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여시매. 왕하6:17-23. 김양재 목사님
대체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으려고 한다는 말이 있죠. 지난주에 우리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멈추면 결국 원하는 것만 믿으려고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다가 또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와 함께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눈을 여셔야겠죠. 그래서 눈을 여시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통회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사환을 위한 기도)
17절. 엘리사 한 사람 잡으려고 아람 군대가 한밤중에 들이닥쳐 도단을 포위했어요. 엘리사의 젊은 사환이 새벽에 이 군대를 보고 큰 두려움에 빠졌는데 그냥 어찌하리까? 벌벌 떠는 제자에게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한 자가 더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환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안심하게 되었을까요? 아니죠. 더 어리둥절하고 동공이 더 많이 열렸어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 군인 한 명 보이지가 않아요. 그런데 아람 군대보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더 많다고 하시니 당황스럽죠. 그래도 엘리사 선생님 말씀이니까 멀리서 군대가 오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어느 방향에서도 원군이 오는 그 흔적은 보이지가 않아요. 바로 이때 엘리사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엘리야나 엘리사나 다 대단한 하나님의 선지자이죠.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두 선지자에 대해서 기도했다는 표현을 쓴 곳은 딱 두 곳인데요. 그것도 엘리사에 대해서만 썼는데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릴 때 기도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사건에서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된 채 두려워 떨고 있는 이 믿음 없는 제자 한 사람 믿음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 죽은 사람 살리는 일보다 그만큼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뜻이에요. 사실 엘리사가 굳이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어요. 사환이 보든 보지 못하든 두려움에 떨든 담대하든 엘리사는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에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엘리사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오직 이 사환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고 이타적인 기도예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심에 구원의 사명에 목숨을 건 선지자의 마음이에요. 정말로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한 사람 한 영혼의 믿음이 귀한 거예요. 누구든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데는 차별이 없어요. 모두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죽음 앞에 평등하니까 구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평등합니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얼마나 내치려고 했겠어요? 아무리 기회를 주고 기다리고 양육해도 전혀 변하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난 게하시도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인 거예요. 믿음이 있어야 할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존재예요. 영의 눈이 열려 천국을 봐야 할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여시니 사환을 위해서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기도하다라는 히브리 단어 판랄에는 통회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엘리사가 구제불능 인생을 위해 눈을 열어서 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게하시를 보며 자기 자신을 직면하여 통회했기 때문이에요. 분홍이었던 자신을 어느 날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사명의 길로 불러주셨잖아요. 엘리야 선생님은 혜성처럼 역사의 무대에 등장을 했어요. 엄청난 카리스마로 칠흙같은 아합 시대를 말씀의 빛으로 밝히셨어요.
그 대단한 스승님을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다녔지만, 함께할수록 엘리사는 정말 스승과 비교되는 초라한 자신을 직면했을 것 같아요. 스승의 뒤를 이어 감당해야 할 선지자 사명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임을 너무너무 잘 알았죠. 그래서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며 스승을 끝까지 따랐고요. 십자가를 잘 지기 위해 갑절의 영감을 한 가지 구할 것으로 구했습니다. 이렇게 아무 자격 없는 자신을 사명자로 세워주신 게 은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알았어요. 하지만 자신이 선생의 자리에 있으니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특별히 문제아 게하시를 향한 자기의 이상한 마음을 본인은 너무 잘 알고 있죠. 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그 실망과 분노 그래도 버리지 않고 양육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자랑할 수 없는 이 뿌듯함 등 엘리야 선생님처럼 뭔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람에 대해 쿨한 모습과 다른 자신의 연약함 등을 통회 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그 엘리사에 대한 기대를 생각했을 때 엘리사도 그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을 이렇게 바라보며 느꼈을 것 같아요. 