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7.(주일) 열왕기하7:3~7:11 「이제 가서 알리자」 김양재 목사님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11.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고 이제 가서 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해요. 어떻게 이제 가서 알려야 될지 오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을 들을지어다>와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로 송구영신을 닫고, 열었습니다. 해석이 잘 되어 해결이 되었다면 이제 가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해 표어는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입니다. 교회도 세워지고, 가정도 세워지고, 육신의 장막도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야 합니다. 우리들교회가 말씀을 들고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이 되어서 이제는 가서 알려야 할 선교 영역이 많더라고요. 의료선교, 건축선교, 미용선교 이제는 가서 알려야 합니다. 오늘 이제 그런 작정도 좀 받겠어요. 무엇을 알립니까? 구속사의 복음을 알려야죠! 누가요? 우리가요! 어떻게요?
오늘은 <이제 가서 알리자>에 대해 THINK를 해보겠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3-4절)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지난주 1차 침공에서 장로들은 드디어 엘리야의 말씀을 들으러 왔고, 왕은 죽이려고 하고, 장관도 물가가 떨어진다는 말을 안 믿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도 안 믿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믿는지 보겠습니다.
이제 성벽은 절대 넘어갈 수 없고, 넘어가서도 안 되는 장벽이 되어버렸어요. 넘어가면 곧 죽음이에요. 먹을 것이 동난 지금은 성안도 죽음 아래 있어요. 그런데 이 극한 굶주림 속에서도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공동체에 도움도 전혀 받지 못하는 극과 극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주인공인 나병환자 네 사람이에요. 굶어 죽어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불가촉천민이에요.
지금까지 열왕기하 읽으면서 나병환자가 두 사람 나왔습니다. 나아만 장군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에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나병환자가 4명 나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나병환자가 또 나와요. 나병환자가 뭐라고 주님은 열왕기하에서 계속 등장시키실까요? 그들은 나병환자로 구원을 얻었지만 고통에 무감각한 영적인 나병환자 같은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라는 얘기예요. 이런 사람도 구원을 얻는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해가지고 구원을 못 얻는가!! 탈무드는 여러 곳에서 이 나병환자 4명을 게하시와 그의 아들들이라고 해요. 그리고는 구원받지 못하고 끝났다고 합니다. 이게 게하시인지 시간 순서로도 맞다고 보지만 시간 순서로 쓰인 게 아니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나병의 치리가 구원의 사건이 되지 않고 영원한 심판으로 끝났다면 게하시를 이어지는 8장에 왜 다시 나오게 하셨겠어요? 물론 예수님 시대에 10명의 나병환자 중에 고쳐주셨어도 한 명의 사마리아 나병환자만 감사해서 와서 인사하니까 그만 구원을 얻었다고 했어요. 그러면 병은 고쳤는데 구원은 못 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구원의 스토리에요. 판례집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이뤄가시는 양육과 구원의 드라마를 봐야 합니다. 탈무드처럼 옳고 그름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이 4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게하시가 있다고 보는데요. 앞서 6장에서 아람 군대가 1차 침공할 때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들이 도단을 포위했었죠. 무섭게 나병으로 치리를 했어도 치리의 목적은 구원이기 때문에 게하시 같은 사람을 쫓아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엘리사 옆에서 사환 역할을 하나도 한 것이 없이 아람 군대가 두려워서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까!!'만 외쳤잖아요. 그런데도 엘리사는 또 눈높이를 맞춰서 그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죠. 그래서 게하시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습니다. 대체 게하시가 뭐라고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며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어요. 2차 침공에서는 게하시가 또 사라져요. 어떤 적용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오늘 아무 이름도 없는 나병환자 넷 중 한 명으로 등장을 합니다. 물론 치리 받은 후는 게하시의 이름으로 1차도, 2차도 호칭되지 않았어요. 여전히 이름만 없는 게 아니고, 사환이라는 직분도 없습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여요.
