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요약]열왕기하 7:3~11 이제 가서 알리자
올해 표어는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입니다. 육도 영도 처소를 잘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서 알려야 합니다. 무엇을 알립니까? 구속사의 복음을 알려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 봅시다.
1.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3~4절
지난주 2차 침공에서 장로들은 드디어 엘리야의 말을 들으려 하고, 왕은 죽이려 하고, 장관은 믿지 않는다. 아무도 안믿는 상황에서 누가 믿는가? 극한 굶주림 속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공동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인 나병환자 네 사람이다.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 지금까지 열왕기하를 읽으며 2명의 나병환자가 나왔다. 나아만과 게하시다. 그리고 오늘 4명이 더 나온다. 주님은 왜 계속 나병환자를 등장 시키시는가? 그들은 나병으로 구원은 얻었지만 고통에 무감각한 영적 나병환자 같은 내 모습을 기억해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병의 치리가 영원한 심판으로 끝났다면 게하시가 왜 8장에 다시 나왔겠는가? 물론 예수님 시대에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어도, 한 명의 사마리아 환자만 감사해하니 그 사람만 구원되었다고 한다. 병 고쳤는데 구원을 못 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경은 구원의 스토리다. 판례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스토리를 보아야 한다. 네 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게하시가 있다고 본다.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을 포위했었을 때, 게하시 같은 사람이 있던 것을 보면 쫓아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게하시가 어찌하냐고 할 때, 엘리사가 그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한다. 그래서 불말과 불병거를 본다. 대체 게하시가 뭐라고 이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2차 침공때는 게하시가 없다. 아무 적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명의 나병환자로 나온다. 물론 치리 받은 후로는 1차 때도, 2차 때도 이름이 없다. 사환이라는 직분도 없다.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 처럼 보인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내치치 않고, 은혜도 주었지만 그 은혜를 소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게하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망했을 것이다. 2차 침공으로 온 나라가 아비규환이니, 게하시가 서있을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엘리사는 왕과 장관을 상대하는데, 나병환자인 그가 어떻게 나서겠는가? 사명이고 다 포기하고 나병환자라는 자기 분수에 맞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다. 사명을 포기하고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고 싶어할때가 많다. 그래서 이들의 주제가는 죽을 것 같다. 이다. 게하시가 여기까지 와야 한다. 게하시의 자기의 자리는 나병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엘리사가 끼고 도니 회개가 안 되는 것 같다. 죽을 것 같은 고난, 이것이 나병환자 네 명의 인생을 요약하는 말이다.
이들은 이때,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겠다가 아니고 피투성이라도 살겠다고 말한다. 이는 믿음보다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 있으니 나오는 태도이다. 다 포기한 게하시가 이런 나눔을 주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병환자 친구들이 같이 살자고 데려가니 그냥 끌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난 구원의 시작이 된다.
나병환자에 비해 여호람은 피투성이가 되니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끊었다. 그가 의지하는 장관도 마찬가지로 구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는다. 왜인가요? 마음이 높은 곳에 있는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삶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인정하고 쿨하게 죽겠다는 것이다. 게하시가 나병환자가 아니라 왕과 장관 옆에 있었다면 또 그대로 따라 갔을 것이다. 누가 옆에 있냐, 어떤 공동체와 있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공동체가 평생을 좌우한다. 피투성이라도 살겠다는 나병환자와 피투성이니 죽겠다는 왕과 장관 중 누가 더 멋있어 보이는가? 엉망진창인 결혼이어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엉망징찬인 결혼인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세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신뢰가 깨진 결혼은 끝내야 하고, 피투성이인 삶으로 사느니 인생을 끝내는 게 더 멋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혼도, 자살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한 죄입니다. 그 결론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앞으로 남는 것 같지만 뒤로 밑지는 인생입니다. 영생이 아닌, 영벌이 있습니다. 구속사로 보면 수치를 무릅쓰고 구원 받기를 소망하는 나병환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땅 끝까지 낮아져야 망가질 줄 안다. 수치를 무릅쓴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는 것입니다. 최고의 환경에 있으니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러니 일류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거듭날 기회고, 복음을 경험할 기회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하나님이 책임 지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훈련입니다. 길이 참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밑동 잘린 나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화살을 쏘셨으면 책임지신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어야 한다와 피투성이라고 살아야 한다 중 어디에 동의하십니까?
