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0. 열왕기하 6:8~16 '두려워하지 말라' - 김양재 목사님
1. 내 예상과 기대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로 시작하는 이 8절의 이때는 언제일까요? 다윗 왕 때는 아람이 완전히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어요. 벤하닷 1세와 아합 왕과의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친 아람은 이제 갑자기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어요. 잠시만 방심해도 공격과 수비가 바뀌게 되는 것알아야 합니다. 사장과 부하가 바뀌고, 갑과 을이 다 바뀌는 것이 삶의 결론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윗같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판도가 지금 바뀐거예요. 아람이 나쁘다고, 저놈의 사장이 나쁘고, 시어머니가 나쁘고, 뭐 장모가 장인 나쁘다 미워하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그때에는 아람의 벤하닷 1세의 아들인 벤하닷 2세 왕이고, 이스라엘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 시대였습니다. 나아만이 나병을 치유 받고 몇년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에요.
지지난 주일에 쇠도끼 스토리가 끝나고 공동체를 위해 요단 채플을 세우고자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왕성하게 감당하고 있는 시점이었어요. 선지학교는 부흥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아람과 또 금송아지 섬기는 이스라엘 사이에 지금 갑과 을이 바뀌어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선지생도들은 이 시대를 파수하며 좁은 길을 가고자 하는데 하나님을 믿어야 할 북이스라엘 집행부는 이 소수인 엘리사 공동체의 제자들을 무시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능력과 방패가 되시는 것을 보여주어야 그 구속사의 길이 한 걸음씩 열리고 사명의 길을 가지 않겠습니까. 아람의 지속적인 공격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그 백성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채찍인 것을 봐야 해요.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도록 내버려두셔서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구원을 보여주셨는데도 홍해를 건너서 기적을 보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는데는 불과 3일이면 충분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아람 왕의 완악한 마음을 사용하셔서 구속사의 하나님을 늘 변하는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 계신거예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아람은 이스라엘 국경 지역을 끊임없이 공격해서 약탈을 일삼았어요. 나아만에게 엘리사의 존재를 가르쳐준 어린 여종도 그렇게 잡혀 온 아이였어요. 나아만은 이스라엘 선지자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아람 왕이 너무 잘 알았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여전히 아람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절대 아니에요. 내가 잘해줬다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잘해준다는 것 이런 것 기대하면 안돼요.
이것을 보면서 왕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은혜도 모르고 그럴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전히 기복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이에요. 아람의 지속적인 공격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그 백성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채찍인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도록 내버려두셔서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구원을 보여주신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아람 왕의 완악한 마음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계신거예요.
그래서 아람 왕은 신복들과 작전을 짜서 국경지대 여러 곳을 돌아가며 습격했고 그리고 짭짤하게 소득을 올리고 재미를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느 동네를 치러 가면 거기 이미 이스라엘 군대가 다 진을 치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거예요. 그럼 약탈을 할 수가 없잖아요. 소득이 없는거예요. 아무리 약탈을 해도 소득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끝에 돈이 있잖아요. 한두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되니까 아람 왕의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불안하다는 마음이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는 의미예요. 열왕기 기자는 오늘 이거 설명해주잖아요.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아람군의 공격 목표를 미리 알려줬다는거예요. 아람 왕이 이스라엘은 절대 모를거라고 확신하면서 그 기병대 진군로를 지금 이스라엘 왕실과 군대 사람이 다 알고 있는거예요. 왜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한명이 아니까 다 알게 된거예요.
아람 왕은 스스로 엄청 똑똑하다며 자기 성공과 이익을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지만 사실은 혼자 착각 속에 빠져있는 바보인 셈이에요. 자기 예상과 기대가 여러 차례 빗나가는 경험을 했으면 내가 틀렸구나 인정하며 생각을 바꿔야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아람 왕은 자기의 예상과 기대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신복 중에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있구만 이렇게 자기 생각대로 또 하는거예요. 누가 스파이인지 당장 이실직고 하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아주 그냥 신하들을 쥐 잡듯 잡으면서 이제 생떼를 쓰고 있어요. 여기서 분명히 죽어나간 신하들이 여럿 있었을 것 같아요.
