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7. 목장보고서
참석: 박현진, 김정한, 김웅, 임현호, 박범진, 이성은
장소: 커피빈 삼성역점
<말씀 요약>
주일예배
본문: 열왕기하 6:17-23
제목: 눈을 여시매
설교 말씀
사람은 원하는 것을 믿으려고 한다는 말이 있죠.
카이사르가 남긴 말인데요, 누구든 쉽게 이기길 원하기에 그럴 기미가 보이면 철석같이 믿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거에요.
우리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거기서 멈추면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함께 한 자와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여셔야겠죠.
1. 통회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사환을 위한 기도)
17절.
엘리사를 잡으려고 아람 군대가 도단을 포위했어요. 사환이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벌벌 떠니,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환은 안심하게 되었을까요? 더 어리둥절해졌어요. 둘러봐도 군인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와 함께한 자가 많다고 하시니 당황스럽죠. 그래도 선생님 말씀이니 군대가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지 않았겠어요? 이 때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나 대단한 하나님의 선지자이고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했다는 표현이 쓰인 곳이 딱 두 곳인데, 엘리사에 대해서 말이다.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 살릴 때와 지금 이 사건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믿음 없는 제자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 죽은 사람 살리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엘리사가 굳이 사환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어요. 사환이 어떻든 엘리야에게 오는 길은 하나도 없었다. 아람 군대에게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사환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이타적인 기도에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매 목숨 건 선지자의 마음이에요. 세상 어떤 것보다 한 영혼의 믿음이 귀한 거에요. 이 한 사람이 대화가 통하는 수넴여인이든, 통하는 것이 없는 게하시든 상관 없는 거에요. 구원에는 차별이 없어요. 죽음 앞에 평등하니까 구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평등합니다.
엘리사가 양육해도 변하는 것이 없으니 게하시를 내치려고 했겠지만 구원 받아야 하는 밑동 잘린 나무,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여시니 이 기도가 필요한 거에요. 기도하다 팔라데는 통회하다는 뜻이 있다. 엘리사가 이런 기도를 한 것은 게하시를 통해 자신을 통회했기 때문이에요.
어느 날 엘리야가 찾아와서 사명의 길로 불러주셨잖아요. 엘리야는 혜성처럼 역사에 등장했어요. 엄청난 카리스마로 칠흑같은 아합 시대를 말씀의 빛으로 밝혔어요. 그 대단한 스승님을 마지막까지 따라다녔지만 엘리사는 스승과 비교됐을 것 같아요. 그래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갑절의 영광을 한 가지 구할 것으로 구했습니다. 이런 자신을 사명자로 세워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자신이 선생으로서 어떻게 제자를 대하는지 알았어요.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게하시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럼에도 데리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 등, 자신의 연약함 등을 통회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엘리사에 대한 기대를 생각했을 때, 엘리사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며 느꼈을 것 같아요. 아람왕을 봐도, 여호람왕을 봐도, 옆의 게하시를 봐도 그렇고. 모두가 왜 안되는가 때문에 통회, 자복을 했을 것 같아요.
엘리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사환이 게하시였다면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 사역에 먹칠한 게하시를 징계하고 치리했는데, 데리고 있음에 모자라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시기를, 담대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십니다. 엘리사와 하나님 사이에 지체 된 게 없어요. 게하시의 눈을 열어 산을 가득히 채운 채로 엘리사를 보호하는 불말, 불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게하시가 드디어 불말과 불병거를 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별 게 다 애통하죠?
아람 군대를 압도하고 남는 불말, 불병거를 보게 하시는데요,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인데, 이번엔 아람의 군대보다 더 많은 천군천사가 엘리사의 거처가 있는 산에 가득한거에요. 그런데 이 군단이 갑자기 나타났겠어요? 하나님이 청년의 눈을 열어 보시기 전부터 이미 하늘의 대군단이 엘리사를 지키고 있었어요. 포위하기 전부터, 군대가 출발하기 전부터, 체포 명령을 내리기 전부터 있었던 거죠.