2. 값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5~8절
죽을 것 같은 고난에서 죽기를 거부한 네 명의 나병환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 납니다. 죽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일어나는 적용도 필요합니다. 네 명의 나병환자가 아람군대 진영으로 갑니다. 그런데 왠 걸 텅텅 비어있는 것입니다. 다 놓고, 사람들만 쏙 빠져 나간 것입니다. 이 네 명에게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배를 채웁니다. 그리고나니 다른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은과 금과 의복입니다. 왜 은과 금과 의복일까요? 다른 것도 많은데 왜 은과 금과 의복이었을까요? 나아만이 나병이 낳고 나서 게하시가 쫓아가서 어떤 걸 구했나요? 은과 의복입니다. 게하시는 이로 인해 치리로 나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눈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찾지 못 하게 감춥니다. 장막 하나 싹 털고 나와보니까, 이런 장막이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눈이 더욱 돌아갑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이런 금이면 나병도 문제될 것 없다. 이런 기대에 부풀어 이장막 저장막 다니며 감춥니다. 통장도 없이 망한 인생인데, 갑자기 새 통장에 잔고가 수십 억 쌓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람 군대가 모든 물품을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간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주께서 아람 군대가 도망가게 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병거 소리를 들은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 도울 원군이 온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왕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급해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도망갑니다. 이 모든 일을 주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열왕기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주' 아도나이 라고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주' 가 등장 했는데, 이제 진짜 주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한번에 아람 군대를 몰아 내십니다. 구원의 은혜로 등장하신 주님의 은혜로 이 네 명의 나병환자는 구원을 뜨겁게 경험합니다. 아무 기대도 없는 인생이 었는데, 죽으면 죽으리라의 마음으로 아람 진영에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엄청난 구원을 아무 값없이 받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는 그들인데,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잘나서 잘 됐다는 성취의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는 내 강함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욕심입니다. 이런 자랑은 풍선입니다. 크게 보이고자 자꾸 바람을 넣습니다. 그러다 결국 뻥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방에 추락합니다. 처음에 잠깐 아름다운 소식처럼 보이지만 구원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더 큰 수치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랑하게 되더라도 약한 것만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왜인가요? 내 약함을 자랑할 때, 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소식이 전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자랑은 구원 뿐입니다. 주님이 100프로 이루신 구원. 우리 모두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구원은 아무리 자랑해도 터지지 않고, 더 커져서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구원의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 주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구원을 곳곳에 알릴 때, 거주할 처소가 세워질 것을 믿습니다. 거저 받은 구원을 알리는 곳이 바로 목장입니다. 목장 가는 것이 선교의 첫 걸음입니다. 목자님의 나눔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목자님이 붙어만 있으니 너무 달라지셨습니다. 1년동안 부족한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은 목장이었다. 울컥할 때가 많았는데, 하나님이 오늘은 특별히 눈물을 허락하셨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게하시의 눈을 뜨게 하시고, 멀게 하시며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믿지않는 둘째의 구원과 목장식구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셨으면 한다. 부목자 님이 목자님 덕분에 한 번도 안 쉬고 목장 보고서를 쓸수 있었다고 하며 다른 목원분들도 받은 은혜를 나눴다. 목자님이 달라지니 온 목원들도 달라져서 차별없는 구원을 전한, 알려야 하는 목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목자님은 목장 모임 수를 세우니 40번이 넘는다고, 세상에서 보면 역행한다 하지만 이 모임이 나를 지켜준 것 같다고, 이 목장의 목원분이 신앙이 엉망이 되었는데, 말씀을 계속 듣게 된다고, 속인 자와 속은 자 말씀을 듣는 순간 해결이 되었다고 큐티할 때 마다 구체적인 말씀이 들어오니 기적 같아 깜짝 놀라고 편안해 지고 있다고 합니다. 죽을 것 같은 고난은 모두에게 기회다. 또 다른 목자님은 아내를 만나서 여기까지 온 게 인정이 된다, 모든 상황 속에서 공동체 안에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공동체 덕분에 어떤 사건도 두렵지 않다고 나누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알리자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목장가서 나눈 나눔을 제가 전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선교가 다른 게 아닙니다. 여전히 목장에서 잘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 주로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자랑하고 싶어서 과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기 위해 자랑할 내 약함은 무엇입니까?
