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열왕기하 8:7-15
최근 한 달 이내에 운 적이 혹시 있으세요? 남성은 40%인데 여성은 75%라고 해요. 이게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조사했다고 그러는데 거의 2배나 차이가 나죠? 울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뿐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더 자주 울면 믿음이 좋은 건가요? 확실히 흙보다는 본 차이나가 업그레이드인가봐요.
성경에서 제일 울보는 누구인지 아세요? 다윗입니다. 다윗이 압도적으로 많이 울고 예레미야, 에스겔도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죠.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엘리사도 우는데요. 오늘 믿음이 없는 하사엘은 엘리사보고 '왜 우냐?'고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묻습니다. 우리도 뻔하게 자기 사연 때문에 울지 말고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구원을 위한 이타적인 눈물을 흘려야겠습니다. 오늘 엘리사의 눈물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흘려야 할 이런 눈물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남은 사명 때문에 다메섹에 가야 합니다. (7-10절)
7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왕에게 들리기를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하니
-> 7절입니다.
6절까지 수넴 여인이 엘리사 한 분 잘 모셨다고 받은 보답이 너무 엄청납니다. 그래서 이제 아들 주시고, 죽은 아들 다시 살려주시고, 기근 피하게 하시고, 빼앗긴 집과 전토, 소출까지 다 찾게 하셨어요. 사실 기근을 수넴 여인에게만 주셨겠습니까? 그런데 축복의 배후에는 때마다 순종이 따랐기 때문이에요. 이 큰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부르신 기근임을 인정해야 하고, 자랑이 아닌 살아난 얘기를 할 때 다 돌려주시는 회복이 있다고 하셨죠. 다 돌려주셨으면 이제는 또 눈물의 사역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안 보이던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다고 합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예요. 여기 엘리사가 갔다는 것인데, 여러분 아람과 이스라엘은 원수고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자나요. 평소라면 갈 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메섹에 갔을까요? 나아만을 만나러 갔을까요? 아람 왕 벤하닷 만나러 갔을까요? 아니예요. 엘리사에게 다메섹은 그리운 사람 만나러 가야할 곳도 아니고 미운 사람 혼내러 갈 곳도 아니예요. 엘리사에게 다메섹은 사명이 남은 곳이에요. 열왕기상 19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여기서 너는 엘리야 선지자예요.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마지막 사명으로 세 가지를 맡기셨는데, 1번이 '다메섹에게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 2번이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 3번이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참 이상한 사명이죠? 이 세 가지 사명 중 엘리야는 1, 2번은 못했어요. 3번인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는 일만 하고 하늘로 승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게 아니예요.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자나요. 엘리야 때는 아직 이스라엘 바깥 다메섹에 갈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죠. 아직 이스라엘에는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버티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메섹에 가라고 했어. 그러니까 무조건 가야 돼.' 이러면 안되는 거예요. 떄를 모르면 일을 그르칩니다. 떄는 정말 중요합니다. 때를 알기 위해 하나님은 인내의 훈련을 하게 하시는데요. 엘리야 같은 불의 선지자도 최선을 다했지만 자기 한계를 보게하셨어요. 이런 걸 분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지못했다고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자기의 후계자인 엘리사에게 그걸 맡겼어요. 엘리사도 선생님의 유업이라고 해서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계획, 자기 열심, 자기 판단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부지런히 사역하면서 다메섹에 갈 때를 기다렸을 거예요. 엘리야도 때를 기다리다 못 갔던 다메섹에 엘리사가 드디어 간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아주 힘든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조상 때부터의 문제가 계속 내려오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문제 있죠? 그거 불의 선지자 엘리야도 못했고 기적의 선지자 엘리사도 이 마지막에야 시도하는 다메섹 사명인 거예요. 이스라엘 왕보다는 엘리사가 그 아람과 사건이 많았자나요. 군대를 살려주기도 하고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처럼 엘리사에게 빚진 사람도 많았겠지만, 병을 고쳐줬으니까. 