게하시는 이제 선생님을 향한 죄송함을 넘어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에 빠졌을 거예요. 엘리사 선생님은 내치지 않으셨지만, 눈을 열어보게 하시는 은혜도 주셨지만.. 그 은혜를 소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제 게하시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은혜는 잠깐일 뿐 금세 악하고 음란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 버리는 자신을 보며 절망했을 거예요. 그런 분들 많을 거예요. 한편 2차 침공이 일어나고 온 나라가 굶주림으로 아비규환이니 게하시는 여기 설 자리가 없겠죠. 엘리사는 장로들과 여호람 왕과 장관을 상대하고 있는데 나병환자인 자신이 그 당시 고정관념으로 그런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겠지요. 드디어 사명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나병환자라는 자기 분수에 맞는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예, 이런 집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도 그러고 싶을 때가 많죠? 가정이고~ 교회고~ 역할이고~ 사명이고~ 이제 환경을 탓하며 버리고 주저앉고 싶을 때 말입니다. 이게 다 우리 이야기예요. 게하시가 곧 우리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주제가는 오늘 '죽을 것 같다'입니다. ★'죽을 것 같다.' 여기까지 와야 돼요. 자기의 자리는 나병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계속 엘리사가 끼고 있으니까 그게 회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우리나라에서 며느리의 때, 아내의 때, 엄마의 때, 여자 목사. 그때마다 이게 100년 전만 해도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잖아요? 이런 고정관념이 대단하고. 그러니까 여자로서 걸어오는 모든 길에 그때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를 제가 알고 왔어요. '여자를 왜 무시하냐?!' 이딴 소리 안 하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죠. 그죠. 그래서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의 선교가 너무 고마운 거예요.
자, 이 나병환자들은 여기서도 죽을 거고, 저기서도 죽을 것이에요. 죽을 것 같은 고난 이것이 나병환자 4명의 인생을 요약하는 말이에요. 여기서 이 네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어찌하여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랴!?'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겠다'가 아니라 '피투성이라도 살겠다!'는 거예요. 이게 믿음보다 - 이 사람들의 믿음이라기보다 - 나병이라는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 있으니까 가능한 태도예요. 낮은 마음에 저절로 있는 거예요.
그러니 다 포기하고 들어온 게하시가 이런 나눔을 주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그는 그대로 그냥 죽고 싶었겠죠. 하지만 다른 3명의 나병환자 친구들이. 이들은 낮고낮고낮은 자리에 있잖아요. 그죠? 친구들이 '어찌 여기서 죽기만 기다리랴?' 땅끝까지 내려간 사람들은 이래요. 같이 살아보자고 외쳐주니까 게하시도 같이 끌려갔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엄청난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에 비해 여호람왕은 피투성이가 된 재앙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조차 끊었어요.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오?' 반문합니다. 여호람이 의지하는 능력 있는 장관도 마찬가지예요.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을 듣고도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왜죠? ★마음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들은 피투성이가 된 삶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상식 밖의 기적을 바라며 피투성이 같은 삶을 이어가느니 현실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쿨하게 죽겠다는 거예요.
게하시가 나병환자가 아니라, 왕과 이런 장관 옆에 있었다면 또 그대로 따라갔을 거예요. 누가 옆에 있느냐, 어떤 공동체와 함께 있느냐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공동체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여러분, 피투성이라도 살겠다는 나병환자와 vs. 피투성이니까 죽겠다는 왕과 장관 중 누가 더 멋져 보입니까? 누구처럼 되고 싶으세요?
엉망진창이 된 결혼일지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엉망진창이 된 결혼이니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세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신뢰가 다 깨어진 결혼을 이어가느니 쿨하게 이혼하고 새출발하는 게 훨씬 폼나는 듯합니다. 세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피투성이처럼 망가진 삶을 놓지 않고 살아내느니 미련 없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게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인구 절벽에 이렇게 자살률 1위가 돼서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깨뜨리는 이혼도,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끝내는 자살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한 죄예요. 그 결론은 영원한 심판이에요. 앞으로 남는 것 같지만 뒤로 밑지는 선택이에요. 영생이 있는 게 아니고 영벌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수치를 지고 사는 유다에게서 예수님이 오십니다. ★수치스러운 삶을 거부하며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 왕과 장관이 아닌 수치를 무릅쓰고 구원받기를 소망하는 나병환자가 구원을 얻어요. 나병이라는 고난 속에 이미 그들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망가지는 거예요. 그러나 왕과 장관은 수치를 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망가질 줄을 모르니까 죽을 듯한 고난이 오면 살 소망을 쉽게 버리고 이렇게 일류들이 자살을 하는 거예요. 최고의 환경 가운데서 도저히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배우자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무시받고 있어요? 시댁(?)에게도 친정에도 속할 곳이 없어요? 본가에도 처가에도 갈 수가 없어요? 가정에도, 직장에도 설 자리가 없습니까? 여기서도 죽을 것 같고, 저기서도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이런 고난은 죽을 이유가 아니에요! 거듭날 기회예요! 복음을 경험할 기회예요! 그래서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깨어진 결혼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십니다.