시편 기자도 91편 12절에서 모든 길에서 지켜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영의 눈이 감겨 있어서 못 봅니다. 영의 눈은 육적인 눈과 대조되는 믿음인 거에요. 엘리사는 아람의 모든 군대를 합친 것보다 강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었어요. 그런데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끊임없이 사람을 믿고 싶어요. 사람을 믿고 싶은 데에서 모든 문제가 생기는데, 모든 왕과 위정자들이 기도도 하지 않고 나에게 잘 하는 지로 판단하니 배반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조선 마지막 성군이라 불리는 정조는 홍국영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사나이가 첩에 혹한 모양이라고, 그래서 다른 관료들을 멀리했다고 해요. 그는 신출귀몰한 일을 하고, 정조를 도운 일등 공신이고 최측근임을 대내외에 천명했어요. 그도 그때까지 진심으로 했을 거에요. 정조에게 민심의 동향을 전했던 그는 확실한 인상을 심었어요. 그런데 정조도 자기편이 없어서 너무 외로운 거에요.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모든 권력을 홍국영한테 주게 되니까 예외가 없는 거에요. 권력을 주니까 생명을 걸고 왕을 보호하겠다고 하다 돈, 권세를 탐닉하고 오망방자하게 굴다가 4년 만에 탄핵 당해서 32살에 병사했다고 해요. 정조가 왕 만들어준 자에게 끌려다닌 거에요. 그러나 혜경궁 홍씨는 이것을 다 알고 있던 거에요. 얼마나 정조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는 거에요.
예수를 믿어야 이런 걸 분별하지 않겠어요? 부하가 잘하다가 배반하면 참수하고, 부하는 역모를 도모하고,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우리나라에 오죽하면 일본을 동원해서 호된 훈련을 하게 하셨겠어요. 일본의 식민지 생활 36년 만에 온 국민이 하나가 됐어요.
자신의 죄성을 보지 못하면 이타적인 위정자가 결코 될 수 없어요.
적) 포기하지 말고 눈을 여시매 이타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향한 내 태도에서 통회하며 회개해야 할 마음은 무엇입니까?
2. 보고 싶은 게 아닌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아람을 위한 기도)
아람군은 아침이 되자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단이 높이 있는데도 엘리사에게 내려온다고 표현했어요.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적으로 내려가는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람군이 엘리사 가까이 왔을 때 다시 기도합니다. 사환을 위해서는 눈을 열게 해달라고 했는데, 아람군에게는 저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세요. 아람 군을 어두움으로 치십니다. 엘리사를 보호하던 불말과 불병거는 치열한 삶의 불간증이기 때문에 활과 화살로 칠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전히 앞을 볼 수 있었어요. 공격 받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격하려던 엘리사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19-20절.
보기는 보지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된 거에요. 그들에게 엘리사가 나를 따라오라고 안내하는 거 에요. 군대가 엘리사를 따라서 가고 있어요. 그리하여 그들의 눈이 어둡게 되어서 이스라엘 본진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람 군대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어요.
정치, 경제, 결혼이라는 것이 믿고 싶은 대로 맹인이 되어 가는 게 태반이라는 거에요. 그걸 원하니까 그 사람을 믿고 싶게 되는 거에요.
사마리아는 비상령이 떨어졌겠죠. 성 안에 들어왔을 때는 모든 병사가 둘러싸고 공격할 준비를 마쳤을 거에요. 그런데 아람 군이 도착하자마자 눈을 여셨어요. 착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엘리사도 보이고 포위된 자신들의 처지도 보이는 거에요. 이럴 때 속았다고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아람 왕은 부하들에게 엘리사가 어딨는지 보라고 했어요. 왕의 명령대로 부하 하나가 도단에 있다고 보고했는데, 도단에 가면 엘리사를 볼 수 있겠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이들이 당연히 여기는 시력도 하나님이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여서 어둡게 하시니까 작동하지 않아요. 더 무서운 것은 제대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에요.
아람 왕이나 이스라엘 왕이나 엘리사를 잡아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잡아갔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엘리야를 잡으려던 군인들처럼 타 죽었을 거에요. 그들이 보고싶던 대상은 엘리사였는데, 보고싶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거잖아요. 그 기도대로 못 보게 되고 엘리사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서 산 거에요. 그들이 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인도함이에요. 원수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봐야되는 거에요.
봐야 할 것을 보는 게 구원이에요. 고난 없이 인생이 풀리면 보고 싶은 것이 늘어나고 그것을 추구하다 인생이 끝나요. 그러나 고난이 와서 꺾이면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 매여서 봐야 할 주님의 십자가를 보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다 알지 못해도 사건, 사람에 매여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라가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매인 환경이 축복이에요. 아람 군사는 엘리사를 따라간 것이 축복이잖아요. 십자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고난이 선물이에요. 그렇게 바라보는 주님만이 우릴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적)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준 어둠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성공과 구원 중 무엇을 더 보고 싶습니까?