나아만이 나병을 고쳤기 때문에 아람에는 유명한 자가 되어있는데요. 시간이 가면서 엘리사에 대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며 부정적으로 또 과장되어졌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기 예상과 기대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아람 왕이 이렇게 바보같이 난리를 쳤을 리가 없어요.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안되니까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일단 일어난 결과가 졌잖아요. 그래서 분노가 올라오고요. 이것이 자기 예상과 기대대로 안되어서 더 열을 받고요. 그리고 또 엉뚱한 예상과 기대를 또 하잖아요. 또 다른 계획을 세우잖아요. 근데 이것도 이길까. 모르니까 더욱더 화가 납니다. 그야말로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는데 이런 사람이 왕의 지위와 힘까지 갖고 있으니까 정말 생사람을 잡아대는거예요.
분노는 사실 두려움에서 일어납니다. 두려움을 극복해보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감추려고 용을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이 바로 분노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아람 왕은 사실 속으로는 두렵다는거예요. 두렵다를 분노로 표현하는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분노하는 사람들은 다 두렵다 이 얘기예요. 그래서 이렇게 자기 예상과 기대를 믿는 사람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남들도 나만큼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아야하는데요. 이 아람 왕 같은 사람은 하버드 박사고 뭐 별거 다 했겠죠? 고난 없이 되는 일만 있었던 사람들은 남들도 나만큼 생각한다는 이 단순하고도 쉬운 진리를 몰라요. 자기가 아는 학벌과 스펙과 이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거예요.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요. 항상 끝에는 돈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람 왕이 남들은 다 아는데 혼자만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바보 같은 일을 저질러요. 오늘 우리가 너무 아람 왕 같지는 않은지 이걸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예상은 뭐하라고 있다고 했지요? 빗나가라고 있는거라고 했어요. 예상과 기대 너무 믿지 마시고요. 모든 것을 정확히 예상하시고 가장 선한 기대를 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 줄을 믿으시기 바라요. 그래서 어떤 사건이 와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적용질문)
자신있게 예상하고 기대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상과 기대대로 되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예상과 기대만 믿다가 생사람 잡은 적은 없습니까?
2.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람 왕은 자신이 아끼는 장군이 치료되었다는 이 결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따위에는 관심이 1도 없어요. 그러니 듣고도 그의 능력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중 스파이 운운하는거죠. 그런데 그 아람 왕의 신하 중 한명이 나아만이 전해준 엘리사 선지자를 기억하고 있는거예요.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아요. 엘리사의 능력도 잘 알고 있어요. 엘리사는 왕이 침실에서 한 말도 알고, 은밀하게 나눈 대화도 알고, 혼잣말까지도 알고, 심지어 생각까지도 다 알고 그래서 그 엘리사가 아람 군대의 공격 목표를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아무리 기습을 해도 소용이 없나이다 이러면서 알려줬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아는 아람 왕이 실제로는 이 신하에게 배워야만 하는 사람인거죠.
물론 엘리사가 위대한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때마다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은 엘리사도 몰랐어요. 그래서 엘리사도 교만할 수가 없는거죠.
이런 설명을 부하에게서 들었다면 그런 대단한 선지자는 내가 어찌할 수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정상인데요. 이 아람 왕이 너무 어리석은거예요. 머리가 나쁜게 아니고 마음이 완악해서 그 좋은 머리로 생각을 못하는거예요. 머리가 좋은데, 돈이 많고, 집안이 좋고, 로얄 패밀리고, 어마어마한 고집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서 세살 아이도 알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람 왕이 지시한 일이 뭐예요. 엘리사 선지자가 도단에 있는 것을 파악해가지고 지금 사단급 병력을 보내는거예요. 군대가 어디 치러 올지 그걸 다 아는데 엘리사가 자기 치러 올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선지자 한명 잡으려고 병거까지 동원한 사단급 병력을 보내는거예요.
아람 왕을 보면서 이것을 웃기는 짬뽕이라고 불러요. 근데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 아람이 와서 이 도단의 엘리사를 포위했어요. 이것도 놀랄 일이 아니에요. 그동안 늘 방비를 했지만 지금은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유인하고 있는거예요. 결과적으로는 엘리사가 그들을 유인해야지 메시지를 줄 수가 있는거예요.
유대인들이 십자가로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을 하나님은 용인하셨잖아요. 그랬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메시지를 준 것이에요. 우리의 모든 것은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사건들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람 왕은 어떤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물어보는걸 몰라요. 그니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거죠. 또 하나님을 아는 이스라엘도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누구나 이리저리 요동하고 의심하고 세상방법만 구하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두려워요.