상상 못하게 힘든 집이 많아요. 아들이 욕을 하고, 아내가, 남편이 욕을 하고, 폭력을 행하면 살고 싶지 않죠. 너무 비참해요. 다 아파가지고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몰라요. 참으로 힘든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자, 이건 하나님이 화살을 쏘신 거예요. 하나님이 쏘시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걸 믿으시기 바래요. 여러분은 택자거든요. 왜냐하면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훈련이에요. 길이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밑동 잘린 나무이기 때문에. 짧기 때문에.
적용 질문이에요.
Q.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Q.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어야 한다'와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 중 어디에 동의하십니까?
<이제 가서 알리자> 첫 번째는 뭐였죠?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값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5-8절)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죽을 것 같은 고난에서 죽기만 기다리기를 거부한 4명의 나병환자는 이제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죽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일어나는 적용도 필요합니다.
실낱같은 소망을 붙들고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난 네 사람은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진영이 텅텅 비었어요. 더 이상한 것은 군대가 먹던 식량과 쓰던 무기는 물론 의복과 장막도 그대로 있는 거예요. 심지어 말과 나귀도 안 타고 갔어요. 은과 금도 두고 갔어요. 그야말로 사람들만 쏙 빠져나갔어요. 근데 이 넷은 영문을 몰라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하고 따질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제일 가까이 있던 장막에 들어가서 허겁지겁 배를 채웠어요.
허기를 달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뭡니까? 은과 금과 의복이에요. 돈이죠. 여러분 왜 하필 은과 금과 의복일까요? 이 셋이 언제 나왔죠?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 이스라엘에 올 때 가지고 온 선물이었어요. 나병에서 치료받은 나아만에게 게하시가 달라고 한 건 뭐였죠? 은과 의복이었어요. 여기 다른 것도 많은데 무기도 많고. 다 이런데.. 금은 차마 그때 구하지 못했잖아요. 그 당시 은 두 달란트도 아주 엄청난 가치고, 의복 두 벌도 게하시에게는 큰 것이었어요. 게하시가 욕심 때문에 나병의 치리를 받았는데요. 그 치리로 인해 이제 자신에 대해 절망하며 사명을 다 포기하게 되었는데요. 적군이 다 도망간 진영에서 은과 금과 의복을 보니 또 눈이 뒤집혔어요. 여기서는 게하시가 다른 셋을 주도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재물을 싹 다 가져다가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게 잘 감춥니다. 돈 감추는 데는 또 게하시가 박사잖아요.^^ 자기 전공 나오니까 아주 신나게 감췄겠죠. 장막 하나 이렇게 싹 털고 나와 보니까 와~! 이런 장막이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예요. 눈이 더욱 돌아갑니다. 와! 이제 고생 끝이다! 이 돈이면 나병도 문제될 거 없다! 어디 가서 잘 먹고 잘살 수 있겠다! 이제 행복 시작이다! 이런 기대에 부풀어 이 장막 저 장막 다니며 보이는 각 은과 금과 의복을 가져다가 감춥니다. 통장도 없이 다 망한 인생인데 갑자기 새 통장 개설과 함께 찬고가 수천만~ 수억원~ 수십억 원이 지금 쌓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 네 사람은 아람 군대가 모두 물품을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간 이유를 몰라요. 그럴 때 성경은 그 이유를 6~7절에 알려주죠. 그 이유가 뭐죠? 주께서 아람 군대가 도망가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떻게요? 주께서 아람 군대가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고 해요. 그 소리를 들은 아람 군대는 착각에 빠졌어요. 자기들이 감히 맞서 쌓을 수 없는 엄청난 적군이 지금 이스라엘을 도울 원군으로 온다고 착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왕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들 스펙 이런 거 좋아하지 말라고요. 너무 급해서 그냥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심지어 말과 나귀도 타지 못할 정도로 혼비백산하여 몸만 겨우 도망갔어요. 근데 이 모든 일을 주께서 하셨다고 해요. 주께서 하셨다고 해요. 「열왕기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주! 주! [아도나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여러 주들이 나와서 저마다 주인 행세했어요. 여호람과 벤하닷 같은 왕은 물론 여호람의 장관도 자신을 실세로 여기며 참으로 까불었죠. 그런데 이제 진짜 주님이 등장하세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사마리아를 에워싼 군대를 한순간에 몰아내십니다!
