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김양재 목사님
열왕기하 6장1-7절
100년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평양은 장대현교회가 중심이 되어 대부흥이 일어나 곳곳에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도 부흥과 분립개척이 나온다. 엘리사가 이끄는 선지학교 이야기이다.
이 선지학교가 엄청나게 부흥해서 분립개척을 하려고 하는 말씀이 우리들 교회가 광주와 대구에 세우려는 이 때에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해야 거주할 처소를 세우는지 살펴보자.
1.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있어야 합니다.
처소가 좁다고 한다. 부흥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여기가 부흥했을까? 이때는 가난한 과부여인, 부자 수넴여인, 이방인 나아만 등 평신도와 이방인을 분별하고 순종했다. 엘리사의 수제자 게하시는 도리어 분별을 못했다. 기회만 되면 스승의 지팡이로 권세를 휘두르고 스승까지 팔아가며 지어낸 거짓말로 큰 돈을 탈취했다. 평신도보다 수제자가 가장 골칫거리이다. 게하시가 얼마나 거룩해보였으면 수제자가 되었을까, 평신도는 힘드니까 고정관념 없이 살려고 왔다. 사역자들은 사역하러 와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쓰려고 하니 말씀이 들리지 않고 평신도의 부흥에 비해 사역자들은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대표적 제자가 게하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참다 참다 게하시의 탐심을 엘리사가 나병으로 치리했더니 도리어 이 공동체가 부흥을 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게하시를 치리하지 않고갔다면 그당시는 지나갔겠지만 이 공동체의 부흥은 없고 잠시 후 분열이 있었을 것이다. 치리하는 이 공동체는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들교회도 치리하는 교회이다. 평신도 사역자 모두 치리를 해왔다. 물론 치리만 있는게 아니라 세례, 성찬, 치리 등 골고루 있다. 이것이 양육이다. 양육이 제대로 되어지니 부흥이 되었다. 양육의 원칙은 철저히 말씀 적용이다. 결국 부흥을 내려놓으니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되었다.
원어로 보면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있는 이곳은 엘리사 앞에 제자로 앉아 가르침 받는 곳 선지학교다. 오늘로 말하면 신학교다. 곧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곳이다. 그래서 교회이기도 하다. 예수님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다. Teaching, Preaching, Healing이다. 잘 가르쳐야 전파가 되고 치유가 일어난다. 우리들교회가 집회 한번 안했는데 성경을 제대로 읽고 양육받으니 매주일 치유가 일어났다. 이렇게 선지학교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제자이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것이 배움의 기본이고 양육의 시작이다. 제자들이 양육이 잘되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 말할 때도 있다. 왕사부 엘리야 선생이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 선생님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님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 아시나이까? 이건 대책이 있는지 걱정하는 질문이다. 또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그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가지고 건넌 것을 본 직후에 나온다.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걱정이 안도로 바뀌는 감탄의 외침이다. 또 제자들이 굶다가 겨우 들호박 국을 끓였는데 거기 독이 있었다. 그러니까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독이 있나이다 하고 외침했다. 그리고 네번째 나온 제자들의 말이 오늘 본문이다.
거주하는 처소가 좁으니 요단강 근처에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는 제안의 말을 한다. 지금까지 현실의 문제 앞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많이 컸다. 제자가 많아 추가로 건물을 세우자는 것이다. 신이나서 당당하게 선생님 앞에 나와 조르는 모습이 귀엽다. 제자들이 엘리사를 회사 사장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충성해 아무말도 못하면 그 양육은 실패한 것이다. 사부님에게 질문하고 나눔하며 감탄하고 두렵다고 외치기도 하고 드디어 제안하게 되는 것이 양육의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사실 제자들이 너무나도 기뻐하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악한 왕 여호람의 통치 아래 있다. 영적으로는 우상숭배, 육적으로는 가뭄과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살길이 컴컴한 암흑이었다. 대단한 선지자도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다. 그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제자로 만나게 하셨다. 시간이 흘러 제자들이 늘었다. 벧엘과 여리고 둥지에 모여 선지학교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승계가 이루어져도 여전히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수였고 비주류였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서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왕따였기 때문에 여전히 생존 자체가 문제인 공동체였다. 이런 암흑기에 엘리야도 끝까지 목숨 걸고 사역했고 엘리사도 스승 못지 않게 전국을 누비며 최선을 다해 사역했다. 여호와의 손을 힘 입어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열매가 게하시의 치리와 맞물려 여지껏 생존이 걱정이던 선지생도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다. 부흥도 그냥 부흥이 아닌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신학교도 벧엘과 여리고에 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엘리사의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니까 두개의 신학교가 아니라 한개의 신학교에 두 채플이다. 본문 1-2절에 제자들이 자기를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 네번 나온다. 그러면 우리들 신학교 하면 딱 맞지 않는가? 또 신학교는 교회니까 우리들 교회인 셈이다. 우리들 교회 벧엘 채플과 여리고 채플. 우리들 교회도 휘문이 차고 넘치니 어쩔 수 없이 판교 채플을 세웠다. 엘리사의 우리들 신학교도 한 곳이 차면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되었을텐데 두 곳 다 모두 차고 넘쳤던 것 같다. 그래서 요단강에 새로운 채플을 세우자고 제자들이 나서서 요청한다.