그런데 적의 나라 선지자니까 엘리사라면 이를 갈며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해도 이스라엘과 아람은 원수자나요. 절대로 가기 싫은 거예요. 그러나 엘리사는 이제 자신의 안전이나 편안함보다는 남은 사명을 더 생각합니다. 이렇게 더 이상 때를 미뤄서는 안되서는 일들이 있는 거예요, 이 땅에는. 참다참다 몇 십 년 만에 말을 하는 것도 있고, 구원 때문에, 제가 말을 다 하는 거 같아도 몇 십 년만에 하는 말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비교적 하나님이 이곳까지 오게 하신 것이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가고싶은대로 다 갔다가는 일이 늘 그르쳐지는 거죠. 엘리사는 이거 하나님께 직접 받은 사명도 아니예요. 엘리사가 선생님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누리며 전국을 누비며 사역한지 10년도 넘었어요. 이제 선생님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엘리사가. 하지만 엘리사는 사역의 마지막을 선생님이 남겨주신 이 사명을 다하는 일로 장식을 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성정인데요. 엘리사는 이런 본성을 계속 거슬러 싸우면서 선생님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하나님을 더욱 높이는 적용이에요. 우리가 알다시피 엘리사가 얼마나 많이 기적을 행했습니까? 그래서 거룩은 항상 한 걸음씩 인도함을 받으며 가는 거예요. 오늘, 오늘 아침에 말씀 보고 한 가지 적용하며 가는 거예요. 엘리사가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적용해서 그가 다메섹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아람 왕 벤하닷에게도 바로 전해집니다. 이 기도하고 기도해서, 이 가기 어려운 곳에 가기로 작정을 하고 나니까, 한 발을 내딛으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신 알맞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마침 벤하닷 왕이 병이 들은 거예요. 몰라요. 병이 들었으니까 엘리사를 지금 반가워하는 거자나요.
8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이하고 내가 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 그를 통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 벤하닷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훨씬 더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 같아요. 이게 믿음 때문일까요? 사람은 자기 몸 아픈 게 최고의 고난이에요. 나랏일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항상 자기 몸이 아픈 것인데, 그런데 여호람 왕은 북이스라엘 왕이지만 건강하니까 아무리 기적을 경험해도 엘리사를 존경하지 않아요. 돈이 있고 건강한 사람은 이 자리에도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와 있지만 절대로 저를 전혀 존경하지 않아요. '내가 왜 목사님을 믿습니까?' 이런 분들이 있죠. 그거 이해가 됩니다. 여호람도 다 갖추게 되면 그래요. 어떤 기적을 봐도 눈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벤하닷은 엘리사가 자기 병 치료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그를 환영하는 거예요. 이런 거 이렇게 믿음이라고 너무 그냥 '신이시여.'하면 안돼요. 엘리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요. 하사엘을 보내 마중하게 합니다. 이런 중요한 일에 아무나 보내지 않겠죠. 벤하닷이 그 손에 의지할 만큼 가장 믿을할 만한 신하를 보냈을 거예요. 그리고 엘리사를 통해 여호와께 물으라고 해요. 내가 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를 물어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예수 안 믿는 어떤 나라도 다 점 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부탁하지 못하고 '살아나겠는지?' 복채를 내고 묻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복채 내고 점쟁이한테 묻는데 예수 믿는 사람보다 훨씬 몇 배라고 했어요. 우리가 건국해서 예수로 시작했지만 기독교 나라를 되게 하지는 못했어요. 나라의 종교가 기독교는 아니예요.
9 하사엘이 그를 맞이하러 갈새 다메섹의 모든 좋은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 가지고 낙타 사십 마리에 싣고 나아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 이르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하니
-> 하사엘은 화려한 환영 행렬을 이끌고 엘리사 앞에 섭니다. 5장에서 나병이 나은 나아만이 엘리사 앞에 섰었자나요. 교만 다 없어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내 주여.'하면서. 마찬가지로 지금 하사엘도 굉장히 낮은 모습으로 겸손한 자세로 엘리사를 극진히 높이며 자기 왕 벤하닷을 엘리사의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납작 엎드려 낮추고 있어요. 예물 앞에 장사가 없죠. 그것도 낙타 40마리에 실릴만큼 어마어마한 예물을 보냈습니다. 과일 박스 하나만 받아도 마음이 활짝 열리는 우리인데 40박스를 예물로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사명을 예물에 팔아먹지 않아요.
10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 10절입니다.