그래서 아람의 이 대규모 병력이 이스라엘에서도 사마리아에서 북쪽으로 불과 20km 떨어져 있는 도단을 밤새 포위했어요. 그런데도 엘리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거예요.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아람 군대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봤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급히 집에 돌아와 선생님께 보고했겠죠? 그러곤 외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도끼를 요단강에 빠뜨린 제자도 똑같이 아아 내 주여 그랬잖아요. 선지생도들은 주로 아아 내 주여가 전공인 것 같아요.
이 사환의 외침은 두려움과 걱정의 외침인데요. 아아 내주여, 이제 어찌하면 좋아요? 큰일 났어요. 꼼짝없이 잡히게 됐어요. 죽게 생겼어요. 어쩌면 좋아요.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많이 하는 말이잖아요. 어느 정도로 큰 사건이냐면 이제 무언가 큰일이 났을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도 별로 소용이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진짜로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이런 말조차 안나오겠죠. 어차피 어찌하리이까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요. 근데 어찌하리이까 할 수 있을 때는 그런 얘기를 안한다니까요. 어찌하리이까 뭔가 할 수 있는게 있어서 어찌하리이까. 무언가 할 수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르니까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빨리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렇게 두려움에 신음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무언가 해야 하는데 내게 닥친 사건이 너무 크니까 어찌할 줄 몰라서 두려워하는거죠. 내가 전적으로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이런 질문이나 한탄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말이 나오지도 않아요.
종교 개혁자 칼빈은 두려움은 정도가 아닌 바를 정자 정도가 아닌 샛길을 찾는데 대단히 재주가 좋대요. 그래서 두려워서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마구 고민하다 보면 결국 방법을 찾기는 찾는데 그게 뭐라는거예요? 바른 길 올바른 방법 정도가 아니라 잘못된 길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샛길뿐이라는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면 오히려 두려워할 일이 없는거죠. 내가 할게 없는데 뭘 어찌하리이까 그래요. 할게 있으니까 어찌하리이까 이러는거지. 맞지 않아요?
손에 완전히 힘을 풀고,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빼앗길게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고 두려워할 일이 없는거죠. 그러니 여러분 큰 사건이 생겨 두려움 가운데 계시다면 내가 아직도 뭔가 할 수 있다고 믿는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세요.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거예요. 믿으세요?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구원을 위해서 어찌하니이까 할 수 있는게 없어요. 이걸 인정하는 것이 우리 믿음인데요. 근데 참 쉽지가 않아요. 그나마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이런 외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런 고난이 닥치면 내 무능을 그만큼 인정하게 된다는거예요. 그래서 고난이 축복인거예요. 인정하는 만큼 내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자라는 것이라는거죠.
그래서 무서운 사건이 생길수록 두려움에 떨며 절망하지 마시고요. 아아 주님이 내 무능을 인정하라고 주시는 사건이구나, 내 믿음의 성장을 위해 주시는 테스트구나, 주님이 나를 이렇게 챙겨주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니까 암이 걸려도 진짜 이거는 나를 챙겨주시는 사건이야. 실직이 되어도, 대학교 떨어져도, 승진이 안되어도 나를 챙겨주시는 사건이야,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시는 사건이야 이렇게 해야지. 아아 내 주여 어찌하리이까 이딴 소리 하지마시고, 아아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 나만 생각하셔 주님은. 밑동 잘린 나무이기 때문이에요. 이 해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게 구속사적인 해석이고 그래서 주님께 해석을 잘하고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지금 여러가지 힘든 일이 왔으니 정말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건 아니에요? 챙겨주시는 사건 아니에요?
옛다 돈 하나 주는건 그건 망하는 사건이고, 이렇게 암으로 질병으로 실직으로 이러면 주님이 너무 우리를 챙겨주시는 사건이에요. 주님이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구원의 영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어요. 내가 어찌하리이까. 하긴 뭘 해요 여러분이 어찌하리이까 할게 아무것도 없어요. 구원의 우리의 능력은 1%도 상관이 안되는거예요.