왜 이렇게 거주하는 곳이 차고 넘치는 부흥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살아났다. 그런 살아난 입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엘리사가 있는 선지학교로 몰려들었을 것이고 살아나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을 것이다. 살아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살고싶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들을 섬길 일꾼도 많이 필요하고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는 원리이다.
부흥은 교회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교회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이다. 우리들교회도 그렇다. 목회하려고 교회개척하지 않았다. 교회 부흥도 계획이 없었다. 상상도 못했다. 이혼하려는 한 사람 찾아가 이혼을 말리고 죽겠다는 한 사람 쫓아가 자살을 말렸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의 간증을 듣고 살고싶어 모이던 사람들에게 그저 그날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우리가 이 기적의 이야기들을 다 살펴보았다. 이 기적 하나가 나오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선지자와 사람들이 어떻게 순종하여 적용했는지 자세하게 묵상했다. 기적의 공통된 스토리는 하나님이 말씀과 사건을 통해 엘리사도 사람들도 말씀에 담긴 메세지도 키워가시는 것 아니었는가? 기적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성장하고 구원의 메세지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양육이다. 그래서 엘리사의 선지학교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다.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 말씀으로 양육받는 이곳이다. 기적이 부흥을 만드는게 아니라 양육이 부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적은 일시적이다. 기적으로 일어난 부흥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에 의한 양육은 말씀이 영원하므로 영원히 이어진다. 모든 교회가 이렇게 계승되면 교회가 분열 안되기가 정말 어렵더라. 양육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한다. 말씀에 의한 양육은 말씀이 영원하므로, 영원히 이어질 줄 믿는다. 우리가 천국 가서도 하나님께 직접 양육받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께 직접 양육받는 것은 생각만해도 설레지 않는가?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기쁨 아니겠는가. 말씀이 영원한 만큼 말씀으로 양육에서 이어진 부흥 또한 영원할줄 믿는다. 양육을 통해 이런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때 거주할 처소를 세우게 된다.
적용
말씀으로 양육 받아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까?
내 교회를 사랑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야 합니다.
전국적인 가뭄으로 선지학교 건축에 쓸만한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요단강에 가서 나무를 베어 새롭게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한다. 요단강은 나아만의 병이 나았던 곳이다. 새로운 채플을 세워야할 정도로 부흥한 것을 누가 가장 기뻐했는가? 당연히 엘리사가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가장 악한왕 아합시대에 스승 엘리야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하나님께 충성했는지 엘리사는 누구보다 자세히 봤다. 그 외로운 사역을 엘리사가 그대로 물려받아 이어가고 있다. 차고 넘치는 부흥이 일어나니 기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엘리사는 가라고 했다. 엘리사의 허락을 받은 그들은 자기들끼리 가지 않고 종들과 함께 가소서 하며 매우 강력한 요청을 한다. 우리와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우리도 가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함께하지 않으면 계획이 아무리 좋고 유익해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엘리사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내가 가리라고 대답한다. 우리 공동체가 되어 모두 함께 요나단에 도착해 나무들을 벤다 잔뜩 기대에 차서 일을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생긴다.