이 벤하닷의 질문에 대한 엘리사의 답이 결국 뭐예요, 결론이. 반드시 죽으리라자나요. '병은 낫겠지만 반드시 죽을 거다.' 심판의 선고예요. 엄청난 예물에 마음이 팔렸다면 미안해서라도 하지 못할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에게 예물보다 더 중요한 게 뭡니까? 사명이에요. 무슨 사명이죠? 벤하닷 대신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우는 그 일을 엘리사에게 맡긴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알게 하셨느니라에 해당하는 히르아니 동사는 13절에도 나오는데요.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보도록 하셨다.'는 의미인데요. 따라서 본문은 여호와께서 엘리사에게 이제 환상을 통해 하사엘이 왕이 될 것과 그가 행할 사건들을 직접 보여주셨음을 암시하는데요. 엘리사가 감당했던 지금 이같은 사역은 지금까지 그가 행한 여러 기적들, 큰 일들,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 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고 누구를 상대로든 그 계시를 조금의 가감이 없이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에요. 그러니까 '너 반드시 나을 거지만 반드시 죽을 거다.' 반만 전하죠, 다들. 십자가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이 땅에서 십자가를 져야 영광인데 다들 위로와 영광만 좋아하자나요, 그래서 팔복산의 배부름 설교 이렇게 들었지만. 예물에 한 눈이 팔렸다면 엘리사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예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을 거예요. 무슨 눈물이에요. 아까움의 눈물이에요. '아이고,저 예물 다 잃었네. 아까워서 어쩌나.' 아깝고, 후회되고, 미련이 남고. 그런 눈물만 흘리면서 슬퍼했을 것이에요. 우리가 다 예물에 걸려서 넘어지죠. 꼭 낙타 40마리에 실린 선물이 아니라도 친절과 호의, 칭찬과 인정, 환영과 대접 등이 우리에게 예물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돈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명예를 좋아해요.' 그러면 뭐 돈은 나쁜 거고 명예는 좋은 거예요? 우리의 그런 예물이 각자 달라요. 여러분, '예물이 나쁘니까 다 하지 말라.' 이런 얘기는 또 아니예요. 하지만 그렇게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더 중요한 것, 더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물보다 더 중요한 건 말씀으로 주신 사명이에요. 예물 때문에 다메섹에 갔다면 후회와 실망할 일만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 때문에 다메섹에 가면 구원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복된 인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구속사로 목장에서 처방을 하는 것은 여러분 어떤 기적보다도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으세요? 우리 목장에서 날마다 기분 나쁜 얘기 듣는 게 우리의 전공이에요. 그것 때문에 맨날 위로해주지 않고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맨날 뒤집어지고 싸우고 그러는 것이 우리들교회 목장이에요. '아프니까 우리들교회다.'
이분도 벤하닷처럼 아팠네요. '저는 음란과 술, 또한 각종 사건, 사고, 중독에 휘말려 살았어요. 그런데 아들도 ADHD을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았는데 그냥 정서행동검사를 했는데 최악의 결과가 나와서 아내와 저 모두가 많은 눈물을 흘리고', 이게 해결이 안되면 어쩝니까. 총체적인 고난에, 빚에, 알코올에 뭐. 그런데 그때 이제 풍문으로 '우리들교회 가면 살아난다.' 그래서 왔는데 목장에 가니까 목자님의 처방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큐티해라, 카톡방에 올려라, 빚 갚아라, 일해라, 술 끊어라.' 맨날 가기만 하면 명령을 주니까 듣기 싫은 본질적인 처방을 계속 들으니까 이게 살아나는 얘기인 거예요. 십자가를 지는 얘기. 맨날 위로하면 그 사람 뭐가 되는 거 있습니까? '빚 갚아야 되는 거예요. 정말 한 달에 얼마라도 갚아 가셔야 되는 거예요.' 이런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택시도 하고, 주차요원도 하고,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가서 전기기사 자격증도 따고, 소방 자격증도 따고 그러다보니까 술도 끊고, 빚도 갚고, 우울증도 호전되고 드디어 아파트 관리사무소 기전 과장으로 근무를 하게 돼요. 이 집이 자기 자신 때문에 울 일이 너무 많은 집이었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목장에 잘 붙어가니까 그게 사명인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셨더라고요. 목장 나눔에 나온 얘기예요.
또 어떤 분은 '우리들교회 와서 첫 목장을 갔는데 그 목장이 가관이었다.' 아니, 낯선 사람이 가면 조심도 좀 할 터인데 치고 박고 싸우는 지체들을 보면서 '아, 내가 있어도 될 곳이구나.'하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대요. 우리가 이렇게 목장 갔는데 '아름다워라.' 이러고 있으면 누가 그 다음에 가겠어요. 혼자 아름다우라고 그러세요.
