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4년 1월 14일
본문: 요한복음 5:1~15
제목: 고친 이는 예수라
설교자: 정정환 목사님
Ⅰ 본문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Ⅱ 설교말씀
어젯밤에 설교 준비 마치고 왜 설교를 주셨을까 생각하는데, 게하시의 죄 고백을 들으라고 이 기회를 주신다고 불쌍히 여겨 주세요. 몇 년 전 인기있는 한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있다. 이기는 최후의 사람이 모두 상금을 갖는다. 돈과 출세를 위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서로를 죽이며 인간성의 회의를 느낀다. 전세계가 모두 공감했다. 자비를 원하지만 자비 없고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없는 이것이 이 세상의 자화상이자, 베데스다 연못의 풍경이다.
1. 나의 누운 것을 보시고 먼저 찾아 오십니다.
1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절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 유대인의 명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여기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있다. 천사가 와서 가끔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병 낫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늘 치열했다.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 후로 나머지의 사람은 허탈했다. 오직 선착순 논리만 있는 무자비, 기약없는 공간이었다. 이름은 자비이지만 자비가 없는 공간이었다.
5절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38개월도 아닌 38년을 병으로 누워있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저 하루하루 숨만 쉬었을 것이다. 제 아버지는 16년동안 중풍을 앓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16년동안 자식으로써 바라보면서 어찌 할 수 없고 맘이 아팠다. 오랜 병은 무력하고 희망조차 상실하게 만든다. 그 때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병자에게 다가오신다.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보셨다. 그리고 질문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아니 왜 이런 뻔한 질문을 예수님은 왜 하실까? 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로 하여금 회복되길 바라는 소망을 일으키신다. 병자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아야할 존재라고 여겨주시는 질문이다. 38년된 병자처럼 우리도 이런 적이 있다. 오랜 시작으로 육신, 마음의 질병으로 누워있는 나, 관계에서 실패한 나, 번번히 실패하는 나, 중독에 찌들어 있는 나, 38년된 병자를 보신 예수님은 이런 나를 주목하고 계신다. 내가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도 아신다. 나의 외로움, 절망, 수치심, 죄책감, 고독,열등감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오셔서 내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신다. 왜 질문하시나? 베데스다 연못물만 움직이길 바라는 내가 이제 시선을 예수님께 돌이키고 나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시는 것이다. 마음이 들었다면 내 속에 것을 다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너의 구원자는 바로 나란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 내게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이 내게 찾아온 사건이다. 예수님이 질문하는 사건이다. 그 질문의 답이 신앙의 시작이다. 우린 질문에 답을 위해 생각을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큐티이다.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학시절 저는 수업 시간에 강의를 들으면 마치 다른 나라 방언 듣는 것 같았다. 공부를 해도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는 것 같은 번번히 좌절감을 느꼈다. 극심한 무기력에 사람 조차 만나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 실어증이 걸린 것 같았다. 폐인처럼 루저처럼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었다. 도피처로 군대를 갔었다. 그러나 거기도 그렇지 않았다. 강원도 산 속에 70명뿐인 폐쇄적인 곳이었다. 폭력이 너무 심해서 나는 지금 개인가 생각이 들었다. 군대 후 떠나는건 좋았는데, 다시 사회 나가는 게 두려웠다.
[적용질문]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 주저앉아 있는 자리, 널부러져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는 어떤 베데스다에서 나의 갈망과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까? 돈, 건강, 학벌, 행복, 스펙, 성공, 외모, 사람 등 어떤 베데스다입니까?
2.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의 물음에 병자가 이렇게 답합니다. 병자의 말에는 피해의식과 자기연민과 비관이 들어있다. 육신의 질병도 깊었지만, 마음의 병, 영적인 병도 깊었다.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은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 하지 않으신다. 일어나라고 하신다. 이 병자가 연못에 들어가라고 돕지 않는다.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다. 일어나라는 표현은 부활의 사건에서도 나오는 표현이다. 일어나라고 하신 말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다. 낙심 중에 있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은 회복이고 생명이고 구원이다. 병자가 할 일은 이 말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헛된 소망에 미련 버리지 못할 때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말씀 하신다. 다 보고 있었고 다 알고 있다.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며 그 말씀으로 나를 고치신다. 그 말씀이 능력이다. 이 말씀 후 병자가 어찌 되었을까요.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예수님 치료방법은 베데스다 연못물 들어가는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 자체가 생명이기에 치료되었다. 예수님 자체가 자비이기에 자비의 말씀으로 고쳐주신 것이다. 생명의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을 일으킨다. 그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이 곤고한 나의 말씀에 찾아오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따르고 순종하는 것 외에는 없다. 의탁하는 것 외엔 없다. 오늘 예수님이 그 병자를 고치는 방법은 연못에 들어가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고쳐주신다. 이게 진정한 은혜고 자비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것만 하면, 저 사람만 만나면 내가 만족할텐데 라고 생각한다. 여러분 그게 베데스다 연못이라 생각합니까. 그게 베데스다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내 옆에 바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치유자이시다. 제가 일어날 힘 없을 때 일어나 걸어라 하는 찬양으로 힘이 되시고 그날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상한 감정을 만지고 고쳐주셨습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출세였다. 제 깊은 두려움 밑바닥에 욕심이 있었다.