만일 이 사환이 게하시였다면 그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 탐욕으로 스승의 기대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 사역에 먹칠을 했잖아요. 그래서 큰 징계로 질의를 했는데 그래도 쫓아내지 않고 데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문을 열어서 보게해 주시기를 믿음을 주셔서 담대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십니다. 엘리사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사이에 조금도 지체된 게 없어요.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는 이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드디어 게하시가 지금까지 안 보이던 불말과 불병거가 보였어요. 아랍 군대를 압도하고도 남는 불말과 불병거를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데요.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나타났던 그 불수레와 불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 수가 산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아요. 아람의 사단급 병력보다 훨씬 더 많은 불수레와 불말로 이루어진 아주 군단급 천군 천사가 엘리사 거처가 있는 산에 가득한 거예요. 그런데 이 불말과 불병거 군단이 갑자기 나타났겠어요? 하나님이 청년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기 전부터 이미 하늘의 대군단은 엘리사를 지키고 있었어요. 아람 군단이 도담을 포위하기 전부터 아람군이 자기들 진영을 출발하기 전부터 아람왕이 엘리사 체포 명령을 내리기 전부터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 군단은 지금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던 거죠. 시편 기자도 91편 12절에서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내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어떤 길에서만 지키시는 게 아니라 모든 길에서 지켜주실 줄을 믿습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엘리사와 함께 다니는 사환운 이걸 옆에 있는데도 못 보는 거예요. 눈이 닫혀 있기 때문이에요. 이 육신의 눈은 뜨고 있는데 영의 눈이 감겨 있어서 그래요. 영의 눈은 우리가 육감이라고 부르는 어떤 신비한 능력 같은 게 아니에요. 육적인 눈과 대조되는 영적인 눈은 곧 믿음인 거예요. 이 믿음이 영의 눈이에요. 엘리사는 아람의 모든 군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강하신 그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었어요. 근데 이거를 여러분들은 믿지 못하잖아요. 두려워서 어찌하리이까만 외칩니다. 그런데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이제 끊임없이 사람을 믿고 싶어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Q. 포기하지 말고 눈을 여시매 이타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향한 내 태도에서 통회하며 회개해야 할 마음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아람을 위한 기도)
도단을 포위한 아람군은 아침이 되자 드디어 공격을 개시합니다. 아무 무장이 없는 선지자 한 명을 큰 군대가 공격해요. 이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잖아요. 성경은 지형상 도단이 높이 있는데도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온다고 표현을 했어요. 거꾸로 표현을 했잖아요.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적으로 내려가고 내려가는 길을 지금 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람은 엘리사를 쳐들어 올라가지만 영적으로 내리막길이다. 아람군이 엘리사 가까이 왔을 때 엘리사는 다시 기도합니다. 앞에서는 사환을 위한 기도였는데 이번에는 아람군을 위한 기도예요. 내용은 정반대 사환을 위해서는 눈을 열어 보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아람군을 위해서는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어둡게 하옵소서. 이 번역은요 굉장히 순화된 거고 직역하면 눈이 안 보이는 것을 가지고 때리소서 이 얘기예요. 하나님은 이 기도에도 즉시 응답하세요. 그 기도대로 아람군을 앞을 볼 수 없는 이 어두움으로 치십니다.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던 불말과 불병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신 것이죠. 나를 둘러 보호하는 불말과 불병거는 치열한 삶의 불간증이기 때문에 활이나 창따위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 옆에 불말과 불병거가 안 보이기 때문에 제자인 유다와 인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칼과 몽치로 잡겠다고 갔잖아요. 이게 실명 상태라는 게 아니에요. 여전히 앞을 볼 수 있었어요. 자기들이 공격을 받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격 목표였던 엘리사를 이제 알아볼 수가 없게 됐어요. 19절 20절입니다. 보기는 보지만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인데요. 엘리사가 온 군대로 자기를 죽이려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자기를 죽이려는 아람 군대에 보고 나를 따라오라 나를 보러 와요.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안내를 하는 거예요. 엘리사 잡으러 온 군대가 엘리사를 따라서 가고 있어요. 그리하여 그들의 눈이 어둡게 되어서 이스라엘 군대 본진인 사마리아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아람 군데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러니 정치 경제 뭐 결혼이라는 것이 눈을 뜨고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맹인이 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 태반이라는 거예요.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져 엘리사를 쉽게 잡게 되었다고 엘리사를 신나게 따라갔잖아요. 사마리아에서는 비상령이 떨어졌겠죠. 엘리사가 사인을 주었는지 아람군이 사마리아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공격하지 않고 경계만 하고 있었습니다. 