적용질문)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나섰다가 실패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탄식하며 두려워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3. 우리와 함께한 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가 봅니다. 사환은 수종 드는 자인데 원어를 살펴보면 예배를 돕는자, 봉사자라는 의미가 있어요. 이게 엘리사하고 사무엘 지칭할 때 쓰였는데, 엘리사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몸종이라기보다는 엘리사와 동행한 선지생도들 중에 한 사람으로 보는게 이제 맞다는 것이고요.
색다른 해석을 보여드린다면 월터 브르그만, 데이비드 램 등은 이 사환이 게하시일 수 있다고 보는거예요. 나아만의 나병은 전염성이 약한 피부병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불가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거예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은 게하시 말고는 쓰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굳이 게하시라고도 또 굳이 게하시가 아니라고도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엘리사도 답이 없는 문제와 게하시를 치리했지만 쫓아내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치리의 목적이 구원에 있기 때문이죠. 또 치리 중이라 그런지 이름이 없어요. 다른데는 게하시 했잖아요. 하여튼 이런 견해도 있는데요. 게하시가 치리 잘 받고 복귀해서 사환을 했다면 우리들교회에도 모든 양육의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8절부터 23절까지 보면, 확실하게 이름이 소개되고 있는 사람은 오직 엘리사 한사람인데요. 이것은 6장의 이 사건과 기사가 정치사도 아니고 전쟁사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되는 엘리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속사라는거예요. 하나님만이 주인공이라는 말씀이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기새끼, 우리가 너무 중요한거예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정말 죽기까지 사랑하시잖아요.
근데 게하시는 말이죠. 나병에 걸려도 치리를 해도 또 어리둥절해가지고 동공에 지진이 난 채 서가지고 그냥 오오 주여 내 주여 어찌하리이까 이러고 있네요. 두려움에 소리치는 게하시에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굉장히 두려운 상황이잖아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그래서 엘리사는 왜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지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잖아요.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엘리사의 이상한 말 어록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에요.
지금 도단이라는 성읍에는 군대도 없고 엘리사하고 게하시하고 지금 둘밖에 없는데 뭐가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많다. 상대방은 지금 군대인데, 대군인데. 아람의 대군보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많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 우리, 이게 우리가 얼마나 파워 오브 파워인지 몰라요. 목장에서 지체들간에 일어나는 의견 충돌은 그만큼 서로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고슴도치처럼 찌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목장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해요.
엘리사는 게하시를 사랑하는데 게하시는 우리가 없어서 두려워하는거예요. 그러니까 내 주여 어찌하여 이러는거에요. 게하시는 엘리사하고 같이 있어도 우리가 좀 안되는게 있는거죠. 그럼 우리 인생에 빌려온 쇠도끼를 물에 빠뜨리는 이런 사건이 와도 우리와 함께한 자와 더불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우리와 함께한 자와 함께 오늘 말씀만큼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십자가를 집어야 돼요.
하나님의 역사는 전쟁과 같은 중차대한 사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 공동체가 중요한 것은 이 공동체를 통해서 한 영혼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거예요. 맨날 공동체에서 한 영혼을 돌보고 살리잖아요. 그러면 내가 두려움이 없어져요. 그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되는거예요.
아람은 이제 이만큼 했어요. 그럼 북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군사력이 뛰어나서 아람 군대를 물리쳤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방비하니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어요.
근데 여러분 이 당시 이스라엘 왕이 누구죠?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기는 여호람이잖아요. 하나님 보시기에 무엇이 그리 예뻐서 그를 도와주셨겠습니까. 그럼에도 아버지 아합이 섬기던 바알의 주상을 없앴다고 3장에 읽었던 것 기억나세요? 그러니 이 세상의 전쟁은 결국 믿는자와 안믿는자의 싸움인거예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 이스라엘을 도울 수밖에 없는거예요. 착해서 돕는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냥 구제, 선교해서 돕는게 아니에요. 그냥 하나님의 내새끼이기 때문에 아무 자격이 없는데 도와주시는거예요.
적용질문)
우리와 함께한 자가 세상과 함께한 자보다 더 많은 것을 믿으십니까?
기도제목
박소영
목자송년회 사회, 유치원 뮤지컬 준비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쁘게 섬기도록
올해 목장 잘 마무리하기를
김경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두려움의 근원에 말씀으로 소금 치기를
회사 업무에 아이디어와 지혜주시기를
정현영
마라톤 훈련 다시 시작했는데, 부상 없이 준비하기를
연말에 부모님 잘 만나기를
이소영
우리 공동체에 잘 붙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