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4
고친 이는 예수라(요한복음 5:1-15)
첫째 나의 누운 것을 보시고 먼저 찾아오십니다. (1-3)
예루살렘에는 자비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치유의 천사 가끔 내려와서 물이 흔들리면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이 치유를 받는다고 알려진 곳이어서 아픈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승자독식의 공간이었습니다. 한없이 기다리면서 아픔과 절망 속에서 천사를 기다리지만 천사는 오지 않습니다.저희 아버지는 16년 동안 병으로 누워계셨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의 병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병자에게 질문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뻔한 질문을 왜 하실까요? 그것은 이 환자의 마음 가운데 회복의 소망이 일어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내가 너의 구원자다라는 선포입니다. 죄와 중독에 찌들어져 널부러져 있는 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상태가어떤지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 내 마음을 체휼하십니다. 나의 절망 고통 연민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나에게 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데ㅃ!`11스다 연못만 바라보던 나를 돌이켜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상태를 직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뮨에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오늘 일어나는 사건은 나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고, 나를 직면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갖고 있던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는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한 사건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에 다니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바닥에 가까운 성적이었고, 시험은 건성으로 보고 겨우 대학을 다니면서 열등감과 자기연민과 공허함속에 폐인처럼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었습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군대를 갔습니다. 그러나 군대는 도피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폭행과 폭언과 성폭력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적용 질문 1
내가 지금 주저앉아 널브러져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는 어떤 베데스다에서 나의 갈망과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까?
돈, 건강, 학벌, 행복, 스펙, 성공, 외모, 사람 등 어떤 베데스다 입니까?
두 번째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7-9)
예수님은 널부러져있는 병자를 위로하지 않으시고 바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피해의식과 낙심과 죄악과 헛된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찾아와서 말씀하십니다. 다 알고계시다고 하시고 그말씀으로 나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치유방법은 베데스다의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고치십니다.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시고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낳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내 안에서 창조와 치유가 일어납니다.말씀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르기만 하면 내 병과 열등감과 죄의식이 치유됩니다. 다른 것이 아닌 말씀으로 치유하신 것은 은혜입니다. 저것만 가지면, 저곳에만 가면, 저 사람만 만난다면 내가 좀 더 행복해질 텐데 하는 것은 나의 헛된 베데스다의 바램일 뿐입니다.군생활의 가장 힘든 순간에 찬양집을 보게 되었는데, 일어나 걸어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하는 내용이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가기로 하고 후임병들을데리고 군대교회에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믿느냐 물었더니 11명 중 1명만이 그렇다고대답했습니다. 나의 간증을 이야기고 다시 물으니 나머지 10명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인다고 손을 들었습니다.제대 후 제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적용 질문 2
내 속에 있는 절망과 원망, 상처, 자기연민,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베데스다에 누워 무엇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문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세 번째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10-15)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치유의 역사를 행하셨으니 유대인들은 이를 문제 삼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면서 따집니다. 율법만 따지면서 병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병자가 38년 된 병에서 회복되었다면 다같이 기뻐해야 하는데,그렇지 못합니다.
비본질에 집착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나병에 걸려서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니 38년 된 병자보다 더 중증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자기애과 기만과 위선과 탐욕으로오늘 본몬의 병자와 같은 중증의 영적 나병의 환자였습니다.
내가 가장 사항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 정정환이라고 아내가 이야기 합니다. 딸이 백제가 좋아요, 신라가 좋아요하는 질문에 나는 네가 더 좋아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또 사람 불편하게 허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런 내가 사역자로섬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런 제게 오늘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예수님께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살아내고 구원받았음을 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치리 받았을 때 요한계시록 말씀이 이 땅에서 육적 수치를 드러낼 때 하나님께서 나의 영적 수치를 덮어주시고 치유해주심을 느끼게 하는 말씀이어습니다. 공사중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바로 언제나 공사중인, 완성이 없는 인생인 것 같습니다. 완성된 것 같짐나 다시 허물어지고 다시 지으면 다시 무너지고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신실함으로 나를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자신을 비관하다가 끝나버릴 인생이거나 한편에서는 옳고 그름으로 상대를 비난하다가 끝날 인생이지만,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성공하고 출세하면 만족하고 안식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징어게임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진느 않습니까? 그러나 나의 베데스다는 행복이 아닌 거룩이고 말씀이신 예수님입니다. 헛된 욕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말씀으로 살아내는 것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3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또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할 죄,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A
- 생활예배 잘 드리기 (큐티, 예배, 기도)
- 목장에서 구원의 시각으로 보길
- 이번년도 새롭게 환경이 변하는데 잘 적응하고 공부 열심히하길
- 주변지체들과 사람들에게 사랑의 언어 쓰기
B
- 하루를 큐티로 시작할 수 있도록
- 업무 스트레스 가족들에게 풀지 않을 수 있도록
- 사업 매출에 기름부어주세요
- 가족들 건강 지켜주세요
- 공동체 위해 기도하는 시간 가질 수 있도록
- 회사 자금에 문제 없을 수 있도록
C
- 아빠의 구원을 위해
- 오빠가 가장의 부담을 좀 덜 수 있도록
- 경제적인 회복..
- 큐티 말씀이라도 읽기
- 연구과제가 잘 안되는데 지혜를 주시도록
D
- 부산여행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도록
- 일상의 편안함을 잘 누릴 수 있도록
- 해야할말 조리있게 잘할 수 있도록
- 청소년부 수련회 기도로 잘 준비
E
- 담배 줄이고 끊기
- 술집 가지않기
- 큐티/예배 잘 지키기
- 심심함.공허함 사람으로 채우지 않도록
- 시간 잘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