[적용질문] 내 속에 있는 절망과 원망, 상처, 자기연민,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베데스다에 누워 무엇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문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3. 행복이 아닌 거룩을 목적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고쳐주셔서 율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됩니다. 타인이 아프면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나오는 유대인은 병자의 아픔에는 체휼이 1도 없다. 율법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 율법의 정신은 없다. 병자가 회복되면 기뻐하는 게 정상이다.
12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병자에게 너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냐고 따진다. 너무 숨이 막힌다. 오로지 예수님이 안식일에 고친 것에만 꽂혀있다. 생명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판단질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 모르면 일평생 비본질에만 꽂혀있다. 영적의 나병에 걸려서 심각성도 모르고 있으니 중증환자다. 저도 그랬다. 제가 가지고 있는 틀, 잣대로 제단했다. 그래서 편한 사람이 못 됐다. 다른 사람이 저의 눈치를 보게끔 했다. 내마음 내몸 편한 게 우선이었다.
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이제는 행복이 아닌 거룩을 향해 걸어가라고 하신다. 이 병 때문에 만난 예수님을 만난 구원받은 자로서 오늘 회개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 복음의 소식을 증인된 삶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사역하면서 가장 큰 기쁨은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저는 공사중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다 지었다 싶은데 비 오면 줄줄 세고, 태양이 작렬하면 허물어지는 인생이다. 그래서 여전히 공사중이다. 이 공사중에 주님은 말씀해주신다. 너의 구원자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으렴. 내 삶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말씀이다. 한 쪽은 비관하다 끝날 인생이고, 한 쪽은 타인을 비난만하다 끝날 인생이다. 혹시 지금도 베데스다 연못에서 힘 없이 계신 분이 있습니까. 아직도 베데스다 떠나지 못하고 오징어게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귀한 베데스다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무기력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적용질문] 내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또 다시 범하지 않아야할 죄,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기도제목
A
1. 변화된 업무에 아이디어와 능력 주시고 잘 해나갈 수 있길 앞엘에 대해 불안감이 있는데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할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잘해낼 수 있길
일하는 가운데 체력 부어주시고 건강하게 즐겁게 잘 할 수 있길
2.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혜가 있길 특히 실장 눈치 보지 않도 대화의 스킬이 생기길 (남을 배려하는 게 맘이 편하다고 늘 생각했는데 자존감으로 배려도 하지만 또 해야할 말은 지혜롭게 잘해서 관계에 지치지 않고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길)
3. 만남의 축복과 결혼의 결실이 있길(하나님이 가장 베스트인 배우자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내 배우자를 알아보는 눈을 주시고 그 배우자 또한 나를 알아볼 수 있길)
4. 부모님과 오빠네 가정의 구원
5. 부모님 건강하게 두 분 행복하게 오래 잘 지낼 수 있길
B
1. 2024년 새 작품들 집필해야 하는데 영육간의 강건함 지키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2. 가족의 건강 지켜주시기를
3. 새 작품 계약이 있는데 좋은 조건에 잘 할 수 있기를
4. 2024년 여러 작업들 통해서 사람들 만나면서 마찰이 있을텐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C
1. 물질의 베데스다 분별하기
2. 가족의 영육간 강건
3. 직장의 두려움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믿으며 순종하기
4. 신교제신결혼
D
1. 찾아와 물으시는 주님께 응답하고 순종하며 하루하루 잘 살아가도록, 생활예배 중수
2.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시는데 건강지켜주시길
3. 가정의 이사문제 가장 알맞은때에 선한길로 잘 인도해주시길
4. 공동체와 말씀의 양육 잘 받으며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