항상 성경이 중요해요. 이렇게 구원의 능력으로 등장하신 주님의 은혜로 이 네 사람의 나병환자는 그야말로 구원을 제일 먼저 뜨겁게 경험합니다. 아무 수고와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예상과 기대도 하지 못했어요. 그냥 죽을 듯한 고난 가운데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그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아람 진영에 왔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상사의 자리, 부하의 자리로 갔을 뿐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엄청난 구원은 아무 값도 없이 받았어요.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들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신 구원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 없이 받은 구원이 우리가 알릴 소식이에요.
합격과 취업, 승진과 성공은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것이죠. 물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내 힘으로 수고하지 않고서는 또 이런 성취를 기대할 수도 없어요. 공짜 좋아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성취를 너무도 전하고 싶어요. 이런 소식만 전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우리 자녀들이 그런 소식을 많이많이 들려주게 되기를 너무 간절히 빌고 또 빌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성취의 소식은 결국 내 강함을 자랑하는 거예요. 이런 자랑은 풍선과 같아요. 바람을 아무리 넣어도 작게 보이는 풍선이에요. 만족하지 못해요. 더 크게 하려고 바람을 계속 넣습니다. 자랑에 자랑을 더하고 과장하고 없는 것도 지어내 보태고, 펌프질을 멈출 수가 없어요. 그러다 결국 뻥!!하고 터져버려요. (제 목소리도 뻥! 터지기를 바래요. 어! 갑자기 터지는 것 같네.^^ 주여! 터져야 되는데..(목사님 감기 중^^)) 한방에 추락하고 맙니다. 처음에 잠깐 아름다운 소식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큰 수치로 끝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 사도 바울은 부득불 자랑하게 되더라도 오직 약한 것만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12장에 내 약함을 자랑할 때 그 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강한 능력이 전파되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우리가 알려야 할 아름다운 소식은 주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은혜로 베푸신 구원뿐입니다! 모두가 100% 죄인입니다. 주님이 100% 다 이루신 구원을 똑같이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구원은 아무리 자랑해도 터지지 않습니다.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더욱 커져서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구원의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을 구원합니다! 주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구원을 나누고 알릴 때, 올해 표어대로 거주할 처소가 우리 가정과 교회에! 이 복음이 필요한 곳곳에 세워질 줄 믿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올해 선교에도 동참하시길 바래요.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는 모임이 바로 목장이잖아요. 목장에서 다 약함을 자랑해요. 한 목자님이 목장을 마무리하며 목원들 나눔이 너무 은혜로워서 이거 좀 읽어드리려고 해요. 근데 이 목자님은 어우!! 정말 붙어 계시니까 이렇게 달라졌네요! 목자님 진짜 달라지셨어요! 제가 너무나 참 감동이 되더라고요.
1년 동안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한 목장에 감사하다는 나눔들.
목자님 '1년 동안 부족한 가운데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은 목장이었던 것 같다. 목장하면서 울컥울컥한 적이 많이 있었는데 오늘은 특히 성령님이 눈물을 허락해 주신 것 같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게하시나 아람 족속도 똑같이 구원을 허락하시는데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 어떤 때는 눈을 열어주시고, 어떤 때는 눈을 감게 하시면서 그 과정에 고난과 축복이 있는데 구원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믿지 않는 둘째를 위해 간곡하게 기도해야 될 것 같고, 저도 기도를 하며 목원들을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하는 목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렇게 나누니까 부목자가 '이번 목장은 목자님이 한 번도 안 쉬시고 오프라인 목장을 하시고, 저도 목보를 처음으로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올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또 다른 목원이 '저는 목장 식구들 외에 우리 집에 오신 분들이 없었는데 이제 우리 집에서 목장을 하면서 저에게 많이 은혜가 된 것이 제가 내 말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다.'