3.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21-23절
아람 군대가 홀린 듯이 사마리아 한가운데에 와서 포위를 당하니 여호람 왕이 원수 갚을 기회를 잡았지만, 엘리사의 눈치를 봅니다. 자기의 공로가 하나도 없지만 쳐도 되는지 물었어요. 전쟁에서 포로를 죽이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니 음식을 주고 돌려보내라고 해요.
여호람이 얼마나 고집 센지 지금까지 봐 왔어요. 엘리사가 사역을 했는데, 바알 주상 하나 없앴다고 이렇게 엘리사를 치하하고 있지만 우상숭배하고 있어요. 그러니 성품대로 했다면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군대를 다 죽였겠지만, 순종을 했어요. 그 결과 아람 군대만 산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적용은 결국 바보같아 보여도 집안이 살아나는 거에요. 적용이 우스운게 아니에요. 옳고 그름으로 용서하는 게 아니에요. 여호람이 어떻게 생명 가져오는 순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엘리사가 통회, 자복하며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람 군대를 위해서도 봐야 할 것을 보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통회 자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돼요. 수넴 여인만 아니고 게하시, 아람도 같은 기도 대상인 거에요.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이 없기를 바라요.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그 능력이 왕에게 까지 미치게 하신 거죠. 왕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순종을 하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누구 곁에 있는지, 어떤 공동체에 머무는 지가 중요해요. 말씀대로 기도하는 사람 곁에, 공동체에 거 하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순종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 은요, 엘리사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생기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무시되는 가족, 지체, 이웃을 보며 내 죄 때문에 통회 자복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는 아람 군대같은 사람을 향해, 그도 죄인임을 알고 봐야 할 것 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모든 고집 센 사람들이 생명의 순종 하는 줄 믿습니다.
적) 여호람 왕처럼 '내가 치리이까' 부르짖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살기 위해 고집을 꺾고 순종해야 할 생명의 적용은 무엇입니까?
<목장 나눔>
A: 예전 직장에 있었을 때 내 열심히 엄청 심했다. 일은 다 막내들 시키고 본인은 사우나 가고 술 마시고 했었다. 내 열심히 살아온 결과를 이렇게 보상 받는구나 했다. 내 안은 교만으로 가득했고 나 스스로도 타인들도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지니거나 혹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이 망하는 사건으로 깨지자 혼자 밥을 먹게 되고 노래방을 가고 허송세월 하며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올해 양교를 하고 아웃리치를 갔다 오며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내 열심히 남아 있기에 지금도 사건을 조금씩 주시는 것 같다.
B: 항상 어떠한 일이라도 몸으로 하는 거면 할 수 있을 거라며 자신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바하면서 몸이 망가져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내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확신이 좀 깨졌던 것 같다.
C: 아토피 치료를 시작한 게 있었다. 강원도에서 약초를 캐서 약을 만드시는 분인데 6개월이면 아토피를 고칠 수 있다 확신하셨고 나도 나을 거라는 확신에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2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아프기에 나도 그 분도 확신이 깨졌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인정되는 순간까지 온 것 같다.
D: 나는 내가 하던 클럽도, 클럽 DJ라는 직업도 평생 잘하고 잘 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하던 클럽이 문을 닫고 망한 사건이 나의 확신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기도 제목>
박현진
1. 가족과 엮어주신 지체의 구원을 위해 통회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2. 서원한 음악 사역 십자 가지는 사명 잘 감당할 수 있기를
3.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배우자로 준비될 수 있도록. 함께 사명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날 때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4.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봐야 할 것을 보여주시길
김정한
1. 하나님과 말씀, 공동체를 지금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모하고 소중히 할 수 있도록
2.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거룩한 일임을 확신하며 감사히 여길 수 있도록
3. 나 자신과 인간관계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고 적용하는 언행을 베풀 수 있도록
김웅
1. 게하시같은 나에게 치리해주신 질병, 물질, 관계의 고난이 나를 지켜주는 불말, 불병거임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2. 퇴근 후에 세상 영상 보는 것 줄이고 목사님 창세기시리즈 읽는 적용 지킬 수 있기를
3. 부모님이 내년 부부목장 꼭 가시고 교회의 양육에 참여하실 수 있기를
4. 신결혼 소망과 사역자 비전에 대한 믿음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