿습니다.
- 나라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합니까? 공동체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 땅의 악은 무엇입니까? (입시, 낙태, 이혼, 동성애, 진영논리, 경쟁 등)
어떤 목장 나눔입니다.
자녀들이 교회를 외면하니, 남편이 다리를 부러져서라도 교회 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교회를 가겠다고 합니다. 이후 첫째가 또 다리를 다쳤다고 합니다. 가족톡방에 기도제목을 올리겠다는 적용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다리가 부러지니 기도제목을 나누고, 아멘하기 시작했다 합니다.다른 목장에서는 이 땅에서 물질적으로 누려보고 싶다고 했다 합니다. 시원하게 쓰고 싶다고 그랬더니 남편이 그렇게 쓰면 지옥 간다고 아껴써야 천국 간다고 했다 합니다. 돈이 있으면 돈 쓸 시간 때문에 교회 올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아내가 혼자 은혜 받았다고 나눔을 시작하면 마음이 꼬이고, 아내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심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해주니 죄가 힘을 잃는 거 같습니다.
맨날 목장에서 좋은 얘기만 하고 있으면 재미딱지가 없습니다. 낭만주의 그림은 재미가 없습니다. 요즘은 히스토리, 생각할 거리가 있는 그림을 가서 봅니다.
3. 사람이 아닌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13절
알 게하다가 또 나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끔찍한 일을 행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자 정색을 하며 항변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겸손한 척, 낮은 척 하며 엘리사 앞에 서있습니다. 개같은 종이라고 하니 말뿐 아니라 행동까지 너무 순수해 보일 거 같습니다. 하지만 말로는 분별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의지해서 기도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모르겠어요 말씀을 의지해서 나아가니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지금 자기 안에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구속사로 사건을 보고 말씀을 믿기에 사람에게 속지 않는 것입니다.
14절
하사엘이 벤하닷에게 반만 전합니다.
15절
아마도 하사엘은 이전부터 역모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연기를 잘해서 아무도 눈치를 못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사엘이 임자를 만납니다. 자기 연기가 안 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엘리사 그 한사람을 만납니다. 자신의 야망을 겸손한 포장지로 가리려 하지만 엘리사에게 딱 들킨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들통 나게 생겼으니, 준비했던 반역 계획을 실행으로 옮깁니다. 뒷말을 빼고 살아날 거라는 좋은 말만 전하고, 이튿날 암살 합니다.
하사엘은 출신이 안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 나라의 2인자가 됩니다. 그리고 왕을 암살하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못 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람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를 보면 이땅에서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아가야 합니다. 벤하닷은 이 한 사람을 신뢰함으로 하사엘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없이 누구를 신뢰한다는 말 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없으면 마지막에 자기 유익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분별을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엘리사에게 말씀이 없었다면 하사엘에게 속아 넘어갔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사엘의 모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었기에 정확히 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하사엘의 일이 이스라엘에게 돌이키라는 채찍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사엘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흥하고 가는 데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멸망이 아닌 구원이고, 심판이 아닌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신 못차리고 자꾸 우상숭배하니, 하나님이 여러 방법으로 사건을 주시는 것입니다.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 내가 지금 가장 믿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의 믿음 때문입니까? 잘 해줘서 입니까?
- 내가 속이고 있는 일, 또는 속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사람보다 말씀을 더 믿은 경우가 있었습니까?
한 분이 낙태를 하려고 했는데, 교회에서 안 된다고 말려서 아이를 낳았고, 3년째 아이가 미웠다고 합니다. 양육을 받다가 선교사님의 얘기를 듣고나서 회개가 되었고, 그 이후로 아이가 밉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분이 임신이 되어서 낙태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회사에서 너무 축하를 해주었다고, 아내도 낳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검사를 했는데, 아이가 폐가 자랄 공간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병원에서는 낙태를 하라고 했지만 아이 생명을 지키고자 낳았고, 낳자마자 가슴을 열어서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축구선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상대가 힘듦을 보고 이타적으로 울어야 합니다.
[나눔]
Q. 청소년부 스탭으로 다녀온 수련회는 어땠어?
A.
