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주일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이제 가서 알리자
열왕기하 7장 3절 - 11절
3절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절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절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절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절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절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절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11절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김양재 담임목사님>
아멘 저는 아프다가 주일만 나오면 목소리가 터지는데 오늘은 안터지는데 목이 잠겼습니다. 저렇게 남편 나눔을 읽었는데 부인이 간증했습니다. 아직은 기다려야 할 때 입니다.
수요저녁예배에는 큐지컬로 열지 않겠습니다. 그대신 온라인으로 주일설교가 나가는데 대구 채플만 생중계로 진행되니 많이 전도하시고 어마어마한 큐지컬을 하니까 들으시기 바랍니다.
큐지컬 주차는 3인이상 탑승만 가능하고 반드시 대중교통 이용해주시면 좋겠고 주차에 대한 내용은 주보를 참조하시기를 바라고 다음주에 부부목장 개편이 나옵니다.
개편된 목장으로 모이고 21일 주일부터 여자목장은 모이겠습니다.
모든 유가족분들 영적후사 낳아 주의 길로 나아가길 축원합니다.
찬양합니다.(왕이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서 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해요 어떻게 가서 알려야할지 말씀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을 들을지어다 송구영신을 열었습니다. 해석이 잘되어 해결이 되었으면 알려야 합니다. 올해 표어는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입니다. 육신의 장막도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가야합니다. 말씀듣고 나누어줄것만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의료선교 건축선교 미용선교 가서 알려야 합니다. 오늘 그런 작정도 받겠습니다 .무엇을 알립니까 구속사의 복음을 알려야 하고 우리가 하고 어떻게 하냐 이제가서 알리자에 띵크를 해보겠습니다.
1.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지난 주 2차 침공에서 장로들은 드디어 엘리사의 말씀을 들었고 아무도 안믿었는데 누가 믿는지 보겠습니다. 성벽은 넘어갈수도 없습니다 .넘어가면 죽음입니다 성안도 죽음아래에 있습니다. 극한 굶주림 속에서 공동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병환자 4사람 입니다. 불가족천민입니다.
나병환자가 2사람 나왔습니다. 나아만과 게하시 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나병환자가 또 나와요 나병환자가 뭐라고 계속 등장시키실까요? 고통에 무감각한 영적인 우리자신을 생각해보라는 우리입니다. 이런사람도 구원을 얻는데 구원을 못얻는지 탈무드는 이 나병환자 4명을 게하시와 아들 4명이라고 합니다. 구원 받지 못하고 끝났다고 합니다.
시간순서로 쓰인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게하시로 이어지는 8장에 왜 다시 나오게 하셨습니까? 열명의 나병환자중에 고쳐주셨어도 한명의 환자만 감사해서 오니 그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양육과 구원의 드라마로 봐야합니다. 이 4명의나병환자 중에 게하시가 있다고 보는데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들이 도단을 포위했습니다.
치리의 목적은 구원이기에 게하시로써는 쫒아내지 않았습니다. 사환역할을 한것도 없이 아 내주여 어찌하리이까 만 외쳤는데 그의눈을 열어달라고 엘리사가 기도했습니다. 게하시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2차 침공에서는 게하시가 사라졌습니다. 어떤 적용도 하지 않았고 오늘은 나병환자가 등장했습니다.
1차도 2차도 호칭되지 않았습니다. 사환이라는 직분도 없습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게하시는 이제 선생님을 향한 죄송함을 넘어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눈을 열어보게하시는 은혜도 주셨지만 소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게하시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는 잠깐이고 자신을 보며 절망했을 것입니다.
온나라가 굶주림으로 아비규환이니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장로들 여호람 왕을 상대하고 있는데 그당시 고정관념에 있을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사명이 뭐고 포기하고 나병환자라는 자기 분수에 맞는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런 집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이해가 됩니다. 그러고 싶을때가 많죠?