[적용]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해결할 수 없는 남은 사명의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사명보다 마음이 더 끌리는 예물은 무엇입니까? 가감 없는 처방을 기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2. 나라가 당할 모든 악을 알아야 합니다. (11-12절)
11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 벤하닷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사엘에게 말한 엘리사는 그때부터 하사엘을 쏘아봅니다. 부끄러워하기까지, 민망해하기까지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웁니다. 여기서 '울다.'라는 이 단어는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소리내어 우는 통곡을 말하는 거예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는 자기를 쏘아보다가 갑자기 꺼이꺼이 통곡을 하니까 하사엘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래서 묻습니다.
12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 이게 어떤 하사엘의 악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 이제 이게 무슨 악이죠?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니 악 때문이다.' 그러니까 '니가 행할 끔찍한 악을 알기 때문에 내가 운다.'는 거예요. 엘리사는 호의와 존경을 거절한 게 미안해서 운 것도 아니고, 받지 못할 예물이 아까워서 운 것도 아니예요. 엘리사는 이스라엘이 하사엘로부터 당할 이 모든 악을 알았기 때문에 울어요. 관심이 자기보다는 항상 나라와 백성에게 있는 거예요. 앉으나서나 엘리사는 나라를, 나라를, 나라밖에 생각이 없어요. 여러분, 나라가 뭐예요. 여러분에게 나라는 무엇입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남북만 나뉜 게 아니라 남한도 둘로 나뉜 것처럼 되었어요. 이건 단지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이념과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편에 의해서 딱 둘로 갈렸습니다. 자유민주국가니 사실 이견과 갈등은 당연히 있는 일인데, 그런데 우리 현상을 보자면 내 편이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프레임이 되어버려서 문제죠. 이걸 정치병이라고 해요. 이것이 이 나라에 닥친 악인 거예요. 이걸 좀 해결해보고자 대구와 광주에 상징적으로 교회를 좀 세웠는데 이거 구속사를 아는 우리들교회가 해결해야 될 문제인데요. 여러분 나라는 삶의 터전이에요. 우리 생활의 모든 기반이에요. 나라 잃은 백성이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는 이제 잘 몰라요.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우리 중에는 이제 거의 없기 때문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로 알기 때문에. 그런데 2천년 동안 나라가 없던 우리 이스라엘, 중동의 팔레스타인, 또 유럽의 집시, 중국의 티벳처럼 나라 없는 민족의 그 비참을 우리는 보는 거예요. 뭐 복잡하게 설명할 게 없어요. 우리에겐 이 한마디로 나라 잃은 모든 어려움이 표현됩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도 못 드려요.' 옛날부터 제가 읊어온 얘기예요. 하고싶은 얘기가 많아도 제가 늘 이 한마디를 했어요. 우리나라가 자유 위에 세워져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정권을 잡고 첫번째 한 일이 교회부터 말살을 했어요. 공산주의가 유물론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중국, 소련 다 마찬가지자나요. 그렇게 교회를 말살하니까 우리 북한에 그렇게 토대가 마련되어 있던 3대째 기독교인 우리 외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남한으로 피난 오셨자나요, 잠시 뒤에 돌아가려고. 그래서 우리는 나라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해요. 정교분리를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와 교회가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정교분리는 정치적인 힘과 종교적인 힘을 하나로 합쳐서 휘두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교회는 국가의 법을 지켜야 하고, 국가는 교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게 정교분리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만일 교회가 법을 어길 때 국가는 제재해야 하고, 만일 국가가 교회의 자유를 빼앗을 때 교회는 저항해야 합니다. 이것도 정교분리 원칙이에요. '이건 정치 문제니까 교회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건 교회 문제니까 국가는 아무 간섭도 하지 마라.' 이건 정교분리가 아닙니다. 서로 역할을 존중하면서 그 역할을 침범하지 말고, 협력하면서 또 견제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마음대로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이 정치병들이 생겼죠. 