내 딴에는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눔 시간에 내가 혈기를 참지못하는 모습을 봤다 고 하니 모두가 그 말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고 또 참지 못했구나 깨달아졌다.
나는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어쩌다보니 미디어팀원으로써 중계까지 맡게 되었고, 욕심이 생기니까 잘 해내고 싶었으니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 함께 섬기는 부서 사람들이 처음이라고는 하지만 팀 내 커뮤니케이션도 잘 안되고, 다른 팀과도 부딪히니 판단과 정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화가 너무 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의 욕심과 상관없이 이미 은혜받은 표정이었고, 순간 이게 단순히 세상의 일이라기보단 주의 일이었다는 생각에 혈기가 누그러졌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내고싶어서 내 기준치대로 모든 사람이 따라와줘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정죄하고 판단하는 내 모습을 보게된 기간이었다. (나도 아웃리치 때 컨트롤 되지 않는 상황들 때문에 힘든 기간을 보냈었다. 나도 이기는 게 너무 좋아서, 우리가 제일 멋있었고 좋았다는 후기가 나오면 좋겠어서 열심을 냈는데... 어쨌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은혜를 받는다. 내 계획이 완벽할 수록 하나님이 사역할 틈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너의 그 열심이 다듬어지면 좋은 리더십이 될거라 생각한다.)
Q. 한 주간 어떻게 지냈어?
C.
일을 하고, 일을 하고의 반복 중에 신입이 입사를 했다. 원래 팀장과 내가 일을 할 때에는 보고를 따로 하지 않았었는데, 신입은 꼬박꼬박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이것저것 묻는다. 내가 오히려 눈치가 보인다. 내가 이렇게 해왔던게 틀렸던 것인가 싶고...(소장에게 팀장을 거치지 않고 보고하는 것 등) 팀장에게 보고하는 행위 자체가 조금 어색하다. 원래 같은 팀원이기도 했고, 그 사람이 갑자기 팀장이 된거라...
(보고라기 보단 팀원끼리 공유한다는 느낌으로 보고해보는 건 어때?)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서 그것도 좋은 방법인 듯. 팀장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그분은 엄청 정적이라 나랑 조금 성향이 반대되는 것도 있고...
B.
14일 수요일에 죄악을 버리라는 큐티. 내가 고난 중에 말로 내 처지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말씀이 있었는데, 동생을 섬기는 게 내게는 너무 쉽지 않은 일. 동생도 직장을 다니는데 집안에서만 엉망이다. 성향도 나랑 너무 다르고 이른 나이에 내가 독립 해버려서 동생과의 유대감도 적은 편이다. 동생을 섬겨야한다는 처방을 받았는데, 그 때 힘든 적용한다고 체 스스로 공동체의 처방을 다 잘 따르고 있다고 생각해 위안을 얻는 게 있었다. 근데 막상 돌아보면 내 나눔은 스스로를 변호하는 나눔.. 진실한 하나님의 지혜로 동생을 섬기고 있나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해가 되어야 행동하는 사람이라 동생이 이해되지 않아 섬기기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섬기기 전에 동생을 이해해보려는 게 어떻겠냐는 공동체의 말에 책도 읽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주도 소소하게 대화했는데 조금 친해진 것 같기도 하다. :) 억지로 하려고 하고, 이해하지 않고 하려다보니까 힘들었던 겉 같다. 동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면 좋겠다.
[기도제목]
A.
1. 한 주 동안 생활큐티 열심히 할 수 있도록
2. 남자친구가 양육 무사히 잘 받을 수 있도록
3. 남동생이 5일 뒤에 전역하는데 무탈히 지낼 수 있도록
B.
1. 생활큐티 잘 할 수 있도록
2. 부모님의 정년퇴임으로 집인이 좀 소란한데, 아버지의 구직이 성공적일 수 있도록
3. 직장에서 팀장에게 잘 순종할 수 있도록
C.
1.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길.
2. 직장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업무를 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는 하지 않고 있다. 사명이라 생각하고 나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D.
1. 수련회 다녀오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다녀올 수 있도록 ^ㅠ^
2. 가족과의 시간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