또 한 분은 '이번 목장 너무 은혜로운 목장이었다. 서로가 마음이 잘 통한 것 같다. 목자님이 인도를 잘하고 가신 것 같다. 처방 주신 대로 약도 일주일치 먹었는데 한 해 동안 감사했고, 나잇값을 못 해 죄송하고 민망하다.'
아니 근데 나는 이 목사님이 멋쟁인데.. 아휴 그냥.. 어휴 정말.. 제가 진짜 꾸뻑하고 절을 하고 싶어요. 정말 이렇게 목사님이 달라지니까 이 온 목원들도 달라져서 이것이야말로 차별없는 이 구원을 전한! 이것을 더해서 알려야 되는 그런 마음이 바로 목장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목자님은 또 '올해 저희가 모인 횟수를 세워보니 47번이에요. 제가 제일 자주 만나는 본가 어머니보다도 많이 만났고, 가장 바쁘다는 금요일 저녁에 밥도 먹는 모임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 남들이 보면 이거 역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은 이 공동체가 저와 가정을 보호해 준 것 같습니다.'
또 한 분은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대한 저력이 그냥 제가 힘들거나 지치거나 어렵거나 슬플 때...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내를 만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 그게 인정이 된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정말 슬플 때, 힘들 때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저는 이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나눔을 이렇게 해 주셨어요.
이 47번 한 목장의 목원 한 분은 '근데 그 누구 때문에 우리가 다 신불자가 되었고 엉망이 되었는데 말씀이 우리한테 꽂히고 다 나의 얘기로 들리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말씀이 많은데 제가 계속 들으니 남편도 들어보자고 합니다. 속은 자와 속인 자를 듣는 순간 해결이 되어 버렸어요.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없고, 내가 죄인이었구나 그걸로 다 해결되었어요. 큐티 할 때마다 구체적인 말씀이 들어오니 기 기적 같아 깜짝 놀라고 있고, 제가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뭘 가서 대단한 거를 '가서 알리자'가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나누면 제가 알리고 있잖아요. 전 세계로 알려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목장 가는 게 선교하는 거예요. 아셨어요? 선교사 못 가면 그런 거.. 진짜 그 선교라도 하시길 바래요.
적용 질문이에요.
Q. 주로 여러분이 자랑하는 건 뭐예요? 그리고 더 자랑하고 싶어서 과장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Q.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기 위해 자랑할 내 약함은 무엇입니까?
<이제 가서 알리자? 첫 번째는 뭐였죠? 죽을 것 같은 고난은 기회예요. 두 번째는 값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이에요. 세 번째는,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9-11절)
나를 힘들게 한 사람. 9절부터 11절이에요.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11.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나병환자 네 사람은 게하시가 주도한 이 약탈 아닌 약탈을 지금 신나게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아마도 게하시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나아만의 은과 옷을 탈취했다가 선생님께 걸려 치리받은 것이 생각났겠죠. 치리의 결과 생긴 나병이 보였어요. 그 이후 겪은 많은 일들이 떠올랐겠죠.