이 정치병보다 더 심각한 악이 우리에게 또 있어요. 생명을 물건처럼 여기는 인본적인 가치관이죠. 당장 무슨 일 없다고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 안돼요. 장차 닥칠 큰 악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 질서를 파괴하며 남성과 여성 이외의 성을 주장하고, 가정을 해체하고, 낙태를 조장하는 이 문화가 우리에게 이미 닥친 악임을 알아야 하고, 이 악이 또 얼마나 큰 악을 가져올 건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악이 무서운 건지 알고 울어야 돼요. 이렇게 우리에게도 성을 태우는 것 같은 갈등이 있어요. 장정을 죽이는 것 같은 경쟁이 치열해요. 어린 아이들을 던지는 것 같은 교육 문제가 심각해요. 아이를 밴 부녀를 가르는 것 같은 낙태가 성행하고 있어요. 이건 앞으로 큰 악으로 돌아올 일들입니다. 성경은 그 시대의 역사로 읽는 책이 아니예요. 오늘 이 시대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돼요. 내 자신의 악을 봐야 되는 거예요. 맨날 '누구누구 잘못됐다.'고 행위로 그렇게 비판하는 게 아니고요. 나라에 닥칠 악을 알고 운다는 것은 나라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면서 우셨던 그 마음을 품는 거예요. 주님은 동성애에 사로잡힌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우십니다. 주님은 주님이 짝 지어주신 부부의 관계를 깨뜨리고 가정을 해제하려는 그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우십니다. 주님은 태아를 생명으로 여기지 않고 낙태하려는 그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우십니다. 주님은 내 편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것을 정치적 투쟁의 문제로 보며 자기 영혼만 불태우는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우십니다. 이런 악이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이 고이고 있는 그런 곳이에요. 우리가 이런 아버지의 애통하는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 가지고 우리가 새벽마다 함께 기도하면 좋겠어요. 예배로 모일 때마다 내 문제, 우리 가정 문제도 간절히 기도해야겠지만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말씀으로 깨닫고 애통하며 간절히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쌓이고 있는 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통해 주님이 이 땅의 모든 악을 치료하고 고쳐주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하십시다. 저는 모든 전토와 집과 재물과 예배를 빼앗기고 온 친정과 시댁 부모님들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 못 드린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체험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지금 당장 공산주의 북한에서 예배 못 드리자나요. 어떤 얘기도 다 필요 없어요. 어떤 판단의 근거는 예수여야 하는 거예요. 예수여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잘, 잘못이 있어도 예수를 믿어야 되는 거예요.
[적용] 나라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합니까? 공동체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 땅의 악은 무엇입니까? (입시, 낙태, 이혼, 동성애, 진영 논리, 경쟁 등)
3. 서로 사랑을 격려해야 합니다. (13-15절)
13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 자신이 이스라엘에 끔찍한 악을 행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자 하사엘은 정색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당신의 개 같은 종이라고 하며 '그런 큰 일은 할 수 없다.'고 항변하죠. 하사엘이 얼마나 겸손한 척, 낮은 척하며 지금 엘리사 앞에 서 있는데요. 말 뿐만 아니라 자세와 목소리와 눈빛조차도 너무 겸손하고 너무 순수해 보여서 겉모습만 보면 엘리사도 '내가 잘못 짚었나?' 했을 거예요. 그런데 개는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도 자기를 '죽은 개 같은 나'라고 했는데 하사엘의 '개 같은 종'하고는 종류가 다른 개예요. 그러니까 말로는 분별이 안돼요. 그러나 엘리사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죠. 엘리사는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지금 자기 앞에서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서 있는 하사엘이 벤하닷을 이어 징계의 도구로 아람 왕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엘리사가 받았거든요. 구속사로 사건을 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기 때문에 사람에게 속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모습을 본 하사엘은 어떻게 합니까?