가족이고 역할이고 사명이고 환경탓하고 싶을때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이야기 이고 게하시가 우리입니다. 여기까지 와야합니다.
자기의 자리는 나병환자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계속 엘리사가 끼고 있으니 회개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엄마 며느리 목사의 때마다 백년전만해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고 고정관념이 대단하고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알고 왔습니다. 여자를 무시하냐 이소리 안하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선교사님들의 선교가 고마운것 입니다. 이 나병환자들은 거기서 여기서 죽을것입니다. 죽을것 같은 고난 나병환자 인생을 요약하는 말입니다. 어찌하여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랴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겠다가 아니라 살겠다고 합니다. 나병이라는 고난 가운데 있으니 가능한 태도입니다. 다포기하고 들어온 게하시가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3명의 나병환자 친구들이 이들은 낮고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어찌 여기서 죽기 기다리냐 땅끝까지 내려간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것이 결국 엄청난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여호람왕은 재앙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 조차 끊었습니다. 반문합니다. 능력있는 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이런일이 있으리요 이럽니다. 피투성이가 된 삶을 감당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 밖의 기적을 바라며 쿨하게 죽겠다는 것입니다.
게하시가 나병환자가 아니라 장관옆에 있다면 그대로 따라갈것입니다 누가 옆에 있느냐 어떤 공동체가 있느냐 평생을 좌우합니다.
피투성이라도 살겠다는 나병환자와 죽겠다는 왕과 장관중 누구처럼 되고 싶으세요? 세속자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이혼하고 새출발하는게 폼납니다. 세속자적으로 보면 미련없이 스스로 떠나는게 더 멋진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인구절벽에 이렇게 자살률이 1위가 되서 그렇게 됬습니다. 하나님이 짝찌어주신 것을 깨드리는 이혼은 반역이고 악한 죄이고 심판을 받습니다.
뒤로 밑지는 선택입니다. 영생이 있는게 아니고 영벌이 있습니다. 그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 왕과 장관이 아닌 수치를 무릎쓰고 구원받고싶은 나병환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미 그들이 있기에 저절로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과 장관은 수치를 당해본적이 없기에 망가질줄 모르니까 죽을것 같은 고난이 오면 쉽게 소망을 버리고 자살합니다.
도저히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배우자 자식에게 무시받고있어요? 본가에도 처가에도 갈수 없어요? 여기서도 죽을것 같고 저기서도 죽을것 같은 고난에 있습니까? 이런 고난은 죽을 이유가 아닙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깨어진 결혼도 지켜야 합니다. 상상못하게 힘든 집이 많아요. 다 아파가지고 자기가 무슨소리를 하는지 몰라요 힘든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응원합니다.
여러분은 택자거든요.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잖아요 밑동 잘린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이러지리도 저러지도 못하는 죽을것 같은 상황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어야한다와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 중 어디에 동의합니까?
2.값 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죽을것 같은 고난에서 죽기를 거부한 4명의 나병환자는 일어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적용도 필요합니다. 실날같은 소망을 붙들고 일어난 4사람은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진영이 텅텅비었습니다. 이상한것은 군대가 먹던 식량과 의복과 장막도 그대로 있습니다. 말과 나기도 안가고 갔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만 쏙 갔어요
이런저런 생각하고 따질 여유가 없어요 허겁지겁 배를 채웁니다. 허기를 달래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은과 금과 의복입니다. 돈이죠. 여러분은 왜 은과 금과 의복이죠? 이 3명이 언제 나왔죠? 게하시가 달라고 한건뭐였죠 은과 의복이었습니다. 다 이러는데 금은 그때 구하지 못했잖아요 은 2달란트도 엄청난 가치고 의복 2벌도 근 가치였습니다.
그 치리로 인하여 자신에 대해 절망하며 사명을 포기했는데 적군이 다 도망간 진영에서 은과 금을 보니 눈이 뒤집혔습니다. 여기서 게하시가 다른 3명을 주도했을 것 같아요 잘 감춥니다. 돈을 감추는데 게하시가 박사입니다. 신나게 감추었을 것입니다. 와...이런 장막이 들판을 가득채우고 있고 눈이 돌아갑니다. 이돈이면 나병도 문제 될것이 없다.