뭐가 잘못입니까? 아름다운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알리지 않고 있는 게 잘못이라는 거예요. 기아에 허덕이는 동료 시민이 생각난 거예요. 엘리사의 오랜 양육이 그래도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은과 금과 의복이 전부인 인생이 이제 은과 금과 의복 너머에 있는 구원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은과 금과 의복을 그냥 가질 수 있음에도 감추었다고 표현한 것은 절대 진리를 생각한 거예요. 사실 도둑질이라고 할 수도 없죠. 침략군이 버리고 간 거 주워담는 일이니까 그죠? 그래도 감추었다고 표현을 했어요. 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지금 가서 당장 알리지 않는다면- 아침까지 기다린다면- 벌이 자기들에게 미치리라'고 해요. 선지자의 말씀으로 받은 양육이 있으니 벌에 대한 개념이 있어요!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요! 그래서 당한 게 많은 것은 인생에서 손해가 아니에요. 당한 만큼 두려워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한 게 없어서 무서운 게 없으면 자기가 주인 자리에 앉아 내려올 줄 몰라요. 여호람이 두려운 게 없잖아요. 장관도 그렇잖아요. 당한 게 없어서 그래요. 그런데 또 당한 것만 있다고 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당한 게 많아도 말씀으로 양육되지 않으면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고난으로 두렵게 하는 사람이 돼요. '네가 내 고난을 알아?' 이래요. '느그들이 내 고난을 알아?' 이래 되는 거예요.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인간이 선한 게 없어요. 우리 머리만으로는 죄가 뭔지, 죄에 대한 책임이 뭔지, 죄에 대한 벌이 뭔지 알 수가 없어요. ★고난만 많고 양육되지 않은 사람과 vs. 고난은 없지만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 중 누가 더 좋고 나쁘고 따지는 게 의미가 없어요. 인간은 어떤 모양으로 살든 다 악하고 음란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말씀이 필요해요. 주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양육이 없으면 좋은 교육도 꽝이고, 고난의 경험도 무용지물입니다. 드라마틱한 고난에 속아서도 안 되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교양에-스펙에- 속아서도 안 됩니다!
엘리사의 사환이자 수제자로서 거만해서 스승의 지팡이를 휘두르던 게하시에게는 겸손한 나병환자 친구들이 있어야 할 자리였어요. 또 고난만 충만한 나병환자에게는 그래도 말씀으로 양육을 받은 한 사람 게하시가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양육받은 게하시 덕분에 그래도 구원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과 양육의 만남이 절망뿐인 이들의 인생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복된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들을 버린 사람들이 있는 사마리아 성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들이 사마리아 성문에 도착합니다. 떠났던 자리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문지기를 불러요. 그들에게 문지기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나병 걸린 자기들을 향한 사회 전체의 배척과 조롱을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문지기예요. 한마디로 문지기는 나를 힘들게 한 간수 같은 사람인 거죠. 그죠? (또 빌립보의 간수는 예수 믿었지만.) 게하시가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수록 나를 힘들게 한 한 사람이 결국 나 때문에! 내 구원 때문에! 거기서 계속 나병환자들을 무시해 줬으니까.. 그래서 죽을 때까지 원수 갚으려고 했는데... 이제 여기서 이 금, 은 이거를 탈취하다가 이제 내 구원 때문에 가장 수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데까지!! 게하시가 드디어 이 복음이 깨달아진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왕이나 장관을 통해 알리지 않으세요. 뭐라고요? 왕이나 장관을 통해 알리지 않으세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도 알리지 않으세요. 성밖에 격리된 나병환자를 통해 알리십니다. 그것도 아무리 양육하고 치리를 줘도 변하지 않는 게하시가 포함된 나병환자들을 통해서 알리십니다. 대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방법을 알리실까요?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는 게 우리의 고정관념 아니겠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소식은 하나님이 직접 은혜로 알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때 그 말씀> 이번 주에 나온 설교를 보니까 2006년도에 우리 언니 선교사가 2002년도에 사랑의 교회에서 한 물가로 나오라를 영상으로 틀었더라고요. 거기서도 '누가 더 천국의 상급이 많겠냐?' 거기서도 제가 또 그 소리를 하더라고요. 하나님은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서 전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은 지혜가 있고, 말씀이 있는 사람들은 광채가 나게 돼 있다고 전도서에 그렇게 써 있잖요.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이기에 자격 있는 사람 쓰실 이유가 없는 거예요. ★★아름다운 소식을 오히려 다 무너진 인생! 소망 없는 인생! 자랑할 게 약함 뿐인 인생을 통해서 알리셔서 그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세속적인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요.