엘리사가 살던 때는 BC 9세기이고 철기시대 초기로 이스라엘왕국 초창기에는 이스라엘 전체에서 철로 된 무기를 가진 사람은 사울하고 그 아들 요나단 뿐이었다고 한다. 블레셋이 철기문화를 선도했다. 블레셋도 바알을 섬긴 이세벨도 대장간을 통제하고 철제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쇠도끼는 최고급 전기톱이고 빌려준 사람도 이걸 신앙고백으로 돕고자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한 그루, 두 그루 벨 때 이 쇠도끼는 세네개, 열개가 좍좍 베어져 나가니 신나서 베다가 도끼머리가 자루에서 빠져 나간 것이다. 사실 도끼머리가 날라가는 일은 흔한 일이다. 점검을 확실히 해야하는데 여기서 그만 한 생도가 점검을 소홀히 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함께 일하던 사람을 피해 요단강에 떨어졌다. 도끼 머리를 찾는게 불가능했다. 생도는 갚을 돈도 없고 빌려준 사람에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었다. 문자적으로도 선지자로써 사명을 접고 이제 남의 집 노예가 될 처지가 되었다. 이 선지생도에게 쇠도끼가 떨어진 사건은 인생이 떨어진 사건이었다. 1단계도 못마쳤는데 가장 필요한 쇠도끼를 잃었다. 이것만 있으면 할 수 있어, 이렇게 내 힘을 신뢰하게 해주는 귀한 도구가 떨어져서 쓸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선지학교 캠퍼스 세우는 감격스러운 일을 위해 손과 발이 아픈 것도 모르고 신나게 도끼질을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휘둘렀으면 그렇게 날아갔겠는가. 이렇게 기쁨과 감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일이 술술 잘 풀려 쇠도끼 능력치의 100%, 200%를 발휘해서 작업이 빨리 진행되고 건물이 더 크고 튼튼하게 올라가도록 하나님이 책임져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명분도 확실하고 헌신도 있고 모든게 다 갖춰져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무서운 위기가 왔다. 이렇게 가장 의지하던 대상이 떨어지고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전부 다 내 인생 망했다, 이제 끝이다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생기면 죽어야돼 하고 단정하는 것이 누구에게 배우자 하나도 저절로 선택하게되는 인생의 결말이다. 한명의 실수가 전체를 좌우했다. 그러나 한명의 믿음이 전체를 살리기도 한다. 나 한 사람의 말과 언어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온 성도가 같이 기도하여서 그렇게 하자고 하는 한 명이 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주실까? 우리 힘으로는 우리가 안전하게 거주할 처소를 절대 지을 수 없다. 우리 힘으로 기껏 짓고 나중에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예 처음부터 우리의 힘을 꺾으시는 것이다.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려서 그냥 기대도 하지 않게 만드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다. 항상 하나님은 우리보다 몇 수 더 앞서 보시면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주시는 사랑이다.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려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후한 선물이 되는 줄 믿는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기도하면 된다. 공동체가 있고 말씀이 있으면 된다.
적용
내가 돈과 건강, 관계, 재능, 자리 등 쇠도끼처럼 의지하고 있는 사람과 대상은 누구이고 무엇입니까?
그것이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 사건이 사랑으로 느껴집니까?
3. 사명의 십자가를 손 내밀어 잡으면 됩니다.
엘리사는 그 쇠도끼가 어디 빠졌냐고 묻는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장소, 그 상황, 그 환경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는 요구이다. 그것을 보이라는 것이다. 이제 망했다며 환경에서 벗어나고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 환경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목장에서 보여야한다. 내보이니까 해석이 되어 해결이 되는 것이다.
쇠도끼가 떨어진 장소를 보여주니까 엘리사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진다. 물 근원에 소금을 던져 나쁜 물 고치고 솥에도 가루를 던져 죽음의 독을 해독시켰다. 이번에는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깊이 가라앉은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다. 즉 아무리 무거운 쇠도끼가 가라앉았어도 나뭇가지를 딱 넣으니까 떠올랐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건너는 대단한 기적을 행했는데 백성들은 사흘길을 걷고 물이 써서 못마시니까 금세 원망했다. 홍해바다 건넌지 사흘 밖에 안됐는데. 백성들이 그렇다.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모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아닌 거기 있는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다고 한다. 우리 일상에서 십자가를 던지면 쓴 물도 달아지고 쇠도끼도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내 주위에 나뭇가지를 넣는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병원에서 전도하는 것을 시작했다. 그 당시 딸 낳은 산모들은 슬퍼하며 곡소리를 냈었다. 병실에 가면 산모가 밥도 안먹는다. 그때 제가 들어가서 위로하고 딸부자집 막내딸이다 하면서 간증과 전도를 했다. 학교 잘 가고 피아노 치고 겉으로 보기엔 성공했어도 지옥을 살다가 병원에서 전도하고 양육하니까 천국을 살더라. 사명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결혼을 잘 지키는 비결인지를 모른다. 결혼을 지키는 것이 내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비결이다.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내가 남의 새끼 가르치면 하나님이 내 새끼 돌봐주실 것을 믿는다. 세속사로 잘되는게 아니고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 반드시 하나님이 보장해주실 줄 믿는다.