3.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9~10절
나병환자 네 사람은 게하시가 주도한 약탈 아닌 약탈을 신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게하시가 정신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나아만의 은과 의복을 탈취했다가 치리 받은 게 생각이 났을 것이고, 치리의 결과인 나병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무엇일까요? 굶주리고 있을 동족들이 생각난 것입니다. 은과 금과 의복 너머에 있는 구원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양육을 받았으니 죄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한 게 많은 것은 인생에서 손해가 아닙니다. 당한만큼 두려워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당한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으면 자기가 주인 자리에 앉아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한 것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말씀으로 양육되지 않으면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고난으로 두렵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니들이 내 고난을 알아 하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선한 게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벌이 뭔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떤 모양으로 살든 다 악하고 음란합니다. 구원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양육이 없으면 교육도, 고난도 교양도 다 꽝입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게하시에게는 겸손한 나병환자 친구들이 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고난만 충만한 나병환자에게는 말씀으로 양육 받은 한 사람 게하시가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양육 받은 게하시 덕분에 구원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고난과 양육이 만나니 복음을 전하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힘들게 한 사마리아 자리로 돌아갑니다. 떠났지만 돌아갑니다. 그리고 문지기를 부릅니다. 문지기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사회의 배척과 조롱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나를 힘들게 한 간수 같은 사람입니다. 나를 힘들게 한 한 사람이 결국 나 때문에, 내 구원 때문에 한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해서 죽을 때 까지 원수를 갚으려고 했는데, 내 구원 때문에 가장 수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때까지 이르러 드디어 게하시가 깨달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복된 소식을 왕도, 장관도, 엘리사도 아닌 세상에서 배척 받는 나병환자를 통해 알리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소식은 하나님이 직접 전하신 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서 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있고, 말씀이 있는 사람들은 광채가 나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이기에 자격있는 사람을 쓰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오히려 자랑할게 약함 뿐인 인생을 통해서 알리시며 그것이 오직 주의 은혜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속적인 우리의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24년 첫 주일에 이 말씀을 주신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주할 처소를 세우는 사명은 우리 교회 확장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 수를 늘리자는 것도 아닙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이 왕노릇하는 시대에 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한 구속사적인 말씀묵상을 알려서 가정중수 운동이 일어나길 바라야 합니다. 날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낙태 병원은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낙태하지 말라는 말을 누가합니까? 안 합니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한 구속사적인 양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양육이 열매를 맺기를 정말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 목장 대상으로 출산율을 계산해보니 적어도 2.0은 넘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분수령적인 회개로 눈물 흘리고 돌이키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일 이혼하겠다는 아들 부부. 사돈댁에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일찍 결혼해서 출장이 잦은 남편 때문에 힘들고 외로워서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이혼하겠다고 날뛰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집안 식구를 다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 때문이라고, 내 죄 때문이라고 자신의 삶을 나누면서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들 가정의 이혼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게 우리들교회의 가치관이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룹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 나를 살린 아름다운 소식을 그에게 어떻게 가서 알리겠습니까?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루니 다들 힘든 사람에게 가서 아름다운 소식을 알립니다. 새해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선교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김현주
1. 회사에서 한 주간 잘 버틸 수 있도록, 체력 주시길.
2. 동생 전도를 위해 섬기는 적용중인데 잘 죽어질 수 있도록
남우영
1. 이번주 목요일이 교직원 연수날인데 잘 버틸 수 있도록.
박시은
1. 이사를 가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 생각되는데,올 한해 입찰 받은 건으로 생활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2. 말씀따라 남자친구와의 관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엄지혜
1. 업무분장 잘 될 수 있기를
2. 1년 사업계획서 무리없이 작성할 수 있도록
3. 방황하는 남동생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남궁의정
1. 영국에 있는 언니가 자존감 지키면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2. 사람에게 관심 가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