2024년 첫 주일에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주할 처소를 세우는 사명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교회를 확장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 수 늘리자는 말도 아니에요. 세속사적인 가치관이 왕 노릇하는 시대에 너무도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일인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 운동을 일으켜서 또 가정 중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산율이 0.78~ 0.76 이랬는데 0.72로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전체는 0.6이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울은 0.59라는 거예요. 날로날로 떨어지고 있어요. 낙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거를 누가 말을 합니까? 말을 안 해요. 낙태하지 말라는 말을 안 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여러분들이 이거를 깨닫기 위해서는 구속사적인 말씀 양육이 목적이 돼서 우리 교회를 통해 지금까지 베푸신 모든 양육이 이런 말씀 묵상, 가정 중수의 열매를 맺기를 진짜 바라는 거예요. 땅에 떨어지는 양육이 하나도 없기를 기도하는데요. 왜냐하면 우리들교회는 한 초원과 목장에서 계산해보니까 그것이 19세부터 저기 뭐야 49세? (정확한 수는 제가 잠깐 잊어버렸어요.) 그 사이에 낳은 자녀와 부부로 나누면은 그게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목장은 2.5고, 한 목장은 또 2고, 안 나오는 데가 1.5고. 이러니까 우리들교회는 적어도 2.0은 넘었어요. 그러니까 말씀 묵상이 이렇게 실제 생활에서 연결이 돼줘야 되잖아요. 그죠? 결혼도 많이 하고, 유아 세례도 매일 받고. 그런데 이걸 안 하고 그렇게 여러분들은 교양 있게 낙태하고, 왜 그런 찌질한 얘기를 해 이런 얘기를 들어야 되겠어요?
제가 이혼 말리느라고... 정말 그냥 저를 가만 안 두겠다는 소리를 이번 주에도 들었어요. 제가 첫 주일부터 말을 잘못해가지고, 설교를 잘못해가지고, '올해 나를 죽일 사람이 많을 거다!' 했더니...-- 그러네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게하시 같은 제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분수령적인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돌이키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으로 아름다운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감당하면 좋겠어요!
자신의 이혼 간증과, 무릎꿇는 사과로 이혼하겠다는 아들 부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신 아버지 나눔.
힘든 사람에게 가라고 했는데 이혼하겠다는 이 아들 부부를 놓고, 이제 가서 사돈 댁까지 다 불러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그래요. 며느리가 일찍 결혼해서 놀지도 못하고, 자기는 젊은데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 때문에 이제 외롭고 힘들어서 조금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남편이 그냥 이혼하겠다고 지금 펄펄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불러다가 자신이 이혼해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아들이 굉장히 직장도 좋고 훌륭하더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내 죄 때문에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며 도리어 이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들이 '아빠, 일어서라고.. 이러지 말라고..' 하니, '네가 이혼 취하할 때까지 내가 무릎을 펴지 않겠다!' 라고 하자 아들이 알았다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를 다 안아주고.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가정 중수하자고 말하며 보냈다고 해요.
저는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선교라고 생각해요. 부모들도 이 구속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이렇게 무릎 꿇고 빌며 이혼을 말릴 수가 있는 거예요. 부모의 자격도 교인이어야 될 것 같아요. 그죠? 살다가 무슨 일은 안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부모가 딱 있으면 무릎 꿇고 이제 비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전부 다 빌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때가 눈을 열 때도 있고 닫을 때도 있죠.
적용 질문입니다.
Q.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룹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나를 살린 아름다운 소식을 그에게 어떻게 가서 알리겠습니까?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루니 다들 힘든 사람 가운데서 아름다운 소식을 알립니다. 나병 공동체가 큰 구원을 가지고 왔듯이 새해에는 더욱 뜨거운 공동체가 되어 이제 가서 알리는 선교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게요.