쇠도끼가 떠올랐으니까 집으면 된다. 물에 뜬 쇠덩어리를 보고 넋이 나갔을 그에게 선지자는 너는 그것을 집으라고 한다. 죄와 사망에 매인 옛 사람을 떨어트려 버리고 주님이 살려주신 새 사람을 들어올려야한다.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으니 이제 그거 생각하며 아쉬워하지 말고 나를 살리신, 내게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라는 것이다. 집으라 하니까 집으니라 한다. 잡았다 뽑았다 가졌다 라는 뜻이다.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는 사명의 십자가를 맡기실 때 나 못해요, 들어올릴 수 없어요 하고 주저앉지 말고 그저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라는 것이다. 들어올릴 힘은 없어도 손은 내밀 수 있다.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다. 내가 열심히 하다가 떨어트린 것, 내가 내 힘 믿고 덤비다가 실패한 것, 교만하게 나대다가 넘어진 것. 그런 것들이 내 눈 앞에 다시 떠오르면 다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려는 것은 여전히 내 힘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내가 의지하던 쇠도끼가 완전히 떨어졌으면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환경으로 도망간다. 피하고 싶은 사명 다시 보여주시면서 집으라, 들어올리라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면 된다. 사명의 십자가를 손 내밀어 잡는 것이 순종이다. 사명을 맡기실 때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며 받는 것이 손 내밀어 잡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높이높이 들려올려주실 줄 믿는다.
우리들교회는 이렇게 시작부터 부흥이 목적이 아니었고 오직 말씀묵상 가정중수 운동으로 한사람 한사람 살리는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대적 뜻이 있으셔서 큰 부흥을 주셨다. 하지만 말씀 묵상 운동이 행여나 오해나 방해를 받을까 지금까지 20년동안 지교회를 세우거나 분립개척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교회 부흥을 위한 부흥회나 행사는 하지 않았다. 오직 이 큐티 무브먼트가 멀리 전해져 그 한사람 살리는 물결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헌신과 섬김으로 띵크 목회 세미나를 10년 동안 열며 교인 부흥회는 없이 목회자 부흥회를 1년에 두번씩 했다. 매번 말씀이 들려 반응하는 그 한 목회자, 한 교회가 나오길 기도하며 아낌없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이제 곳곳에서 열매가 나오기 시작했다. 말씀 묵상의 동역자가 되신 분들을 강단에서 계속 보고있다. 다음 세대의 대안이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만 하기에는 너무 더디다. 반면 시대는 너무도 빠르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판사들의 이혼판결이 너무나 많고 세속사적 가치관이 가정을 지배하고 있고 출산율이 0.7이다. 우리가 구속사 말씀의 방파제를 목회 세미나만 가지고 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라가 없어지면 예배가 어디있겠는가. 부흥을 주신데는 이유가 있다. 참을만큼 참았다. 가장 먼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이곳까지 매주 오가며 예배의 처소에 거주하신 수백분의 성도님들이 계시다. 냉난방도 안되는 이곳에 다 살려고 오셨다. 그분들에게 목회자 한분 파송하면 교회가 된다. 그곳에 개척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들교회가 기초도 안세워졌는데 처음부터 개척했다면 우리교회 부흥으로 끝났을 것이다. 20년을 기다렸다. 우리가 이분들에게 나뭇가지를 던져 떨어진 것을 다시 떠오르게 할 때가 되었다. 특별히 대구와 광주인 것은 지역감정, 영호남의 영육치료가 되길 바라서 이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다. 말씀 묵상과 가정중수의 사명을 잡으라고 하신다. 너무 무거운 십자가이다. 세태를 볼 때 불가능해보이는 사명이다. 그러나 또한 너무 귀한 사명의 십자가이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을 살린 십자가이다. 오늘 이 십자가를 손을 내밀어 잡으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구원때문에 고민하고 망설이던 개척을 손을 내밀어 잡았다.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주님이 일하실 줄 믿는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만물을 붙드시는 능력의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 지는 사명을 높이 들어올리셔서 한영혼 한가정 구원하시는 기적을 대구와 광주에서도 이어가실줄 믿는다. 