행복시작이다 이런 기대에 부풀며 보이는 금과 은 의복을 감춥니다. 통장도 없이 망한 인생인데 새통쟁 개설과 수십억원이 쌓이는 것입니다. 이 4사람은 아람군대가 모든 물품을 두고 빠져나간 이유는 모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아람군대가 도망가게 하셨다고 합니다. 병거소리 군대소리를 듣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착각에 빠졌다고 합니다. 엄청난 적군이 이스라엘을 도울 원군으로 온다고 착각한겁니다.
왕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습니다. 스펙 이런거 좋아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심지어 말과 나귀도 타지 못할정도로 혼비백산하여 몸만 도망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열왕기하에서 주 아도나이라고 합니다. 여호람과 벤하닷 같은 왕은 물론 자신을 실세로 여기며 참으로 까불었습니다. 진짜 주님이 등장하세요 만왕의 왕 만주의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사마리아를 에워싼 적을 한순간에 몰아내십니다.
항상 성경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네사람의 나병 환자는 구원을 뜨겁게 경험합니다. 아무 수고도 예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난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일어나고 아람진영에 왔습니다.
아내 남편 상사 부하의 자리로 갔을뿐이에요 여기서 엄청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값 없이 받은 구원이 이렇게 우리가 알릴 소식입니다. 합격과 취업은 노력한 만큼 성취하지만 계획한대로 노력한대로 되는것도 아닙니다. 이런 성취를 너무 전하고 싶어요 이런 소식만 전할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우리자녀들이 이런소식을 전해주기를 빕니다. 이런 소식은 내 강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랑은 풍선과 같아요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작게 보이는 풍선이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랑에 자랑을 더하고 과장하고 지어내고 멈출수 없고 하고 뻥 터집니다. 제 목소리도 뻥 터지기를 바랍니다. 주여 ㅎㅎㅎ
터져야 하는데 ㅎㅎㅎ 한방에 추락하고 맙니다. 결국 큰 수치로 끝나고 맙니다. 사도바울은 약한것만 자랑하는데 고린도후서 12장에 내약함을 자랑할때 그 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주님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100프로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값없이 받은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구원을 자랑해도 터지지 않습니다. 커지면 커질수록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주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표어대로 거주할 처소가 가정과 교회에 곳곳에 세워질 줄 믿습니다. 약함을 자랑할수 있는 곳은 목장이고 목장에서 약함을 자랑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목장가는게 선교입니다. 선교사 못가면 진짜 그 선교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주로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자랑하고 싶어서 과장하는 것은 없습니까?
값없이 받은 구원을 알리기 위해 자랑할 내 약함은 무엇입니까?
3.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합니다.
나병환자 네사람은 게하시가 주도한 약탈아닌 약탈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가 갑자기 게하시가 정신이 들었을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걸려 치리받은 것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많은 일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입니까? 아름다운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알리지 않은것이 생각났습니다. 엘리사의 양육이 빛을 바라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금과 은 의복을 넘어 생각나게 한것입니다. 감추었다고 표현한것은 절대 진리를 표현한것입니다. 도둑질이라고 할수 없습니다.그래도 감추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지금가서 당장 알리지 않으면 아침까지 알리지 않으면 벌이 자기에게 미친다고 합니다.
벌에 대한 개념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당한게 많은 것은 인생에서 손해가 아닙니다. 당한 만큼 두려워할줄 알기 때문입니다. 두려운게 없으면 주인자리에 앉아 내려올줄 모릅니다 여호람도 장관도 그렇습니다. 당한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당한게 많아도 말씀으로 양육되지 않으면 그 고난으로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합니다. 그러면 괴물같은 존재가 됩니다.