<이제 가서 알리자>는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값없이 받은 구원이 전할 소식이에요.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선교에 동참하기 위해서 목장을 가셔야 되요. 목장에 가는 게 여러분들이 선교사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또 내가 물질로 돕는 것도 하지만은.. 우리 다 아프고.. 정말 스치는 사람들 볼 때 우리가 모두 주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 받아
잃어버린 자들과 나누라고 하시네
주의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네
우리가 나눌 때 그들 알겠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기도제목
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나에 처한 환경에서 이제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하게 해달라고. 이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서 목장에서 날마다 이렇게 연습을 하게 되다 보면 우리들교회는 이제 엄청나게 선교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을 해요. 다들 이렇게 증인의 훈련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목장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리고 특별히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가게 해달라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때문에 오늘날 내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 그럴 때에 또 가더라도 지혜를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혜와 말씀 때문에 여러분의 그 광채를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물론 그렇지 않아요. 우리 당할 때마다 너무 비참해요.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화살을 쏘신... 하나님이 책임지실 일이라는 걸 믿고 가게 도와주시옵시고, 오늘 이제 그러므로 선교 작정을 할 때 주님께서 <이제 가서 알리자>라는 이 고백처럼... 이 나병환자들의 고백처럼 우리도 그런 고백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렇게 이 사마리아 성의 굶주림이 정말 극에 달했는데 여기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장로들도 아니고, 여호람 왕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고, 엘리사 선지사도 아니었고.. 나병 걸린 네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우리는 왜 이렇게 말씀이 안 들릴까요? 그렇게까지 내려가기가 너무 힘들고.. 힘들고.. 또 힘들어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고, 힘들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 오래 살았던 이 나병환자들은 낮아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살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그 아람으로 건너갔던 이 모습을 보며 얼마나 아직도 안 낮아지고.. 비교를 하고... 이거는 너무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오늘 이 나병환자들 입에서 이제 자기를 그렇게 무시하고, 계속... 참으로 왕따를 시켰던 사마리아 성에 가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자고 합니다. 여러분들 지금 얼마나 힘든 환경 가운데 있습니까? 도저히 이쪽에도, 저쪽에도 낄 수가 없어서... 그런데 하나님이 화살을 쏘셨다고 해요.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실 것이니까 길이 참고, 오래 참고, 조금만 더 참고, 그래서 그렇게 참아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우리가 참으로 영적, 육적으로 선교하는 우리들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제 가서 알리라>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셔서 이런 신앙고백으로 드린 이 헌금을 주님, 흠향하여 주시옵시고, 내 사랑하는 주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이 이 말씀의 가치관으로 영육간의 강건함으로 저희들의 회사와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주님, 기름을 철철 부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요약]2024.01.07.(주일) 열왕기하7:3~7:11 「이제 가서 알리자」
해석이 잘 되어 해결이 되었다면 이제 가서 알려야 합니다. 우리들교회가 말씀을 들고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이 되어서 이제는 가서 알려야 할 선교 영역이 많습니다. 무엇을 알립니까? 구속사의 복음을 알려야죠! 누가요? 우리가요! 어떻게요? <이제 가서 알리자>에 대해 THINK 해보겠습니다.
1.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3-4절)
Q.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Q.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어야 한다'와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 중 어디에 동의하십니까?
2. 값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5-8절)
▪ 1년 동안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한 목장에 감사하다는 나눔들.
Q. 주로 여러분이 자랑하는 건 뭐예요? 그리고 더 자랑하고 싶어서 과장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Q.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기 위해 자랑할 내 약함은 무엇입니까?
3.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9-11절)
▪ 자신의 이혼 간증과, 무릎꿇는 사과로 이혼하겠다는 아들 부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신 아버지 나눔.
Q.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룹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나를 살린 아름다운 소식을 그에게 어떻게 가서 알리겠습니까?
'이제 가서 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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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기도제목
<조은우>
1.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었더니 빛의 자녀된 권세 누리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밀가루 한톨도 위로가 필요한 곳으로 가게 해주시고, 공허한 그 곳에 사무엘을 세우시고 주님만 한분만 찬송 받기를 기도합니다.
<김연지>
1. 새로운 목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실되게 마음 잘 나눌 수 있도록
2. 직장에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하도록
3. 큐티 습관화
4. 요골두에 금이 갔는데 잘 회복되도록
5. 하나님 기뻐하시는 관계 맺어가도록.
6. 가족 구원
<윤희연>
피투성이라도 살아있게 해주셔서 저에게 기적과 빛을 보여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더욱 더 건강 지키고 몸 회복 잘 할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저희 엄마 조카들 돌보는데 건강 해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잘 지켜주소서
언니 가정에도 평안과 은혜가 충만하게 해주시고
조카들과 모든 가족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늘 지내기를
언니 형부 비행 일 하는데 동행하시어 무사히 건강하게 다니기를
저희 목장 목자님포함 식구들 모두 아프지않고 건강하길
주님안에서 원하고 하는 일들 모두 승리하는 삶 되시길 바랍니다
제 영육간의 강건함을 세우셔서 주님의 말씀대로 은혜롭고 행하는 자녀로 세우시고
늘 감사하고 축복과 은총이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