여러분들이 멀리서 살려고 온것 뿐인데 얼마나 힘들면 그 먼곳에서 20년을 오셨을까 생각하며 그분들은 다 쇠도끼 잃어버렸다고 망연자실 하고있는 분들이기에 20년을 사모하셔도 건축헌금 하시는 분들은 아무도 안계시더라. 우리들교회는 여전한 방식의 일반재정으로 가장 힘든 지역에 큰 재정으로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진다. 교회 부흥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고 가정 살리려고 가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란다. 끝에는 항상 돈이 있다. 돈 때문에 분열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거저 해주고 있다. 그 곳에서 우리가 해줬다고 생색내면 안된다. 개척을 해도 기득권을 절대 주장 하면 안된다. 구원은 선물이다. 말씀에서 이때 쇠도끼가 빠졌다고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하지 못한 점검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한다. 절대로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적용
주님이 내게 '집으라'고 명령하시는 사명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피하고 있습니까, 손을 내밀어 잡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박가영
1. 의지하던 쇠도끼 떨어뜨리시는 힘 빼는 사랑의 시간들 기억하고, 주님 더 의지하는 한 주 되길
2. 거주 할 처소 구하는 이슈도 내 힘 빼고 인도함 기도로 먼저 구하도록
3. 그간 손 내밀어 잡고 온 십자가들 들어올려질 때까지 첫사랑 회복과 힘 더해주시길
4. 목장 식구들 모두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내년의 변화 시간들 되길
5. 아픈 지인,가족들 소식 들리는데 중보 쉬지않도록
6. 가족 구원과 만남의 축복 위해
7. 전쟁 멈추고 갈등의 이나라 열방 불쌍히여겨주시길
오지은
1. 나의 약함과 상처를 숨기기 위해 쇠도끼가 없어도 열심으로 위장하지 않고,
좋은 때에 낮은 마음으로 내 죄부터 보는 정비를 잘 하여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한다는 고백이 먼저가 될 수 있도록
2. 부모님의 건강 지켜주시고 각자가 말씀을 통한 삶의 해석과 위로로 우리 가정이 주님께 의지하며 갈 수 있도록
3. 연말 되면서 지인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는데 믿는자로서 잘 들어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보내주신 자리에서, 겸손함으로 순종하며 갈 수 있기를
4. 임신 준비 중인 지인들이 많습니다. 새 생명의 축복을 주시길
5. 신교제 신결혼을 위한 만남의 축복을 주시고 예수씨가 있는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 주시길
6. 김양재 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지켜주시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그 기도와 진심이 잘 전달되는 목회자세미나가 될 수 있도록
정세린
1. 엄마 집에 막상 간다고 하니 두렵고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계속 말씀 보며 마음 만져주시기를
2. 나뭇가지 잡는 심정으로 쇼핑 중독 회개하며 계속 끊기 위해 약 잘 먹기를
3. 구원의 애통함이 아빠 때처럼 없는 나를 봅니다 엄마 구원을 위해 애통함이 있도록
4. 언니 가족 구원을 위해 언니를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5. 양교 마친 후 적용의 길로 갈 수 있도록
6. 전쟁 속히 끝나기를
7. 김양재 목사님 건강하시기를
8. 감기가 계속 걸리는데 회복 잘 할 수 있도록
이미선
1. 연말인데 이룬 것이 없다고 여기지말고 매일 말씀으로 내 죄를 잘 직면하도록
2. 의지하고싶은 쇠도끼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온전히 주님 신뢰하도록
3. 내년 목장 개편을 위해
4. 김양재 목사님의 영육의 강건하과 사역에 기름부어주시고 부교역자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함께해주시길
5.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악법이 막아지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고 교육개정안이 폐기되도록
6.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책임지고 희생하는 지도자가 준비되어지길
7. 아웃리치 준비 기간 동안 마음 잘 지켜주시고 즐겁고 감사하게 할 수 있도록
8. 전 세계에 전쟁이 그치길
김의경
1.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기
2. 엄마 허리 낫기
3. 건강한 체력과 정신 주시길