죄에 대한 책임 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고난만 많고 양육되지 않은 사람과 고난은 없지만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모습도 악하고 음란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고 양육을 받야아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좋은 교육도 꽝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할만 교양과 스펙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게하시에게는 겸손한 친구들이 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고난만 충만한 나병환자에게는 그래도 게하시가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양육받은 게하시 덕분에 구원을 생각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양육이 만나니 절망뿐인 이들이 복된 인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합니다. 떠났던 자리로 갔습니다. 문지기를 불렀습니다.
문지기를 불렀습니다. 조롱을 상징하는 것이 문지기입니다. 문지기는 나를 힘들게 한 간수 같은 사람입니다. 빌립보의 간수는 예수를 믿었지만 게하시가 양육을 받을수록 나를 위해 수고해줬습니다.
이제 여기서 금 은을 탈취하다가 이제 내 구원때문에 수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기 까지 이 복음이 깨달아진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왕과 장관을 통해 알리지 않습니다. 성밖에 격리된 나병환자를 통해 알리십니다. 아무리 양육하고 치리를 주어도 나병환자와 게하시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도대체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하십니까?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에 맞는 아름다움을 가져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직접 알리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 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있고 말씀이 있는 사람들은 광채가 나게 되어있다고 잠언 혹은 전도서에 나와있습니다. 직접하시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다무너진 인생 소망없는 인생 자랑할것이 약함뿐인 사람을 통해 알리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십니다. 세속적인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요. 2024년 첫 주일에 이말씀을 주신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거주할 처소를 주시는 것은 교회를 확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사 적인 말씀 묵상 운동을 일으켜서 가정중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출산률이 0.78이랬는데 0.72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서울은 0.59라는 거에요. 날로 날로 떨어지고 있어요 낙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가 말을 합니까 낙태하지 말라는 말을 안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여러분들이 이거를 깨닫기위해서는 말씀을 통한 양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목적이 되서 교회를 통해 지금까지 배푸신 양육이 가정중수 운동의 열매로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교회는 한 초원과 목장에서 해보니까 그것이 19세부터 49 그 사이에 나온 자녀와 부부로 나누면 그것이 나옵니다. 한목장의 출산률은 2.5, 다른 목장은 2입니다. 우리 교회는 2.0은 넘었습니다 말씀 묵상이 실제 생활에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도 많이 하고 유아세례도 많이하고 해야하는데
교양있게 낙태를 해야합니까? 이혼을 말리니 저를 가만 안놔두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게하시 같은 제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분수령 적인 회개와 눈물을 흘리기를 소망합니다.
부모가 구속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무릎을 끓고 이혼을 말릴 수 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고난과 양육이 조화를 이룹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를 살린 아름다운 소식을 그에게 어떻게 가서 알리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가서 알리는 것은
죽을 것 같은 고난이 기회입니다.
값 없이 받은 구원이 알릴 소식입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도 알려야합니다.
목장 참석인원 : 오수근 / 김태규 / 신지우 / 주예성 / 조준혁
총 8명 중 5명 참석
자기 소개 후 각자의 고난과 일상에 대해 나눔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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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오수근
1.회사 새 부서와 고등부와 목장에서 혼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은혜로 함께 할 수 있기를.
2.기도를 많이 할 수 있기를
김태규
1.새로운 목장에서 지체들과 화합하고 연합하여 잘 붙들어 가기를
2.여자친구와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신교제 신결혼하기를
3.개인작업을 즐기면서 할 수 있기를
4.재활 필라테스 꾸준히 할수 있기를
5.회사에서의 의사소통 잘할 수 있게 인도해주시기를
6.동생의 군생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기를.
신지우
1.금요일 면접 잘 볼 수 있기를
2.필요할때 기도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할수 있기를
주예성
1.9일날 면접 잘 볼 수 있기를
2.기도를 저녁마다 할수 있기를
3.교만을 내려놓을수 있기를
조준혁
1.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