착각에서 빠져나와 앞에 있는 현실을 다시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앞에 있는 엘리사도 보이고요. 이스라엘 정예 부대에 의해 이미 포위된 자신들의 처지가 보이는 거예요. 꼼짝없이 무기를 내려놓고 잡혀야 했습니다. 이럴 때 내가 속았다고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성경을 내게 주신 음성으로 들어야 돼요. 앞서 아람 왕은 부하들에게 엘리사가 어디 있냐 어디 있나 보라고 했어요. 왕의 명령대로 신실한 부하 하나가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고 그다음에 이 사람은 침실에서 얘기하는 것까지 다 들어요. 그럼 제대로 보고를 해줬는데 그거를 엘리사 죽이는데 그 보고를 받잖아요. 왕이나 부하나 그래서 도단에 가면 당연히 엘리사를 볼 수 있다고 여겼어요. 의심할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이들이 당연히 여기는 시력도 하나님의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여서 어둡게 하시니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은 여전히 제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완전 착각이라는 거예요. 내 예상과 기대는 빗나가라고 있다고 했죠. 장담은 어디서도 금물이에요. 근데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 장담을 잘하는 거예요. 아람왕이나 군대나 이스라엘 군대 몰래 엘리사를 보고 잡아가고 싶었어요. 근데 만일 그들이 자기 원처럼 엘리사를 잡아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엘리야를 잡으러 왔던 50명의 군인들처럼 불말과 불병거의 공격을 받아 전부 불에 타 죽었을 거예요. 그들이 볼 수 있다고 확신했고 보고 싶어 했던 대상은 엘리사였는데 그런데 엘리사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 거잖아요. 그 기도대로 그들은 엘리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죽지 않고 사는 거예요. 그들이 봐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인도함이에요. 체포해야 할 원수 엘리사를 보고 싶어 했지만 그들이 살기 위해 봐야 할 것은 그들이 따라가야 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인 거예요. 원수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여기 예수 믿는데 여러분들을 원수처럼 여기는 식구들이 너무 많잖아요. 예수 믿는다고. 그러니까 있어야 될 일이구나 그래서 처음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라는 엘리사의 기도는 그들이 보고 싶은 거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도인 거예요. 봐야 할 것은 착각으로라도 보고 따라오게 하기 위한 기도인 거예요. 인간은 100%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따라간다면 결말은 멸망과 죽음이에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공식이에요. 죄악의 삯은 사망이에요. 그래서 구원은 보고 싶은 것 보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는 것이 구원이에요. 고난 없이 인생이 술술 풀리면 계속해서 보고 싶은 것이 늘어나고 그걸 추구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고난이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이 막히고 꺾이면 보고 싶은 것, 볼 수 없는 한계를 알게 됩니다. 억지로라도 그러죠. 그리고 그 환경에 매여서, 봐야 할 주님의 십자가를 딱 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다 알지 못해도 여러 사람과 사건에 매어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메인 환경이 축복인 거예요. 십자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고난이 선물이에요.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주님만이 우리를 살리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시력이 다르지만 다들 각자의 눈을 열어서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Q.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 어둠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성공과 구원 중 무엇을 더 보고 싶습니까?
세 번째,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21절.-23절. 원수 아람군대가 사마리아 한복판에 독 안에 든 쥐로 들어왔잖아요. 그러니까 여우람이 기분이 째지잖아요. 그러니까 갑자기 엘리사를 보고 내 아버지요 이러는 거예요. 이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원수 아람 군대가 뭔가에 홀린 듯이 사마리아 한가운데 와서 아군에 의해 포위를 당했으니까 여호람 왕이 원수 갚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잖아요. 근데 엘리사가 은인이잖아요. 눈치를 보는 거예요. 치리이까 치리이까 그러니까 얼마나 공격하고 싶었으면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이거는 자기의 공로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자기가 지금 있잖아요. 아람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물었어요. 여호람이 치리이까 물어보니 엘리사가 공격을 막아요. 전쟁에서 사로 잡은 포로를 죽이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아니 전쟁 없이 제 발로 걸어들어와 잡힌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음식을 주라. 뿐만 아니라 아람으로 돌려보내라. 그러니까 왕들이 큐티를 좀 해야 되지 않겠어요? 아람왕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어요. 통치하는 12년 동안 엘리사가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사역을 했는데 아합이 만든 바울의 주상 하나 없앴다고 지금 이렇게 엘리사가 치하를 하는 거예요. 근데 금송아지 우상은 그대로 두고 있는 거예요. 겉으로는 개혁이지만 개혁이라는 게 예수 그리스도 없이 됩니까? 개혁하는 척했지만 속으로 아합처럼 또 여로보암처럼 우상 숭배를 계속했어요. 그러니 성품대로 했다면 고집 세고 어리석은 여우람은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고 아람 군대를 다 죽였을 거예요. 