14 그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의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반드시 살아나시리이다 하더이다 하더라 15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아마도 하사엘은 이전부터 역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연기를 했기 때문에 벤하닷은 물론 그 누구도 역모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하사엘이 오늘 임자를 만났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자기 연기가 통하지 않는 그 한 사람 엘리사를 만난 거예요. 벤하닷을, 자기의 주군을 아들, 자신은 개, 이런 강력한 단어까지 써 가면서 자신의 야망을 겸손한 포장지로 가리려고 했지만 엘리사에게 딱 들켜버렸어요. 그래서 어덯게 해요? 엘리사 때문에 들통나게 생겼으니 준비했던 반역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왕에게 엘리사가 전한 말을 딱 절반만 전해요. '병에서 반드시 살아날텐데 반드시 죽을 거야.'에서 뒷말을 싹 빼고 살아날거라는 말만 전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나한테 뭐든지 '잘 될거야.' 그게 좋은 게 아니예요. 우리가 밑동 잘린 나무인데, 잠시 후에 죽을 인생인데 '잘 될거야.', '붙을 거야.', '나을 거야.' 이게 좋은 게 아니라니까요. 살아날 거라고 해놓고는 이튿날 몰래 암살을 해요. 잠든 얼굴을 물에 적신 이불로 덮어서 질식을 시키자나요. 마치 자다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데, 그런데 말이죠 이 암살이 또 통했어요. 반역자로 몰리지 않았어요. 이 세계 역사가 이러자나요. 들키지 않으면 왕이야.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아요. 앗수르 비문에도 하사엘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요. 거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아들이었던 하사엘이 왕위를 차지했다.'고 나오죠. 출신이 좋지 않은데 왕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가 이렇게 타고난 능력자였다는 말이죠. 사람들을 다 홀렸어요. 왕도 넘어갔어요. 하사엘은 출신도 뛰어넘을 만큼 출중해서 자기 힘으로 지금 나라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왕을 몰래 암살하고 자기가 왕이 된 거예요. 이 사람은 권력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하사엘은 주변의 국가들을 침입해서 영토를 확장했고 심지어는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앗수르와도 세력 다툼을 벌일 정도로 아람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 권세, 이게 화무는 십일홍인데, 천국 가야 되겠는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 역사에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런데 왕들의 히스토리가 다 똑같자나요. 이런 대단한 능력으로 벤하닷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어요. 벤하닷은 이 하사엘을 신뢰하므로 바로 하사엘에게 죽임을 당한 거예요. 내가 가장 신뢰했던 하사엘에게 딱.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거는 사람이에요. 그것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절대로 믿으면 안돼. 내 이해타산에 의해서.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1도 없거든, 1도 없어요. 엘리사에게 말씀이 없었더라면, 엘리사가 말씀을 더 믿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능력이 있는 하사엘에게 어찌 안 넘어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람의 모든 사람을 속였는데요. 말씀이 없었다면 엘리사도 별 수 없었을 거예요. 엘리사가 눈으로 보이는 하사엘의 모습보다는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었기 때문에 하사엘의 정체를 간파하고 정확히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나는 모르는데.' 여러분들, 그냥 아침마다 뭐라고요? Question Time 큐티하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정 모르겠으면 목장 식구한테 물어보고. 그리고 나가서 그냥 말해요. 하나님 말할 걸 주실 줄 믿어요. 그거 하나님 믿는 마음이자나요. 하나님 믿는 마음이 이 땅의 정치학 박사보다 나은 거예요.
하지만 엘리사는 하사엘이 행할 악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고 돌이키도록 채찍을 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통곡하며 슬펐지만 맡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악들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아직도 이렇게 살려주신 것은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말도 안 되게 자유민주국가로 세워 주셨어요. 세계사에서 보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살아온 역사를 정치로 왜곡된 역사로 말고, 그야말로 사실 중심 역사로 보면 기적 아닌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멸망이 아닌 구원이고, 심판이 아닌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사명이 있는 거예요. 70년 전에만 해도 최하위로 못 살았던 이 조그만 나라가 세계에 선교사를 미국 다음에 두번째로 파송한, 이거 기적 아니예요? 사명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정신 못 차리고 자꾸만 우상 숭배로 돌아가니까 하나님이 여러 악으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에요. 정치병, 인권병, 교육병, 이혼병, 낙태병 등 이렇게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암과 같은 중병은 정신차리고 회개하라고 주시는 채찍이에요. 하나님의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그 눈물로 함께 울어야 돼요. 함께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다메섹과 같은 사명의 자리에 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믿고 응답하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과 생명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내가 지금 가장 믿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고 그것이 믿음 때문인가, 잘해줘서인가? 내가 속이고 있는 일, 또는 속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보다 말씀을 더 믿은 경우가 있었는가?
기도제목
희연
1.초음파 보러 가는데 결과에 상관 없이 평강을 허락하시고, 속히 회복되어 사명 감당할 영육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 합니다.
예선
1.말씀으로 하루 만 살기
2.고객사에서 갑자기 워크샵을 진행한다고 자료 요청을 받았습니다. 21일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잘하려는 마음 내려놓고 기한 내에 제출만 하도록
3.옳고 그름이 올라올 때 판단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연지
1. 눈 뜨면 큐티 책 잡기
2. 화요일 건강검진이 있는데 특별한 소견 없이 그냥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무섭습니다
3. 본격적으로 개학 준비를 하는데 넘 예민하지 않게 해야할 일 그냥 힘 빼고 준비할 수 있기를
4. 주변 사람들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며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겸손히 낮아져서 배울 수 있도록
5.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제되도록
6. 가족구원
은우
1.나를 위해 울어주셔서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정해진 처소를 사수할 수 있는 힘과 지혜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