근데 웬일로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는 거예요. 떡과 물을 주라고 한 말에 말을 충분히 행해서 음식을 많이 베풀었어요. 큰 잔치를 열어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람군대만 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이스라엘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적용은 결국 여러분들이 너무 바보 같은 적용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집안들이 다 살아났잖아요.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으나 20년이 지나니까 다 살아났잖아요. 내가 적용을 하는 게 우스운 게 아니에요. 옳고 그름으로 용서를 하고 받는 게 아니에요. 내가 죄인이라는 걸 모르면 용서할 수가 없어요. 여호람 왕이 어떻게 생명을 가져오는 순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품도 믿음도 아니에요. 오직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자복하면서 제자를 위해 통회하고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고 또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람 군대를 위해서도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봐야 할 것을 보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누구를 뭐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통회 자복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돼요. 수넴 여인만 기도 대상이 아니고 게하시도 똑같은 기도 대상인 거예요. 아람도 똑같은 기도 대상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미워하는 사람 좀 없기를 바래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목장에 가기가 싫어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 이러시면 문제 영원히 해결이 안 돼요. 그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 기도의 능력이 고집 센 왕에게까지 미치게 하신 것이죠. 그러니까 여호람을 그때 또 쓰시는 거예요. 왕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순종을 하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누구 곁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공동체 안에 머무는지가 너무 중요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런 사람이 있는 공동체에 거하면 믿음이 연약하고 고집 센 사람도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순종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엘리사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생기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공동체에 머물러야 되고 내가 기도해야 돼요. 게아시처럼 무시되는 가족과 지체와 이웃을 보면서 끊임없이 내 죄 때문에 통회자복하면서 저들이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할 사람이 지금 얼마나 많아요 집집마다 목장마다 회사마다 나라마다 나를 공격하고 괴롭힌 아람 군대 같은 사람을 향해 내가 치리이까 할 것이 아니라 그도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죄인임을 알고 그가 보고 싶은 것 쫓다가 망하지 않고 봐야 할 것 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내 옆에 있는 모든 고집 센 사람도 변화되어 생명의 순종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Q. 여호람왕처럼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부르짖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살기 위해 고집을 꺾고 순종해야 할 생명의 적용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박가영
1. 눈앞에 확정되지 않는 일들속에서 영의눈 열어주셔서 평안과 담대함으로 기도로 맡기고가는 이번주되길
2. 예비하신 안전한 처소 마련되고 이사까지 순적하게되길
3. 목장식구들 개편 목장인도 잘받고 하나님과 더가까워지는 내년되길
4. 팀 인원 추가구인, 팀 위치변경 등 변수들 기도로 맡기고 인도하심 구하도록
5. 추워진 날씨 영육 마음 아픈이들 회복위해 중보쉬지않기 건강관리
6. 감사로 보내는 송구영신되고 가족구원 만남의축복 하나님 일하심 기대하며 구하기
7. 환경변화, 인구문제, 인본주의, 전쟁 갈등등 우리나라와 열방 불쌍히여겨주시기를
이미선
1. 연말을 후회와 자책이 아닌 사소한 것조차도 풍성한 감사함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2. 내년 목장 개편을 위해
3.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영육의 강건함과 사역에 기름부어주시고 부교역자님들께도 동일한 은혜로 함께해주시길
4.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차별금지법 등의 악법을 막아주시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5.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책임지고 희생하는 지도자가 준비되어지도록
6. 매일 말씀으로 내 모습 직면하고 회개하며 적용할 수 있도록
오지은
1. 요즘 부모님과 이전엔 피하거나 하지 못했던 대화를 할 시간이 많아지는데 상황에 잘 마주하고 모든 순간 하나님께 지혜구하며 대화 할 수 있도록
2. 연말 정신 없지만 마무리 잘 하고 급하지 않게 내 생각 내 예상 내 경험 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따라 차분히 갈 수 있도록
3. 내년 새로 만날 목장과 2년동안 함께한 목장 식구들을 위해
4.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도록
5. 신교제 신결혼의 축복을 주시길
6. 김양재 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지켜주시고 하시는 사역들에 기름부어주시길
7.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말씀이 들리는 그 한사람을 지도자들에게 붙여주시길
김의경
1. 큐티 잊지 않기
2. 기침이 멋길
3. 독립 준비
정세린
1. 감기 행사 어머님과의 오해등 겹쳤지만 주안에서 즐거워하기
2. 새로운 목장 잘 붙어가기
3. 유치부에 대한 마음 더 부어주시기를
4. 엄마 하나님 만나기
5. 겨울방학 돈 낭비 말고 잘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